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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35화 (235/259)

[235화]

‘일단은 좀 어수룩하게 보여 볼까?’

베오날드는 우선 머리 스타일부터 바꾸자고 생각했다.

본래는 깔끔하고 날카롭게 정돈된 머리였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꽤 길어서 정돈하기 시작했는데, 일부러 좀 촌스러운 인상을 주도록 엉성하게 다듬는 그였다.

‘음, 보통 용사라고 하면 시골 평민 출신이 많으니 말이지. 물론 전설이나 설화는 결국 구전으로 퍼지는 거고, 평민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각색한 것도 많으니 그런 거겠지만… 정보에 따른 인상은 중요하지. 어차피 내 명성은… 퍼져 봐야 수도 혹은 크멜 가문 정도까지일 테니 말이야.’

베오날드가 표면적으로 나서서 본격적인 발데리안 가문의 일을 맡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아랫사람인 척 암약하면서 다녔기에 자신의 명성이 신성국까지 알려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관건이라면 근래에 일어난 가르칸 공화국과의 전쟁이지만 그 정보는 베오날드가 의도적으로 상인들의 움직임과 말의 물자 제한 등등의 조치로 통제해 두었기에 소문이 퍼지고 전달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왔지. 정보가 전해지기 전이라면 아직 베오날드라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이곳에서 모를 것이야. 신전에서 보내는 정보는 내가 용사 권한으로 제약했으니 말이지.’

이미 발데리안 영지의 신전에서 암흑신교의 끄나풀을 잡았으니 정보 통제를 요구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베오날드는 거울을 보면서 표정을 관리하고 눈매도 가다듬으며 자신의 인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느 정도 머리카락도 흩트렸고, 그다음 표정을 풀어서 좀 더 허술하고 순한 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으음,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내 내면을 알아보지 못하겠지. 다만 문제는 신통력 같은 걸 가진 신관이 있느냐인데… 이 녀석이 막아 주려나?’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성검을 슬쩍 쳐다보는 베오날드. 대충 자신의 몸에 영향을 주는 능력에 대해선 알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된 능력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아는 거라고는 이제 몸 가까이에 두면 몸 상태가 엄청 빨리 회복된다거나 피로가 사라진다거나, 아니면 오러의 활성화도 잘돼서 본래의 역량보다 훨씬 뛰어난 무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 정도였다.

‘뭔가 특수 능력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으니 말이지.’

뭔가 편리하게 표시된다거나 아니면 직접 알려 주거나 하는 게 아니고, 알아낼 방법도 없었기에 베오날드는 성검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진 카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하는 게 베오날드의 성격인데, 이 무기는 그런 점에 있어선 최악의 상성이었다.

‘그러니 여차할 경우를 대비해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무튼 도착했군.’

“어디서 오셨습니까? 혼자서 마차를 끌고 여행하십니까?”

교국의 성에 도착하니 새하얀 갑주를 입은 성기사와 사슬 갑옷에 하얀 천 옷을 덧입은 병사들이 나와서 마차를 검문하고 있었다.

연금술사의 흔적마저도 지우기 위해서 베오날드는 마차 안에 오는 길에 먹을 식량과 간단한 여행 물자 정도밖에 남겨 두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리얼한 변명을 위해 오면서 짐승을 사냥해 핏자국을 남겨 둔 베오날드였다.

“예, 뭐. 그렇습니다. 사실… 혼자가 아니었지만 말이죠. 피는… 후우… 그때 생긴 것들입니다. 아쉽게도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유품도 챙기지 못했지요. 하아아… 돌아가서 부고를 알릴 게 걱정입니다.”

“그렇군. 전쟁도 터지고 상황이 워낙 좋지 않으니 치안도 안 좋아질 만하지. 알았네. 들어가게.”

“예, 감사합니다.”

겉으로 봐서는 수상한 부분이 없었기에 검문은 매우 수월하게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어느 정도 성도 내부로 들어온 뒤, 마차를 여관에 정차시키고 비용을 지불한 다음 여관방을 잡고서 밤이 되길 기다렸다.

보통 용사라면 위대한 여신의 계시를 따라 곧바로 교단으로 가서 용사의 강림을 알리겠지만, 베오날드는 그 길은 힘들고 고되며 쓸모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가 봐야 나는 그저 교단 내부의 정치적 희생양이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지.’

