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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97화 (197/259)

[197화]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발데리안 영지.

드디어 발데리안 영지에 도착한 베오날드는 곧바로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고,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발데리안 백작 및 케드론까지 모조리 나와서 베오날드를 맞이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맞이한 것이 아니고, 정찰을 하러 간다던 놈이 아무 기별도 없이 몇 달씩이나 지내다가 이제야 돌아온 것을 혼내기 위함이었다.

“네놈! 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오러까지 끌어 올려 가며 외치는 발데리안 백작의 노성. 보통 사람이라면 움츠러드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선 기절까지 해야 정상이었지만, 베오날드는 무표정으로 그것을 버텨 냈다.

그러고는 군말하지 않고 품에서 조심스럽게 다이나 가문의 인장이 박힌 서신을 꺼내며 무릎을 꿇고 그것을 내밀었다.

“이건……? 아니, 어떻게 네가 다이나 가문의?”

“그것을 설명하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우선 공적인 일이 먼저이니 받으십시오.”

“…그러지.”

정찰을 하러 갔다가 어떻게 다이나 가문의 사절로 돌아오게 된 건지 황당할 노릇이었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다이나 왕국의 일이 먼저였기에 인장으로 봉인된 서신부터 읽어 보기로 한다.

뜯어서 내용을 읽기 시작한 발데리안 백작의 표정이 슬슬 바뀌더니 베오날드를 보는 눈빛이 유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가서 무슨 짓을 한 건가?”

“방금도 말했다시피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많이 깁니다.”

“일단 들어가도록 하지.”

“예. 아, 그 전에 여기 가지고 온 보물이랑 발데리안 가문의 유물부터 먼저 확인해 주십시오.”

“아, 알겠네.”

서신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베오날드는 자세히 몰랐지만, 어쨌든 회담을 긍정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에 대한 것도 적혀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발데리안 백작과 함께 이제 가지고 온 보물을 적재하고, 발데리안 가문의 유물에 대해서 설명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건……!”

“아마 가문의 기록에만 있었을 물건일 겁니다. 진짜 케르베로스의 가죽을 써서 만든 ‘지옥 수문장의 방패’이지요.”

“이, 이게 실존했다고? 그저 조상님들의 허언인 줄 알았는데. 오오오…….”

‘가문 문양이랑… 깔 맞춤해 주고, 가주로서의 품격을 올려 주기 위해 만들려고 흑마법사들 동원해서 소환했지. 물론 잡는 건 똥줄 빠졌지만… 혹시라도 여분까지 생각해서 3개를 만들었고 2개는 얘네 가문 주고, 한 개는 내가 기념으로 챙겼는데, 이렇게 돌려주게 되는군.’

“허어어… 세상에, 정말이군. 이 가문의 문장! 기록에서 가끔 보았던 건데… 정말 유실되었던 걸 그 망할 다이나 놈들이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오오…….”

그렇기에 본래는 이 방패는 사실 잃어버린 것이 맞고 사라진 것이 맞았다.

하지만 500년 뒤의 사람들이 이 진위 여부를 알 방법은 없을 것이다.

베오날드의 말을 그대로 믿은 발데리안 백작은 ‘지옥 수문장의 방패’를 껴안고서 울면서 가문의 숙업 중 하나를 달성한 것에 기뻐할 따름이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베오날드를 바라본다.

“대체… 자네, 가서 무슨 짓을 한 건가? 그 마법 변태 놈들이 이 귀중한 보물을 그냥 이렇게 내어 주면서 저자세로 나갈 놈들이 아닌데? 대체 뭘 한 거냐고?”

“뭐, 상식적으로 일어날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확인이 다 되셨으면 올라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하나도 빠짐없이 진실 되게 이야기해야 할 걸세.”

‘뭐, 전부 다 그렇게 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죠.’

그렇게 발데리안 백작의 강요에 저택으로 올라간 베오날드는 백작과 단둘만의 자리가 마련되게 된다.

자리가 마련되자 천천히 자신이 다이나 왕국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은 없었기에 내용의 일부가 각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심지어 그 달켄 다이나가 살아 있었다고?”

