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전방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동안 본대 측면과 후방에서는 적 기병을 대비한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늑대, 멧돼지 및 각종 야수들로 이루어진 통일감 없는 적 기병대였지만 그 육중한 질량과 덩치는 인간들을 움츠러들게 만들기 충분했기에 상대하는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3천이나 되는 기병을 막기 위해서 준비된 것은 마갑주 12기와 장창을 세운 채로 대기하는 발데리안의 군사, 그리고 전투 마법사들이었다.
“전방은 벌써 난리군요. 근데… 마른하늘인데 왜 벼락이……?”
“단순한 벼락이 아니니 그런 거겠지. 아무튼 전투 마법사들은 준비가 끝났네, 하이디 경.”
“아, 감사합니다, 아르젠 님.”
측면과 후방을 노리는 적을 막기 위해 후열에서 대기 중이던 하이디는 자신에게 말을 건 아르젠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는 현재 전투 마법사들을 이끌고, 동물 형태의 골렘을 소환한 채로 지원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었다.
패배하면 자신도 결국 죽음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아르젠은 나름 적극적으로 싸우고자 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로 적의 돌진력을 떨어뜨릴 마법들을 준비해 두었네. ‘진흙탕 설치’, ‘모래 기둥’, ‘강렬한 섬광’, ‘화염벽’으로 가능한 한 지원하도록 할 테니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위력적으로 처치해 주길 바라네.”
“예!”
“특히 가장 큰 걸 탄 놈이 아마 장군일 걸세. 그놈에겐 어지간한 마법은 안 통할 거니 아예 자네들 담당으로 하지. 그 외의 발을 묶을 거니 놈을 처리해 주게, 라고… 전하라더군.”
“알겠습니다.”
상호 간의 조율과 협의를 가볍게 끝내고,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적들은 크게 우회해서 전방에서 한창 전면전일 때 측면에 도달하도록 시간을 맞춘 건지 슬슬 도착하고 있었다.
적과의 거리는 이제 약 300보, 이미 아군 궁병대에겐 사격 지시를 내린 상황. 이쪽도 나름 열심히 화살을 쏘지만 훈련이 잘된 건지 쉽게 저지되지 않았다.
“아우우우우! 멈추지 마라! 계속 달려라! 아우우! 승리는 우리 것이다! 이깟 이쑤시개 가지곤 우릴 막지 못한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면서 달려가는 가르칸의 기병들. 타고 있는 동물이 전부 달라서인지 진형 자체는 정교하지 않았고, 오직 요테 장군이 선두로 달리는 것을 다들 따라가는 형태였다.
하나 3천이나 되는 많은 숫자의 질주는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기에 측면과 후방을 막기 위해 서 있는 병사들은 차라리 전열 쪽으로 갈걸, 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슬슬 시작합시다. 신호를 올리면 즉시 전투 마법사들이 공격을 시작할 겁니다.”
“예!”
그리고 어언 100보쯤 거리가 되었을 때 아르젠이 신호를 보냈고, 전투 마법사들이 일제히 전방을 향해서 각자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마법의 종류는 어떻게든 적 기병대의 돌진을 저지하고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종류들로 자기들끼리 얽혀서 쓰러지거나 충돌하게끔 만들면 가장 베스트, 그게 아니더라도 속도를 최대한 늦춰서 돌진력을 떨어뜨려 아군 병사들이 싸우기 수월하게 되면 충분했다.
“좋아! 속도가 떨어진다! 계속해라.”
“죽은 녀석들의 시체를 엄폐물로 삼아라! 크고 무거운 만큼 몸을 보호하기도 좋을 거다!”
“군대 흉내를 내고 있어도! 위험종 몬스터나 다름없다! 돌겨억!”
전란의 시대에 잔뼈가 굵은 병사들답게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끄는 십인장, 백인장들의 지휘는 빠르고 확실했다.
전쟁의 역사로 만들어진 인류가 가진 노하우는 그들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깊은 것이었다.
전투 마법사들에 의해서 넘어지고 쓰러진 가르칸의 기병들은 즉시 병사들의 창에 찔려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들 본인과 타고 다니는 거대한 육체는 이제 병사들의 작은 엄폐물이 되어서 뒤에 들어오는 기병대를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다.
“크르르릉! 이게… 인간? 역시 만만치 않군. 하지만!”
“하아아아앗!”
