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한쪽에서 죽음과 파멸의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면 어딘가에서는 생명을 기르고 양육하는 행위가 있기 마련이다.
정식적인 혼인 관계를 맺게 된 베오날드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5년간 무려 4명이나 되는 아이를 두었는데, 여아가 3명, 남아가 한 명이었다.
전생에서부터 가족을 소중히 여긴 베오날드는 그 양육을 누군가에게 맡겨 두거나 버려두지 않고, 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가족들 곁으로 돌아와서 돌보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하하하, 역시 아이들은 웃는 게 제일이지. 500년 전이든… 지금이든.”
웃으면서 자신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베오날드. 벨릭스 폰 노이멀의 막장적인 육아 정책의 피해자였던 그는 성장하면 절대로 가족을 소중히 여기리라 맹세했고, 한 번 노이멀 가문을 지키는 동안 철저히 지켰었다.
그리고 그 맹세는 지금도 이어져서 아이 돌보는 일 하나만큼은 모든 일을 접어 두더라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지만… 역시 경험자이셔서 그런가 육아 스킬이 장난 아니시네요?”
부인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베오날드의 정체를 아는 셀리나는 베오날드의 기가 막힌 육아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이상한 것이었다.
‘기저귀는 그렇게 가는 게 아니다. 이렇게 허리 아래를 잘 감싸서… 흡!’
‘우쭈쭈~ 아빠 왔어요~ 후후훗, 8초인가? 원래는 5초 안에 재울 자신이 있는데 말이지.’
기저귀 갈기부터 아이를 안고, 재우고, 놀아 주고, 울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등. 거기에 위생 조치부터 먹을 것을 주는 방법까지 철저해서 은근 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 시대에 4명의 아이를 모두 건강하게 잘 키우는 베오날드였다.
“음? 당연한 일 아닌가? 옛날에 자식이 수십이었는데 말이야.”
“고위 귀족이라면 보통 사용인들이 다 해 주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지만, 우리 가문은 사정이 좀 달라서 말이야.”
‘그대로 쓰러져 있으면 죽을 뿐이다! 쓰레기로 죽고 싶은 게냐? 아니면 사창가에 팔아 버려 줄까? 어서 일어나지 못해?’
벨릭스 폰 노이멀의 목소리와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리면서 이가 갈려 오는 베오날드였다.
이런 점을 보면 그의 딸처럼 ‘원수’에겐 일말의 자비를 허용치 않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그였다.
물론 벨릭스 폰 노이멀의 육아 방식도 지옥이긴 했다.
무자비한 초야권 남발로 낳은 아이들을 모아서 거의 사육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가혹한 환경에서 굴려 댔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나부터 변한 거지.”
‘우선은 재능! 그리고 그다음은 의지다! 때론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의지가 재능의 한계를 구멍 낼 가능성이 있는 법이다! 나는 그것들을 깨우기 위해서 너희를 이렇게 몰아치는 거다! 내 아이들아! 너희 중 누구나! 이 노이멀 가문의 뒤를 이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며 무한 경쟁과 사투 속에서 살았던 베오날드였다.
가족의 따스함이라곤 1그램도 느끼지 못했던, 그저 살아남고, 형제자매끼리도 죽여야 했던 어린 시절. 일단 문관 쪽에 재능이 있던 베오날드가 가문의 감옥 견학 때 스승이었던 연금술사를 만나는 기연을 얻지 못했다면 그는 가주가 될 수 없었을 정도로 스스로도 무시무시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내 아이들만큼은, 내가 만드는 가족만큼은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어.”
“그렇군요.”
“물론 그게 내 한계였지만 말이지.”
베오날드가 돌보는 것은 오로지 그의 ‘정원’뿐, 그 외의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철저한 방관주의였다.
가족에 대한 갈구와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만든 괴물이라고 봐야 할까?
