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아무튼 조사한 대로… 여기가 그 베오날드라는 놈이 있는 곳이렷다.”
“예. 하지만 역시… 경비가 엄중하긴 하네요.”
“그 이전에 사람들이… 이 밤중에도 계속 왔다 갔다 해서 틈이 안 보이는데요? 저 인간, 잠이나 잔답니까?”
쏴아아아아.
비가 오고 있음에도 베오날드의 처소는 지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암살 혹은 납치를 하러 온 이들로서는 참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엄중한 경비는 둘째 치더라도 저렇게 계속 일하고 있으면 도저히 들어갈 방도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차라리 성문을 열러 가 볼까요? 그게 더 쉬울 것 같은데 말이죠.”
“아서라. 이미 후퇴는 정해진 사항이라 의미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성문 쪽을 보긴 했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를 지배하는 자가 바보인 줄 아느냐?”
애초에 성문을 열 수 있는 곳은 베오날드가 이미 철저히 대비를 해 둔 상황이었다.
최소 50명 이상의 병사들이 방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상시 대기 중이었고, 여차할 경우 그냥 성문을 여는 조작 장치를 파괴하라고 지령을 내렸을 정도로 준비된 상황이라 이들이더라도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으익… 알겠습니다.”
“아무튼 루시, 네린, 너희는 사령관님에게 가서 이 상황을 알려라. 우린 여기서 좀 더 놈의 상황을 살펴볼 테니 말이다.”
“예!”
부하들을 보낸 ‘인간 사냥꾼’팀의 대장은 부하들과 이 성내에 있는 슬럼으로 가서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베오날드가 일하는 저택을 탐문, 그의 행적을 계속해서 쫓기로 한다.
한데 이틀 뒤가 되어도 베오날드가 일하는 방에서는 밤이 되어도 불이 전혀 꺼지지 않고 있었기에 기겁하는 그들이었다.
“대체 저자는 뭐지? 잠을 안 자나? 며칠째 저러는 거야?”
“아니면 잠은 자는데, 일터에서 자는 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데… 전쟁 중이라서 그런 건가?”
“참, 기가 막히는 일이군.”
“사령관님이 오셨습니다!”
대기하면서 베오날드의 저택을 정탐하던 그들이 최소 4일을 계속 일하는 그에 대해서 어처구니없어하는 사이, 드디어 그들의 대장인 노이멀 총리가 잠입을 하여 이곳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녀도 엄연히 엘프의 피를 타고났고, 뛰어난 무예를 자랑했기에 ‘인간 사냥꾼’ 부대를 따라서 들어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총사령관이 직접 잠입 임무를 수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었지만, 그녀로서는 이번 일만큼은 다른 누구에게 맡겨서 실패하지 않고 직접 성공시키고 싶었기에 온 것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그래, 상황은?”
“저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최소 4일… 아니면 저기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는 건지 전혀 나오지 않고, 계속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시 상황이 유지되면서 늘어난 병력을 비롯해 영지의 업무량이 모두 겹친 터라서…….”
“업무가 몰렸다는 거군. 그러면 버티다 보면 놈이 과로사할 수도 있다는 건가? 훗.”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 그냥 한번 해 본 말이다.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현재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는 당장 퇴각을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강건한 수인들도 결국 이 추위와 지속되는 겨울비에 버티기 힘들었고, 이제는 조금이나마 몸을 덥혀 주던 불을 피울 수 있는 방안까지 사라져서 사망자가 하루에 수백을 넘어 천 단위까지 넘나들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이 상태라면 군을 퇴각시키는 게 맞겠군. 우리 군이 있는 한 틈이 발생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러면?”
“밖에 내 전갈을 전해라. 나는 여기서 후환을 끊을 테니 다들 살아 돌아가라고 말이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러면 사령관님은?”
“물론 너희와 함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것이다.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내가 직접 온 것뿐, 무조건 살아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노이멀 총리는 직접 본대에 보낼 전갈을 마련해서 부하에게 주었고, 밖의 군대가 정리해서 퇴각 준비를 하는 것을 기다리기로 한다.
밖에서 퇴각 준비를 하게 되면 자연히 이곳에 반응이 올 테니 따로 연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고, 그 시간 동안 할 것은 퇴로 확보 및 조금이라도 이곳 지형에 익숙해지는 것뿐이었기에 그녀는 빗속을 뚫고 밤새 돌아다닌다.
‘뭔가 이상하군.’
그리고 그녀는 돌아다니면서 무언가 기이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이 영지에 대해서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베오날드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발데리안을 위해 자리도 잡아 주고, 설계까지 직접 하고 공사 과정도 지휘했기에 당연히 베오날드의 냄새가 남은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 그것을 아는데, 왠지 이상하군.’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500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이 성은 많은 변화를 겪고, 운영하는 자가 변했기에 풍경과 사는 모습도 분명 500년 전과 달랐다.
하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과 도시의 풍경에서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드는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전쟁에 실패해서 그런 거려나? 후우우…….’
쏴아아아아.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먹먹함을 달랬다.
확실히 이번 전쟁이 여기서 실패한 것은 치명적이기도 했고, 거기에 아버님이 만든 도시를 보니 감수성이 폭발한 것이리라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탐문을 이어 나가던 그녀는 다시 저택 쪽으로 돌아오던 중 기이한 광경을 발견하게 된다.
‘저건?’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패서 재웠어야죠!”
“본인이 안 자겠다고 하다가 이 사달이 난 건데 어쩝니까?”