“뭐야? 으억!”
콰아아아앙!
그리고 가장 앞에서 거대한 늑대를 타고 돌진해 온 요테 장군에겐 마법적 견제가 없었기에 홀로 앞으로 튀어나온 상황. 하이디는 창을 들고 단숨에 달려 뛰어올라서 늑대 위에 탄 요테 장군을 노렸다.
후열을 살짝 보다가 한눈이 팔린 그는 하이디의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그대로 자신의 늑대에서 낙마, 거대한 늑대는 하이디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갑주를 착용한 다른 기사들이 달려들어서 맡기 시작했다.
“크르릉! 젠장할! 감히 날… 떨어뜨리다니! 네놈, 정체가 뭐냐?”
“나는 베오날드 님의 검이자 창! 기사 하이디! 가르칸의 장군이 맞는가?”
“큭! 젠장! 그래, 맞다. 나는 가르칸의 장군! 요테! 수인족의 자랑이자 긍지! 인간! 어디 한번 승부를 내 보자!”
으르렁대는 요테 장군. 그는 털을 바짝 세운 다음 발톱을 세우고서 하이디에게 달려들었다.
맨몸으로 달려드는 것에 하이디는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오러를 끌어 올리며 창을 휘둘러서 후려치는데, 그에게서 오러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에 흠칫했다.
그리고 발톱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그녀는 급히 몸을 낮추어서 피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한 터라 갑주가 긁히고 말았다.
“오러? 수인이 처, 천연 기사?”
“크르릉! 신기하냐? 너희 인간만 ‘기사’라니 오러의 축복을 받은 줄 아나? 카핫! 우리 수인족에게도 엄연히 무예가 있고, 사냥법이 있다! 크르르릉!”
“큭!”
카아아앙! 챙! 채채챙!
수인이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법칙은 없지만, 그래도 전쟁과 역사가 만든 기사와 오러를 그들이 안다는 것은 나름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이 수인, 상당히 강하기도 해서 하이디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 주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육체적 조건이 좋은 수인, 거기에 오러의 강화까지 더해지니 천부적인 재능과 육체를 가진 하이디와 맞먹을 정도의 속도와 파괴력 모두를 지닌 것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윽!’
“크르르르릉! 인간 주제에 제법이구나!”
챙! 채채챙!
반대로 요테 장군도 놀라는 게 자신의 강함은 ‘장군’이라는 칭호가 증명하듯 일군급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수인의 강력한 육체, 거기에 오러, 부족에 내려오는 최강의 무예까지 익힌 몸인데 이렇게 비견될 수 있는 자가 있다니. 리자드맨 장군이었던 드라켄을 죽인 인간이 있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니까 사령관님이 인간들을 절멸하려고 하는 건가? 육체도, 발톱도 없는 이놈들이 이 정도일 줄이야!’
‘마갑주가 아니었으면 정말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그리고 사실 하이디는 천부적인 육체에다 마갑주까지 있는 덕분에 선천적인 육체의 강함을 지닌 수인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완력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장군을 기준으로 잡으면 상대는 엄연히 크멜 공작이나 레기온 경 정도에 맞먹을 강자인 셈. 오러가 실린 발톱에 마갑주의 외장이 손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두꺼운 장갑에 술식까지 새겨 둔 덕분에 깊이 뚫리진 않았다.
“젠장할! 이 고철은 대체 뭐기에! 크르르릉! 전력으로 나설 수밖에 없겠군.”
‘온다!’
“‘발톱 부족 사냥법-흐르는 강물의 연어 잡기’!”
‘이건…….’
스스스…….
요테 장군이 오러를 끌어 올리며 질주하자 잔상이 생겨나며 하이디 주변을 돌면서 빠르게 공세를 가했다.
보통 이런 경우 잔상의 기척을 읽어서 본체를 공격해야 하지만, 하이디는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자신도 오러를 끌어 올린 다음 발로 땅을 구르면서 창을 휘둘렀다.
“‘황실 기사단의 무(武), 일식(一式)-사자분신(獅子奮迅)’!”
“캐앵! 큭! 감히 내게 이런 굴욕을!”
콰아아!
사방으로 퍼지는 오러의 파도. 따라가지 못한다면 힘으로 날려 버리면 그만이다.
