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그리고 이 전쟁의 소식은 곧장 발데리안 영지에 있는 베오날드와 발데리안 가문에게도 전해졌고, 대비한 대로 각 군대 소집령 및 비상사태를 알린다.
그야말로 올 게 온 상황. 이종족들로 구성된 5만 5천의 대군에 맞서서 소집되는 발데리안 영지의 총 전력은 약 7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도 박박 긁어모아서 채운 것으로, 숫자만 보면 이쪽이 더 많았지만 문제는 질적 차이가 너무나 커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실제로 이전 전쟁에서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는 배에 가까운 적군을 상대로 야전에서 압도적 우세를 자랑했던 전적도 있으니 말이다.
“관건은 역시 기사 숫자인가? 하급까지 다 해서… 1천 명 정도?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레벨의 견습까지 억지로 넣으면 천이백 정도일세.”
발데리안 백작도 병력 숫자보다는 질을 걱정하는 건지 그나마 차이를 메울 기사 전력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베오날드 또한 여러 준비를 한 상태였지만 솔직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싸우기 전에 승리한다.’라는 베오날드가 좋아하는 방식이 무너졌고, 상대가 같은 노이멀이기 때문이었다.
‘…라라도 생각이 없는 녀석이 아닐 거고, 게다가 500년 동안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테니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게 문제지.’
“일단 다이나 왕국에선 마법사 1천 명 정도 지원이 될 것 같습니다만…….”
“그거라도 감사할 따름이오, 아르젠 학부장.”
회의엔 다이나 왕국 대표로 지원하는 겸 베오날드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아르젠이 참전하게 된다.
외부적으론 엄연히 다이나 왕국의 한 학부의 장, 내부적으론 같은 노이멀 가문의 핏줄이니 확실한 인선, 거기에 연금학부장으로서 ‘골렘 제작’ 전문가인 만큼 더없는 적합자였다.
아무튼 이쪽도 최선을 다해서 싸우기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자 한 것이었다.
“다, 다음 보고입니다! 현재 가르칸 공화국 군대는 3개의 부대로 나뉘어서 진격 중, 동과 서로 1만 5천씩 나누고 본대 2만 5천이 진격. 모두 다 이종족 연합군이며 지나오는 모든 도시와 민가 및 수원지, 우물 등등… 모든 것을 파괴하며 오는 중입니다.”
“으음, 다른 귀족들은?”
“예정대로 모두 피난령이 내려진 순간부터 도망을 시작, 가져오지 못할 식량은 모두 불태우는 청야 작전을 실행했습니다.”
“그래, 어설픈 전선에서 싸워 봐야 적 사기만 올려 주고 공포만 늘어나니까…….”
저 대병력을 상대로 뭘 깎아 먹기 하려는 건 무모한 짓이고, 괜히 인명 피해만 늘리니 어떻게 되든 간에 대군의 공세를 버틸 수 있는 성까지 후퇴시키는 게 답이었다.
보통은 이런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귀족들에게 자신의 영지를 떠나라고 하면 반발이 있겠지만, 상대가 노이멀 총리였기에 두려움이 커서 상대적으로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일단 그래도 예상보다 시간을 조금 더 벌었습니다. 참… 어지간히 증오에 미쳐 있나 보네요. 나중에 다 없애고 해도 되는걸. 하하.”
쓴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막고 냉정하게 말하는 베오날드. 역시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지 초토화시키면서 전진하는 라라의 행동에 기쁘면서도 씁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심은 살짝 기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이 행동으로 전장에서의 시간을 엄청나게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이런 행위는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지만 또 반대로 자신들이 이긴다는 절대적인 자신감도 있다는 거지. 거기에… 천천히 오면 오는 대로 보급선도 꾸리고 할 수 있는 게 많아. 그렇게 허술한 아이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엔 ‘장군’이 무려… 여섯이라고 합니다. 노이멀 총리 본인을 빼면 5명, 3개 군에 각각 2명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장군이라면 그… 가르칸 공화국의 혼자서 군대의 전력을 낸다는…….”
“예. 가르칸 공화국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지요. 하나 이번엔 저번에 온 장군들이 아닌 다른 자들이 왔다고 합니다.”
장군, 가르칸 공화국 최강의 전사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지위. 그것을 가진 전사들이 여섯이나 오니 진정으로 칼을 갈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사로 치면 상급, 혹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인데, 머리가 더 아파져 오는 베오날드를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이었다.
상급 기사 이상급이 여섯. 숨이 막혀 오던 베오날드는 조심스럽게 발데리안 백작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상급 기사급이 몇 명이나 되죠?”
