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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22화 (222/259)

[222화]

적군은 성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고, 나뭇더미 같은 걸 갑자기 쌓기 시작했다.

거리는 여전히 성벽에서 포격을 날리는 사정거리보다 먼 곳, 하지만 보이기는 잘 보이는 곳이었다.

장작을 쌓고는 불이 잘 붙도록 기름까지 뿌리는 걸 보면 모닥불이라도 피울 생각으로 보였다.

“설마……? 아!”

하나 그 생각은 금세 사라지게 되었고,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가르칸의 병사들은 장작더미를 쌓더니 잠시 후 사람을 묶어 놓은 나무 십자가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예상 가능한 범위로 그대로 장작더미에 사람들을 세우더니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로 사람을 태워 죽이는 행위, 화형이었다.

“흐음…….”

“끄으아아아악! 살려 줘!”

“아아아아악!”

“뜨거워! 살려 주세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열기와 비명이 뒤섞여 베오날드의 얼굴을 때린다.

‘얼음 정원’의 답례인가? 설마 화형으로 답할 줄이야.

역시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기분이 순간 든 그는 표정을 관리하면서 심각하게 지켜보았다.

“저 망할… 년이!”

“사람들은 어디서 잡아 온 거죠? 이미 다른 영지에 충분히 도피령은 내려졌을 텐데? 아! 남부에 있던 사람들이겠군요.”

옛날 군대는 그 조직이 순수하게 모두 군인으로만 이루어져서 굴러가진 않는다.

물자 수송 및 빨래, 식사 준비 등등… 각종 잡일을 도맡아서 해 줄 노동력이 필요했고, 거기에 비상식량 겸 남부에 있던 사람들을 데려와서 써먹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이 지금 저기서 화형 장면을 보여 주며 활활 불타고 있고 말이다.

“정말 미쳤군.”

“…예, 이건 명백한 도발이네요. 공성전이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당장 성에서 나오라고 압박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하면 좋겠나? 저걸 보는 병사들 상황이 안 좋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 전면전은 아직도 우리가 아쉬운 상황이죠. 그리고 저거에 대한 사기 영향은 이제… 오히려 우리도 결사 항전을 하게끔 하면 됩니다.”

“하나 답답해지는군. 저런 꼴을 보고 참는 것도 힘들지만… 수도에서 또 연락이 왔네. 벌써 제국 수도까지 밀렸다고 하는군.”

“뭔가 하나도 좋게 풀리는 게 없군요. 흐으음… 하여간 유능한 적보단 무능한 아군이 문제라고 했으니…….”

황실에 대한 모독 같은 소리였지만 케드론은 지금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사실 제라도 칼레움 황제였다면 능히 막았겠지만 지금 그는 노환으로 병상 신세. 황태자가 대리를 맡고 있었는데, 정식으로 황위에 오른 것도 아니며 경험이 모자란 황태자는 이 위기를 넘길 능력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황제 폐하였으면 달랐겠지만 지금 누워 계시니 말이야. 후우~ 황태자 전하가 뛰어난들 폐하만큼은… 아닐 테니. 또 이 시국인데 중앙에서는 대귀족끼리 싸움으로 난리라더군.”

“아마 암흑신교에 몰래 협력하는 자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결국 여기가 처리되어야 하는 거군요.”

“싸울 건가?”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수도의 상황이 하루하루 나빠지는 가운데, 좀 더 계산을 해 보니 이대로 있다간 수도가 무너질 가능성이 너무나 커서 싫어도 결전 사양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버틸 수 있는데, 다른 곳이 무너지면 최악이니 결국 다급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것으로 베오날드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안정적인 대전략을 깨고, 어쩔 수 없이 도박과 같은 전면전이라니……!

‘원래라면 좀 더 시간을 끈 다음 가르칸 공화국 본국에 연락을 넣어서 압력을 가해 보려 했는데…….’

노이멀 총리의 여당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종족 의회제인 가르칸 공화국의 체제로 인해서 여러 종족의 의원들이 있는 의회를 무시할 수 없으며, 오랜 전쟁과 희생으로 인한 사태는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막아 내면서 저 군을 철군시키는 건 물론 가르칸 공화국 내부와 손을 잡고 정권 교체를 해서 무력화하는 방안이 제일 이상적인 안이긴 했다.

