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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07화 (207/259)

[207화]

“새로운 무기?”

“예. 오크와 리자드맨으로 구성된 전위 부대에서 보고된 바로는 공성 병기급 공격이나 마법이 아니고는 ‘중장 보병 부대’의 피해가 점점 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중장 보병 부대’는 가히 현 대륙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대 아닙니까?”

“그렇지. 각 인원별로 특별 주문해서 만든 드워프제 갑옷과 무기, 방패를 완벽하게 갖추고 훈련을 통해서 이종족 간의 거리감을 줄인… 최고의 전위 부대지.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인간을 능가하는 피지컬에 제식과 군용 무예, 장비까지 갖춘 최고의 이상적인 전위 부대. 그래서 웬만해서는 인간 군대와 싸울 때 피해는 전무하다고 볼 정도였다.

앞서 말했던 공성 병기나 마법 변수를 제외하면 단순 물리적인 평지 전투에서는 희생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는데, 그 희생이 커졌다면 자신들도 변화해야만 했다.

“보고로 들은 바로는 드워프들의 ‘붐스틱’과 유사하게 생긴 무기를 뭔가 묘하게 커다란 기사가 들고서 쐈다고 합니다.”

“‘붐스틱’? 아… 그 화약을 폭파시켜서 쇠구슬을 쏘는 투사 무기 말인가? 상당히 좋은 무기였지만 결국 우리 군단에겐 큰 효율성이 없었을 텐데?”

“뭐, 휴대가 편하고 숙련 기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저희에겐 큰 피해가 안 되는 무기였죠.”

탄도를 흩트릴 수 있고, 더 긴 사거리와 정확성을 가진 궁술을 지닌 엘프부터 시작해서 콩알보다 떨어지는 화약의 힘과 작은 총알로는 가죽과 비늘로 덮이고 뼈대도 튼튼한 맨몸에도 유효한 타격을 주기 힘든데, 무장까지 튼튼하니 그냥 콩알탄을 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대포 쪽이 더 유효할 것이지만, 역시 그건 운반 문제 때문에 수성전에서나 쓰지 야전에서는 쓰기 힘든 무기였다.

“다만 인간들 측에서 더 유용하게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서 봉인했었지요.”

“자체 개발을 한 건가?”

“모험가 드워프들도 있으니 그들을 통해서 유출되었을 순 있습니다.”

“아무튼 그 무기의 발상을 이용한 무기인데, 어떻게 사용했다는 거지?”

“그 소형 대포 같은 붐스틱을 놈들은 마법으로 폭발시켜서 탄을 쏘아 냈습니다. 탄환의 형태는 석궁에 쓰는 ‘볼트’와 유사하고, 내부엔 강선(Rifling)이 새겨져 있어서 놈들은 그걸 ‘볼트 라이플’이라고 부르더군요. 화약을 능가하는 마법의 폭발력, 끝은 날카롭게 되어 있어서 직선으로 쏘아지는 볼트의 날카로움, 거기에 강선을 통해서 회전을 해서 정확도와 위력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부관은 정확하게 베오날드가 만든 ‘마갑주’를 입은 기사가 사용하는 ‘볼트 라이플’의 원리와 위력에 대해서 간파해 냈다.

엄연히 그 또한 여기 노이멀 총리를 통해서 노이멀 가문의 교육을 받았고, 연금술과 군사 병기, 마법에 대해 조예가 깊었으며 다종족 연합 민주주의 국가인 ‘가르칸 공화국’에서 살기에 타 종족의 문물에 대해서까지 밝으니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기묘하게 거대한 갑주를 입은 기사도 문제였습니다. 그 ‘볼트 라이플’을 쓰지 않아도 저희 전위 부대의 무력을 뛰어넘는 무력을 지니고 있어서 장점을 잃어버려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사상자가 크게 났습니다.”

“어떻게… 아니, 다이나 왕국인가? 내가 선거로 고생하는 동안 화해했다고 했었지?”

“예. 필시 배후는 거기일 겁니다. 기술, 연금술, 마법 수준을 모두 보유한 곳은 거기뿐입니다. 물론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이럴 때가 아니군. 내가 직접 확인해서 판단하겠다.”

