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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10화 (210/259)

[210화]

며칠 뒤, 발데리안 가문.

그 뒤로도 열심히 일하며 세상의 위기에 대비하던 베오날드는 발데리안 가문을 통해 호출을 받고서 곧바로 아르젠과 함께 발데리안 가문으로 향했다.

거기에 온 것은 바로 제국 수도에서 온 연락. 내용은 바니로 백작가에서 온 사신이 자신들을 칠 건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으니 그에 대비하라는 서찰이었다.

즉, 곧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조짐이었다.

“어찌하면 좋겠나?”

“으으음, 올 것이 온 거군요. 애초에 노이멀 총리의 목적은 인류 멸망이니까… 지금까지 얌전했더라도 이행할 일이었습니다. 때가 찾아온 거죠.”

“그러면 결국 전쟁을 한다는 거군.”

“제가 다이나 왕국 쪽에 지원도 이야기해 보죠. 또 ‘마갑주’의 실전 배치 사양 검토를 서두르고, 생산량도 늘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

“아, 그리고 케드론 도련님의 마갑주를 개선된 것으로 새로 만들고자 하니 나중에 불러 주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천만다행으로 자신들을 두려워하는 수도에서 어깃장을 놓거나 정보 제공을 안 해서 부득이한 때에 적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상대가 움직인다는 정보를 얻고 대비할 수 있는 건 아주 큰 메리트였다.

“…드디어 오는 건가? 라라.”

하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대응하는 척했어도 고개를 돌려 혼자가 되었을 땐 어두운 표정이 되는 베오날드였다.

일단 전쟁 규모인 이상 서로 직접 싸울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딸과 겨룬다는 사실은 마음을 무겁게 하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하아아~”

거기에 추가로 제국 수도에서 전해져 온 정보에 의하면 가르칸 공화국의 수장을 맡은 그녀는 공화국 내 반인류파의 수장이며, 끊임없이 인류에 대한 적대감과 투쟁을 주장하는 자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구심점인 그녀가 죽지 않으면 전쟁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고, 증오로 뒤덮인 총력전이 계속될 것이 뻔했다.

‘쉬운 방법은 역시 전쟁 중 라라를 암살하고, 가르칸 공화국 내의 전쟁 반대파와 협상해서 손을 잡고 상호 불가침을 맺거나 정권 이양을 하는 건데, 그게 말이 되겠냐고!’

실행의 현실성이 문제가 아니다.

딸을… 암살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문제였다.

심지어 괘씸한 짓을 한 것도 아닌, 자신을 사랑하고 따르기에 세상을 증오하게 된 괴물이었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파서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실행할 사람이 없지. 그 망할 용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용사님에 대해서 여신 양반은 끝까지 알려 주지 않으니 갑갑할 노릇이다.

주기적으로 여신 양반에게 기도해서 줄곧 따져 왔지만 얼마나 대단하신 양반이 용사님인지 몰라도 절대 알려 주지 않으니 베오날드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까라는 대로 자신이 직접 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배 째라는 걸 보면 나는 내 할 일만 하라는 거겠지. 게다가 신이면 적어도 전지하니… 다 생각이 있는 거겠지.’

베오날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쟁 준비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발데리안 가문에서는 케드론을, 다이나 왕국에서는 아르젠과 다리온 왕을 불러서 본격적으로 전쟁 상황에 대한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확실히 물어보지. 다이나 왕국은 참전할 생각 없지?”

“애초에 인구도 없고… 마법사들의 파견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그거라도 감지덕지다. 그리고 케드론 도련님, 일단 북쪽 경계에 최소한의 병력을 남긴다고 생각하고 동원 가능한 총 병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하위 귀족들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최근 많이 늘었으니…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가용 가능할 걸세. 못해도 5만? 그리고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귀족들의 협조도 좋을 거고 말이야.”

노이멀 총리의 포악한 행위 덕분인지 그녀가 쳐들어온다면 귀족들의 협조를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는 케드론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대부분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 병력과 기사들을 소모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성향이 큰데, 노이멀 총리는 너무나 악명이 크고 당하면 그야말로 귀족이고 뭐고 다 끝이기에 이판사판으로 모두가 합심해서 지키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긴 편할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어떻게 싸울지 생각해 보지. 우선… 야전이냐, 수성전이냐인데, 뭐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역시 가장 좋은 건 침략을 위해서 행군해 온 날 야간 기습을 하는 거라고 보네만?”