“정확하게는 리치였지만요. 아무튼 그분이… 시도하는 마법 연구가 워낙 위험한 것이었는데, 아무튼 그로 인해서 ‘진리의 성’에 있는 마법 학파 간에 내전이 일어나 버려서 말입니다. 저는 그 혼란에 끼이는 바람에… 도망칠 타이밍도 놓쳐서 결국 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으으음… 내전이라. 확실히 상인들에게서 비슷한 소문을 들은 것 같아.”

‘그것도 내가 퍼뜨린 거니 말이지.’

회담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에 발데리안 영지를 거쳐서 ‘진리의 성’을 다니는 상인들에게 가짜 정보를 풀어서 사전 작업도 해 둔 덕분에 발데리안 백작은 베오날드의 각색된 이야기를 찰떡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혼란 속에서 살기 위해서 연금술사로서 연금학부 쪽에 발을 댔고, 그곳의 학부장이자 옛 노이멀 가문의 후예인 아르젠 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이멀 가문의 후예라고?”

“예. 정확히는 그… 알테리오 폰 노이멀 님의 후손으로 약 500년 전에 달켄 다이나와 손을 잡은 덕에 살아남았지만 결국 알테리오 폰 노이멀 님은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 그래서 그 후손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었지요. 아까 전 그 유물들이 돌아오게 된 건 역시 학부장으로서 저 ‘진리의 성’에서 발언력이 있는 아르젠 님의 힘이 가장 컸습니다. 노이멀 가문을 붕괴시킨 속죄를 하고자 한 것이었지요.”

“흐으으음…….”

베오날드 스스로가 생각해도 잘 맞춰 놓은 이야기인 덕분인지 발데리안 백작은 의심의 눈초리를 1그램도 가지지 않고 아르젠 학부장과 정치 관계에 관해서 그저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솔직히 의심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 방도도 없다고 자부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차분히 달켄 다이나의 죽음, 학부 간의 내전, 뒤바뀐 권력 관계를 모조리 설명한 다음 이제 자신이 어떻게 다이나 왕국의 서신을 들고 올 수 있게 된 건지에 대해 깔끔히 마무리했다.

“…그래서 달켄 다이나의 죽음과 사고로 인한 다이나 가문의 약화, 거기에 아르젠 학부장님의 추천, 발데리안 가문과의 인연이 증명된 제가 이렇게 서신을 들고 오게 된 겁니다.”

“그렇군. 후우우…….”

“아무튼 서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는지요?”

“자네 정도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이 타이밍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사죄를 한다면 승낙할 수밖에 없지 않나?”

발데리안 백작의 말에 미소를 짓고 싶지만 꾹 참는 베오날드였다.

그 말대로 현재 제국의 상황은 급박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상 남부를 집어삼킨 노이멀 총리의 패악질로 인해서 제대로 된 농업은 되지도 않고, 벌써 멸망한 영지가 몇 개나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닐세. 크멜 가문의 상황도 매우 위험해졌어.”

“크멜 가문이요?”

“볼레아 왕국을 아나?”

“대강 압니다. 그, 원래는 북방 야만족이랑 싸우던 변경백 가문 아닙니까?”

“그건 너무 오래전 이야기지. 통일 제국이 무너진 혼란기에 그 북방 야만족과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서 왕국을 만들었지. 그리고 이젠 제국의 적이 되어서 시시각각, 늘 동쪽으로 내려와서 크멜 가문과 제국을 위협하지.”

분명 들은 기억이 있지만 결국 깊게 생각해 두지 않으니 500년 전 지식 기준으로 설명이 튀어나와 버린 베오날드였지만, 발데리안 백작이 빠르게 정정해 준 덕에 어색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근래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졌네. 대충 예상한 바로는 역시… 노이멀 총리의 짓으로 보이네.”

“확실히 양면 전선은 정말 지옥이니 말이죠.”

“그러니 이 상황에서 다이나 왕국이 화해를 요청하니 거절할 수가 없지. 우리도 제국의 일원인지라 결국 나서야 하니 말이야. 하아아~ 지금 남쪽에도 노이멀 총리로 인해서 전운이 감돌고 있고, 거기에 동쪽에도 저 난리라. 우리라도 여유가 있어야 남쪽에 지원을 갈 수 있으니 말이지. 그 망할 년이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말이야. 하아~ 정말이지…….”

