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그리고 베오날드는 모두가 물러난 다음 다리온 왕이 마련해 준 화려한 저택 방에서 조심스럽게 노이멀 총리를 호출했다.
이미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어차피 그만큼 중대한 일을 알리는 거라서 상관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지?]
“아아… 예. 접니다, 노이멀 총리님. 늦은 시간에 연락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이라서 그만…….”
[어떤 일인지 이야기부터 해 보아라.]
“예,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발데리안 영지의 일 때문에 지금 다이나 왕국의 ‘진리의 성’에 와 있습니다만, 거기서 무시할 수 없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진리의 성이라. 하긴 발데리안 영지의 숙적이니 첩자를 보내는 일쯤은 있겠지.]
“예, 맞습니다. 아무튼 알려 드릴 것은 바로 달켄 다이나가 지금… 베노피스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뭣이?]
일단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포지션을 알기에 베오날드는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떡밥부터 던졌다.
너무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베오날드로선 딱 이 정도가 좋은 정보였다.
[베노피스라고? 왜지?]
“그건… 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 일단 급한 소식이라서 먼저 알려 드린 겁니다.”
[그래. 그 망할 해골바가지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아무튼 알겠다.]
“예, 그럼 전 계속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베노피스 문제라면 아주 잘한 일이다. 그래, 그곳을 멸망시킨 주제에 어딜 뻔뻔하게 감히……!]
분개하는 라라 폰 노이멀의 목소리와 함께 통신은 종료되었다.
이거면 이제 달켄 다이나에게 하나 더 장애물이 추가된 셈이니 베오날드는 한결 더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다.
하나 그와 별개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분노와 광기에 미쳐 괴물이 되어 버린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질 수밖에 없는 베오날드였다.
“하아~ 아무튼 한탄하고만 있을 순 없지. 후우우~ 한탄은 한탄이고, 나는 내 일을 해야 하는 법.”
지금 당장 딸에게 무얼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베오날드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시간은 소중하고, 지금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기에 그 소중함을 더 잘 아는 베오날드는 두 사람에게 맡긴 것 외에도 자신의 ‘마갑주’를 직접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해 가는 동시에 발데리안 가문에 전달할 편지도 준비했다.
***
약 한 달 뒤…….
‘신마법’의 성패 여부를 기다리며 보내는 한 달. 베오날드는 재상으로서 완벽 이상으로 다이나 왕국을 주무르며 ‘진리의 성’을 개선시키고 있었다.
대륙 전체 규모를 주무르던 그에게 밑에는 똑똑한 마법사 지망생들이 가득했고, 특히 마법의 길에서 한계에 부딪쳐서 탈락한 자들도 두뇌 수준은 일정 이상 되었기에 일을 시키면 잘 알아먹어서 금방 실전 인재로 써먹을 수 있는 점이 컸다.
“오오, 역시… 명불허전이시군요.”
“그럼~ 내가 누군데~”
감탄하는 다리온 왕 앞에서 베오날드는 펜을 돌리며 콧대를 세우고 자랑스러워했다.
국가라곤 하지만 고작해야 이 도시 하나뿐이고, 써먹을 인재도 많아서 그에겐 일도 아니었다.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도시 하나 따위 껌이지. 게다가 마법사들은 똑똑하지, 사령술에 흑마법, 정령술 등등… 덕분에 일손도 많고, 노동력도 풍부해서 정말 쉽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더 부끄러워집니다만… 단숨에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다리온 왕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성은 베오날드가 손을 대자마자 빠르게 변한 것이었다.
우선 치안이 훨씬 좋아지고, 상인과의 교섭을 직접 하면서 조직을 통괄하여 물류 흐름을 조정하고, 노동력을 이용해서 주변 토지에서 생산 업무를 시키는 한편 무분별하게 실험하고 쏟아 내던 폐수와 매연도 빠르게 개선해 나간 것이었다.
물론 이런 변화에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절히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 그들을 구워삶았다.
마법사라는 자들은 세상 물정에 약하고, 자기 지식욕에만 집중할 정도로 단순해서 500년 전의 마도구와 고서를 미끼로 연구 내용 가지고 술술 현혹시키면 금방 넘어오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국고도 직접 채워 주실 줄은…….”
“어차피 내가 필요해서 쓰는 건데, 뭐~ 마침 이 근처에도 ‘둥지’가 있기도 했고 말이지.”
‘둥지’. 베오날드가 열심히 통일 제국을 운영해서 생긴 거대한 이익을 빼돌려서 숨겨 둔 유적.
그리고 이 다이나 왕국 쪽에 있는 유적의 이름은 바로 ‘황금의 둥지’로 특별한 것들이 있는 다른 둥지와 달리 이곳에 있는 건 그저 평범한 황금과 금화, 보석 같은 재보들뿐이었다.
물론 말이 그렇지, ‘황금의 둥지’도 정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금화가 강처럼 흐르고, 보석으로 온갖 장식품이 만들어져 있으며 은은 그냥 바닥에 까는 건축 자재로 사용될 정도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나 결국 그 재보도 사용되어야 가치가 있었기에 베오날드는 기꺼이 꺼내서 지금 알차게 쓰고 있고, 또 ‘황금의 둥지’에 있는 이동 마법진으로 다른 둥지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오기도 용이했다.
“설마 정적이었을 가문의 영토에 유산을 숨기실 줄은 아무도 상상 못하죠.”
