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그리고 이에 맞서는 1만 5천, 가르칸 공화국의 우(右)군은 정면의 3만의 발데리안군을 바라보면서 정면으로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들은 병사에서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수뇌부인 장군 셋은 모여서 어떻게 적을 쓰러뜨릴지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작전 입안에 임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도 높고, 지금까지 오면서 죄다 도망치던 놈들뿐인 약자들! 캥캥! 적진으로 전진해서 그냥 짓뭉개 버리죠. 캥!”
“페일 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플레임호거 님. 나약한 인간 따위! 우리 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컹!”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사령관님께서 주의하라고 했으니 전달하는 걸세. 그리고 상대엔 특이한 마도구도 있다고… 요테 장군, 페일 장군, 진정 좀 하고 듣게나.”
플레임호거라 불린 늙은 드워프 남성은 과도하게 피를 끓이는 이 수인 둘을 보면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물론 이 둘 모두 가르칸 공화국에 고작 1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장군. 둘 다 하나하나가 일군에 맞먹는다는 무력을 가진 자들이기에 더욱 통제하기 힘들었다.
같은 장군이어도 플레임호거 자신은 ‘마스터 엔지니어’로 각종 군사 무기와 공성 기계 전문가로서 장군에 임명되었기에 무력적으로 밀려서 설득이 잘될 리가 없었다.
“크르르릉! 어차피 저깟 놈들, 우리에게 한 번 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드라켄 장군이 쓰러졌지 않은가? 아주 만만히 볼 자들은 아니라는 거지.”
“그건 드라켄 장군이 무능했던 거겠지요.”
‘아직도 야만인의 물이 안 빠진 것들이……!’
나름 가르칸 공화국 내의 국민이긴 했지만 서로 다른 종족인 만큼 근본적인 문화 차이와 융화가 힘든 게 사실. 심지어 공화국 내에서도 서로 의회나 군대에서나 이종족끼리 만나곤 하지 각자 개별 영역에서 지내면서 의회와 자기 종족의 입맛에 맞는 당의 이익을 위해서 다툼을 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아무튼 캐캐캥! 드디어 우리의 용맹을 증명할 때가 왔으니 가 보도록 하죠, 요테 장군.”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플레임호거 님은 술이라도 한잔하고 푹 주무십시오. 크르르릉!”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총리님이 날 여기로 보낸 이유를 알 것 같군.’
그렇게 전장으로 출진하는 두 장군을 보며 플레임호거 장군은 더 이상 뭐라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멍청한 데는 약도 없고, 말이 통해야 뭘 도와주거나 하지 저러면 답이 없으니 결국 한번 깨져 봐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혹시라도 그들이 패배하게 되면 해야 할 조치를 준비하기로 한다.
“자, 가자! 가르칸의 용맹한 병사들이여! 승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페일 장군! 나중에 봅시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요테 장군은 하울링을 하며 거대한 늑대를 타고서 똑같이 늑대나 멧돼지를 탄 가르칸의 기병대 3천을 이끌고 출진, 그들도 엄연히 망치와 모루 전략을 배운 만큼 먼저 가서 우회해서 돌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페일 장군은 본진을 지키는 예비대를 제외한 7천의 보병대와 궁병대를 이끌고서 본인도 직접 보병 방진에 합류하여 방패와 창을 들고서 군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나를 따르라! 상대가 우리보다 많아 봐야 나약한 인간. 5배의 병력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줘라! 캥!”
“쿠룩! 쿠룩!”
“크르르르릉!”
“구어어어어!”
노이멀 총리 직속 정예 보병대만큼의 무장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화국 내의 드워프들이 운영하는 무기 공장에서 나온 무장과 수인 군단끼리 거칠고 경쟁적인 훈련을 거친 가르칸의 보병들이다.
진형을 짜서 전진하기 시작하는 오크, 리자드맨, 트롤 등등으로 구성되어 훈련된 진형은 그들을 무서운 몬스터들로 여기는 일반 인간들이 보기엔 무시무시할 것이다.