억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핵심을 꿰뚫어서 반격하는 것. 민첩하게 들어와서 난타하려던 요테 장군은 하이디의 오러에 밀쳐 나갔지만 금방 자세를 다시 잡고 반격해 온다.
역시 쉬운 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이디 또한 창을 고쳐 쥐고서 열심히 다시 공격해 나갔다.
***
그렇게 싸움은 일체의 휴식 없이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베오날드의 본진에서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후퇴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었고, 한참 싸우던 병사들과 기사들 모두 퇴각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어두워지게 되면 오히려 본능이 뛰어나고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가르칸 공화국이 더 잘 싸우게 되니 무조건 빠져야만 했던 것이다.
“이봐! 크르릉! 어디 가?”
“아쉽지만 내일 보도록 하죠.”
하이디도 요테 장군과 이별했고, 베오날드 또한 페일 장군에게서 간신히 벗어나서 본진에 돌아온다.
그리고 본진에 돌아오자마자 병사들과 기사들은 사상자 집계 및 치료, 식사와 휴식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갔고, 베오날드와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도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자! 빨리 움직여! 해가 완전히 지면 더 일하기 힘들어진다!”
“부상자는 빨리 의료반으로 보내라! 하나라도 더 살려야 한다!”
“전투 마법사들 중 정비반 집합! 마갑주 수리 및 파츠 교체를 서둘러야 합니다!”
“젠장… 망할 여우 년 같으니!”
“풉! 그,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
소란스러운 진영 한가운데서 베오날드는 정비반의 앞에 마갑주를 벗고 내려오는데, 머리가 옥수수를 튀겨서 부풀어 오른 팝콘처럼 되어 있었다.
뇌전을 뿌려 대는 페일 장군과 하루 종일 싸우는 통에 뇌전을 막았더라도 안에 그 영향이 끼친 것이었다.
열심히 웃음을 참는 아르젠의 모습을 보며 베오날드는 한숨을 쉬고는 자신이 입던 마갑주를 점검했다.
“아, 역시 갑주의 술식이 엄청나게 손상되었군. 이러니까 영향이 내부까지 들어오지.”
“금방 파츠 교체에 들어가겠습니다. 풉!”
“야, 인마 좀… 에휴, 됐다. 아무튼 마갑주에 관해선 아르젠 너에게 일임한다. 나는 전황 분석과 회의를 다 해야 하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투덜댈 시간조차 아까운 전쟁 상황. 첫날의 결과를 빠르게 파악하고, 내일도 싸우기 위해 휴식 및 수면도 생각해야 하니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베오날드는 본영으로 들어와서 하나둘 올라오는 보고들을 보면서 현 전황에 대한 파악을 빠르게 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적들의 시체 파악이 끝나서 온 적군 사상자 숫자였다.
“적 시체 숫자는 약 2천5백. 그중에서 적 기병은 1천가량이 죽었고, 전면에서는 1천 명가량이니 부상자 포함하면 거의 5천가량의 피해를 입힌 걸로 추산됩니다.”
“상대는 수인들이니 신체가 강건하고, 리자드맨 같은 경우는 재생력도 갖추고 있는 걸 감안하게. 그러니 실제 피해는 더 적을 게야. 하지만 첫날치곤 나쁘지 않은 전황이군.”
“예. 특히 기병대 쪽이 완전 지휘관이 멍청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단순히 우회 돌격밖에 모르는 데다 하이디 경과의 일기토에 집착해서 군의 피해가 심각해지는데도 모르더군요. 물론 개인의 무위는 역시 ‘장군’이라는 칭호답게 무시무시했지만요.”
“으음, 뇌근육 타입이라는 거군. 그 여우 장군도 상당히 거칠고 난폭하던데, 수인들 종족 특성인가? 으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군 사상자 집계 완료했습니다. 사망자 약 2천, 부상자 약 1천 정도입니다.”
“…부상자가 의외로 적군.”
“그, 싸우면서 교대를 철저히 했지요.”
“으음… 그렇군.”
아직 아군 피해 산정이 끝나지 않았지만 초전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수확이라 생각하던 베오날드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바로잡는다.
전쟁은 단순한 점수 따기 게임이 아니다.
싸워서 승리하기 위한 곳. 아군의 희생이 좀 적다고 좋아하는 건 그야말로 바보짓이었기에 베오날드는 정신을 차리고 계속 보고해 오는 자들을 통해 정보를 취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