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보통 군주라면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그저 특수한 마도구나 유물 같은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끝났으리라.
하나 그것이 고작 약 2년여 만에 일개 아카데미 학생이었다가 제국을 위협할 만한 거대한 권력을 쥐게 된 거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심지어 황제와 직접 대면하고 생각과 수를 겨루어서 판정승을 이루어 낸 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다음 날, 베오날드는 예정대로 레기온 경과 크멜 가문에서 온 기사를 발데리안 저택에서 맞이하게 된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본래 부르면 바로 와야 하는 입장인데, 다이나 왕국 쪽 문제 때문에 결국 늦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엄연히 황제의 명을 받고 온 사람인데, 그 명을 우습게 알다니 목을 쳐도 된다는 뜻으로 알면 되겠나?”
“뭐, 죄를 물을 순 있습니다. 하나 그 행동이 과연 제국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정하신다면 말이죠.”
황실 기사단장인 레기온 경의 위압을 아주 가볍게 흘려보내고 베오날드는 여유 있게 마주 앉았다.
건방진 소리였지만 지금 자신에게 칼끝 하나 댈 수 없는 게 레기온 경의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아는 베오날드는 그가 살기를 뿌리든 말든 여유 만만이었다.
제국은 지금 미증유의 위기 상황으로 아군이 하나라도 아쉬운 판국. 거기에서 아군을 줄이고 적을 늘리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어쩐 일로 저같이 미천한 자를 찾으시는지요.”
“자네가 다이나 왕국과 힘을 합쳐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냈다고 해서 왔네. 저번 전쟁에서 7배나 되는 병력 상대로 맹활약했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하하, 고작 1천 대 7천, 고작 이틀 만에 끝난 시시한 전투일 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기라는 건 과언이고… 그냥 돈 좀 많이 들여서 만든 마도구일 뿐이죠. 이제 막 발돋움한 겁니다.”
“으으음…….”
물론 대놓고 뻥이다.
하지만 어차피 상대인 레기온 경과 같이 온 크멜 가문의 기사는 결국 기사일 뿐, 마도구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이미 그들을 속일 플랜은 마련해 둔 마당이니 베오날드는 거침없이 그들에게 패를 까기로 했다.
“그러면 직접 보여 드리면서 설명하도록 하지요.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역시 직접 보는 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좋네. 그러도록 하지.”
말보단 직접 보는 게 더 빠른 만큼 베오날드는 레기온 경과 크멜 가문의 기사를 데리고서 자신의 마갑주가 보관된 병기창으로 향했다.
그곳엔 다이나 왕국에서 파견된 여러 마도사들이 아르젠 학부장의 지시에 따라서 각 무장 점검과 보수를 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더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베오날드는 그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거리를 좀 떨어뜨린 채로 설명을 시작한다.
“보다시피 저겁니다. 이름은… 일단 ‘마갑주’라고 칭하고 있으며 세 번째 작품으로 2개의 시제품 제작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다이나 왕국의 마도학을 통해서 확립한 것이지요. 시작은 뭐,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검에 마법을 실으면 마법검이듯이 갑옷에 마법을 실어서 기사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고자 한 것이었지요.”
“으으음…….”
“결국 기본 개념은 ‘마법 갑옷’입니다. 인챈트를 집어넣은 마법 갑옷의 개념을 확대한 거죠. 그렇기에 만들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게다가 이거 외장과 내장 소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싼 금속들이고…….”
물론 자신의 것인 만큼 최대한 비싸고 성능 좋게 만든 것이기에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 것으로 양산 모델은 이제 코스트 다운을 해서 만드는 게 군수품의 법칙이지만, 레기온 경과 기사에겐 이 ‘마갑주’라는 것이 아주 만들기 힘들고 비효율적인 생산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베오날드였다.
‘실제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딱 그렇지.’
자신의 숨겨 둔 재산에서 꺼내 온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을 잔뜩 사용한 튼튼한 외장, 술식을 새기기 위한 최고의 기술을 모두 투입하고, 마정석 배터리도 새로이 개발했다.
