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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31화 (231/259)

[231화]

“젠장… 빌어 처먹을… 크흐윽! 크으윽!”

절망감, 분노, 무력감. 그 속에서 베오날드는 마왕의 영향이 몸에서 사라지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딸아이의 시신을 안고 둥지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딸아이의 시신을 관에 고이 넣어 양지바른 곳에 매장하여 간이 무덤을 만든 뒤, 그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곧장 발데리안 영지로 돌아가서는 그곳에 있는 신전에 뛰어들듯이 들어갔다.

“저기… 지금은 출입하실 수가…….”

“매우 중요한 용무다. 당장 비켜라.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냐?”

“히익! 베, 베오날드 님이셨군요. 아, 알겠습니다.”

신관들 몇 명이 이 늦은 밤 들어온 그를 보고 말리려 했지만, 금세 누군지 알아차렸기에 길을 내주었다.

베오날드. 이미 발데리안 영지의 실세로 등극한 자였고, 일전에 신전에서 대신관의 배신으로 큰 피해를 입었기에 지금 교단에겐 대항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그대로 신전을 지나가서 참회실에 도착했고, 경건한 마음이 지금 1도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양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다음 눈을 감고 기도로 ‘망할 여신님’을 호출했다.

‘…좀 나와 보십시오, 좀! 빨리!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내가 이 상황만 피하길 얼마나 바랐는데! 대체! 대체 왜 이렇게 해야 했습니까? 예?’

[이렇게 되어야 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운명? 지금 운명이라고 했습니까? 제정신입니까? 왜 내게 이러는 겁니까? 지옥에서 고통받는 걸론 부족했습니까?’

[오직 이 길만이 세계를 구할 방법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떠, 옆을 보시겠습니까?]

‘…눈을? 왜 갑자…….’

샤아아아…….

어두운 밤, 달빛도 들어오지 않아 은은한 촛불만으로 광원을 대체하는 이 참회실에 태양이 뜬 것 같은 빛이 빛나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눈을 뜨고 그곳을 쳐다보는데, 거기엔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화려한 금색의 장식에 붉은 술, 검신에선 태양처럼 뿜어져 나오는 성스러우면서 따스한 빛. 베오날드는 그것을 보고 이게 어떻게 된 운명인지 드디어 감을 잡게 된다.

“아니, 정말… 이건 아닌데…….”

으득.

이를 갈면서 베오날드는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답고 찬란한 검을 바라보았다.

부정하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아무리 부정한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이 검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고,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달라지는 일은 절대 없었다.

혹여나 눈앞의 저 검이 다시 사라지는 일도 없었고 말이다.

“이런 유치한 용사 전설이 되는 건, 어린 시절에도… 꿈도 안 꾸던 일인데 말이지.”

잔혹한 벨릭스의 아래에서 태어나 어리광을 피울 새도 없이 노이멀 가문의 가혹한 경쟁에 내몰려서 어린아이들이 꾸는 흔한 꿈조차 가져 보지 않았던 베오날드였다.

심지어 너무나 잔혹한 어린 시절이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건 긍정해도 자기 자신은 ‘용사’ 같은 허황된 꿈을 믿지 않았다.

그러던 자신이… 한번 지옥까지 가서 구르던 인간의 손에 지금 성검이 들려 있다.

“하! 참 나, 흔히 전설로 내려오는… 자격 체크 같은 것도 안 하나? 게다가… 오우… 이건?”

너무나 어이없어서 혀를 차며 그 성검을 잡은 베오날드였는데, 순간 따스한 기운과 빛이 몸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곤 빛이 자신의 온몸을 감싸고 라라와 싸우면서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가 싶더니, 이전에 ‘분노의 사제’ 라미엘에게 잘린 팔까지 복원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광경에 베오날드는 이게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역시 용사 특전은 뭔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으음,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체험해 보니 확실히… ‘기적’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군. 후우~”

이게 좋아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베오날드는 심호흡을 하면서 일단 마음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애초부터 ‘망할 여신’은 자신에게 ‘용사’의 짐을 떠넘기기 위해 지옥에서 끌어 올리고, 이 지상에 투입한 뒤로 계속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오늘… 라라가 죽은 뒤의 자신에게 이 ‘검’을, 용사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이제 충실히 용사의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참으로 뻔한 수법이군. 뻔하지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아주 악질이야.”

으득!

그래, 사실상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망할 여신도 그걸 알고서 이렇게 유도한 건지, 아니면 이런 미래를 본 건지 모르지만 최소한 베오날드가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건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다.

일단 그 망할 마왕의 손에 빼앗긴 딸의 영혼, 그걸 되찾기 위해서라도 베오날드는 이 검을 잡고 망할 용사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스스로도 깨닫는다.

“아니, 오히려 시켜 달라고 해도 모자랄 상황이었지… 하하. 참! 또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는 게 훨씬 낫겠군.”

베오날드의 눈빛이 돌아오고, 그의 의욕이 불타오른다.

생각해 보면 착하고 선량한 청년이 어쭙잖게 검만 잡고 여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용사가 된 것을 서포트하느라 속 끓이고, 또 가치관의 차이로 답답해할 바엔 차라리 자신이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도 나온다.

아직 이 성검의 기적과 용사의 자격이 어떤 힘을 주는지는 잘 모르지만, 검을 허리에 찬 베오날드는 우선 나오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군. 하지만… 의욕이 배가되었으니 상관없겠어.”

지금 이 순간 베오날드는 그 어떤 열정적인 여신교의 신자들보다도 마왕을 잡을 의욕과 용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오늘 딸의 영혼을 가지고 가면서 자신을 도발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고 맹세하며 베오날드는 우선 이 신전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용사의 힘이 뭔지, 성검의 힘이 뭔지에 대해서 제대로 들은 게 없지만 알 게 뭔가?