“으음, 무장은 살짝 빈약한데… 훈련은 다 잘된 건지 진형 유지가 잘되는군. 좀 와아아! 하면서 막 달려올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래 봐야 우리 인간의 전유물인 전쟁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겁먹지 마라. 결국엔 몬스터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발데리안 영지 서쪽 숲의 각종 위험종 몬스터들을 박살 낸 기사들이 함께한다.”
베오날드는 마갑주를 입은 채로 위풍당당하게 서서 병사들의 뒤에서 그들을 격려한다.
베오날드의 좌우로 마갑주 30기가 모두 착용된 채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인간보다 살짝 거대하고 육중한 강철의 기사들이 격려하는 것에 병사들은 마음이 든든한지 아직 큰 동요가 없었다.
‘음, 12기는 예비 및… 적 기병대 상대용으로 남겨 뒀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전쟁은 결국 전열 싸움의 비중이 크니… 하이디가 잘해 주겠지.’
철컥!
베오날드는 볼트 라이플에 탄환을 장전하면서 남은 12기를 배치한 곳을 슬쩍 보았다.
거기엔 이번 원정에 데려온 하이디의 마갑주가 있었다.
본래 가장 초기형을 썼던 그녀였지만 베오날드의 최측근인 만큼 추가 무장과 강화를 통해서 새로이 바꿔 주고 그리고 최측근답게 화려한 금장과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노이멀 가문의 상징 중 하나인 ‘뱀의 문양’까지 새겨 넣은 멋진 갑주였다.
“적… 거리 약 50보.”
“다들 방패를 잡고 사격에 대비해라. 슬슬 저 뒤에 있는 엘프 궁병대가 사격을…….”
“화살! 옵니다!”
“그래, 온다니까……!”
말하기 무섭게 타이밍 맞춰서 하늘에 화살 비가 나타나 자신들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적 궁병대는 역시 엘프들로 구성되어서인지 보통 인간 궁병대들보다 훨씬 먼 곳에서 정확하게 화살을 날려 대는데, 먼 곳에서 날아와 가속과 낙하 운동 에너지 덕에 위력도 만만치 않았다.
“크악!”
“젠장! 엄청 살벌하네? 방패가 막 뚫리려고 해!”
“윽! 위력도 장난 아니야. 아!”
화살을 방패로 막아도 뚫리거나 아니면 깊이 박힐 만큼 화살이 묵직했기에 병사들이 힘겨워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운 없이 투구에 맞거나 얼굴에 맞아서 즉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참혹한 광경들을 보면서 베오날드는 역시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며 그도 이제 적들이 충분한 살상 거리에 왔다고 여기고는 볼트 라이플로 적의 전열을 향해서 다른 기사들에게 명령해서 사격을 시작한다.
“일제 사격 준비! 쏴! 아군이 맞지 않게 조심해라.”
치지직! 콰아아!
베오날드를 포함해서 나란히 선 30기의 마갑주가 일제히 장전된 볼트 라이플을 겨누고서 쏘았고, 마력으로 만든 불꽃이 터짐과 동시에 푸른 뇌전을 실은 탄환이 가르칸 공화국의 보병들을 향해서 질주했다.
“쿠룩? …쿠억!”
“컹?”
“샤아악! 이, 이게 뭐냑!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냑!”
제아무리 인간보다 육체적으로 뛰어난 수인인 오크, 리자드맨 등등… 이종족들일지라도 이 파괴적인 병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
30줄기의 푸른 섬광이 지나가면서 만들어 낸 피 보라. 단 한 번의 일제 사격에 족히 2백가량의 가르칸 공화국의 보병들이 그대로 뻗어서 즉사한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 보라가 몰아치고, 피어오른 죽음에 가르칸 공화국의 병사들은 순간 멈칫하며 굳어 버린다.
“이게… 뭐야?”
“커, 컹! 저, 저놈들이 대체?”
“돌격하라! 기사들도 전군! 돌진!”
그 틈을 노려서 베오날드는 즉시 아군 병사들에게 돌진을 명했고, 사격 무장은 더 이상 쓰지 않고 검을 들고는 이전에 하던 것처럼 자세를 낮춘 다음 전력으로 뛰어올라서 아군 병사를 넘어 가르칸 공화국 병사들의 속으로 강습했다.