‘결국 불가능해졌어.’

“음, 역시 어려운 문제인 것 같군.”

“예. 어려운 싸움은 질색인데, 이젠 피할 수 없겠네요. 기사들을 모두 소집해야겠습니다.”

전면전. 결국 수성전을 더 할 상황이 안 되니 발데리안군은 적을 치고 나갈 생각을 하게 된다.

기사들을 모아서 마갑주 부대 및 전투 마법사들과 함께 총 전략 회의에 들어갔다.

우선 기본적인 전략은 마법과 각종 전서구를 통해서 현재 이곳에 있는 병력뿐 아니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들을 일제히 동원하는 총력전을 계획, 말 그대로 포위 섬멸하겠다는 작전이었다.

“화끈하군요. 저 망할 놈들이 사람을 불태우는데도 가만히 있나 했더니! 움직이신다는 거군요!”

“암,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되기도 했지.”

‘사기가 높아서 다행인 건지, 아니면 전쟁에 로망을 가지는 이것들이란…….’

아무튼 다행히 사기는 높았기에 작전 계획은 쉽게 수립이 되었다.

눈앞에서 사람을 불태우는 짓거리를 봐서인지 일절 반대는 없었고, 다들 적극적으로 공격 계획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난리 법석이었다.

“아무튼 작전의 주요점은 역시 가르칸의 ‘장군’이다. 몇 번이나 이야기해서 민폐 같다만, 저기 병력은 강성하며 장군들은 하나하나가 더 강하지. 다만 작전은 심플하다. 이런 평지이고 우리가 숫자가 더 많으니 포위 섬멸. 숫자가 많은 점을 이용하기 위해 최대한 차륜전으로 사방을 두들긴다.”

“오오…….”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은 최대한 장군 처리에 투입이 될 거다. 다만 그 요테라는 놈과 번개 뿌리던 여우는 그냥 피하도록. 적에게 의심을 더 깊게 불어넣을 수 있을 거다. 이상이다.”

기본적인 작전 개요를 짜고, 그다음엔 다른 영지로 전서구와 전령을 보내어 연락을 주고받고서 총력전을 준비하게 되는 발데리안군. 베오날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 길뿐이기에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타전이 되면… 후우우~ 사람 더럽게 많이 죽겠지. 아으으으…….”

“얼마 전에 산 채로 수인들 가죽을 벗겨서 얼음 속에 넣던 분이라곤 생각도 못하겠네요.”

“그건 내 ‘정원’ 밖의 일이니까……. ‘정원’ 내의 일은 다르지. 저 사람들이 싸우다 죽어서 인구가 줄어들면 복잡해지고, 보상금이라든가… 인구 부양이… 끄으으으…….”

“당장 전쟁에서 이길 걱정부터 하시지요.”

“그러지.”

아르젠의 말에 마음을 다잡은 베오날드는 자신도 전투에 나서기 위해 마갑주의 점검을 마무리하러 성내 병기창으로 향했다.

***

그로부터 3일 뒤, 주변 영지에 합동 작전에 대한 개요를 알리고 답장을 받고 난 뒤에 굳게 닫힌 채 지키기만 하던 발데리안의 성문이 열렸다.

가용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단숨에 가르칸의 군대를 짓뭉개겠다는 총력전. 예비 병력에 동네 사냥꾼까지 가용한 병력을 모두 돌려서 전투에 투입, 다 합쳐서 약 10만의 대병력이 완성됐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그러면 약 2배인가? 그래도 쉽지 않겠지. 자, 그럼 가 볼까?”

주변 영지의 귀족들이 보내 주는 병력들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베오날드는 즉시 전군을 움직이기 시작, 상대도 베오날드군이 나온 것을 보고 이미 진을 치고서 맞설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지휘는 전공자들에게 맡겨야 했기에 베오날드는 마갑주를 입은 채로 갑주를 입은 기사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기로 한다.

“전군… 돌격하라!”