“적의 군대는 이종족들이라 체력이 인간과 다르다. 그리고 늪지나 어두운 곳에 사는 종족들도 있는 만큼 야습이 효과적일 가능성도 적습니다, 케드론 발데리안 님.”

“야전에서 직접 겨루는 건 그래도 피하는 게 좋을 성싶은데……. 아, 귀족들 군대가 모이면 모두 다 성내에 들어올 수 없으니 난감하겠군요.”

이리저리 여러 고민이 나오기 시작, 군대의 규모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민할 수 있는 건 무한정 나오는 것이 전쟁 회의였다.

특히 베오날드는 전생에 전쟁을 몇 번 겪어 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전란을 겪어 본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전쟁에 대한 조언과 회의는 필수여서 주욱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역시 이종족 연합 부대의 파괴력이 상당한 게 문제군. 개별 병력으로서도 신체 조건부터가 인간보다 우월한데, 그걸 어떻게 훈련시켰는지 야만적인 놈들이 서로 종족 차이를 넘어서서 유대가 강한 방진을 짜고 용맹하게 맞서니 말이지.”

“기사급이 아니면 맞서는 것도 힘드니…….”

크멜 가문의 정예병들도 싸우기 힘든 것을 전해 들은 걸 기억하는 베오날드였다.

문화적, 생태적 차이가 있는 이종족들을 이렇게 엮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 순수하게는 ‘역시! 노이멀의 후예!’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게 적인 상황이니 표정을 관리하면서 계속 토의하는 걸 들어야만 했다.

“결국 전투의 열쇠는 ‘마갑주’와 ‘기사’들이 되겠군요.”

“으음… 그렇겠죠?”

“한데 무시무시한 건 그 가르칸 공화국엔 장군(將軍)이라고 하는 특출한 힘이나 무력을 가진 자들까지… 총 12명이나 존재하는데, 한 명은 크멜 공작님이 처치하셨기에 이제 11명이 남아 있거나 누군가가 새로이 장군에 임명되었겠지요. 아, 물론 노이멀 총리도 그 장군 중 하나일 겁니다.”

군사의 질도 차이 나는데, 더 무서운 건 이제 휘하의 장군들이나 장수들까지도 막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케드론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모습을 보인 거대한 리자드맨인 가르칸의 장군 같은 이들이 10여 명이 있다는 소리. 물론 본국을 지켜야 하기에 다 끌고 오진 않겠지만, 못해도 12명 중 절반은 나올 가능성이 컸다.

“장군 6명… 거기에 노이멀 총리가 포함되었다면 5명인가?”

“그들 모두 못해도 상급 기사급이 나서야 하는 전력인데, 숫자를 맞출 수 있으려나?”

“‘마갑주’를 중급 기사급들 중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자에게 지급해서 맞추는 건 어떨는지요?”

웅성웅성…….

인간끼리의 전쟁보다 더 복잡하고, 고민할 게 너무 많고, 변수도 천지라서 회의는 끊임없이 길어지게 된다.

이렇다 보니 하루만 가지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우선적으로 병력 편성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을 나누고 회의는 종료. 그다음 관건이 되는 것은 역시 ‘상급 기사’급 여섯을 모으는 일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역시 하이디를 뺄 수가 없겠군요. 가능하면 남겨 두고 싶었는데, 지금은 ‘상급 기사’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니…….”

“하이디 경이라면 확실히 마음이 든든하지. 나보다 강하고…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지금 발데리안 가문의 어떤 기사들보다 강하니까.”

같이 초기형 ‘마갑주’를 입고서 서쪽 숲의 위험종 몬스터들을 토벌했던 케드론이 납득하면서 하이디의 무용을 칭찬했지만, 베오날드는 썩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당연하리라. 단순히 기사이자 부하였던 하이디는 이제 자신의 가족이, 심지어 자신이 잘못될 경우 다른 가족들과 아이들을 지킬 최후의 보루로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미안하네. 자네에겐 이제… 그…….”

