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베오날드의 충격적인 ‘선물’을 받은 노이멀 총리의 친위대는 일단 경악에서 헤어 나와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오브제들을 부수고,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시체들을 모아서 불로 태워 없애고자 했지만, 죄다 얼음 속에 있던 탓인지 쉽게 타지 않고 매캐한 냄새만이 퍼질 뿐이었다.
‘대체 누굴까?’
하나부터 끝까지 불쾌한 이 짓거리. 하나 노이멀 총리에겐 오히려 추억에 나올 만한 것이었다.
방법은 살짝 다르지만 이건 분명한 노이멀 가문의 방식이었다.
참혹하다고 해서 무조건 노이멀의 방식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편지에서 ‘선물’, ‘정원’을 언급하고 지금 이렇게 괴악하지만 나름 우아한 예술성도 챙기는 것이 완전히 같은 방식이었다.
‘아르젠 그 녀석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야.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이런 일’을 한 게 아니라, 상대가 아군에게 ‘이런 일’을 하게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자라는 게 더 중요해.’
광기 넘치는 일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미친 짓을 아군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지배력이 문제였다.
병사들과 기사 모두 평범한 인간들. 죽인 것도 아니고 산 채로 수인의 가죽을 벗겨서 저렇게 얼음 기둥을 만들 정도면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데, 그걸 완수한 이 시점에서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그녀였다.
‘…감히 나 이외에 ‘노이멀’의 방식을 써?’
그리고 이어서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 노이멀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자칭하고 있고, 오직 자신만이 사랑하는 아버님의 뒤를 잇는 것을 자랑이자 긍지로 삼는 그녀에게 이것은 큰 모독이었다.
고로 이 괴악한 ‘얼음 정원’은 일반 병사들과 사람들에겐 공포의 상징으로 보이겠지만 자신에겐 ‘노이멀’ 가문으로서 던지는 도전장이었던 것이다.
“시신의 처리… 모두 끝냈습니다.”
“좋다. 돌아가자.”
“저기, 그… 사령관님? 이거 부대원들에게 함구령이라도 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들 너무 충격적인 걸 봐서…….”
“함구령을 내린다고 해서 저 이야기가 안 퍼질 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거짓을 감추기 시작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또 어차피 저런 걸 알면 우리 애들도 더 열심히 싸우겠지.”
그리고 상대가 멀쩡한 이상 이런 방법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쓸 것이기에 감춰 봐야 나중에 충격만 더 커질 것이다.
또 노이멀의 방식으로 도전받은 그녀는 왠지 감추려 한다면 상대에게 패배하는 느낌도 들어서 그런 점도 있었기에 충격을 안은 채로 그대로 복귀, 본대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게 된다.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얼음 속에 넣어 만든 ‘얼음 정원’의 이야기가 말이다.
“…아마 반향이 클 겁니다.”
“두려움은 이용하기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도 있는 것. 이런 걸로 우리의 사기가 꺾일 거라 생각하면 오만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면 된다.”
“…그게 잘될는지요.”
“날 의심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부관은 두려운 듯 몸을 움츠렸지만, 내심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용맹의 자질이라곤 하지만 이번 건 너무 심했던 것이었다.
모두가 ‘노이멀’ 가문의 방식을 태연히 받아넘길 수 있는 게 아닌데, 노이멀 총리는 지금 자신에 대한 도전에 더 화가 난 상태라 그런 점을 고려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 분노를 어떻게 갚아 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굴욕은 더 크게 갚아 주면 되는 법. 고작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움츠러들어선 안 되는 법이지.”
우군이 패배했다곤 하지만 두 장군들은 무사하니 전혀 문제없다.
그러니 받은 것을 갚아 줄 작전을 짜야 한다고 생각하고 친위대원들을 이끌고 돌아가는 그녀였다.
하나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지금 상대하는 베오날드라는 자의 역량을, 500년 전의 전설인 그가 얼마나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암약을 하는지 말이다.
***
베오날드는 ‘얼음 정원’을 설치함과 동시에 그대로 물러나면서 움직이는 두 장군에게 몰래 미행을 붙였었다.
그리고 적 진영을 관찰하게 해서 노이멀 총리가 움직이는지 살피고, 그의 군 3만은 조심스럽게 노이멀 총리의 본대를 노리고 이동했다.