“여신이 베푼 가호와 권능이 내 손안에 있고, 내게 모든 걸 맡겼으니!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어이!”

“예? 히익! 이, 이건?”

“대신관을 불러라. 여기… 여신이 택한 자가 납셨으니 말이다!”

보통 용사라면 겸허하게 이야기했겠지만 베오날드는 권위와 자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아는 자였다.

그 망할 여신이 싫다는데 기어이 맡긴 용사 자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아는 그는 우선 바로 신관들을 호출했고, 잠자던 대신관을 비롯해서 신관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게 된다.

그들은 모두 ‘성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신성의 힘과 더불어 베오날드에게 느껴지는 여신의 힘을 알아채고는 그가 정말 여신의 가호를 받은 자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애당초 너희는 마왕이 아주 잠시나마 이 근처에 강림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예? 그런 일이…….”

‘뭐, 계약 때문에 몰랐던 건가? 아니면 내부 기강이… 아!’

부정할 수 없는 여신의 힘을 증거로 들고 나타난 덕분인지, 굽실거리는 대신관과 더불어 신관들 모두 베오날드의 앞에서 예를 갖춘 상태로 그의 말에 껌뻑 죽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애당초 옛날엔 황제를 백으로 두고 잘 일해 왔으니 여신을 백으로 두고 일하는 것도 못할 게 없던 그는 곧바로 신관들에게 여신이 내려 준 계시에 대해 연설하는 척하면서 우선 끄나풀부터 찾기 시작했다.

‘일단 신전 정리부터 해야겠군. 전에 라미엘만 해도 대신관급에서 마왕의 수하가 나온 거였는데… 여기에 없을 리가 없지. 오… 역시 가까이 가니까 슬쩍 몸을 빼고 괴로워하는 놈이 있군.’

“으윽… 으으으…….”

“거기, 자네는 왜 그러나? 내가 지금 열심히 여신님이 내려 주신 계시를 설명해 주고 있는데 말이지.”

자신이 다가가자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신관 하나를 발견한 베오날드는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어깨를 부여잡았다.

대머리에 안색이 안 좋은 그 신관은 몸을 빼고자 했지만 이미 잡혔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파래진 안색으로 베오날드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 하하하… 너무나 신성한 말씀이라 몸 둘 바를 몰라서… 허억!”

“하나 귀중한 말씀들뿐이니 끝까지 들어 주게나. 여신님의 계시야. 성검이 여기 있지 않은가? 웬만한 고행을 겪는 성자, 성녀들도 한번 듣거나 보기 힘든 것인데… 지금 그것을 라이브로 들려주는데…….”

“어어억… 허어어억…….”

대놓고 성검을 가까이 대니 더더욱 괴로워하던 신관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가까이 닿으면 따스하고 포근함만 느껴질 성검에 이런 반응을 한다는 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는 암흑신의 끄나풀이라는 의미였다.

주변에 있는 신관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보며 긴장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여신님의 말씀과 신의 가호가 껄끄러운가 보군. 당연하겠지. 그만큼 부정한 놈일 테니 말이야.”

“흐으그극… 으으으윽!”

“그리고 이런 놈은 꼭 한 놈만 있는 게 아닌 법! 가장 귀중한 여신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빠져나가려는 저분들은 누구인가? 결국 여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부정한 자들이겠지! 당장 잡아라!”

그리고 베오날드는 다른 신관들 모두의 시선이 이쪽에 몰린 틈을 타 슬쩍 주변을 보면서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려는 자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베오날드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신관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 도망치려는 몇몇 신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말할 필요 없이 베오날드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적대 조직에 스파이나 간첩은 절대로 한 명만 두진 않는 법이거든. 아무튼 오늘은 이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우선 신전 내에 남아 있는 부정한 무리부터 처리합세. 알았나? 대신관.”

“예, 예! 알겠습니다.”

‘좋아, 역시 교단도 결국 귀족의 정치판이랑 크게 다를 게 없군. 정치력과 재보, 무력이 신의 권위와 여신의 가호, 여러 공적으로 바뀐 것뿐이야. 그런 조건이라면 쉽지.’

응용 가능한 전공이 이래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오날드는 오늘 밤에 이 신전을 재편하고 내부에 있는 암흑신을 섬기는 이 끄나풀과 부정한 자들을 처리하기로 하며, 자신이 잡고 있는 신관의 몸에 더욱 가까이 성검을 갖다 대었다.

“끄으으윽! 그마안! 그마아아아안!”

“저, 저건 암흑신의 문양! 베도론, 자네?”

“아, 역시…….”

그리고 결국 버틸 수 없던 건지 그 베도론이라는 신관의 몸에서 검은빛이 새어 나오며 불길한 문양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신관들은 그것이 사악하고 두려운 암흑신의 것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고, 베오날드는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을 하며 그를 땅에 패대기친 다음 그대로 손등에 성검을 꽂아 넣었다.

“으아아아악!”

“내가 여신께 계시를 받아 이곳에 온 이유를 이제 알겠지? 여신님을 섬기는 이 신전 안에도 이렇게! 부정한 자들이 숨어서 암약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정화하고 마족으로부터 세계를 지킬 것이다! 그러니 여신의 이름 아래! 그 정화를 돕도록 해라! 알았나?”

“아, 알겠사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하고, 대신관조차도 모르고 있던 신전 내에서 일하는 암흑신의 부하를 직접 찾아내고, 여신의 위광을 스스로 증명한 이상 이제 이 신전은 베오날드의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는 성검과 여신의 가호를 이용해 신전의 정화 작업을 개시했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마왕과 마족들을 어떻게 하면 끝장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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