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그리고 먼저 출진한 베오날드의 3만의 부대 소식은 이미 정찰 부대를 파견해 둔 노이멀 총리에 의해서 알려지게 된다.
교활한 암약을 중시하는 ‘노이멀 가문’의 특성상 정보 수집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시 여기기에 엘프들로 전담 부대를 만들어서 정찰대를 운용, 발데리안 영지를 떠나는 군대를 비롯해서 군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이한 기계와 훈련 내용까지 모두 노이멀 총리에게 알려졌다.
<사령관님에게 ‘매의 눈’ 부대가 보고 올립니다. 이 전갈이 출발한 날 오후, 발데리안 영지에서 적군 약 3만이 출정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단순히 남쪽으로만 향하기에 정확한 행선지는 예측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 사항으로는 식사 및 야영 때 멈춘 적 부대에 이상한 갑옷을 운영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기계 및 연금술의 지식이 없는지라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갑옷? 아아…….”
테이밍된 매를 통해서 전달받은 전갈을 읽던 노이멀 총리는 다른 내용은 대강 예상하던 것이라서 크게 동요가 없었지만, ‘이상한 갑옷’이라는 부분에서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예전에 발데리안 가문과 다이나 왕국이 화해하면서 무언가 개발했다는 사실을 문득 다시 떠올리는 그녀였다.
분명 보고는 받았지만 워낙 업무량이 많은 그녀로서는 우선순위가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확실히 마갑주라는 이름의 마도구… 였나? 음…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는군.”
“그러고 보니 그거, 소문에 의하면 1천으로 7천을 이긴 베오날드라는 자가 운용했다고 하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화제가 되었고, 드워프분들이 수군거리곤 했었죠.”
“1천으로 7천의 병력을?”
“예. 그것도 수성전이나 다른 계책 없이 순수 야전으로… 심지어 반나절도 안 돼서 전쟁이 끝나 버렸다고 합니다.”
“으으음… 다이나 왕국이 비밀리에 만든 물건이려나? 아! 아르젠이?”
<…그리고 해당 부대에서는 다이나 왕국의 연금학부장이었던 노이멀의 피를 이은 아르젠 학부장의 모습도 발견되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정기 보고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아르젠 학부장의 이름을 발견한 그녀의 눈에 실핏줄이 솟았다.
아르젠 학부장. 노이멀 가문의 수치이자,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베노피스를 파괴한 알테리오 폰 노이멀의 자손. 하나 지금은 스스로 노이멀의 이름을 버린 점이나 연금학부의 연금술사라는 게 베오날드를 떠올리게 해서 처리하는 것을 그만두었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적대할 줄은 상상도 못한 그녀였다.
‘아르젠 그 녀석… 무슨 배짱이지? 담담하고 수수하게 연구나 하는 타입이 이런 짓을 하려고 들지 않을 텐데…….’
재능과 능력이 뛰어난 건 별개로 치고, 그 아르젠의 성격을 아는 노이멀 총리는 그저 기이할 뿐이었다.
녀석은 태어난 것도 다이나 왕국에서 태어났고, 마탑의 일원이자 간부가 된지라 대륙의 정세나 그런 것엔 그리 관심이 없는 타입일 것인데, 이렇게 전쟁에 참여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으음… 아니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합류시킨 건가?’
“사령관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아하니 저 3만이라는 병력은 딱 봐도 1만 5천으로 나눈 우리 좌군이나 우군을 각개 격파하려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죠.”
“어느 방향인지는 아직 소식이 오지 않았지?”
“예. 아직 소식은 남쪽으로 직진이 다입니다. 아마 그쪽도 우리가 어디를 노리는지 모르게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역시 발데리안인가? 노련하네.”
500년 전부터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 각을 잡고 키우던 전쟁용 사냥개이니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통일 제국의 분열 이후에도 죽어라 싸웠지 않은가? 심지어 자신이 이 가르칸 공화국 군대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신중하게 나서는 건 그럴 법했다.
“으음, 어떻게 대응할까?”
“진군 속도를 올려서 좌우익을 한 번에 적의 진군하는 부대와 싸우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면 놈들이 도망치겠지. 일단 우리 군이 강군(强軍)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섣불리 싸우려 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노리는 게 좌익인지 우익인지 모르니 말이지. 음… 우선은 군을 보내고 편성하는 건 바꾸지 않는다.”