그런 사정을 빠삭히 알고 있기에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야밤이 되길 기다린 다음 여관을 나서서 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 무언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구조와 형태, 건축된 양식, 지하 수로 등등… 지도를 만들면서 밤새도록 도시를 조사한 베오날드는 이 도시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500년 전에 만들어졌으니 예상대로 베노피스가 만들어질 때의 건축 기술과 그때 당시 설계 사상이 들어가 있군.’

500년 전 베노피스를 대륙 최고의 영지로 만들기 위해 베오날드는 건축 기술도 당연히 최고의 정수만을 응집하고자 했고, 대륙 곳곳의 기술자들을 모으고 이론도 집약해서 건축법을 집대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베오날드 사후, 아무리 노이멀 가문을 적대시한다고 해도 신관들은 귀중한 신성국의 수도이자 여신님의 보금자리가 될 도시이니 당연히 그 시대 최고의 기술을 써야만 했기에 베오날드가 집대성한 건축법에 따라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식이나 그런 건 물론 종교적인 걸로 위장했다곤 하지만… 이 타일을 까는 방식도 그렇고, 수로의 공사 방식, 전부 베노피스의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지. 크크크큭.’

이단이랍시고 자신의 유산과 이름을 빼앗아 놓고는 이렇게 자신이 이룩한 유산을 가지고 건축물을 만드는 뻔뻔한 작태. 심지어 이제 자신이 용사까지 되었으니 더없이 우스운 일이었다.

‘아무튼 내 할 일을 해야지.’

그러곤 베오날드는 이 도시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지하 수로, 지하도, 건축물 내부의 순찰, 위치를 보면서 열심히 조사하고 움직였다.

보통은 사람을 시켜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걸리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수확은 하나 있었다.

우우우웅……!

‘오… 이런 건 좋군.’

신성국. 당연히 보안이나 악마, 사교의 습격에 대비한 결계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신을 섬기는 몸으로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니 자연히 신성 마법이나 성축을 한 유물들이 활용되곤 한다.

그렇기에 본래 베오날드로서는 도저히 감지해 낼 방법이 없는 것들인데, ‘성검’이 그것의 존재는 물론이고 정확한 위치까지 알려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이렇게 손을 대도…….’

우우우웅!

‘좋았어. 걸리지 않는군. 일이 더 쉬워지겠어.’

대놓고 결계나 함정에 손을 대도 ‘성검’ 덕분인지 반응하지 않았다.

신성국의 신관들이 설치했을 테니 당연히 ‘여신의 힘’이 들어갔을 거고, 그 여신의 힘의 정수인 성검을 가진 베오날드라면 자연스럽게 패스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철저히 확인하는 스타일인 베오날드는 이거저것 열심히 실험해 보았다.

‘좋아, 그러면 이제… 구조는 다 알았고. 시작해 볼까?’

그리고 모든 사전 조사를 마친 베오날드는 여관에서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의 내부에 손을 넣고, 바닥에 마법 술식을 그리자 빛으로 된 그림의 형태로 안에 있는 물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본래 ‘미완성 아공간 배낭’을 기초로 해서 마탑에 연구를 맡겨서 만든 ‘아공간 배낭-2’로 기존보다 더 많은 용량을 넣을 수 있을뿐더러 외부 무게 감소, 아공간 내부로 들어간 물건의 표시까지 술식으로 연결시켜서 확인 및 꺼내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상향 개선된 물건이었다.

‘음, 역시 500년 동안 연구만 하던 놈들답게 잘 만들었군.’

다이나 왕국을 평정한 이후 베오날드는 곧장 여러 학파와 마법사들에게 각종 연구 사업을 지원했는데, 이 ‘아공간 배낭-2’는 그 결실 중 하나였다.

어떻게 했느냐면 이제 베오날드가 횡령으로 축적한 막대한 재보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마도서와 현 대륙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다이나 왕국의 인재풀이 완벽한 시너지를 이룬 덕이었다.

‘밤샘은… 더 이상 싫어…….’

‘죽을 것 같아요, 베오날드 님… 제발… 제발 오늘 하루만 푹 자게 해 주세요.’

‘약은… 약은 싫어!’

‘여기서 더 어떻게 술식을 개선하라는 거예요? 안 돼요, 안 돼!’

‘…오죽 정신이 나갔으면 저럴까…….’

‘거기에 몇 명쯤… 연구하다 죽었더라? 흠, 자기들이 좋아하던 마법 연구를 실컷 하다가 죽었으니 뭐, 호상이지만 말이야.’

물론 그 인재풀들조차 삶의 괴로움을 토해 낼 정도로 엄청난 작업이었지만 베오날드는 개의치 않았다.