“공식 인정된 숫자? 아니면 그 정도 무위를 가졌다고 추측되는 숫자?”
“…후자죠. 그나마 마갑주… 지금 아슬아슬하게 롤아웃한 것까지 해서 늘어난 게 총 42기인데, 중급 기사들에게도 줘서 맡겨야겠지요.”
“사용법 훈련도 안 하고?”
“그건 진영에 가면서 익히는 걸로… 매뉴얼도 만들어 놨으니 보면 될 겁니다. 아르젠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전략을 짜는 건데 말이죠.”
전쟁의 전략, 이제 본격적으로 3개 군으로 나눠서 다가오는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를 상대할 방안을 생각해야만 했다.
일단 셋으로 나뉘어서 오고 있긴 하지만 군 하나하나의 질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어설프게 싸우다간 협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싸워야만 했다.
먼저 나온 것은 역시나 가르칸 공화국의 본대를 치자는 의견이었다.
“역시 제일 좋은 건 포위 섬멸, 상대가 깊숙이 들어왔을 때… 7만 전부는 아니어도 주력을 투입해서 노이멀 총리가 있는 2만 5천의 본대를 쳐부수고 그 엘프 년의 목을 따는 게 좋지 않겠나?”
“우리가 움직이는 걸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적들은 보통 인간의 부대가 아닙니다. 엘프, 드워프, 리자드맨, 오크, 트롤… 각종 수인까지, 복합군입니다. 그리고 총사령관인 노이멀 총리는 엄연히 하프엘프. 기민하면서 민감한 엘프의 성질을 이어받았다면 정찰의 중요성을 무시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전력 차이를 뒤집으려면 화공이나 수공 같은 방안도 안 되겠나?”
“엘프 상대로… 숲에서 화공을요? 어설프게 시도하면 역으로 우리가 통구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마법으로 먼저 구워 버린다는 상상도 해 봤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너무 리스크가 높은 작전은 택하기 어려운 베오날드였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면 시도할 수도 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그러면 결국 직접적으로 야전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마갑주를 가지고 있어도 이길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뭔가 한 방 크게 먹이고 하면 좋을 텐데 말이지. 으으음… 으으으음…….’
“뭔가 뾰족한 수가 안 나오는군요.”
“생각만 해서 쉽게 이기는 전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늘 뾰족한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도 뭔가 있을 겁니다. 뭔가… 뭔가가…….”
현장에서의 전투는 결국 한계가 있는 만큼 그는 이 시간에 뭔가 하나라도 더 발견하기 위해 집중해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셋으로 나뉜 군세, 올라오는 루트를 보면 인구가 많이 사는 큰 영지 위주로 들어와서 쳐부수고 있다.
당연히 인구수가 많고 인프라가 풍부한 도시를 철저히 파괴해서 인간의 절멸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그녀의 진군… 무언가 이용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으으음… 잠깐… 으으음… 아, 잠깐만. 백작님, 아까 전에 뭐라고 하셨죠?”
“뭘 말인가? 아, 뾰족한 수는 없다는 거?”
“아뇨. 그 전에 말입니다.”
“화공 이야기를 했는데… 안 되지 않았나? 아, 수공(水攻)?”
“바로 그겁니다. 제아무리 강력한 병사를 가졌다곤 해도 결국 자연 앞에서는 하찮은 존재일 뿐!”
베오날드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것을 느끼면서 급히 큰 영지 위주로 지도를 살펴보았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물이 필요하며, 많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거나 그곳에 살아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문명은 늘 강에서 시작했듯이 물은 생명의 보고이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마침… 대도시와 영지 위주로 격파해서 올라오는 노이멀 총리의 목표에 부합해.”
“…수공을 하려고 하나? 하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닐 텐데…….”
“일단 견적을 짜 봐야죠. 베시아를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5년 내내 도시 설계와 건축, 건설 같은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지식과 실력을 쌓은 베시아는 적어도 ‘건축, 건설’이라는 분야에서만큼은 이제 베오날드를 능가하게 되었고, 베오날드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전략 중 하나일 뿐이며, 아직 검토 단계의 사항이었다.
본격적으로 3개 군으로 나뉜 적을 대응할 방법은 또다시 마련해야만 했다.
“우선은 정석적으로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지요? 백작님?”
“정석이라면 역시 각개 격파인가?”
“성을 끼고 하는 방어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을 쓰게 되니… 2배 이상의 병력으로 좌나 우익의 날개를 때리고 그동안 다른 부대가 본대를 묶거나 반대편 날개를 묶는 거죠.”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어차피 언젠가 야전에서 붙어야 하니 말이야.”
