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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19화 (219/259)

[219화]

“크르르… 젠장! 놓쳤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디로 간 거야?”

“하필이면 사령관님이 부재중일 때…….”

그리고 난데없는 기습을 받은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에서는 즉시 군을 출격시켰지만 이미 적은 도망치고 난 뒤였다.

대낮부터 기괴한 화염탄이 날아오면서 막사를 불태우고 난리였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병력들이 전투가 아니라 대기 중이었기에 금방 화재 진압에 나설 수 있어서 큰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

하나 이 부대에 있는 장군 셋 모두가 이 전략에 당한 게 컸기에 이를 갈고서 전부 잡기 위해 뛰쳐나왔지만 허탕이었다.

“젠장! 쥐새끼 같은 놈!”

“허, 참 내. 그놈들이 대체 어떻게 우리 진영을 알고… 아, 자네들이 알려 줬구먼?”

“크르르릉! 우리가 배신했다는 거냐?”

“아니, 멍청한 짐승 놈아. 미행당했다는 이야기다!”

“짐승? 지금 말 다 했나?”

“다 한 건 네놈이겠지! 패배해서 용맹스럽게 죽겠다는 놈이! 적의 자비에 기대어 뻔뻔하게 살아 돌아왔으면서 염치도 없이 굴다니 말이야!”

일전의 전투에서 쌓인 앙금이 폭발한 플레임호거 장군은 노성을 터뜨리면서 요테 장군에게 반박했다.

그의 말이 틀린 점이 단 하나도 없었기에 요테 장군은 주둥이를 이죽거렸지만 으르렁거리면서 분을 삭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패배한 것도 짜증이 나는데, 자신의 발톱으로 한 번만 그으면 드워프 고기가 될 놈이 감히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니 당장이라도 물어뜯어 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르르릉…….”

“캥! 다들! 여기에 뭔가 있어요.”

그러던 중 페일 장군이 먼저 무언가를 발견해서 다른 이들에게 알렸고, 그곳에 가자 우뚝 서 있는 큰 ‘토템’을 마주하게 되었다.

늑대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토템 아래엔 무언가 마법적인 작용이 되어 있는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다.

드워프인 플레임호거는 아리송하게 보는 반면, 수인인 다른 장군 둘은 기이한 표정을 하면서 놀라는 눈빛이었다.

“이게 뭔가?”

“야생신의 토템. 우리 수인족들이 섬기는… 신의 제단 비슷한 건데,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으음…….”

“게다가 이거… 제대로 만들어졌군요. 일단 예를…….”

요테와 페일 장군은 손을 모아서 가볍게 토템에 예를 갖추고 고개를 숙였다.

부족 사회인 수인족 특성상 다른 부족의 야생신이라고 할지라도 존중해야 했고, 수상쩍긴 했지만 완벽하게 만들어졌으니 일단 예를 갖춘 것이었다.

하나 그 행동은 드워프인 플레임호거 장군에겐 기이하게 여겨져서 그의 눈빛이 수상함으로 가득 차게 된다.

‘…놈들을 끌어온 것도 모자라서 끌어온 곳에 이런 알 수 없는 구조물까지 있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이야기가 아닌데 말이지.’

가르칸의 장군에 대한 명성을 상대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살려 두면 후환이 클 텐데, 그들만 살아 돌아온 시점부터 이상한데… 이런 수인족의 문화가 공유된 토템까지 적이 설치했다? 확실히 수상할 만했다.

원래 있던 것이라곤 볼 수 없는 게, 드워프인 플레임호거, 심지어 그는 마스터 엔지니어라서 이런 하찮은 자재로 만들어진 것이라도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느 정도 기간이 된 건지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아니, 그 정도도 아니고 아예 갓 만들어진 거야. 그래, 그놈들이 만들었군. 음,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그리고 그는 좀 더 확실한 검증을 위해서 자신 말고도 다른 전공을 가진 드워프 부대원들과 부대 내의 마법사까지 불러 이 ‘토템’에 결계를 걸어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조치까지 취해 놓는다.