만약 그의 과거에 벨릭스 폰 노이멀이라는 악질 같은 부친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으로 그의 재능을 꽃피워 줄 가족을 처음부터 만났더라면… 통일 제국 역사에 명재상으로 이름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게 더 있는데 말이죠.”
“뭐지?”
“베오날드 님은 전생을 하셨지만 결국 영혼은 과거 500년 전의 분과 같은 거잖아요? 하지만 육체와 핏줄은 저기 서부 끝 쪽에 있는 가문의 출신이 되는 건데… 이러면 저 아이들은 노이멀 가문의 자손일까요? 아니면 저쪽 자손일까요?”
“…어? 그건… 으으음… 으으으으으음……?”
보통 핏줄이라는 것은 결국 육체에 내려오는 신체적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 지금의 육체는 노이멀 가문이 아니라 다른 가문의 출생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기에 엄연히 노이멀 가문의 핏줄이라곤 할 수 없다.
하나 이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은 그 누가 뭐래도 노이멀 가문의 전설이었던 베오날드 폰 노이멀의 것. 그러면 그가 낳은 아이들은 결국 베오날드의 아이들인데, 혈통은 노이멀이 아니게 되는 건가? 베오날드도 혼동이 오게 된다.
“어… 잠깐만, 어떻게 되는 거지?”
“그쵸? 모르겠죠? 좋았어. 논문 소재 겟이다.”
“남의 집 가족을 논문 소재로 삼지 마라.”
“엄연히 육신과 영혼에 관한 훌륭한 연구 주제라고요.”
“너 원소학부잖아! 아무튼 적당히 생각하도록 해라. 나는 그냥… 눈앞의 가족들에 열중하련다.”
그리 말한 베오날드는 아이들을 돌보러 셀리나를 버려두고 먼저 떠난다.
생각해 보면 복잡해질 주제였지만, 결국 베오날드에겐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제 노이멀 가문은 아르젠의 것이고, 자신은 신의 명령으로 다시 지상에 내려온 망령일 뿐이다.
‘물론 그래도 애들에겐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신경 써 줘야지. 아~ 정말 유산을 많이 남겨 두길 잘했다.’
다시금 생각해도 유산을 왕창 남겨 둔 것에 안도하며 베오날드는 아내들과 자식들에게 가서 아버지로서의 일에 열중하기로 한다.
전생에도 느꼈었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것에 열중하고 느끼기만 해도 시간이 늘 모자라기 때문이었다.
***
칼레움 제국 수도, 황성.
그러고 보면 베오날드가 자신 있게 발데리안 가문에 ‘마갑주’를 비롯한 ‘신병기’를 제공해서 대놓고 실험하는데 제국과 크멜 가문이 가만히 있는 것이 기묘하지 않은가?
보통 이런 소식을 들으면 가만히 있을 제라도 칼레움 황제가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으으… 으으으…….”
세월의 흐름. 본래부터 노령이었던 황제는 5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생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만 것이었다.
다행히 후계자인 조엔 칼레움이 현재 섭정의 자리에 올라서 국정 운영엔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베오날드에 대해 위험하게 여기고 확실히 아는 그가 침상에서 아무것도 못하니 대응할 수 없었다.
“미, 미안하오, 레기온 경. 내가 또 실수해서……. 이거 직접 자리에 앉는 거랑 돕는 거랑은 하늘과 땅 차이구려.”
“아닙니다, 전하,”
그리고 베오날드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인 레기온 경은 이제 막 국가 운영을 제대로 시작한 섭정을 돌보느라 다른 여유가 없었다.
황실 기사나 첩보부에 일을 맡겨야 하지만 그 정도로는 베오날드 그놈을 견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황제 예정자를 돌보는 게 우선이었다.
황제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동안, 황실을 지키는 기둥인 자신이 잘 버텨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바니로 백작가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뭐라고? 자, 잠깐만, 레기온 경, 이건…….”
“으으음…….”
그렇게 복잡한 업무들을 처리하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황실에 도달한 것을 알아차린다.