“아… 하하하.”

아무리 지금 많이 삐뚤어져서 대륙에 민폐를 엄청 끼치지만 그래도 자신의 딸이니만큼 그 험담을 그냥 듣자니 기분이 묘한 베오날드였다.

물론 그 민폐의 스케일이 이 대륙 전체를 뒤흔들 정도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였다.

“아무튼 어설프게 판단해서 미안하군. 어떻게 보면 자네가 그렇게 오래 있어 준 덕분에 이쪽 전선이 정리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연락을 못 드린 제 잘못도 있지요.”

“그럼 이제 우리 쪽 이야기를 좀 하지. 남쪽에서 일어나는 사태 때문에 황도에서 대귀족들과 귀족들을 모아서 회의가 열렸다네.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 일단 여론은 총력전과 전선 구축, 이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네. 하나 일전의 패배도 있고, 크멜 가문에서는 이미 대 볼레오 전선을 전담하고 있어서 여력이 없지. 우리는 다이나 왕국을 맡고 있고 말이야.”

“으음… 그럼 전면전으로 이야기는 절대 안 굴러가겠군요. 사실상 황실과 그들을 따르는 귀족들만으로 남쪽과 총력전을 해야 하니… 설사 지원을 해도 큰 지원을 못해 주고…….”

“그렇지. 결국 새로운 남부 전선을 만들고 교단에 지원 요청을 하는 걸로 결정이 났네. 그리고 또 모험가들이나 첩보부, 기사단을 활용해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작전도 겸하고 말이야.”

‘음, 지극히 정상이군.’

그가 생각하기로도 옳은 판단이었다.

일단 당장 총력전을 해서 이길 가능성도 낮고, 거기에 양면… 아니, 삼면 전선으로 전쟁이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었다.

이제 ‘다이나 왕국’이 적대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히 전선은 2개로 좁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발데리안 가문이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게 되니 좋은 일이었다.

“아무튼 그럼… 자네, 결국 이제 다이나 왕국 소속이 되는 건가? 보아하니 거기서 받은 대우도 나빠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아… 그거 말이군요. 음, 사실은 양립하고자 합니다.”

“양립? 즉… 양다리를 걸치겠단 말인가? 허, 기가 막힌 의견이군.”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단 화해를 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묵은 다이나 왕국과 발데리안 영지의 감정이 쉽게 풀리는 건 아닐 겁니다. 제아무리 많은 유물과 보물을 주어도 묵은 감정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역사적 감정이라는 건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사실 보물이나 유물을 반환한 건 그저 정상 참작의 여지를 높였을 뿐, 지금 화해를 받은 건 어디까지나 남부의 위협이 너무 커서 삼면 전선이 될 걸 줄이기 위해서 받은 것이지 진심으로 화해할 생각을 한 게 아니다.

그런 만큼 감정은 결국 가슴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으음… 그렇지.”

“그러려면 이제 좋든 싫든 양측에 다리를 걸친 사람이 있어서 중재를 해 줘야 하고, 그 사람은 양측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죠. 지금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게 저 말고 다른 자가 있습니까?”

“…없군. 후우, 하나 반대로 물어보지. 왜 다이나 가문과 꼭 화해를 해야 하는 거지? 그냥 적정한 선에서 말만 맞춰 두는 게 낫지 않나?”

“당연히 그게 더 이득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이 발데리안 가문에도 그렇고… 이 대륙에도 그렇고 말이죠. 그리고 그런 식의 화해는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득이라? 하나 자네가 다이나 왕국과 손을 잡고 배신한다고 하면?”

“으음, 확실히 우려가 되는 부분이군요.”

아주 예리하게 베오날드의 논리를 찌르는 발데리안 백작. 역시 거칠게 보여도 대귀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관록을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물론 사실상 자업자득으로 이번에 베오날드가 제대로 된 연락을 하지 않고 장기간 모습을 감춘 것 때문에 신용도가 깎인 게 큰 원인일 것이다.

나름 위기인 상황으로, 여기서 발데리안 백작을 설득하지 못하면 앞으로 행동 범위가 좁아지거나 할 것이기에 베오날드는 신중히 단어를 선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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