“그럼 그냥 이대로 싸워서 이기는 걸로?”
“아니, 그래도 조치는 취해야지. 본대에 있는 장군인 나와 마스터 엔지니어 플레임호거를 각각 좌우익에 보낸다. 일단 노리는 게 본대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니 본대에 있는 장군 2명을 놀릴 필요는 없지. 그리고 가장 수가 많은 본대를 노리진 않을 거니 말이야.”
한 명이 한 개 군에 필적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가르칸 공화국의 비장의 카드인 장군만을 움직여서 군을 강화할 생각인 노이멀 총리였다.
어차피 병력 구성을 이동시켜서 바꾼다고 해 봐야 적군은 가장 적은 곳으로 움직이려고 할 것이며, 어설프게 이동하는 부대를 쳐서 학살하는 등등 틈을 보이게 된다.
“음, 하긴 장군 셋이라면 인간과의 병력 차이쯤은 메울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마도구가 걸립니다만…….”
“그러니 공성 담당인 ‘마스터 엔지니어 플레임호거’나 내가 가는 거다. 적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 그쪽에 장군 넷을 만들어서 오만한 인간의 콧등을 꺾고 싶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겠지.”
“예,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럼 곧바로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좌군과 우군 어디로 가실 겁니까?”
“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 노이멀 총리는 부관에게 본대의 지휘를 맡기고 좌군과 우군 중 어느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다른 장군인 ‘마스터 엔지니어 플레임호거’를 또 보내서 1만 5천의 군대에 장군을 맞추어 적 군대 3만에 대응하기로 한다.
***
2일 뒤, 베오날드의 군.
남쪽으로 진군하면서 기사들에게 마갑주 사용법을 계속 알려 주던 그 또한 마찬가지로 정찰병에게서 상대 군의 움직임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하나 상대 병력은 일절 움직임 없이 원래 루트 그대로 오고 있는 변화가 없는 모습이었다.
슬슬 병력을 분산하거나 재편성하지 않으면 이대로 1만 5천 대 3만의 싸움이 시작될 지경이었다.
“이거 어쩔 속셈이지? 설마 1만 5천으로 우리를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음, 자신감이 있다는 증거겠지요. 노이멀 총리는 이미 지난 전쟁에서 보여 줬다시피 바보가 아니며, 인간의 전략, 전쟁, 전술에 밝은 자입니다. 그러니 분명 의미가 있을 겁니다.”
“으으음…….”
“그리고 병력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이 오갈 순 있겠지요. 저번 전쟁에서 우리는 한 객체로서 군에 맞먹는 존재가 있는 걸 알잖습니까?”
“아! 가르칸의 장군!”
케드론이 떠올리자 베오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가르칸 공화국의 장군은 이미 밝혀진 존재로서 한 명, 한 명이 상급 기사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밝혀진 변수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니었다.
“뻔합니다. 3군에 2명씩 나누어서 지휘하고 있을 장군을 본대 쪽에서 한 명씩 나누어서 좌군, 우군으로 보내겠지요. 아마 한 명은… 노이멀 총리 본인일 거고, 다른 한 명은… 장군 중 하나겠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 좌군, 우군 중에 어디와 싸워야 하지? 가능하면 노이멀 총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처리해 버리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겠나?”
“아뇨. 반대입니다. 노이멀 총리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왜 그런가?”
딸아이를 직접 죽이러 갈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기에 베오날드는 잠시 입을 닫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적의 총사령관이 적은 군사를 이끌고 있으면 지금 당장 가서 전력으로 몰아쳐서 쳐 죽이는 걸 노리는 것도 합당한 판단이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그래도 딸을 직접 죽이고 싶지 않고,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베오날드였기에 그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에 따른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막 전쟁이 시작된 상태입니다. 서로 전력이 100퍼센트인 상태죠. 거기에 작전 목표는 어디까지나 전력을 깎아 내는 거고, 적 사령관을 잡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 목표까지 세워지면 혼란스러워집니다.”
“흐음, 그것도 그런가? 하긴 우리는 어디까지나 선제공격 부대지, 결전 부대는 아니니……. 우리도 멀쩡하면 저기도 멀쩡한 법이니…….”
