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아무튼 이제 오셨으니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합니다.”
“혹시라도 이대로 저희를… 그… 놔두실 생각은 아니죠?”
“음, 내가 장기간 자리를 비워서 불안하게 했나 보구나. 하나 걱정 마라.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같이 행동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따로 어딘가 갈 때는 이제 모두와 함께 가도록 할 것을 약속하마. 나도… 모험은 도저히 체질이 아니어서 말이야.”
베오날드는 머리를 숙여 가며 불안해하는 자신의 일행에게 사죄를 하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제 직접 이런 모험식으로 싸우는 건 자제하고 무조건 용사든 모험가든 고용을 하든가 해서 처리할 생각으로 가득한 그였다.
일단 오늘 회포를 푼 다음에 베오날드는 또 따로 교회로 가서 여신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볼 생각이었다.
‘…진짜 용사가 뭘 하는지 뭐든 간에 어디 있는지 알려 달라고 해야지. 지옥이고 나발이고……! 이러다 정말 나보고 마왕 잡으라고 할지도 모르니 말이지.’
자신은 엄연히 귀족, 그리고 정치가, 행정가, 연금술사다.
검술을 익히고 마도구를 연구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함과 오직 전쟁을 위해서이지, 용사나 모험가인 양 미지를 탐험하고 악적을 처치하기엔 가진 능력과 힘이 너무나 아까운 케이스였다.
‘차라리 마갑주 다 개발해서 화력으로 짓뭉개 버리는 게 나을 판이니……. 아무튼 슬슬 연회도 끝났고, 할 일부터 해 볼까?’
어느덧 시간이 무르익어서 식사와 술자리도 끝났고, 베오날드는 일행과 함께 별도의 응접실에 모여 다음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본래 오늘 밤은 그냥 푹 쉬고서 내일부터 하고 싶었지만, 발데리안 백작의 묘한 상태를 보아하니 단 한시라도 낭비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하이디, 혹시 사람의 인적이 드문 지하실이 있나?”
“예? 아, 그거라면… 베시아 님에게…….”
“제가 알고 있어요. 보물 창고나 마도구 창고로 쓸 것 같아서 미리 만들어 놨죠.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끄덕.
자신 있게 말하는 베시아의 모습에 베오날드는 셀리나에게 신호를 주고서 일행을 데리고 저택의 지하로 향했다.
베시아의 말대로 설계할 때부터 보물과 마도구를 보관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어서인지 철제문을 비롯해서 견고한 구조로 된 것이 베오날드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곤 문이 열리자 베오날드는 거기에 자신이 들고 온 ‘미완성 아공간 보관 배낭’을 열고 안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마법의 중심지를 다녀왔으니 성과물이 보통이 아니지. 참고로 이 ‘미완성 아공간 보관 배낭’은 이제 예전에 비해 3배는 가벼워져서 더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게 고쳐 왔다.”
“그게… 성과물인가요? 약탈품이지.”
결국 베오날드의 본질은 간신이다.
뛰어난 능력으로 ‘진리의 성’의 부조리를 고치고 이윤을 추구하면서 신장비 개발까지 다 하면서도 자기 주머니에 하나둘 사욕을 채우는 데 저항이 없는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는 이름을 이용해서 각 학부의 마법사들을 이간질해서 삥을 뜯은 것도 잔뜩이었다.
“셀리나, 네 몫도 엄연히 챙겨 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 반쯤 농담이지만요.”
“질이 나쁘다니, 엄연히 내가 얻은 것인데 말이야. 하하, 아직 어리구나.”
기묘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베오날드는 계속해서 배낭에서 물건들을 꺼내었다.
다른 사람들은 둘만 뭔가 분위기가 가까운 느낌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베오날드가 꺼낸 것들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예요?”
“뭐긴, 각 학부에서 뜯어… 크흠! 지원받은 마도구 최신 설비다. 웬만한 각종 제작은 이제 여기서 다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리고 이건 우리가 찾은 유적의 마법진을 복제한 것이고 말이지.”