인간끼리 전쟁을 하면 꼭 싸우지 않더라도 수성전을 통해 상대가 지치거나 식량이 다 떨어질 때까지 버티면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서 게임을 끝낼 수도 있었다.
하나 지금의 적은 확실히 자신들을 죽이려고 안달 난 놈들인 만큼 반드시 야전을 통해서 쳐부숴야 후일이 안전하니, 우선 정석대로 병력을 편성하기로 한다.
“당연히 좌군인 1만 5천을 노려야겠지? 그럼 우리는 3만을 보낼까? 남은 4만은 이제 1만, 3만으로 본대와 적군을 막고 말이지.”
“상대는 인간 부대가 아닙니다. 1만을 더 쓰든가… 아니면 그 숫자를 그대로 하는 대신 모든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을 전원 3만 쪽에 동원하는 건 어떠신지요? 대신 그 외의 기사들은 모두 다른 편성군으로 배치하지요.”
‘마갑주’는 42기를 모두 가져오는 대신, 다른 기사들은 전부 다른 군으로 줘서 다른 군이 싸우는 사이에 밀리지 않도록 하자는 전략이었다.
베오날드의 합리적 판단에 발데리안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는 그의 편성을 반영하기로 한다.
“으음… 창을 더 예리하게 쓰자는 거군. 알았네. 어차피 대규모 실전은 처음이니 자네 쪽에 모두 모아서 한번 실전을 겪는 게 좋겠지. 그리 편성하지. 그리고 군대는 가능한 한 우리 발데리안 영지 측 군사들과 하이디 경 영지의 군사들을 붙여 주겠네.”
“감사합니다. 동시에 저는 수공의 가능성도 체크해 두겠습니다. 하나 아직 가능성이고 나름 히든카드이니 다른 귀족에겐 알리시지 말길 바랍니다.”
“한데, 1만 5천으로 오는 적 부대는 2개인데 어느 쪽을 공략할 건가?”
“그건 가면서 정하겠습니다. 당장 오늘 정보와 내일 정보가 달라질 수 있고, 진군로를 파악하면서 가야 하니까요.”
“알았네. 그럼 여기 위임장을 써 줄 테니 케드론에게 가서 부대를 준비해 달라고 하게.”
그리하여 베오날드는 위임장을 받고서 곧바로 출진 준비에 나서게 된다.
그동안 발데리안 백작은 휘하 및 귀족들에게 연락을 넣어서 본격적인 전쟁 편성과 지금 회의에서 말한 것을 정리해서 그들에게 설명할 준비를 한다.
다음 날, 명목상 지휘관은 케드론 발데리안, 부관은 베오날드로 편성된 발데리안 가문의 군사들과 42명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발데리안 영지를 출발, 가면서 이제 주변 영지의 병사들도 합류하기 시작해서 3만의 군대를 만들고 근처에 있는 하이디의 영지에 모아 둔 ‘마갑주’ 42기를 모두 가지고 출진에 들어간다.
그리고 베오날드와 지휘부는 전장으로 이동하면서 식사 시간 및 회의 시간에 즉시 자신들을 포함한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급 인원을 전원 모아서 마갑주의 사용 방법 및 착용법을 속성으로 강의해 주면서 그들에게 적응시키는 훈련을 개시한다.
이미 배운 30여 명이 있긴 했지만 새로 입게 될 기사들도 있고, 그들에게도 재교육과 추가적인 정보 및 신병기 설명을 겸하게 되어서 아예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자자, 새로 오신 분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열고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마갑주’가 바로 연금술과 마도학의 정수로 만들어진 새로운 무구입니다. 좀 크긴 하지만 움직이는 데는 전혀 이상이 없으며…….”
“오오… 저게 그… 마르텡 남작군을 처리한 바로 그…….”
“중요한 역할이라고 하시더니 이런 황금 같은 기회일 줄이야.”
“저게 도련님이 입고 싸우셨던 그 유명한 마도구였군.”
“자자! 잡담은 나중에! 지금 한시가 급하고, 곧 실전에 투입해야 하니 집중하십시오.”
웅성거림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그동안 위험종 몬스터를 잡은 무용담과 일전에 7배의 병력을 상대했던 베오날드의 무용담도 전해지다 보니 새로이 합류하게 된 기사들의 집중력이 엄청나게 올라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도 간간이 섞은 덕에 이미 입고 훈련하던 기사들도 흠칫하면서 듣게 되었고, 베오날드는 바쁘게 속성 강의를 하고 실습을 하는 등등… 전쟁에 투입할 준비를 계속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