가만히 보고만 들을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낀 노이멀 총리는 직접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채비를 한 뒤 자신의 비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전선으로 향했다.

몇 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전선의 평야에 도달한 그녀는 하늘 위에서 수백 개의 진영들을 보게 된다.

본래 곡식이 길러지고 있어야 할 농지를 차지하고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제국에 타격을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해당 보고가 올라온 ‘중장 보병 부대’ 진영은 지금도 오크, 리자드맨, 트롤, 미노타우로스 같은 중대형 몬스터들이 희생자의 시신을 각자 종족의 방식대로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쿠룩! 초, 총리님 오셨습니까?”

“쉬어. 그래, 보고를 듣고 긴급히 왔다. 희생자가 많이 늘었다고 하던데 상황 설명을 하도록.”

“쿠룩! 알겠습니다.”

해당 부대장인 오크의 경례를 받고서 보고를 들으니 부관이 하던 이야기 그대로가 전해졌고, 거기서 몇 가지 보충이 더해졌는데, 바로 그 갑옷을 사용하는 가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었다.

“3자루의 검이… 그려진 깃발이라고? 그렇다면 발데리안 가문인데?”

“쿠룩! 그,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해를 했다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그 고지식하고 우직한 충견 같은 집안이… 원한이 있는 다이나 왕국과 화해를? 심지어 거기엔 그 망할 알테리오의 후손까지 있는데?’

그녀가 듣기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귀족 가문, 그것도 기사 가문의 원한은 그야말로 귀족의 자존심 같은 거라서 피로 씻는 게 아닌 이상은 웬만해선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풀어냈다.

이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새로운 원한을 쌓지 않고 화해하는 형태로!

‘…대체 누가 한 거지? 이건 누구도 할 수 없는 걸 텐데?’

다이나 왕국에 있는 인물들을 머릿속으로 주욱 훑기 시작하는 노이멀 총리.

하나 그 안에선 도저히 이 일을 이룩할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이었다.

‘그저 합리적 차원에서 손을 잡은 건 줄 알았는데… 5년 만에 가까워질 관계도 아니고!’

5년 전, 둘이 화해한다고 했을 때는 그저 정치적, 합리적 관계 개선 정도로만 여겼었다.

하나 지금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하려면 최소한 발데리안 가문의 내부와 가까워져야 하고, 동시에 다이나 왕국에 압박을 해서 화해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철천지원수급인 이 두 가문에 어떻게 그 영향력을 모두 끼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아내야 하지?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그 베오와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었지?’

‘신마법’을 시행하려던 달켄 다이나를 죽이고 난 뒤, 공을 세운 베오와의 연락은 그리 많이 하지 않았었다.

자신은 자신대로 ‘베노피스’의 출장 때문에 쌓인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총리 선거와 의회 선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해서 외부에 대한 관심이 줄었던 때였다.

그런데 그사이에 이런 중요한 일을 알리지 않았다니! 놀란 그녀는 즉시 반지의 마도구를 통해서 그에게 연락을 넣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노이멀 총리님. 이거 엄청 오랜만이군요.』

“그래, 오랜만이지. 가르칸 공화국의 일 때문에 뜸하긴 했다. 한데, 네놈은 그동안 뭘 하고 있느냐?”

『저는 다이나 왕국에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마침 어둠학부에서 신입생을 나이 가리지 않고 모집한다기에 지원을 했지요. 이러면 저도 위대한 암흑신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으음, 그보다 심각한 일이 생겼다. 다이나 왕국과 발데리안 가문이 화해한 것은 알고 있나?”

『예, 당연히 알고 있죠. 하지만 뭐, 달켄 다이나를 총리님께서 처치하셨으면 충분히 계산 가능한 수가 아닙니까?』

“으음… 그렇긴 하지. 하나 그 관계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순탄하게 풀린 것 같다.”

『예? 그게 어떤 말씀이신지…….』

베오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두 가문 사이의 관계 개선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물론 그 베오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베오날드이자 모든 것을 아는 자였지만 말이다.

마탑의 비밀 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노이멀 총리는 아직까지도 다이나 왕국에 ‘베오날드’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에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베오날드였다.