고된 행군이었지만 그래도 이 첫 전투의 사기와 영향이 남아 있는 동안 적을 더 강하게 압박하고 싶었기에 베오날드는 군을 움직였다.
“베오날드 님, 그… 기사들 몇몇이 상당히 지쳐 보입니다만…….”
“내가 그러니까 쉴 땐 쉬라고 하지 않았나? 명예를 얻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데, 심지어 병사들도 멀쩡한데 말이지. 에휴~”
페이스 배분을 철저히 했는데도 호기 부린답시고 무리하게 전투를 요구했던 기사들이 퍼지기 시작하니 한숨이 나오는 베오날드였다.
중급 기사급 이상은 그래도 오러라든가 단련이 잘되어 있어서 버티는 반면 하급 기사들은 역시 피로한 기색이 넘쳐서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난리였다.
“어쩔 수 없지. 포션을 분출해서 마시게 한 다음 일단 운반용 마차에서 자게 해라. 그리고 다음부터 쓸데없는 만용을 부리고 투덜댄다면… 수인 놈들에게 했던 것처럼 가죽을 벗기겠다고 전하는 걸 잊지 마라.”
“예, 예!”
얼마 전 ‘얼음 정원’을 만든 풍경이 떠오른 건지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진 기사는 급히 그 말을 전하러 자리를 떠났다.
사실 아군들에게도 그 학살과 악취미적인 오브제를 만든 것에 대한 반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평범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일이었기에 기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베오날드에게 공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차라리 만만히 보이는 것보단 낫다.’
어차피 조직을 통솔하려면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하고 두려움을 줘야 원활하게 굴러가는 법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모두가 하하호호 하면서 진행되는 게 아니기에 베오날드는 강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결속 면에서 이런 면도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뭐, 내가 아군을 조진 것도 아니고, 엄연히 침략해 온 적군을 조진 거니 말이지.’
“베오날드 님, 발데리안 영지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전령? 연락인가 보군. 내게 오라고 전하도록.”
“예!”
발데리안 가문의 최주력군을 이끌고 있기에 급한 일이 있을 경우 연락을 해서 돌아오거나 지원 요청을 하라고 해 두었었다.
베오날드는 곧바로 전령을 불러서 발데리안 백작이 전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첫 전투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한 게 적의 좌군과 본대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셔서……. 이 이후 전황을 어떻게 이끌어 갈 건지 이야기해 달라고 하십니다.”
승리 소식은 베오날드 측의 야간 습격 시점에서 이미 확정이었기에 먼저 전령으로 알렸고, 답장을 겸해서 온 연락이었다.
확실히 주력군을 베오날드 측이 모두 가지고 있기에 방어와 후퇴만 반복하는 전투는 힘이 든 것은 사실이었고,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 연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음, 우리는 이대로 행군과 휴식을 취하면서 곧장 적의 본부대를 치러 간다고 전해 드려라.”
“적… 본대를 말씀이십니까? 그건 너무 힘든 게 아닐지?”
“아,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적 지휘관이 공백인 틈을 타서 살짝 건드리고 튀는 거다. 우리 본대 병력은 안전한 곳에서 다음 작전까지만 대기하다가 후퇴할 생각이다. 그러니 좌군을 막는 것에 좀 더 비중을 두라고 전해 드리면 된다. 아, 물론 우리 보급은… 꼭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적들의 우군은 격파, 이제부터 자신들이 본대를 습격하게 되어서 중앙의 본대를 견제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왼쪽 군대만 남게 되는 상황.
베오날드의 말을 새겨들은 전령은 주요 말들을 기록하면서 전달하기 위한 준비에 애를 썼다.
그리고 다 적은 뒤에 그는 다시 베오날드에게 물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별도로 필요하신 건 있으신지요?”
“딱히 없다. 아… 혹시 여유가 된다면 우리보다는 제국 수도 쪽에 미리 식량과 물자를 조금 보내 두라고 전해 드려라. 황실 측에 말이다.”
“제국 수도 측… 말입니까?”
“그래. 지금 가르칸 공화국 군대의 움직임은 어딜 봐도 너무 공격적이다. 다른 군대였으면 보급 루트도 제대로 이어질지 의문인 상황이지. 심지어 이렇게 깊게 들어오면 만약 제국 수도에서 군을 보내서 측면 혹은 후방을 막아서 싸 버리면 그대로 전멸해 버릴 수 있는 위험한 포진이다. 그런데 노이멀 총리가 들어온다? 그러면 이 수가 막혀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지.”