현재는 유명무실해진 남부의 대귀족인 바니로 백작가의 이름으로 손님이 도착한 것이었다.
사신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는 바니로 백작의 서찰을 가져왔다면서 밀봉된 것을 내밀었고, 레기온 경이 그것을 받아서 황자에게 건넸다.
“자, 잠시 기다리시오.”
“예.”
그러곤 밀봉된 서찰을 뜯어서 조용히 읽기 시작하는 조엔 황자. 내용을 눈으로 훑으면서 서서히 놀라기 시작하는데, 바로 자신들이 발데리안 가문을 칠 거니 얌전히 있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간단히 요약해서 이런 말이었고, 세세하게 풀어서 쓰자면 황제가 제국의 주인인데 발데리안 가문이 저렇게 강해지는 것을 그냥 둘 것이냐? 하는 말부터 시작해서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알아서 코를 풀어 주겠다는 식의 어투로 교묘하게 설득하는 문장이었다.
“…우리를 바보로 아나? 비록 발데리안 가문이 강성해지는 게 제국의 황권에 위협이 된다고 한들, 그곳 친구들은 대화가 통하는 인간들이지. 대화 따위 없고 야만적으로 인류를 멸하려는 짐승과 어찌 비견하겠는가?”
“맞는 말씀이십니다, 전하.”
그래도 조엔 황자는 제라도 칼레움 황제가 눈여겨보고 뽑은 후계자. 이 정도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발데리안 가문이 강성해지는 걸 두고 볼 순 없어도 적어도 영지에서 폭정을 벌이고 영지민을 심심하면 죽이고 도망치게 두어서 원한을 쌓는 노이멀 총리의 술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오히려 이 기회에 같이 남쪽을 탈환할 수 있는 좋은 찬스이시겠지요. 저희도 의례적으로 여쭈어본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런가? 일련의 과정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이쪽에서 이야기가 안 된다면 다른 쪽에서 수고를 좀 더 하면 될 뿐이라. 그럼 그리 알고 가 보겠습니다.”
사신은 예를 다시 갖추고서 조용히 물러난다.
그 모습에 레기온 경은 노이멀 총리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을 감을 잡았지만, 제안을 거부한 상황에서 상대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캐낼 순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발데리안 가문에 일단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전령을 보내는 한편 자신들도 대비책을 강구하기로 한다.
‘또 큰일이 벌어지겠군.’
하나 이전에 남쪽에서 보았던 가르칸 공화국의 군사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그 뒤로 5년이 지난 지금 놈들이 공세로 들어온다는 것은 분명 더 많은 군사력으로 치고 올라올 거라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우려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서부의 다이나 왕국과 화해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된다면…….’
“레, 레기온 경? 어찌하면 좋겠소?”
“일단 군수 물자 비축과 무기 점검을 다시 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병력 소집과 훈련, 봉화와 파발 보고 체계 점검까지 싹. 곧 엄청난 일이 터질 것 같으니 말입니다. 준비된 자에겐 사신은 오지 않는 법입니다, 전하.”
“오, 그리하겠소.”
‘물론 한계는 있는 법이지만 말입니다.’
불안해하는 황자에겐 일단 태연하고 굳건하게 말하는 레기온 경이었지만 그것은 황제가 쓰러진 상황에서 제국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큰 동요를 일으키면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 또한 속으로 매우 불안하고 가슴에 어두운 구름이 낀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발데리안 쪽의 그 친구가 잘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동쪽도 지금 마족들의 노예로 전락한 볼레아 왕국 놈들의 침략이 나날이 거세지는 가운데, 크멜 가문도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고작 수년 만에 철천지원수였던 다이나 왕국과의 화해를 성사하고, 엄청난 속도로 번영을 이룩한 베오날드밖에 없었다.
본디 제국의 안정을 위해선 강력한 제후가 나타나는 걸 견제해야 하지만, 더 큰 재앙이 몰아닥치고 있으니 지금은 그들이 막길 바라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