거기에 각종 전용 무기들까지 만든 비용을 생각하면 거의 성 단위로 거래해야 할 비용이 계산될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엔 그냥 말과 기사, 병사들을 더 육성하는 게 더욱 효율적인 일이 된다.
“…대체 이걸 만들 돈은 어디서 난 겐가?”
“그건 제 노하우와… 열심히 번 돈, 거기에 저기 다이나 왕국의 지원? 저쪽도 이걸 만들면서 많은 연구 데이터를 가져갔으니 말이죠. 그래도 참 다행인 게, 다이나 왕국 쪽은 이제 마법에 관련된 것이 눈에 들어오면 가치 판단과 열정이 다르니 말이죠.”
“즉, 발데리안 백작가와 다이나 왕국의 합작품이라는 건가?”
“정확히는 게다가 진행자이자 책임자는 저니까… 제가 양측을 잘 설득한 덕분이죠. 아~ 다이나 왕국은 설득하기가 참 힘들었죠.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하하.”
철컥! 철컥!
의수가 된 왼팔을 괜히 흔들어 보이며 베오날드는 힘들었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
물론 그 왼팔은 다른 곳에서 잃은 것이지만 치열한 과정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게 중요했고, 여기에 이제 이 마갑주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대영지와 하나의 국가까지 관련된 물건이라고 강조한 점이 추가 포인트였다.
“이제 대강 의문이 풀리셨는지요?”
“으으음… 그럼 지금 더 연구하는 것은 무얼 위함이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지요. 장차 목적은 이제…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제식 장비로 자리 잡는 거지요. 그러면 아마~ 대륙 최고의 부호가 되어 돈방석에 앉겠죠? 후후후후후. 아, 물론 하루 이틀 만에 연구될 일은 아닙니다만, 이전의 전쟁으로 투자 가치가 오른 건 확실하죠.”
“그런가. 흐으음…….”
레기온 경은 그의 말이 거짓인지 판별하기 위해서 마갑주와 이 병기창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일단 그의 말은 일리가 있기도 했고, 이 마갑주라는 물건도 결국은 연구하다가 나온 성과물로 엄청나게 비싸고 좀 커다란 ‘마법 갑옷’에 지나지 않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저 좀… 결전 무기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으으음, 제국에서 이걸 만들어 달라니 뭐니 하려고 해도 이렇게 비싸서야.’
당장 남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황실 금고를 개방해서 여기저기 예산 동원하기도 바쁜데, 이런 것에 허튼 돈을 쓸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사실 이 무기보다 무서운 건 이놈의… 운영 능력이지.’
그러나 우려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데, 지금 황실과 크멜 가문은 재정이 위기인 상황인데 아무리 투자를 받았다곤 하지만 이놈은 어떻게 이런 걸 만들 돈을 만들어 냈냐는 것이다.
심지어 발데리안 영지의 풍경과 모습은 일전에 왔을 때 이후 몇 달가량밖에 안 지났는데, 크게 바뀌어 있는 점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늘어나는 게 기겁할 일이었다.
“자, 그러면 더 질문이 있으신지요?”
“아니, 이곳엔 더 이상 없네. 이제 영지를 좀 순찰했으면 하네만?”
“기꺼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병기창에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표시를 하자 속으로 기쁜 감정을 숨기며 베오날드는 레기온 경을 안내하여 영지와 도시들로 향하기 시작했다.
영지와 도시의 상황도 이곳 병기창에서만큼이나 레기온 경과 크멜 가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니 베오날드는 이제 이곳의 일은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아르젠에게 수신호를 넌지시 보냈다.
“…자, 다들 이제 여기서 꾸며 놓은 건 접고, 베오날드 님 전용 마갑주를 재봉인해 두고 지하 병기창으로 가지.”
“일하는 척하는 것도 참 힘드네요.”
“대체 완성작 앞에서 뭘 하는 건지.”
밖에서 회의하던 아르젠 학부장을 따르는 마법사들은 각자 짐을 챙기고서 베오날드의 마갑주를 다시 천으로 덮고 훔치지 못하도록 봉인해 둔 다음, 다들 아르젠 학부장이 연 비밀 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내려간다.