‘사령관님에게 보여 드려야겠어. 아무래도 저 수인 놈들……! 다른 속셈이 있을지 몰라.’

“크르릉! 젠장! 결국 놓쳐 버렸잖아!”

‘음, 아무리 봐도 저놈들 자체에게 속셈이라기보다는 그놈들의 감언이설이나 수작에 말려든 것일 수 있어. 안 그러면 수인족들의 ‘토템’을 인간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들이 알려 준 것이 아니라면 이걸 만들 방법이나 생각을 인간들이 할 리가 없다.

이건 무언가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 플레임호거 장군은 노이멀 사령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면서 군과 저 수인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약 이틀 뒤, 베오날드의 역작인 ‘얼음 정원’을 보고 돌아온 노이멀 사령관이었고, 플레임호거 장군은 수인 장군들 둘 몰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무사히 나온 요테와 페일 장군이 적과 내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토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당연히 생뚱맞은 이야기에 노이멀 총리는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페일 장군은 몰라도 요테 장군은 기질이 단순 무식해서 배신 같은 걸 생각할 머리가 없다.”

“무, 물론 저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배반할 생각은 없다고 해도 그 멍청이가 이용당할 가능성은 있지 않습니까?”

“으으음…….”

“애초에 그 장군 둘을 그놈들이 그냥 풀어 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사령관님.”

“으으으음…….”

그녀가 아는 요테 장군과 페일 장군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수인족의 기질이 거칠고 야만적이긴 해도 대부분 용맹하고 목숨보다도 신뢰를 중시하기도 해서 쓸데없는 우려라 생각했지만, 플레임호거의 말에도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우선은 그 ‘토템’을 확인하는 과정이 먼저라고 생각한 그녀는 플레임호거 장군에게 말했다.

“일단 그 토템을 확인해 보고 생각하도록 하지.”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플레임호거 장군을 따라서 토템이 있는 곳으로 향한 노이멀 총리는 직접 보고서 그것이 진짜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엄연히 다종족 국가인 가르칸 공화국에서 총리까지 맡을 정도면 그곳에 사는 모든 종족의 문화와 관습에 밝을 수밖에 없었는데, 늑대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토템’의 진위 여부를 한 번에 가릴 수 있어야 했고, 보자마자 진품이라는 것은 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입니다.”

“이걸… 누가, 어떻게 만든 거지?”

“뻔하지 않습니까? 저 배신자 놈들이 비밀 소통을 하기 위해서 만드는 법을 알려 준 거겠지요.”

“흐으음…….”

플레임호거 장군은 열변을 토했지만, 노이멀 총리는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배신자가 있다면 처단하는 게 옳지만, 일단 더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르칸의 장군’이 배신했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이지만 반대로 근거 없이 의심했다간 피해를 보는 건 이쪽이다.

근데 또 이게 상대의 술책이거나 하면 그건 그것대로 난감하니 미칠 지경인 그녀였다.

‘…머리가 아프군. 판별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믿어 주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려.’

가르칸의 장군이면 무조건 죽여야 할 상대인데 적이 그냥 보내 준 걸 보면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지난번 전쟁으로 그 위용을 대륙에 알렸는데 둘 중 하나를 수감한 것도 아니고 둘 다 해방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수인들 중에서도 전사장이나 사제만이 아는 ‘토템’ 제작을 할 정도면 그래도 무언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전선으로 보내서 싸워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게 하는 게 제일 좋으려나? 하지만 그러다 혹시라도 갑자기 적으로 돌아서면? 가능성은 적지만 일어나면 본대에 치명적인 타격이 생겨. 그렇다고 좌군으로 보내는 것도 좋지 않아. 아니면 본국으로 송환시킬까? 아니, 보내려면 최소한 전공을 세우고 난 뒤에 교대라는 명목으로 보내야지, 그냥 보내면…….’

