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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38화 (238/259)

[238화]

‘하지만… 역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군.’

하나 빠르게 일을 정리한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부작용이 있기 마련. 우선 파괴된 이 신성국의 도시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자아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땅에 파묻히거나 붕괴된 건물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치료하고, 또 이곳을 복구하는 데만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들 것이고, 문제가 생길 것이라서 모두들 당황하겠지만 베오날드는 뒤처리할 방법까지 생각해 둔 것이었다.

‘안 되면 안 하면 그만이다.’

베오날드는 마갑주를 입은 이 상태로 계속해서 현장을 지휘하면서 구조 작업에 한창이었다.

마력 소모도 개선하고 성검의 무한한 힘 덕분에 운용하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 종일 입고 있으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식사나 배변은 짬이 날 때마다 어디론가 몰래 가서 해결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아무튼… 지금 이 모습이 위용이 넘치니 어쩔 수 없지.’

“저기, 지금 이것에 대해서… 의문이 드는데,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참 고민하는 그에게 다가온 것은 하륀 사제로, 베오날드의 추천으로 임시 교황으로 임명된 그는 베오날드가 준 서류를 들고서 의아하다는 얼굴로 다가온 것이었다.

베오날드가 차기 방안의 지시를 내리자 그는 놀란 표정을 하면서 되물었지만, 베오날드는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잘 들어라. 이미 이곳까지 암흑신교의 손길이 뻗친 이상 제국 수도는 더욱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구조 작업을 가능한 한 선까지 한 뒤, 도시 복구에는 최소한의 인력을 남기고 성전군을 편성한다. 알다시피 이 정도 규모의 피해를 제대로 복구하기 위해서는 이곳 신성국만의 인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지금 제국에 빚을 지워 두든가 도움을 줘서 살려야만 한다.]

“으으음…….”

[고민이 된다면 회의를 하고 와도 좋다. 아직 시간이 있고, 나는 구조 작업에 한창이니 신중히 결정하도록.]

어차피 다른 뾰족한 수는 없을 테니 결정 난 거나 다름없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신전 기사나 병사, 고위 사제들에겐 또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이 폐허가 되어 버린 신성국에 남아 봐야 복구 작업으로 인한 수십 년의 고된 노동밖에 미래가 없지만, 적어도 제국을 도우러 간다고 하면 운이 좋으면 명예를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신전 기사나 병사들은 특히나 이쪽을 지지하겠지. 죽을 위험이 있다곤 하나 허무하게 노동만 하다가 죽을 바엔 찬란히 빛나는 전장에서 명예를 얻고 싶어 할 테니 말이야. 인간의 본능이 그러한 것이니…….’

“무조건 가야지요! 제국을 도와야 신성국의 복구도 편해질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건 용사님 말씀이 백배 맞습니다.”

“이미 암흑신교의 손길이 이곳에 뻗쳐 왔는데, 제국까지 멸망하면 신성국의 복구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도록 하지요, 임시 교황 성하!”

“이미 이 신성국에 암흑신교의 손길이 뻗은 것만 해도 엄청난 불명예이고, 치욕입니다. 그것을 씻으려면 성전밖에 없습니다!”

베오날드의 예상대로 답은 그가 생각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여러 각도에서 어떻게 보든 이유를 생각하든 그의 말대로 이 폐허가 된 도시에 남아서 일하는 것보단 나가서 마족과 싸우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명예, 실리, 이 신성국의 복구, 어떤 면에서든 이제 성전군을 파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신전 기사들과 모두의 만장일치로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용사님.”

[역시 그렇군. 이곳의 치안과 복구 작업도 생각해야 하니 남을 인원을 생각해서… 딱 1만 명만 모으도록 하지. 그 정도는 되어야 성에 지원이 될 거니 말이야.]

본래 이 신성국에서 계획하던 ‘성전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지만, 이 망가진 도시를 일으키는 데 써야 할 인력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베오날드가 말한 숫자가 딱 적당했다.

그렇기에 하륀 임시 교황은 별 반대나 저항 없이 베오날드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문제를 제기한다.

“편성엔 문제가 없습니다만, 하나 보급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인데…….”

[그건 걱정하지 마라. 이미 전갈을 보내 두었다.]

“전갈을 보내셨다고는 해도 어디에……?”

[지금 유일하게 여유가 있는 곳이지. 발데리안 영지다.]

“하나 그들이 쉽게 보급을 해 주겠습니까? 본디… 발데리안 영지는 신성국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데…….”