“그러면?”
“그래, 이제 우리는 번거롭게 유적까지 가지 않아도 이걸 통해서 연결된 각지의 유적을 갈 수 있는 거다. 역시 다이나 가문의 마법사는 뛰어나더군.”
유적 간 이동 마법진을 복제해서 만든 마도구. 다리온 다이나에게 맡겨서 복제를 시킴과 동시에 술식을 더욱 효율화, 본래 거대한 방에서 여러 마도구의 힘을 빌려야 했던 도구는 이제 베오날드가 가진 마법진이 새겨진 와이번의 가죽을 펼치고 마정석을 매개체로 이용해 발동만 하면 오갈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 되었다.
“다만 설치해 둔 것이 손상되면 여기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거지만… 이걸로 시간을 엄청 아낄 수 있게 되겠지.”
“오오…….”
“이렇든 저렇든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니 말이지. 그리고 너희가 우려하는 내 직함과 권력도 이제 바뀔 거다. 저쪽… 그러니까 다이나 왕국에서 나는 재상의 자리를 얻었으니 말이지. 귀족의 직함이 필요하면 아마 다리온 왕이 원하는 걸 적당히 써 줄 정도이니 말이다.”
“…네?”
“아까 전에는 이런 이야기 안 하셨잖아요?”
“무슨…….”
세 사람 다 놀란 반응. 그녀들의 말대로 베오날드는 아직 자신이 다이나 왕국의 재상이 된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침착하게 계속해서 부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까 전에는 시종과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이야기를 못한 거다. 아무래도 내부에 적이 있는 것 같거든. 나는 확실히 내 사람이라고 하는 이들에게만 정보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부에 적이라니…….”
“발데리안 백작도 수작에 당했을 정도다. 그러니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중요한 정보는 모두 이곳에서 교환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라.”
“예!”
“자, 밤이 늦었으니 다들 쉬러 가도록 해라. 아, 하이디는 잠시 날 따라오너라. 갈 곳이 있는데… 혹시나 싶어서 호위로 두고자 한다.”
“마갑주를 입고 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발데리안 영지니까…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냥 일반 무장만 해라.”
지시 사항을 전달한 뒤, 베오날드는 하이디와 함께 밤거리를 걸어서 발데리안 영지로 향했다.
늦은 밤 이동이라서 야간 근무를 서는 경비병과 기사들이 제지하긴 했지만 베오날드는 발데리안 백작가에서 받은 패를, 하이디는 바로 옆의 하이디 영지의 주인이라는 것을 입증하자 곧바로 지나갈 수 있었다.
“아니, 나는 그렇다 쳐도 어째서 널 못 알아보는 거지?”
“아마 알테리오를 끌고 왔다면 한 번에 알아봤을 겁니다만…….”
“아니면 여자라서 무시하는 걸 수도 있겠군. 참 못난 놈들 같으니……!”
이미 수많은 마수 토벌과 영지 번영으로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녀를 무시한 것에 기분이 나빠진 베오날드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한 병사들과 기사의 얼굴을 기억해 두고자 했다.
하나 하이디는 그런 베오날드를 말리면서 신전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베오날드 님. 그냥 신전으로 가시는 게…….”
“…아니, 그래도……!”
거기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정신을 차리는 베오날드였다.
이상하다.
보통 자신이 아무리 민감해도 이 정도로 급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냥 ‘병사들이랑 기사들이니까 그런 거지.’ 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여기에 뭐가 있는 거야?’
“왜 그러십니까?”
“아니, 네 말이 맞다.”
베오날드는 정신을 집중하고서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야간에도 숙직을 서는 신관이 있었기에 그에게 ‘참회실’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한 뒤 들어간다.
하이디를 전면에 세웠고, 근래 자리를 오래 비웠기에 신관에겐 자신이 베오날드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참회실에 도착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일을 볼 테니… 밖을 지켜 다오. 혹시 누군가가 오거나 하면 바로 쫓아내라.”
