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약 5분 전, 중앙 대신전 교황의 방.
“오늘도 힘들었군. 홀홀홀.”
“저희가 하겠습니다, 성하.”
교황은 어깨를 두드리면서 오늘도 열심히 시간을 버티는 일을 하느라 수고한 자신을 위로하며 침실로 들어왔다.
교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려한 방의 침실로 들어간 그는 수습 사제들의 손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며 내일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언제쯤 되어야 제도 함락이나 위기의 기별이 오려나 모르겠군. 얼마를 더 버텨야 할지 모르겠으니 말이지. 홀홀홀.’
사실 가능한 한 빨리 ‘성전’을 선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교황이었다.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성전’을 선포하여 신전 기사들과 병사들이 출정하는 걸 보게 되고, 그로써 세상을 구한 자로 이름이 남을 테니 말이다.
연로한 자신이야 당연히 이곳 대신전에 앉아서 안전하게 지내게 되겠지만, 결국 승리의 성과는 모두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제국이 무너지면 이 신성국의 규모를 대륙 전체로 늘리고, 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교황으로 이름이 남겠지. 게다가 용사까지 있으니… 홀홀… 음?’
“…성하, 왜 그러시는지요?”
“아니, 지금 혹시 무슨 진동을 못 느꼈나? 소리 같은 것도 말이다.”
교황은 뭔가 건물이 흔들린 것 같은 느낌을 미세하게 받고는 수습 사제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저희는 전혀 그런 것을 듣지 못했사옵니다.”
“홀홀, 그런가? 내가 과민한 것일지도…….”
우르르르르르르릉!
하나 그 순간, 대지가 진동했다.
베오날드가 도시 곳곳의 주요 지점에 설치해 둔 마정석 폭발물의 폭발이 일어난 뒤, 그 여파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건물들이 떨리기 시작했고, 난리가 났다는 것을 인지한 교황은 급히 자신의 지팡이를 잡고 시종들과 함께 방을 나서서 도망쳤다.
“다, 다들 도망쳐라! 심상치 않은 일인 것 같다!”
“예! 성하!”
“신전 기사님들을 모셔 오겠습니다!”
그러곤 교황과 그 일행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건물의 진동에 급히 일어난 신관들과 기사들 모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대피하기 시작했지만, 베오날드가 일으킨 테러는 빠르게 피해가 확산되어 갔다.
“신전 거, 건물이!”
“대, 대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여신께서 벌을 내리신 것인가! 아무튼 빨리 도망쳐야…….”
우르르르르르!
다들 갑작스럽게 일어난 재난에 당혹스러워하며 누군가는 여신께 기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몸에 축복을 비롯한 신성 마법을 걸면서 대피하는 등등… 위기의 순간에 다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발악을 하고 있었다.
“성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후욱… 후욱… 후욱! 미, 미안하네!”
“아닙니다. 어서 가시지요. 무너지기 전에! 여신이시여, 여기 당신의 가여운 자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무너지는 건물에서 떨어지는 돌과 석상, 유리창의 유리들을 막기 위해 사제들과 신전 기사들 모두 각자 신성 마법을 써서 교황과 자신들을 보호하며 뛰쳐나갔다.
실시간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스치는 상황. 각자 진면목이 드러나는 가운데 교황 또한 한 꺼풀 가식이 벗겨지고 있었다.
‘나, 나는! 나는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니야! 여신께 선택을 받아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란 말이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낙석과 유리 조각들에서 스스로만을 신성 마법으로 보호하며 대신전을 나가는 중이었다.
‘대신전이 큰 게… 이, 이렇게 문제였을 줄이야.’
“아아악!”
“신이시여어어어!”
‘나는 절대 여기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본디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고 연호하며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왔던 여신교의 교황이었지만, 어느새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세울 영광과 권위에 완전히 마음이 잠식된지라, 아무것도 못하고 이런 곳에서 죽는 것을 결코 납득할 수 없었다.
“후우… 후우… 서, 성하, 괜찮으십니까?”