“…제국 수도를 누군가가 공격한다는 것입니까? 가르칸에 그… 여력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아무튼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그리 전달해 두도록.”
“예!”
어떤 변수가 일어나는진 모르지만 상대의 움직임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해선 먼저 손쓰는 게 중요했다.
만약 노이멀 총리가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움직인다고 해도 물자를 보내 주는 정도면 큰 타격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의 수가 먼저 들어간 상태이기에 상대가 대응하는 것보다 한 발짝 더 빨리 움직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자, 그러면 조금이라도 적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 가 볼까? 자, 계속 진군하세.”
“예.”
아무튼 이제부터 적 본진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베오날드는 오늘 야영에서 무장과 마갑주의 점검을 시작했고, 풀어 준 요테와 페일 장군의 뒤를 미행한 이들이 그들의 진영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진영을 떠났다는 보고를 올리자마자 부대를 움직이기 시작, 부대는 적 본대와 꽤 떨어진 거리에서 휴식을 한 다음 마갑주 위주로 편성된 기사들만 데리고서 움직였다.
“역시 이거 행군엔 걸맞지 않군. 바퀴라도 달아야 하나? 아니면 별도로 탈것을 준비해야 하나? 골렘으로 군마를 만들 수 있는지 아르젠에게 물어볼까?”
쿠우웅! 쿠우우웅!
전투 중에는 마력의 소모를 끌어 올려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러면 작전 시간이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가는 길도 길이지만 돌아오는 길도 문제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아슬아슬한 거리에 친 본진이 들키지 않게 해 두는 것도 중요했기에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작전이었지만 반드시 해야만 했다.
“서서히 적의 본진이 보입니다, 베오날드 님.”
“좋아. 그럼 작전을 개시한다. 사격을 해라. 나는 별도의 준비를 할 테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마갑주를 입은 다른 기사들은 이전에 야습을 했던 것처럼 포대를 준비해 나갔고, 베오날드는 마갑주를 잠시 벗고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은 원거리에서 사격을 할 준비를 완료했다.
기사들은 은근슬쩍 불만인 눈빛을 했지만 상대의 군세를 보니 만만치 않음이 느껴졌고, 또 베오날드의 방법을 통해서 승리했기에 그 점을 드러내진 않았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어, 잠시만. 여기도… 조금만 더 하면 끝이 난다. 음! 좋아.”
“이게 뭡니까?”
“토템. 수인, 야만족들이 사용하는 주술적, 종교적 상징물이지. 음~ 역시 나야. 책으로만 보고 만든 건데도 아주 잘 만들었군.”
자화자찬하면서 눈앞에 세워진 토템을 바라보는 베오날드.
늑대와 여우의 가죽과 뼈를 사용해서 올려 낸 토템은 기괴하면서도 무언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템의 아래에는 알 수 없는 글자가 마법으로 새겨져 빛이 나고 있었다.
뭔가를 불러내려는 것일까? 아무튼 기사들은 뭔가 생각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일로 돌아간다.
“자, 다 됐으니 그럼 시작하지. 다들 사전에 이야기했다시피 딱 3발씩만 쏘고 튀는 거다. 알았나?”
“예!”
“그럼 전 포대… 쏴!”
파지지직! 펑! 펑! 펑!
베오날드의 명령과 동시에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지지하는 포에서 불덩어리들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썼던 화염탄, 적진에 달라붙어서 불의 재앙을 만들어 낸 그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딱 베오날드의 지시대로 3발씩만 쏜 다음 모조리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그때쯤 적의 공세를 눈치챈 가르칸 공화국의 본대에서 미친 듯이 군을 보내어 달려오고 있었다.
“자! 다 쐈으면 후퇴! 모든 오러를 다 끌어 올려서 전력으로 도주한다.”
“예!”
이곳에 올 때 힘을 아낀 만큼… 다들 오러와 마정석의 마력을 모두 끌어 올려서 마갑주를 최대로 작동시켜 도주하기 시작했다.
기습이라기엔 너무나 소규모의 공세로 적 진지에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노리는 것은 이다음의 것으로 모든 것은 베오날드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