“그리고 노이멀 총리는 마족과 손잡았다는 의혹도 있으니 더더욱 무리해선 안 됩니다. 게다가 우리 부대는 지금 지킬 것도 꽤 많잖습니까?”
그리 말하곤 슬쩍 바깥에 놔둔 마갑주를 손으로 가리키는 베오날드였다.
케드론은 단번에 납득한다.
지금 사실상 적군이 더 강하다는 걸 인식한 상황에서 싸우고 있고, 그것을 이길 비장의 카드가 저 마갑주와 각종 무기들인데, 자신의 부대가 무리한 전투를 하다가 저것들이 노획되거나 혹은 파괴되면 곤란해질 것이다.
“으음, 확실히 그렇군. 그건 그런데… 어떻게 그 노이멀 총리가 있는 군을 피하지? 장군이 한 명씩 간다고 하면 좌군, 우군 중 하나에 갈 텐데, 어디로 갈지 아나?”
“음, 그걸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답은 오른쪽 부대입니다. 그녀는 절대 그쪽에 없습니다.”
“어떻게 아는 건가?
“그건 비밀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아는 건지 모르지만 베오날드가 그렇게 말하니 그는 어쩔 수 없이 베오날드의 말대로 각 기사들과 제장들을 모아서 병력을 적 오른쪽 부대가 있는 방향으로 진군한다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는 사이 베오날드는 홀로 멀리 남서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사실 그녀가 어느 군에 있는지 확실하게 아는 방법이 있긴 했다.
‘이 반지를 활성화시킨 다음 연락해서 마력의 흐름만 읽으면 그냥 알아챌 수 있긴 하지.’
자신들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이미 노이멀 총리는 이동을 하였을 것이기에 알아내는 건 쉬웠다.
하지만 역시 딸과 싸우게 된 운명이라는 것이 썩 기분 좋지 않은 베오날드. 물론 전쟁이라는 게 직접적인 싸움은 아닌지라 부하 손에 맡기거나 전세를 압도해서 이겨 나가면 다른 이의 손에 처리될 수 있었지만, 뭔가 아닌 예감이 드는 그였다.
‘…결국 이것뿐이군.’
결국 무릎을 꿇고 여신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용사 양반은 어디에 있습니까? 딸내미랑 전쟁하는 건 둘째 쳐도 좀! 아비가 딸내미 목숨을 직접 노리게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여신님! 대답 좀 해 주십시오.’
…….
하나 감감무소식이다.
정말 자기 원할 때나 대답해 주고, 그렇지 않을 땐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되니 편하게 사는 여신님이라는 생각이 든 베오날드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냥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다 때려치우고 도망쳐 버릴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아니, 그러면 결국 지옥에 가서 아주 시원하게 고통받겠지. 염병. 하아아~ 그리고 후손들도 살아 있으니… 지켜야지. 젠장!’
지금 생각해도 고통스러웠던 지옥이었기에 베오날드는 화를 참아 내고는 다시 싸울 준비를 해 나갔다.
그리고 우측 군대를 쫓아서 행군한 지 2일째 되던 날, 드디어 베오날드군 3만은 가르칸 공화국의 1만 5천과 웰튼 평야에서 대면하게 된다.
숫자가 2배나 되는데도 가르칸 공화국 군대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싸우기 위한 진을 짜기 시작했고, 용맹스러운 함성이 베오날드의 진영에 들려온다.
“…자신감 넘쳐 보이네. 저기 연설하는 게 장군이려나? 종족은… 여우 수인이지?”
“그렇게 보입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는 적 지휘관의 모습.
긴 귀에 주황빛 털과 하얀 털이 우아하게 난 여우 수인 여성으로 꼬리를 살랑이면서 열심히 병사들에게 뭐라 떠들고 있었다.
이번 전쟁의 가장 첫 전투인 만큼 중요하기에 단단히 기합을 넣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우리도 질 수 없죠. 도련님, 멋진 연설 잘 부탁합니다. 저도 이제 슬슬 출진 준비를 해야 해서 말이죠. 용건이 있으시면 아르젠으로부터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무운을 빌지.”
그리고 베오날드는 슬슬 전쟁이 시작되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마갑주를 입으러 향했다.
첫 전투이자 중요한 싸움. 하나 그렇기에 유리한 점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저 1만 5천의 적군을 어떻게 쳐부술지 고민하며 전쟁의 준비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