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온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십식(十式)-쌍두사’!
‘결심했구나!’
그리고 라라 폰 노이멀은 결심을 한 건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검을 휘둘러 오기 시작했다.
이 검엔 살기가 담겨 있었기에 베오날드는 각오를 다지고 전력으로 막아 내기 위해 오러를 끌어 올렸지만, 전력을 담은 라라 폰 노이멀의 검을 막아 낼 순 없는 것이었다.
“크윽!”
“후우우… 스으으읍…….”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히드라’.
그다음 간신히 자세가 회복된 베오날드를 향해서 그녀는 죽일 기세로 이번엔 검법의 오의인 ‘히드라’를 펼쳐 왔다.
동시에 발현되는 9개의 검기. 베오날드는 이것에 맞설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도 검을 들어서 똑같이 ‘히드라’로 맞섰지만 같은 아홉 머리의 뱀이라도 마스터와 상급 기사의 차이는 엄격히 갈라졌기에 이번에도 베오날드의 검기는 그대로 깨지면서 그는 전신에 자상을 입고 땅을 구르게 된다.
‘역시… 상대가 안 되는군. 큭!’
“하아아아아……!”
‘…이다음은 설마?’
그리고 차분히 호흡을 하던 그녀가 잡는 자세를 보고 베오날드는 놀란다.
노이멀식 3대 오의 중 베오날드가 익히지 못하고 결국 포기한 두 가지 중 하나,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였다.
형태는 알고 있지만 깨우치지 못한 그것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베오날드의 눈빛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라라 폰 노이멀은 자세를 잡고 그것을 베오날드를 향해 가차 없이 펼쳤다.
‘이건! 막아야 한다! 크윽!’
쐐애에에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한의 형태를 그리는 검기가 베오날드를 거쳐서 주변을 감싸고 서서히 조여들어 온다.
‘우로보로스’. 전설과 신화 속 뱀의 이름을 딴 이 오의는 그대로 이 ‘둥지’ 방의 바닥과 천장을 부수면서 맹렬하게 베오날드를 조여 왔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 ‘우로보로스’에서 도망치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리고 간신히 그는 오러를 전력으로 사용하고, 검을 휘둘러서 ‘우로보로스’의 무한궤도를 끊고 탈출하여 땅을 굴렀지만 한 손을 대체하던 의수를 잃어야만 했다.
‘이것 덕분에… 산 거지만 말이지. 하지만 역시 대단하군. 3대 오의!’
“이걸로… 마지막.”
‘…저건? ‘에키드나’?’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최종 오의-에키드나’.
오의 중의 오의, 최종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류 노이멀’식의 마지막 검.
결국 황실 기사단의 것을 베낀 아류 검술이지만 그 최종만큼은 본래의 황실 기사단의 것에 지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노이멀 가문’ 최후의 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이멀 가문 최후의 당주인 베오날드는 전혀 검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것을 익히지 못하고 말았지만, 아무튼 이대로 엎드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살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죽더라도 당당히 죽어야……! 저 아이도 덜 아플 거고! 온다!’
쿠르르릉!
역시 최종 오의답게 라라가 내뿜는 오러의 파동이 심상치 않았다.
살기와 함께 흘러넘치는 오러는 전력으로 자신을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기운이 목 뒤로 서늘하게 지나가면서 베오날드는 이것도 노이멀 가문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벨릭스를… 그 망할 인간을 죽였듯이, 전생엔 아들인 알테리오에게 죽고, 이번엔 딸인 라라에게 죽는 건가? 하하, 아무튼 죽으면 실컷… 여신님에게 욕이나 해 볼까?’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최종 오의-에키드나’!
그녀의 몸에 모인 오러가 일제히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이자 태초의 뱀, 그 무엇보다 거대한 뱀의 전설에서 따온 이름에 걸맞게 이 마지막 노이멀의 최종 오의는 그 무엇보다도 정직한 모든 오러와 힘을 쏟아부어 끝까지 적을 쫓게 하는 것이었다.
최초에 살무사로 시작해 쌍두사까지 이어졌다가 히드라, 우로보로스까지 이어졌으나 결국 뱀으로 돌아온다는 귀결이 완성되는 검이었다.
‘이젠 남은 사람들이 잘해 주길 비는 수밖에 없겠는데, 잘할지 걱정되는군.’
죽음을 직감한 그의 눈앞에 이곳에 남을 세인, 하이디, 베시아, 아르젠 등등… 그간 어울렸던 이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솔직한 말로 결국 노이멀의 기억을 가진 채로 여신에게 임무를 받아서 다시 태어난 그에겐 약간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도 소중한 자신의 정원에 있는 자들이었다.
일단 자신이 죽으면 해야 할 일과 대처에 대해 이야기해 두긴 했지만, 역시 걱정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죽음을 각오한다.
“…어?”
하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눈앞에 거대한 보랏빛 오러의 파도가 몰아쳤는데,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고 주변만을 파괴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자신의 몸만 제외하고 주변이 모조리 파괴된 광경을 보면서 어리둥절해하던 베오날드가 정면을 바라보는데, 거기엔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기 직전인 라라의 모습이 보였다.
“라라……?”
휘청거리는 그녀의 몸에선 아까 전과 다르게 아주 희미한 생명력과 오러만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최종 오의’에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모든 오러의 힘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모조리 끌어 올려서 불태워 버린 것이었다.