“예!”
그러곤 석실로 된 참회실 안으로 들어온 베오날드는 일단 들어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런 참회실은 본래 죄 지은 자가 홀로 신 앞에서 기도하며 스스로 뉘우치거나 비밀을 털어놓기 위한 곳이지만, 간혹 귀족들의 약점을 잡기 위해서 애먼 짓을 해 놓는 놈들이 많았다.
‘…다행히 아무 수작도 없군. 꼭 남의 비밀 이야기를 들으려는 놈들이 많으니……. 내가 이래서 신전은 잘 안 오지만…….’
사실 기도 따위 어디에서든 해도 되긴 하지만 굳이 신전에 온 건 그래도 기도라는 게 ‘여신님’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보니 위급한 상황이 아닐 때는 이렇게 오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리고 또 다리온에게 들은 사실인데, 자신이 기도를 해서 여신님과 접선할 때는 기이할 정도로 빛이 나고 광휘가 내려오기까지 하니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나는 눈 감고 기도하니까 몰랐지. 아무튼 여신님, 기도 올릴 테니 연락 좀 받아 주세요.’
[어서 오…….]
‘아, 여신님? 달켄 다이나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이제 다음엔 뭘 하면 될까요? 그리고 가능하시면 용사의 위치도 좀…….’
[…의… 자식이여…….]
‘어라? 목소리… 바꾸셨습니까? 왜 남자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왠지 말투가 다르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 같자 베오날드는 움찔하며 눈을 뜨려고 했다.
하나 마치 몸이 족쇄로 묶인 것처럼 눈이 떠지기는커녕 몸도 움직일 수 없던 그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거대한 붉은 화염이 끓어오르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이전에 여신님과 연락할 때와는 다른 광경. 자신은 대체 ‘무엇’과 연결된 것이란 말인가?
[…날 불렀느냐… 그 누구보다 분노의 자손에 걸맞은… 필멸자여.]
‘어…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제가 연락하던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누구냐고? 분노… 의 주인… 모든 생명을 불태워… 운명의 사슬을 벗겨… 진정한 해방을 추구하는 자… 분노의 화신, 멸절과 해방의 사도… 너희가 분노의 마왕이라 부르는 자다.]
‘…아, 망했다.’
속마음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베오날드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어 버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어째서 지금 자신이 분노의 마왕에게 기도한 꼴이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식은땀이 흐를 것 같은 기분으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려 하지만, 그것도 자연스럽게 말해 버리게 된다.
‘아, 아니… 저기, 그게 말이죠. 저는 그러니까… 마왕님에게 연락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여신님께 연락하려고 한 건데…….’
[그럼 어째서… 내 신전에서… 기도를 올린 거지?]
‘내 신전? 아… 이거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네요.’
자신의 말에 대답해 주는 마왕님의 말에 여러모로 잘못됨과 혼란스러운 기분이 드는 베오날드였다.
지금 이 신전은 엄연히 예전부터 있던 ‘여신교’ 교단의 신전인데, 어째서 ‘분노의 마왕’의 것이 된 건지 기가 막힐 노릇이기도 한데, 심지어 여신의 종인 자신이 올린 기도를 저 마왕님이 듣고 와 주신 것도 기가 막혀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나 알게 된 성과는 있었다.
‘…과연 이 발데리안 백작의 영지에서 암약하던 것은… 암흑신교의 사제였던 거군요.’
[모처럼… 마음에 들 정도로 피와 증오, 분노로 얼룩진 영혼… 이… 불러서 응해 줬는데 말이야.]
‘…예? 어……!’
그래, 이 ‘여신교’의 신전이 암흑신교 놈들의 수작으로 변질된 것은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자신의 기도에 ‘분노의 마왕’이 응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기도로 분노의 마왕을 부를 정도의 악인(惡人), ‘피와 증오, 분노로 얼룩진 자’라는 게 확인된 것 같아서 꽤 충격을 받은 베오날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