다 자신들의 의지로 행한 것이고, 자신은 그에 따른 보수와 지원은 확실히 했기 때문이었으며, 또 진행이 느리면 대륙 자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치러야 할 희생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마찬가지이지. 됐다. 역시 심플한 게 가장 편하군.’

베오날드는 손에 큼직한 마정석을 들고 거기에 술식이 새겨진 스크롤을 두르고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마정석에 스크롤을 감은 것 같은 심플한 모양인 이것은 말 그대로 ‘폭발 술식’을 터뜨리는 것으로, 술식이 발동하는 순간 마정석의 마력을 일제히 소모해서 그대로 사방을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여신이여, 대충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용사를 시켰을 테니 어느 정도의 희생은 눈감아 주겠지?’

베오날드는 알다시피 자신의 ‘정원’ 내에 있는 사람들만 소중히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성격이다.

그 외부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저번 생에서도 그랬기에 대륙의 정점 바로 아래까지 올랐으며, 지금 또한 그렇다.

‘…기존의 교황과 성직자들이 가진 구도에서 내가 단기간에 용사의 권위와 희망을 얻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절망을 선사하여 우선 지금 이 신성국을 지배하는 자들의 권위와 위상을 땅 밑까지 깎아 내 버리고, 그다음 자신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절망이 클수록 희망으로 오는 환희가 크며, 사람들은 그 희망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게 불리한 판이라면 올라갈 필요 없이 엎어 버리고, 내게 유리한 판을 짜면 되는 법. 꽤 희생이 크겠지만… 그건 처음부터 각오한 거였으니 말이지.’

현재 이 ‘신성국’의 상황과 내부 정치로 어떤 이야기가 돌아갈지는 손바닥 보듯 훤했기에 다른 방법 없이 이 수단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희생은 엄청 막대할 것이다.

절망을 주려면 아주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뜨려야 희망이 크기 때문에 어중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도시 구조와 설계를 완벽히 확인해서 완벽하게 파괴할 작정이었다.

‘시간도 급하고, 이게 내 방식이니까…….’

극독도 필요하다면 약에 쓰이는 법. 베오날드는 자신을 용사로 만든 여신에 대해 이런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철저히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베오날드는 밤이 다시 오자 하나, 둘, 셋… 여러 마정석으로 만든 폭발물들을 확인한 다음 가방에 집어넣고서 밖으로 향하였고, 철두철미하게 점검하며 다시 일주일에 걸쳐서 설치를 마쳤다.

“좋아, 그러면… 이제 화려하게 가 볼까?”

준비를 마친 베오날드는 어두운 밤에 이미 여관을 나와 마차를 처분한 상태로 자신의 전용 마갑주를 입고서 몰래 폭발 범위에 닿지 않는 외곽의 신전 꼭대기로 올라가서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달이 하늘 중앙에 떠오른 심야. 적절한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한 베오날드는 지체 없이 자신이 설치한 모든 ‘폭발물’을 터뜨리는 신호가 담긴 술식이 적힌 ‘스크롤’을 찢어 버리고 펼쳐질 광경을 감상하기로 한다.

“자, 그럼 감상해 볼까. 이 ‘신성국’의 도시가 파멸하는 모습을 말이야.”

우르르르르르르릉!

베오날드의 말과 동시에 대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폭발의 진동이 일제히 일어나면서 마치 도시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것이었다.

베오날드가 설치한 폭발물은 총 1,324개. 각종 건축물과 지하 수로에서 중량을 떠받치는 핵심 포인트에 모두 설치한 것으로 하나만 터져도 그 주변이 폭삭 무너지거나 심각한 붕괴를 초래하기에 엄중히 경비하고 있고, 건축도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손을 대니 얄짤없지.’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콰르르르릉!

폭발로 인한 진동이 끝난 듯싶었지만 본격적인 도시 붕괴는 이제 시작이었다.

다리가 무너지고, 지하가 무너지고, 하수구가 무너져서 이제 그 위에 있는 건축물들도 하나둘 붕괴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여파는 특히나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지반 위에 건설된 중앙 대신전에도 영향을 끼쳐 서서히 옆으로 넘어지는 동시에 그 앞에 만들어진 여신상까지 앞으로 쓰러질 정도로 심한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어어!”

“꺄아아아아아악!”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그다음으로 들려오는 도시 붕괴 속 사람들의 비명. 베오날드는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성검을 뽑아 들고서 자신이 일으킨 이 재앙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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