케드론의 지휘와 함께 발데리안군은 용맹하게 돌격을 시작, 궁수 부대의 사격과 전투 마법사의 지원 마법,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의 공세, 기병들은 우회해서 이제 전면전이 시작되면 적들을 짓밟으려고 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성에 숨어 있던 놈들이 드디어 나왔다. 모두 짓밟아 버려라. 요테, 페일, 너희는 설욕을 해야겠지?”

“크르르르! 무, 물론입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도 이에 맞서서 노이멀 총리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푹 쉰 가르칸의 중보병들, 그리고 한 번 패전했던 우군의 장군까지 돌입해서 격렬한 난전이 벌어졌다.

죽고, 죽이고, 피 보라가 몰아치는 대격전. 인간보다 강력한 수인과 이종족들의 맹렬한 공세와 그것을 막아 내기 위해 지혜를 짜낸 인간의 공격. 싸움은 마구잡이 난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작전이고… 뭐고 없군! 젠장!’

“으아아악!”

“끄아아악!”

“캐애앵! 캥!”

‘이런 지저분한 싸움은 딱! 질색인데… 젠장할!’

베오날드는 마갑주를 착용한 상태로 열심히 검을 휘두르면서 전열이 밀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자신은 기사단 단위의 조직적인 팀워크에 맞는 체질이 아니었기에 ‘장군’ 저격은 다른 기사들에게 맡기고 가르칸의 중장 보병에 맞서는 보병 전열을 지원해 주면서 상대하기 힘든 트롤, 리자드맨 병사들을 중점적으로 처리해 주고 있었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십식(十式)-쌍두사! 하아아아앗!”

그만큼 치열한 보병 라인 싸움이라서 그런지 베오날드는 ‘노이멀식’ 검법을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적을 처리하기 위해 볼트 라이플로 사격을 하기도 하고, 마갑주 안이 뜨거움으로 가득 찰 정도로 피 터지는 싸움을 계속 이어 나간다.

‘아무튼… 계획대로 되어야 할 텐데…….’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그는 그냥 싸우면 애석하니 또 하나의 꿍꿍이를 숨겨 두었다.

“크르르르릉! 드디어 설욕의 시간이 왔구나! 나는 요테! 가르칸의 장군이다! 내가 상대해 주마! 이 쇳덩이 입은 인간들…….”

요테 장군은 저번 전투의 설욕을 갚기 위해서 과하게 열의를 띤 채 전선 앞으로 나왔고, 아군의 중장 보병들을 뛰어넘어 발데리안 가문의 병사들을 미친 듯이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페일 장군 또한 뇌전을 뿌리면서 전투 마법사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마법력 대결로 싸움을 하며 자신들의 불명예를 씻고자 했다.

“늑대 발견, 작전대로 행동한다.”

“예!”

“그 망할 번개 뿌리는 여우도 피하는 걸 잊지 마라.”

그렇게 한 기사가 말을 하니 마갑주를 입은 다른 기사들 모두 요테와 페일 장군은 병사들에게 맡기고 다른 장군들을 상대하러 사라졌다.

그나마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페일 장군은 할 만했지만, 요테 장군은 강적은 하나도 없고 일반 병사만 주야장천 썰어 젖히는 판국이라서 그런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크르르릉! 뭐야? 대체 뭐냐고! 더 강한 놈 안 나와? 젠장할!”

“끄아아아악!”

“왜 나만 다 피하는 거냐고! 그르르르릉!”

서걱!

오러를 실은 발톱으로 일반 병사의 몸을 흉갑째로 갈라 버린 요테 장군은 포효하면서 전투를 지속해 나갔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난전은 보병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각 후열에서도 지원 사격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기병들은 기병들대로 보병의 뒤나 옆구리를 노리는가 하면 서로 창을 휘두르는 등 난리가 끊이질 않았다.

‘젠장… 온다고 하던 놈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슬슬 올 시간인데! 아! 저건!’

뿌우우우우우우우!

그리고 몇 시간째 싸우고 있으니 슬슬 지쳐 갈 때쯤, 저 멀리 후방에서 나팔 소리와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발데리안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귀족들이 보낸 군대로, 이제야 완전한 10만의 군대가 되어서 가르칸의 군대를 앞뒤로 완벽히 포위 섬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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