[제국을 구한다는 미명도 있고, 그리고 정 안 되면 내가 직접 설득하러 한 번 더 갈 생각이다. 그러니 큰 걱정 하지 말고 성전군을 편성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보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베오날드의 말에 불안함을 느꼈지만, 어쨌든 용사로서 이미 교단을 장악한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의 말을 믿고 ‘성전군’을 새로이 조직하기로 하며 서둘러 구조 작업과 임시 복구 작업을 계속 진행해 나갔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도시 붕괴 속에서 한바탕 날뛰었던 암흑신교의 추종자들은 현재 드디어 나타난 ‘용사’로 인해 모두 도망쳐서 도시 지하 하수도 속에 있는 비밀 기지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성검의 빛으로 인해 정체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기존 교단 내에 잠입했던 암흑 사제들을 비롯한 메데란네 주교를 중심에 두고, 다들 이리저리 떠들면서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역시나 여신이 뽑은 존재라서 그런가 보통 존재가 아니더군요. 용사란……. 무력도 무력이지만, 엄청난 지식과 지혜로 도시의 혼란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도시를 붕괴시킨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웅성웅성…….

주로 들리는 이야기는 용사로서 강림한 베오날드의 능력에 대한 것과 그리고 이 도시 붕괴를 대체 누가 저질렀냐는 것이었다.

암흑신교의 교도들로서도 참 기이한 일인 것이, 분명 이곳을 총괄하는 메데란네 주교는 교단을 유지해 둔 상태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크게 만들어서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말이지.”

“왜 그러십니까? 메데란네 주교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재 강림해 있는 마족이나 우리 암흑신교 내에서 이 도시를 파괴할 만한 놈이 떠오르지 않아.”

“예? 메데란네 주교님을 시샘하는 게 아닙니까?”

“으으으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라미엘 님이나 대주교도 그렇고, 마왕님의 직속 마족분들은 다들 위에서 직접 전투를 하시는 분들인데 말이지.”

그녀는 이 도시를 대체 누가 파괴했는지에 대해서 계속 궁금증을 표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미 내부로 들어와 장악한 곳이라서 굳이 이런 테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둬도 날이 가면 갈수록 신자가 늘어나고, 제국의 붕괴 때문에 사람들의 불안도 커져서 암흑신교로서는 더욱 큰 이득이 되는 상황인데, 도시가 붕괴되는 건 큰 손해였다.

“아무래도 너무나 신실한 신자들이 멋대로 행한 게 아닐지?”

“누가, 그러니까 누가?”

“글쎄요… 아니면 마족분의 소환이라도 실패한 게 아닐까요?”

“이 정도 도시를 이렇게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마족이 흔한 줄 아나? 사천왕급… 아니, 무조건 마왕 클래스다.”

“하지만 마왕님은… 현재 이 대륙엔 분노의 마왕님뿐이지 않습니까?”

“그래. 나도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스읍…….”

이마를 찡그리면서 메데란네 주교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인다.

도저히 이 상황을 누가 전개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세력, 마족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인데 벌어진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분노의 마족님들이 원래 다혈질이시고, 앞뒤 안 가리는 분들이셔서 그런 게 아닐는지요?”

“멍청아, 이 파괴는 누가 봐도 철저히 계획적으로 일어난 건데, 어떻게 분노의 마족님들이 할 수 있겠냐? 그 대가리에 분노, 파괴, 학살만 가득한 양반들이? 했으면 이렇게 한 번에 무너뜨릴 게 아니라 우직 쾅쾅 하면서 나타나서 뭉갰겠지.”

“어…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부류의 마족들과 그들을 섬기는 놈들이 우릴 엿 먹이려고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설마 용사가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고정관념의 무서움. 용사는 여신의 명을 받고 내려온 자이기에 무조건 선하고 착한 자이며, 신성국의 사람들을 테러해서 학살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용의선상에 오른 건 같은 암흑신의 교도이면서 경쟁자인 자들, 다른 악마나 마족을 섬기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군요. 하지만 누가 누구인지 모르니…….”

“사실상 찾아내는 건 불가능… 하거나 다른 마족이나 악마의 힘을 빌렸을 수밖에 없지. 후우우… 그래, 결국 이 문제는 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 뭐,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면 결국 관건은…….”

“그래. 그 용사, 망할 놈의 용사. 그 들고 있는 성검으로 보아 진실로 우리의 적인 여신의 종, 우리에게 마왕 같은 존재다.”

용사에 대해 생각하자 표정이 심각해지는 메데란네 주교였다.