“그, 그래. 정말 다행… 헉!”
그 생존 본능 덕분인지 무사히 대신전을 빠져나온 교황과 일행이었지만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마냥 안도하며 있을 수 없었고, 너무나 놀라 숨을 멈추게 된다.
신성국의 수도인 이 성내에 있는 거의 모든 건물이 마치 신벌이라도 떨어진 양 모조리 무너져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연쇄로 계속 파괴되어 가는 광경,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끔찍한 일이었다.
“세상에, 신이시여…….”
“서, 성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그게… 그게…….”
교황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망가진 ‘신성국’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젊은 시절 잠깐 순례와 모험을 위해 대륙을 돌아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생을 신성국의 이 수도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니 정신적 충격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교황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제들과 신전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정도 지위를 얻고 이곳에서 일하던 그들에게 있어 이 ‘신성국’은 삶의 터전을 넘어 여신을 모시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오오… 여신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나이까!”
“역시 ‘성전’을 빨리 하지 않아서다!”
“무슨 소리냐! 이거야말로 암흑신교의 짓이다!”
“오오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베들레! 베들레는 어디 갔습니까? 설마 못 빠져나온 겁니까?”
교황조차도 이 정도로 충격이 큰데, 무사히 빠져나온 다른 신관들도 이제 생명을 지키자마자 정신이 들기 시작하더니 다들 충격과 패닉에 빠져 버렸다.
대비가 안 된 갑작스러운 재난, 삶의 터전의 파괴, 그리고 한순간에 잃어버린 주변 및 소중한 사람들. 시시각각으로 피해는 커져 가는 가운데 교황은 빨리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걸… 어찌해야 한다?’
“성하! 우선은 사람들을 모으고 치료할 수 있게 대처하시지요.”
“그, 그래! 어서 그러게!”
“예! 그리고 다음엔… 아니! 저건!”
그나마 여러 모험과 수행, 작은 전쟁 같은 곳에 파견되어 위기 상황에서 잔뼈가 굵은 신전 기사단장이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는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하나 악재엔 악재가 겹치는 법. 이미 대신전 내부에 사제들로 위장한 암흑신교들이 있을 정도로 어둠이 드리운 이 신성국의 도시엔 수많은 암흑신교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은 도시가 무너지는 이 순간에 피해를 입겠지만 마왕과 암흑신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원했기에 지금 이 사태가 그들의 짓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어둠께서 드디어 나타나셨다! 형제자매들이여! 다들 일어나라! 이 부정한 세상을 불태우고 우리의 신과 어둠께 봉헌하라! 끼야호! 저 무너진 대신전을 보라! 여신상도 보라! 처참하게 무너졌노라! 무너졌노라! 무너졌노라!”
“모조리 약탈하고 죽여라! 그리하여 암흑신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분노의 마왕이시여! 나의 분노를 바라봐 주소서! 피를 뿌리고 세계를 분노에서 침묵으로 이끌겠나이다!”
“대신전으로 가라! 거짓된 여신을 섬기는 자들을 모조리 없애라!”
“와아아아아아아!”
바퀴벌레들처럼 도시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암흑신교의 신도들과 암흑 기사를 포함한 신관들이 열심히 사람들을 선동하여 대신전으로 향하면서 엉망이 된 도시에서 마음껏 활개 치기 시작했다.
현재 사태가 사태인 만큼 제대로 된 대응도 힘든 판국에 숨어 있던 암흑신교들까지 도시 곳곳에서 판치기 시작하자 아비규환이 되어 가는 신성국이었다.
“아아아악!”
“죽이고! 빼앗고! 범해라! 어차피 세상은 그분의 손에 멸망할 것이다!”
“으아아! 추가로 붕괴한다! 크억!”
“대신전으로 가라! 교황을 잡아라!”
“이 이교도 놈이!”
쿠르르르릉!
날뛰는 암흑신을 모시는 광신도와 난동꾼. 암흑 사제들의 지휘를 받아 일어난 그들은 가뜩이나 구조와 사태 진정에 힘써야 할 신전 기사들과 사제들을 덮치고 있었다.