“자자, 다들 진정하시죠. 아직은 단순히 주무시는 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또 일어나면 일한다고 난리 칠지 모르니까 우선 옮겨 두도록 합시다. 푹 쉬게 해야 하니 말이죠.”
저택 쪽에서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에 그녀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한 남성이 사람들에게 업혀 있었고, 그의 주변에 있는 남녀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업힌 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결국 과로하는 윗분들의 페이스를 따라가다가 쓰러진 거라고 생각하던 그녀의 눈에 비를 맞지 않게 우산으로 가려져 있던 업힌 이의 얼굴이 살짝 들어왔다.
‘저건? 베오?’
진한 다크서클 때문에 순간 못 알아볼 뻔했지만 익숙한 얼굴. 원래부터 기억력이 좋고, 웬만해서는 중요한 인물의 얼굴은 한 번만 보고도 기억해 두는 그녀였기에 업혀 가는 것이 자신과 내통하던 베오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분명… 다이나 왕국에 있다고 했을 텐데?’
“아, 베오날드 님, 정신이 좀 드세요? 아니! 정신 차리지 마세요. 그냥 더 자요! 자! 일은 무슨 일이에요!”
“저희가 어떻게든 할 테니 그냥 푹 주무세요!”
“기절시킬까?”
‘…베오날드?’
미심쩍어서 쫓아가던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정보가 들려왔다.
베오날드라는 이름,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위대한 아버님의 이름, 그리고 지금은 어떤 불경한 놈이 그것을 사칭해서 자신의 분노를 끌어 올리는 이름이었다.
‘베오가… 그 불경한 베오날드였다고?’
그녀는 지금 들어온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그동안 자신에게 협력한다고 생각했던 그 ‘베오’라는 놈이 여기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놈이 절대 그냥 둘 수 없는 불경자라는 걸 알게 되자 배신감과 분노가 몰아쳐서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기막힘, 당황, 혼란,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던 그녀는 아무튼 자신이 목표로 하던 그놈이라는 것에 집중하며 반드시 놈을 처단하겠다고 맹세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일이 이렇게 된 원흉이 놈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군. 하, 하하하.”
분노가 너무 치밀어 오르면 헛웃음이 나온다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 그녀는 곧바로 ‘인간 사냥꾼’들을 소집했고, 별도로 군 진영에 한 번 더 연락을 넣어서 자신의 비장의 수단까지 준비한다.
***
베오날드가 잠들어 있는 동안, 드디어 가르칸 공화국 군대가 물러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발데리안 백작가에 들어오게 된다.
역시 아무리 대단한 가르칸 군대라고 할지라도 이 지독한 겨울비 앞엔 장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물러난다는 소식을 듣자 가주 대리인 케드론을 비롯해서 귀족들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물러나게 둘지가 문제입니다만…….”
“당연히 쫓아가서 섬멸해야지요. 돌아가서 병사 수를 회복해서 또 오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맞습니다. 게다가 지금 제국 수도 북부에 마족들까지 있으니, 여기서 섬멸해 버리고! 그쪽을 도우러 가야지요.”
웅성웅성…….
기사들과 휘하 귀족들, 거기에 주변 영지에서 몰려온 귀족들 모두 이대로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를 떠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일제히 말하고 있었다.
베오날드의 희생과 관리 덕분에 기사들을 비롯해서 병력, 기마들의 상태 모두 쌩쌩했고, 언제라도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하는데, 케드론은 좀 더 신중하게 가기로 한다.
“다들 너무 흥분하고 있소. 이번이 물론 좋은 기회인 건 맞지만, 혈기만 앞서다가 더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소. 그 짧은 하루의 전투만 해도 우리 군을 포함해서 총 2만이나 되는 병사들이 사망했소. 게다가 적군의 장군들은 하나도 잡지 못했지. 궁지에 몰린 쥐는 물기 마련이오. 그러니 좀 더 신중하게 합시다.”
“신중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쫓아서 포위 섬멸을 하든가, 아니면 급습뿐입니다.”
“놈들에게 야간 급습은 통하지 않소. 그리고 이 겨울비에 우리는 대처를 잘해서 잘 지키고 있는 거지만, 전장에 나가면 결국 똑같은 처지가 되지. 싸우기 힘든 건 매한가지요.”
“그럼 놈들이 가는 걸 그냥 보자는 겁니까?”
“그게 나을 수도 있지. 죽은 목숨은 돌아오지 못하오. 내 생각엔 지금 놈들은 내버려 두고, 수도 쪽에 지원군을 준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소.”
케드론은 일단 제국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일을 우선시하는 반면, 기사들과 귀족들은 자신들을 쳐들어온 가르칸 공화국에 쓴맛을 보여 주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특히 여기 합류한 귀족들 중에는 본래 남부에서 살던 자들도 있었고, 가족과 백성들을 가르칸에 잃은 자도 있었기에 분노가 워낙 커서 말리기가 너무 힘들기도 했다.
“절대 안 됩니다. 안 되면 우리라도 가겠습니다. 지금 섬멸하지 않으면 후환이 커질 겁니다!”
“옳소! 옳소!”
‘…이런 때가 되니, 그 친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는군.’
베오날드가 없으니 이 반대를 일삼는 귀족들과 기사들에게 자신의 한마디를 설득시키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느낀 케드론이었다.
베오날드의 옆에서 그가 하는 것을 볼 때는 무척 쉽게 설득하고 해결해 버리는 것 같았는데, 직접 해 보니 지옥 같았던 그는 지금 쓰러져서 자고 있을 그가 빨리 일어나길 빌며 이 상황 속에서 귀족들의 폭주를 어떻게든 막고자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