베오날드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극에 이른 달인은 타인의 생사도 한 번에 가르지만, 자기 자신의 생사도 한 번에 가를 수 있다고 말이다.
“…….”
털썩……!
그녀는 그대로 마치 실이 풀린 인형처럼 땅에 쓰러진다.
깜짝 놀란 베오날드는 이제 모든 가면을 벗고 그녀에게 뛰어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품에 안아 올렸다.
자신에게 오의를 쓸 때만 해도 자신을 죽일 결정을 한 것인 줄 알았는데, 설마 자신의 목숨을 그대로 태워 버릴 줄은 상상도 못한 베오날드였다.
“라라! 라라! 정신 차려라! 어째서 그런 짓을……! 아!”
“하아… 하아… 하아… 아빠…….”
그녀는 생기 없는 눈을 한 채 곧 죽을 듯 얕은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잡은 손을 마주 잡은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어서 힘겹게 말을 해 나갔다.
“아빠… 잘… 보셨… 죠? ‘우로보로스’… 그리고… ‘에키드나’.”
“라라, 설마 너……?”
“아빤… 옛날부터… 검을 잘 못 다루었으니까… 애당초… 제가 아빠를 죽일 리가 없잖아요.”
“…라라…….”
그렇게 베오날드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띠는 라라였다.
애초부터 이렇게 싸우지 않고 서로 솔직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둘 중 하나가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상태가 너무나 슬픈 베오날드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예상과 통찰이 너무나 잘 맞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
“예상한 대로… 나오셨군, 마왕 나리.”
[나는 계약을… 이행하러 왔을 뿐이다.]
어느새 눈치채지도 못한 틈에 베오날드와 라라의 옆엔 검붉은 갑주를 입은 거대한 자가 오만한 자세로 팔짱을 낀 채 베오날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방대한 양의 보물을 모으는 이 ‘둥지’의 건물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몸을 가졌으며 머리엔 6개로 나뉜 용의 머리를 달고 팔은 4개, 그리고 6개의 꼬리가 펼쳐져 있었는데, 다른 머리 5개는 모두 눈을 감고 하나의 머리만 눈을 떠서 대답할 뿐이었다.
“분노의 마왕이라는 분이… 꽤 얌전하시군.”
[나와 실랑이하는 사이에도 계약자의 목숨은 깎여 나가고 있는데? 그럴 틈이 있나?]
“…크윽!”
자신이 여신과 맺은 계약이 엄중한 것처럼, 라라가 마왕과 맺은 계약 또한 지엄한 것이었다.
영혼을 담보로 한 그 구속에서 빼낼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베오날드는 라라에게 이렇게 죽기 직전이 아니고서는 진심을 밝힐 수 없었던 것이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는 딸의 손을 잡고, 그녀를 바라본다.
이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라, 미안하다. 널 더 괴롭게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날 원망하렴. 모든 건 다 내 잘못이란다.”
“이건… 제가 선택한 거예요.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빠의 품에서… 잠들 수 있는 게… 저는 더…….”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솔직하게, 검 없이 재회를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차라리 내가… 내가 내려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지옥불의 고통보다도 더 아픈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뜨거운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여신께 늘… 이 결말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었는데, 결국 찾아오게 된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딸의 손에 죽을 상황이더라도 체념하게 된 건데, 결국 이렇게 고통스러웠기에 ‘그냥 지옥에서 얌전히 고통받을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디… 부디… 이번에는 행복하셔야… 해요. 그리고… 제 처소에 알테리오 오라버니의 혼이…….”
“라라… 라라……!”
“…….”
라라 폰 노이멀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든 생명의 불꽃이 꺼지며 손의 힘이 빠지고, 베오날드의 품에서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
가족을 잃어 본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베오날드였지만… 이런 경험은 백 번, 천 번을 해도 조금도 무뎌지지 않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온기가 사라져 가는 딸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데, 바로 옆에 떠 있던 마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슬픔과 증오가 많이… 무뎌져서 상했지만, 그래도 대가는 대가이니…….]
그가 손을 휘젓자, 라라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빠져나가더니 그의 손에 구슬처럼 뭉쳤다.
고금동서 악마, 마신, 마왕과 계약한 자의 대가는 영혼. 마왕이 챙긴 것은 바로 라라 폰 노이멀의 영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두고는 마치 물건 다루듯 평가하는 마왕을 본 베오날드는 더 이상 자제심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검을 들어 휘둘렀지만 마왕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 검격을 손가락을 휘저어서 막아 냈다.
“큭! 라라를… 당장 돌려놔라!”
[거절한다. 이것은 명백한 계약의 대가다. 그 아이는 본래 가지지 못했던 힘과 지혜, 권능을 원했고, 나는 그것을 주었고 그 대가로 받아 가는 거다. 그러니… 이 무의미한 짓은 그만둬라. 나는… 할 일만 하는 주의이니 말이다.]
“…컥!”
쿠우우우웅!
6개의 용의 머리가 동시에 눈을 뜨고 베오날드를 노려보자 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그대로 나자빠졌다.
필멸자의 굴레를 넘어선 존재, 마신의 수하로 수많은 세계를 불태운 마왕의 힘을 처음 느낀 베오날드는 마왕이 딸의 영혼을 가지고 떠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았고, 결국 차가워져 가는 시신을 부여잡은 채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