베오날드의 모습에 다른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도 그처럼 오러를 끌어 올려 폭발적으로 뛰어올랐고, 착지할 때 그들의 밑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피 떡이 되어 버렸고, 곧장 오러를 끌어 올린 채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오오오오!”
“발데리안을 위하여!”
“인류의 복수다! 모두 검을 들어라!”
“쿠, 쿠룩! 살려 줘!”
“와아아아아아아!”
아군의 죽음은 공포를 부르지만 적군의 죽음은 희망. 그리고 앞에서 날뛰어 주는 마갑주의 존재들 덕분에 발데리안 가문의 병사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가르칸 공화국의 병사들을 상대하고 죽여 나갈 수 있었다.
하나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적의 페일 장군이 아니었다.
“캥! 너희가 사령관님이 말씀한 그 쇳덩어리들이구나! 나는 가르칸 공화국의 장군! 페일! 자랑스러운 적호(赤狐) 부족의 일원이다!”
‘아, 아까 전에 한참 병사들에게 연설하던 그 장군이군.’
“캐애앵!”
‘장군이라면 틈이 있을 때 처리해 둬야지. 가만히 두면 안 되겠군.’
여우 수인 특유의 포효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페일 장군을 발견한 베오날드는 볼트 슈터를 겨누어서 처리하기로 한다.
비겁해 보이지만 지금 저 장군을 처리하면 수백, 수천의 아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고, 그는 귀족이지 명예니 무인의 긍지니 하는 것에 연연하는 기사가 아니었기에 가차 없었다.
그렇게 마력의 불꽃이 점화하고 푸른 불꽃과 함께 볼트 슈터에서 나간 빛이 페일 장군을 향해 날아갔다.
‘좋아, 장군 하나를 이렇게 처리하면… 어?’
“캥! 감히 잔재주를!”
‘뭐야? 저거… 이 마갑주용으로 만든 볼트 슈터의 탄환을 입으로 물었다고? 이 탄속과 위력을 생각하면 미리 마법이나 그런 걸로 대비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영역인데?’
경악하는 베오날드와 다르게 베오날드의 총탄을 입에 문 페일 장군은 잔뜩 분노한 눈빛을 보내며 날렵하게 움직여 그에게 달려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다시 검을 들고서 주변의 가르칸 공화국 병사들을 베면서 싸울 준비를 하는데, 다가오는 페일 장군의 모습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저건……?’
인간형의 몸에 있던 털이 길어지고, 꼬리가 늘어나며, 점점 체구가 커지더니 어느새 마갑주를 입은 자신보다 훨씬 거대하고 육중한 체구로 변했다.
그렇게 꼬리가 넷 달린 한 마리의 거대한 여우로 변한 그녀의 몸에선 파지직거리면서 번개가 일렁였고, 그대로 베오날드를 향해 질주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괴물 여우인 건가?’
[네놈을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 주마! 뇌신격뢰!]
‘…마법이라고?’
캬아아아아! 쿠르르릉!
공기를 찢는 포효 소리와 함께 천둥소리가 몰아치면서 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발데리안군의 병사는 물론 가르칸의 병사까지 휘말리게 되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해 왔다.
거의 좁혀진 거리. 베오날드는 더 이상 볼트 슈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볼트 라이플로 바꿔 들고 사격을 개시한다.
“큭!”
[크르르릉! 도망치지 마라!]
‘무겁군. 게다가 이런 막강한 짐승의 육체로서 가지는 무력에… 저 방대한 범위에 뿌리는 뇌전 공격! 젠장! 장군일 만하군.’
전신에 뇌전을 두르고 뿌리면서 자신을 죽이려는 페일 장군의 공세를 막아 내며 베오날드는 어떻게든 상대하려고 애쓴다.
볼트 슈터는 안 먹히니, 상대적으로 대구경인 볼트 라이플을 겨누어서 근접에서 쏘려고 하지만 뇌전을 두른 몸체엔 제대로 박히지 못하고 튕겨지거나 떨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이제 검으로 맞서는 것뿐. 베오날드는 다른 기사들에게 지원 요청을 하면서 검을 들고 본격적으로 상대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