“시급히 다이나 왕국과 발데리안 백작가 사이의 관계도를 살펴봐라. 두 가문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나 진전될 리가 없다. 진전됐다면 무언가 다른 계기가 있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해라. 후우~”

일단 연락을 마친 노이멀 총리는 마도구를 끄고 한숨을 내쉬었고, 발데리안 백작가의 군대가 가진 새로운 병기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움직이기로 한다.

***

그리고 같은 시각, 발데리안 가문과 다이나 왕국의 국경에 새로운 거처를 잡은 베오날드는 마도구의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상대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 상황이라서 웃음이 나와야 했지만, 지금은 그 대상이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것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마탑의 정보 통제력이 내 상상 이상으로 좋구나, 아르젠. 내 예상에 따르면 라라의 귀에 베오날드가 다시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가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지.”

“본래 베오날드 선조님의 명성도 크고… 또 메리트가 너무 우수한 데다 서로 꼬투리만 잡으면 떨어뜨리려고 안달이니까요. 아시다시피… 학파끼리 사이가 안 좋은 구석이 많지 않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게다가 베오날드 선조님은 남기신 ‘유산’이 워낙 좋은 게 많으니…….”

“열심히 빼돌렸지. 하하하하, 역시 사람 일은 다시 볼 게 너무 많군.”

“…직접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별로 자랑스럽게 할 이야기는 아니기에 아르젠은 살짝 태클을 걸고서 계속해서 작업을 한다.

그는 이제 연금학부장의 자리를 내려놓고 베오날드의 측근으로서 일하며 옛 ‘노이멀’의 이름을 되살리고자 분주하게 나서고 있었다.

일단 여기 살아 있는 베오날드가 500년 전의 것으로 위장한 유언장으로 명분을 잡긴 했지만, 명분이 있다고 해서 세상일이 모두 풀리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교단도 그렇고, 노이멀엔 적이 많으니… 준비를 탄탄히 해야 하니 말이지.”

“그보다 아까 라라 선조님과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가 오가셨는지요?”

“아무래도 남쪽 전선에서 실험해 보던 것을 조사하던 것 같더군.”

“‘마갑주’랑 각종 신무기들 말이죠?”

“그렇지. 우리 쪽에도 소식이 들어오니 당연한 거겠지만…….”

노이멀 총리의 가르칸 공화국 군대와 싸우는데, 전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리라.

물론 베오날드와 그녀의 대화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맥락만으로도 어디서 어떻게 경로가 이어져서 자신에게 연락이 온 건지 파악하는 건 매우 쉬웠다.

“그럼 조만간 ‘마갑주’에 ‘노이멀 가문’의 술식과 세공법이 들어간 것도 눈치채겠군요.”

“가능성으로 보자면 높지만, 쉽진 않을 거야. 거기에 쓴 것은 500년 전 그대로가 아니라 충분히 실험하고 나도 개선해 놓은 것이니까 말이지.”

“아아… 그렇군요.”

엄연히 다시 태어나서 거의 25년을 더 살아왔으니 변화가 없으면 더 이상하다.

특히 다이나 왕국과 발데리안 가문의 화해 이후 베오날드는 전력으로 마갑주와 마도구 병기들의 개발에 힘쓰면서 ‘술식 세공’과 다리온 왕이 효율화해 준 ‘술식’들을 사용하였기에 500년 전 기준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더 혼란스럽겠지. 들킬 걱정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럼 아니면 아닌 대로… 문제가 생길 건데요. 그런 신병기가 갖춰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분명 절 찾아오실 것 같습니다.”

“뭐,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너이니……. 하하.”

“웃을 일이 아닙니다. 선조님에겐 귀여운 따님이지만 저에겐 무시무시한 또 다른 선조님입니다.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고요.”

“…차라리 무시무시한 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 하아아~”

자신과 다르게 ‘노이멀식’ 검법을 완전히 마스터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 자신의 죽음 때문에 인간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그렇게 된 것이 여전히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생전 베오날드가 얼마나 귀여워했던 딸인데.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마왕과 암흑신의 손에 묶인 그 아이는 그 증오와 분노로 되돌릴 수 없는 죄악들을 세상에 범한 상태. 자신이 돌아온 것을 알아서 그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면 죄책감과 슬픔으로 무너질 거고,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 상태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스스로 택한 악업을 짊어지고 죽는 게 가장 편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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