깊은 지하 내부엔 빛나는 마정석으로 된 조명이 밝게 비추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수많은 골렘들과 기계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들키면 큰일 나는 거겠죠?”
“아마 큰일 나겠지. 설마… 저 하나도 만들기 힘들 거라 생각한 ‘마갑주’의 부품들이 ‘양산’되고 있으니 말이야.”
철컥! 치이이이잉! 쿵! 따아앙!
아르젠 학부장의 골렘 기술을 이용하여, 현재 이곳 지하엔 ‘마갑주’ 공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우선은 베오날드가 사용하는 파츠들의 카피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결국 구조는 똑같고, 소재는 다운그레이드해서 가볍게 만든 합금과 강철로 만들어서 베오날드의 것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한 방어력과 각종 무기 운용 능력을 갖춘 ‘마갑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어차피 다운그레이드에 맞는 술식 배치와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들… 또 적절한 무기 개발까지. 음… 아주 할 게 많군. 아주 좋아.”
“역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하는 게 확 와닿네요, 학부장님.”
“뭐, 그런 셈이지. 다만… 저 예술성 없이 이용되는 골렘은 좀 안타깝군.”
“아, 하하하하.”
본래 아르젠 학부장은 우아한 동물 형태로 완전 작동을 하는 골렘을 만드는 걸 선호했는데, 베오날드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은 기형적으로 단순한 동작만 반복하는 기계라서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효율성은 압도적이었기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선조님은 남기신 유물을 자신에게 맡겨 주기도 했고, 풍부한 재정 지원은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사면장까지 만들어 줘서 이제 아르젠 학부장은 다시 ‘노이멀’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짠, 500년 뒤에 새로이 나온 유언장. 살아 있는데 유언장이라는 것도 좀 웃기지만……. 아무튼 당연히 내가 썼으니 진품이고, 내가 보관한 인장까지 찍었으니 더더욱 진품이지. 보존 마법이 걸렸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너를 포함해서 알테리오까지 모두 ‘노이멀’의 성을 써도 좋다.’
‘덕분에 가문의 명예를 되찾았으니… 더할 나위 없는 영광. 그러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500년 동안 가문의 학문을 유지시켜서 지금 자신의 도움이 되게 해 준 아르젠 학부장이다 보니 베오날드가 특별히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알테리오 이후 쓰지 못했던 노이멀 가문 후손이라는 칭호를 복권시켜 준 덕분에 이제 아르젠 폰 노이멀이라고 칭해도 되었으며, 알테리오를 포함한 선조들 모두의 무덤 비석에 ‘폰 노이멀’의 이름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역시… 라라 선조님인데 말이지.’
아직 알리진 않았고, 차후 미끼로 쓰기 위한 카드로 아껴 둔 상태지만 나중에라도 그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유언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온다면 큰 혼란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아르젠이었지만 어차피 그녀는 강대한 원한과 증오에 눈이 가려진 마왕의 수하. 지금도 인간을 학살하고 있었다.
‘꼭 전설이나 동화 같은 걸 보면… 이런 경우 혈육끼리 죽고 죽이게 되던데 말이지… 아니, 내가 무슨 불경한 생각을!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겠지. 그리고… 아마 그분도 그걸 생각하고 계실 거야.’
과거에 책들에서 본 수많은 비극들이 떠오르는 아르젠 학부장이었지만 억지로 생각을 접는다.
지금 하는 일이 바쁘기도 했고, 안 좋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 일을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엄연히 이것도 대륙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북쪽, 그것도 ‘노이멀 가문’의 고향인 베노피스에 존재하는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서 지금은 계속해서 힘을 길러야 할 때인 것을 떠올린 아르젠 학부장은 인류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선조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제국 정부를 설득하고, 교단의 시선도 돌린 채로 베오날드는 온전히 다이나 왕국과 발데리안 영지에서 각종 연구 개발과 번영을 순조롭게 할 수 있었고, 남부와 동부에 묘한 긴장감이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약 5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