정치적 상황, 배신의 가능성, 모든 것이 얽히기 시작하니 복잡해지는 상황이었다.

사실 애초에 우군이 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고민할 일이 없었겠지만 이건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 좀 더 고민하던 그녀는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자신이 하마터면 적의 술수에 말려들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맞아. 상대는 같은 노이멀, 이 정도 술책은 기본이다. 그러니… 두 장군을 일부러 보내고 내부에 위화감과 배신의 의심을 심어 둔 게 분명해.’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한 것을 깨달은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장군 둘을 의심해서 큰일이 벌어질 뻔했으니,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를 찾고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작전을 고안하자고 생각하며 플레임호거를 설득했다.

***

베오날드군의 진영.

몇 시간 간격으로 끊임없이 정찰 보고를 받고 있는 베오날드는 적군에 아직 동요가 없다는 것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동요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걸 보면 내부에서 의심암귀와 혼란을 잘 제압한 거라고 판단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으음… 역시 우리 딸, 솜씨가 많이 늘었군. 아주 좋아.”

“좋은 겁니까? 선조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곤란한 게 아닐지……. 아, 감사합니다.”

아르젠은 베오날드가 주는 찻잔을 받아 들면서 그에게 우려 깊은 눈빛을 보냈지만, 베오날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딸아이의 성장을 기뻐하는 건 좋지만, 그 따님이 지금 적인데 계략이 통하지 않게 되면 어쩔 생각인지 난감했다.

“아, 걱정 말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도착 지점에 못 간다는 건 아니니 말이야. 또 만만한 상대가 아닌 건 알고 있었으니 조심스럽게 해야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은 기다리는 게 좋겠군. 안 먹혔으니 말이야.”

“그럼 결국… 장군 둘만 살려 준 격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만,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신뢰는 쉽게 생기지 않고 반대로 의심도 쉽게 거두어지는 게 아닌 법. 조금 길을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되네.”

하나 겉과 달리 내심 살짝 곤란한 생각이 있긴 한 베오날드였다.

그러나 곧 죽을 곤란한 상황임에도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귀족의 정석.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적수인 딸에 대해서 생각하며 다음 수를 준비하기로 한다.

어차피 이 전쟁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으니 말이다.

***

베오날드의 계획을 눈치채긴 했지만 그래도 1만 5천의 우군이 패배하면서 가르칸 공화국의 군세는 한풀 꺾이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특히 산 채로 수인의 가죽을 벗기고 얼음 안에 전시해 놓은 ‘얼음 정원’에 대한 끔찍한 소문은 제아무리 용맹한 전사라 해도 순간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경험 많고 참혹한 광경을 많이 본 사령관의 친위대조차도 구역질을 하며 기겁했던 장면은 훈련을 거쳤다곤 해도 참혹함에 익숙지 못한 일반 병사들에겐 무서운 것이었다.

“으음… 생각보다 해당 소문으로 인한 동요가 심합니다, 사령관님. 역시 함구시키는 게 옳았을 텐데요.”

“그때도 말했지만 함구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지. 이제부터 승리해 나가면 그만이다. 좌군을 불러라. 이제부턴 제대로 전쟁을 해 나갈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인간 처리는 늦어지겠지만 어차피 국가와 영지들이 무너지면 야생 동물처럼 흩어지게 된다.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멸종할 때까지 사냥해 나가면 될 뿐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오직 이기는 것.’

‘비겁한 수를 쓰든 뭘 하든… 승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단다, 딸아. 네가 귀족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정원’을 지키고 싶다면… 네 것을 지키고 싶다면 이것을 명심하도록 해라.’

아버지의 교육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그녀는 우선 이기기 위한 총력전을 위해서 좌군을 불러들였고, 기존에 나누었던 군대를 하나로 모으고 용병까지 끌어모아 재편하여 약 4만 5천의 군대가 된 그들은 이제부터는 오로지 목표를 하나로 고정하여 적군의 중심인 ‘발데리안 가문’을 처치하기 위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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