“괜찮습니다. 지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라는 건,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겉으론 태연했지만 사실 속으론 좀 불편한 느낌인 베오날드였다.

아무튼 전장의 관건은 우선 ‘상급 기사’급 6명의 숫자를 맞추는 것과 가능한 한 더 많은 양의 ‘마갑주’와 병기의 생산을 마무리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서두르고자 했다.

다른 외교적 일, 군사 훈련, 보급 및 보고 체계 점검 등등… 전쟁의 날이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

몇 달 뒤 가을, 바니로 백작 영지.

노이멀 총리의 지도 아래, 전쟁 준비와 함께 모든 남부의 인간과 그 존재를 절멸시키겠다는 의지가 구현된 증거로 본래 남쪽의 대귀족이었던 바니로 백작가의 저택은 이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마을과 도시들 대부분이 불타서 없어지거나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거무스레한 잿더미만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는데, 앞으로 비가 오고 눈이 오면서 이제 그 흔적들도 점차 바래 갈 것이다.

“드디어 때가 왔군. 마지막 인원 점검을 실시하도록.”

“예! 총리님.”

“지금은 전시이니 장군님 혹은 사령관님이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이 폐허가 된 인간들이 살던 대지의 위에 도합 5만 5천의 이종족 군대가 무장을 한 채로 도열해 있었다.

그 가장 앞에 있는 노이멀 총리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남부의 파괴는 모두 완료했다. 도시와 인간 모두 절멸시켰고, 우물은 메우고, 광산은 무너뜨리고, 마을의 흔적도 모두 지워 버렸어.’

혹시나 동정심을 가질까 봐 이 일은 인간에 대한 감정이 안 좋고, 생리적으로 거리감이 있고, 인육을 먹는 데 거부감이 없는 오크, 리자드맨, 트롤을 비롯한 수인들에게 전담을 시켰다.

드워프들에겐 광산 파괴를, 엘프들에겐 환경오염이 심각한 지역을 맡겨서 철저한 파괴와 유린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직접 점검까지 다니면서 인간의 자취가 모조리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로 족쳐 놨으면 설사 도망쳤어도 야생 동물이나 몬스터 밥이 되기 마련이겠지.’

“준비되었습니다, 사령관님.”

“음, 예정대로 선발대부터 출진하도록 한다. 보급로에 특별히 신경 쓰도록.”

“전송 마법으로 물자 운반을 이미 본국에 지시해 뒀으니 문제없습니다.”

“좋아. 출진하라.”

두우웅! 두우웅! 뿌우우우우!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동시에 울리면서 출진 명령이 내려진다.

‘인간 절멸’과 ‘이종족이 살기 안전한 대륙’을 만들고자 하는 대의명분으로 치장한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는 드디어 진군을 시작, 5만 5천의 군대는 각각 1만 5천씩 2개의 군대와 2만 5천의 본대로 나뉘어 세 갈래로 흩어져서 북방, 발데리안 영지 방향으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이런 젠장! 신이시여……!”

“빨리 수도에 알려! 가르칸 놈들이 침략한다! 아니, 근데 저 숫자는……!”

“발데리안 가문에도 보내!”

며칠 뒤, 남쪽 방어선의 정찰 라인에서 진군하는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를 발견, 즉시 전령과 봉화, 마법적 수단을 모두 사용해서 제국 수도 및 발데리안 가문에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동쪽의 볼레아 왕국의 야만인들도 다시금 활동을 시작해서 남진, 그뿐만 아니라 제국 수도 및 여러 영지에서 갑작스러운 반란군의 봉기가 일어났고, 거기에 북쪽에서 마족들까지 움직이는 대혼란이 벌어진다.

“레, 레기온 경! 이, 이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진정하십시오, 황자 전하. 호들갑 떤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잖습니까?”

“하, 하지만 이런 공격은…….”

‘과연… 이래서 상관없다고 한 건가?’

곳곳에서 올라오는 각종 보고들을 바라보며 레기온 경은 왜 노이멀 총리가 저번의 제안을 거절해도 무심했는지 금방 이해했다.

그냥 안 나서 주면 그걸로 끝, 아니면 지금처럼 할 수단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륙 인류의 운명을 건 대전쟁, 후세에 ‘종족 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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