결국 그들로 인해서 사람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구해야 할 구조 작업과 치료는 무산이 되고, 암흑신교와의 혼란스러운 싸움만 달빛 아래에서 치열하게 진행될 뿐이었다.
“저기다! 교황이 저기에 있다! 여신의 개들 중 최고의 머리다!”
“잡아서 바치면 그분께서 날 지켜봐 주실 거야!”
“죽여라! 죽여라!”
“거짓된 여신의 종들에게 죽음을! 허무한 이 세계에 침묵을! 분노의 겁화 아래 모든 것을 잿더미로!”
“와아아아아아!”
암흑신교의 선동과 협박과 회유, 그리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거대한 재난이 신벌이라 생각하여 분노한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교황과 여신교에 대한 적개심을 뿜어내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실상 내전 상태. 교황은 미친 듯이 몰려오는 암흑신교의 추종자들과 적개심을 드러내는 주민들을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새 ‘신성국’ 안에 이렇게나 많은 불경한 자들이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교황을 죽여!”
“불태워야 한다!”
“이단은 우리가 아니다! 와아아아!”
‘이,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머릿속이 완전히 패닉으로 물든 교황은 어쩔 줄 모르고 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리 교황이라고 한들, 그는 순례와 모험 일부를 제외하면 평생을 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신성국에서 살면서 일부 정치적 안건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이 정하고 유능한 자들이 회의한 내용을 가지고 그대로 운영해 왔다.
그랬기에 그는 평생 긴급한 사태, 위기, 격변 같은 걸 겪어 보지 못했고, 그것에 대한 내성이 일절 없었던 것이다.
‘도, 도망쳐 나오면서 힘의 소모가 너무 많았어!’
붕괴되는 건물에서 나올 때,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과하게 신성 마법을 사용하여 현재 기력이 상당히 쇠해진 상태였다.
떨어지는 돌, 유리와 각종 파편들에 신전 기사들이 지켜 준다고 하긴 했지만 급격히 붕괴하는 건물의 위험성은 그의 두려움을 아주 크게 자극했고, 결국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으로 손을 쓴 것이었다.
‘물론 여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지금… 손을 먼저 쓰기엔…….’
자신은 교황이다.
이 신성국의 지도자이며 여신교의 정점. 그런 만큼 가진 수단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합리화했기에 그는 자신이 손을 쓰는 것은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고자 하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 일단은! 저 이교도들을 처리하게! 감히 여신을 모독하는 저 이단 놈들을 살려 둘 수 없지 않은가! 어서! 진압하라.”
결국 교황은 일단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 폭도와 이교도들을 침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인데…….”
“에이! 어서……!”
결국 경험도, 지혜도 없으니 우선은 이 사태를 막고 보자는 성급한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교황이었고, 신전 기사들에게 제압하라고 지시를 내린 거였다.
이것은 교황으로서 쓸 수 있는 수(手) 중 가장 최악의 수로, 기껏 가지고 있는 교황의 권위와 여신교 교단의 정점으로서 해선 절대 안 되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나 교단의 규모와 정치, 권위, 암투에만 신경 쓰던 그는 자신의 안위가 먼저였던 것이다.
‘…이 정도로 무능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말이지.’
그리고 한참 성검을 들고 빛내면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암흑신의 사도와 폭도들을 정리하며 돌아다니던 베오날드는 교황의 어리석은 판단에 당황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 신성국의 교황이자 종교 지도자라면 이런 분쟁 같은 것은 직접 나서서 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쫄보라서 놀랐던 것이었다.
‘하긴… 꼭 지적으로 유능하고 신앙심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성정도 뛰어나다곤 할 수 없지. 그 녀석도 그랬으니 말이야.’
피식.
전생에 자신의 손에 평생 병상에서 고생하던 통일 제국 시절의 황제를 떠올린 베오날드는 자신이 등장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며 검을 들고 혼란스러운 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