특히나 이번 용사는 전설이나 동화에 나오는 존재와 그 규격이나 행동이 너무나 달랐는데, 이 신성국의 도시가 무너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나 모든 상황을 휘어잡고, 무능한 교황을 숙청해 버리고 권력을 잡아서 능숙하게 행정과 복구 작업을 지시한 다음 순식간에 성전군까지 재조직해 버리는 미친놈이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뭐라도 알아낸 게 있느냐?”

“죄, 죄송합니다. 그… 하루 종일 갑옷을 입고 있는 데다 그 성검의 힘이 어떻게 된 건지 빛으로 그의 모습을 가리고 있어서…….”

“제길! 망할 놈 같으니! 이렇게 된 이상 그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쉽지 않겠지?”

“예. 성검의 힘도 힘이지만, 그 기괴하고 큰 갑옷이 문제입니다. 딱 봐도 성스러운 힘도 힘이고… 엄청 튼튼해 보여서…….”

“후우우… 그럼 어쩌지? 이대로 놈을 보내고 이곳의 장악에 힘이나 쓸까? 아니면… 음?”

쿠구구구…….

한참 용사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이 지하 하수도에 있는 은신처 멀리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감지한 메데란네였다.

다른 암흑신교의 교도들과 부하들은 한참 떠들면서 대책 논의를 하거나 자기들 멋대로 찬송이나 예배를 드리면서 어수선했기에 눈치를 못 챈 것 같지만, 그녀는 엄연히 이 신성국 내에 잠입한 암흑신교의 교도들 중 마왕군과 직접 연락을 할 수 있는 간부급으로 상당한 강자였기에 눈치챈 것이었다.

“이봐, 다들 정신 차려라. 지금 뭔가 이상하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예? 저희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뎁쇼…….”

“예. 대체 무슨 소리가…….”

“어어?”

쿠구구구구구구……!

메데란네의 말에 시선이 모인 그들은 한 번 더 의아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모두가 알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진동과 소리가 지하 수도 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면서 진동하는 소리. 뭔가 심상치 않음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익숙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이 소리는 그들도 얼마 전에 들었던 땅의 진동과 소리였기 때문이다.

“크, 큰일이다. 다들 나가! 빨리!”

“으아아아! 암흑신이시여!”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다들 빨리! 빨리 나가! 이대로 있다간 땅에 그대로 묻혀서…….”

콰가가가가!

하나 그들의 반응과 다르게 지하의 붕괴 속도는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전개되었고,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지면서 그대로 그들을 파묻기 시작했다.

메데란네 주교는 다급히 암흑 신성력을 끌어 올리고 신체 능력을 최대한 활성화해서 먼저 빠져나가고자 했다.

‘젠장! 대체 어떤 자식이……!’

이를 악물고 떨어지는 돌덩이와 흙무더기를 피하면서 검은 잔영을 그리며 달려간 그녀는 역시 암흑신교의 간부답게 아슬아슬하게 붕괴 지점에서 벗어나서는 하수도의 탈출구를 따라서 미친 듯이 달렸다.

‘좋아! 빛이다. 이걸로 살았어! 어라?’

어둠의 종자로서 빛을 반가워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입구 쪽에서 무언가 불쾌한 느낌이 드는 것을 눈치챘다.

더러운 여신의 힘. 그녀는 저 앞 입구 옆에서 자신을 노리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을 쳐 죽일 생각으로 암흑 신성력을 끌어 올리며, 질주하는 속도를 더욱 가속해 갔다.

‘내가 쳐 죽여 주지. 감히 날 노리려 해?’

콰르르릉!

검은 투기를 끌어 올린 그녀는 거의 입구에 도달하기 직전 여신의 힘이 느껴진 좌측 벽면, 입구를 뚫고 가면서 상대를 덮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 시도는 허무하게 허공만을 갈랐는데,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그저 땅에 꽂혀서 영롱한 빛을 내는 검 한 자루뿐이었다.

‘이건 서, 성검? 그렇다면!’

“아… 역시 잘 낚이는군.”

덩그러니 놓인 성검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등 뒤에서 들리는 남성의 목소리.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은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려서 반격하고자 했지만, 이미 전력을 끌어 올려서 한 수를 내디뎠기에 다음 수를 놓으려면 한 호흡 정도의 시간이 꼭 필요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지.”

타아아앙!

그리고 상대는 일체의 자비와 머뭇거림 없이 그녀가 돌아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겨서 ‘볼트 슈터’를 쏘았고, 메데란네 주교의 머리는 수박처럼 터지면서 피와 뇌수를 흩뿌리는 동시에 그녀의 몸은 그대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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