“아니, 원래 500년 전에는 여기부터 시작해서 너희 가문 영토가 아니었어. 좀 더 남쪽이었고, 본거지가 발데리안 가문이랑 거의 딱 붙어 있었다고!”
“허어, 그렇습니까?”
“아무튼 발데리안 가문에선 대답이 안 왔어?”
“오늘 막 왔습니다. 그 반응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투더군요. 하지만 같이 보낸 유물과 재보들이 먹힌 건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다만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뭐, 가문의 숙적이었으니 그리 쉽게 감정이 풀리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아마 열심히 회의 중일 거다. 좋아, 영지 업무는 이걸로 끝. 이제 하던 연구를 진행시키러 가자고~”
베오날드는 다리온 왕을 데리고서 금방 다이나 가문 저택을 나와서 이번엔 연금학부로 향했다.
새로운 ‘마갑주’의 제작 프로젝트는 연금학부에 맡긴 베오날드였다.
일단 일손이 많이 들어가고, 새로운 갑주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많은 지혜를 모으려면 전면적으로 그들의 협조가 많이 필요했으며 베오날드가 업무를 보는 동안에도 일을 진척시키기 위함이었다.
“자, 진행은 어떻게 되어 가나?”
“오셨습니까? 베오날드 님!”
“그래. 작업은 순조롭나?”
“물론입니다. 각 부품 테스트가 순조롭습니다. 각 부위 부품에 새길 술식의 최적화, 마정석으로 새로이 만드는 ‘마나 하트’의 제작, 금속 섬유 제작, 마정석을 활용한 신무기 제작… 베오날드 님이 명하신 그대로 진행 중입니다.”
“좋아. 역시… 개인이 하는 것보단 조직인가?”
끄덕.
오자마자 연금학부 연구원이 내민 서류를 보면서 베오날드는 진행이 매우 잘되는 것에 만족하며 눈앞에 만들어지고 있는 자신의 마갑주를 바라보았다.
하이디나 케드론이 입은 마갑주보다 또 한 단계 커져서 그런지 이제 인간이 입는다기보단 탄다는 느낌이 강한 약 높이 2.7미터의 사이즈. 거기에 본래 텅 비어 있는 내부엔 금속 섬유와 완충제, 술식 보호를 위한 추가 장갑이 꽉 메우고 있고, 무기는 검술을 구현할 수 있게 내부에 마력 회로를 새긴 대검부터 시작해서 원거리 무장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죽여주는군요.”
“아르젠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지. 설마 연금학부의 교수진들과 연금술사들이 다 달라붙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정말 모르셨습니까? 저는 이미 아르젠 학부장이 연금학부 프로젝트로 한다고 했을 때, 예상했는데 말이죠. 평소 시답지 않은 연구와 반복적인 실험 데이터 수집보다는 이게… 압도적으로 재미있지요.”
“그런가?”
“당연한 겁니다.”
다리온 왕의 말대로 무언가 만들고 연구해도 역시 베오날드가 만드는 것 같은 ‘마갑주’를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즐겁고 굉장한 일이긴 했다.
거기에 전설의 연금술사 베오날드가 진행하는 일이라 예산, 보수가 모두 넉넉하기까지 하고, 베오날드가 가진 500년 전의 기술이나 술식, 연금술 모두 구경할 찬스였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연금술사들이 매우 많아서 아주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여기 보십시오, 베오날드 님! 제가 기가 막힌 걸 설계했습니다! 이름하여 ‘썬더볼트 롱 슈터’입니다.”
그렇게 점검하며 다니던 도중 한 연금술사가 베오날드에게 다가와서 서류를 보여 주었다.
그 연금술사는 꽤 어린 나이로 작은 키에 큰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베오날드는 일단 그가 내민 ‘썬더볼트 롱 슈터’라는 것을 한번 보기로 한다.
“으음… 이건 뭔가?”
“베오날드 님이 만드신 ‘볼트 슈터’를 저 마갑주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뇌전 마법 술식을 개량해서 추진력을 주고, 긴 총신으로 사정거리를 증가! 거기에 내부에 강선을 꼬아서 회전을 주어 위력을 증가시켰습니다.”
“강선?”
베오날드가 모르는 개념이 나오자 의아해하면서 그가 보여 준 서류의 내용을 보면서 묻자 그는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을 한 채로 베오날드에게 열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제 스승님은 드워프 연금술사셨습니다. 그분이 물려주신 ‘붐스틱’엔 내부에 이렇게 총신에 강선이라고 이 포신의 내부에 파인 홈입니다. 이걸 따라서 이제 탄환이 돌면서 탄도가 안정화되고 위력도 오른다고 그분이 말씀하셨는데 그걸 적용한 겁니다.”
“흐으음… 하지만 이러면 비용이 상당히 오를 건데? 내부에 홈을 판다는 건… 그만큼 손이 많이 가지 않나?”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좋아. 확인해 보도록 하지.”
이해는 지금 막 했지만 일단 이론적으로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고, 마족과의 싸움에 있어서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기에 베오날드는 테스트하러 가 본다.
젊은 연금술사를 따라서 간 밖에는 ‘마갑주’를 착용하고 들 수 있는 사이즈의 길고 거대한 대포가 땅에 고정되어 달려 있었다.
“오, 상당히 크군.”
“결전 병기로 쓰려면 이 정도 커야 하죠.”
“이거에서 쏘아지면 공성전은 의미가 없어지겠는걸? 으으음…….”
“아무튼 곧바로 실험 발사를 해 보겠습니다. 어이~! 준비됐나? 베오날드 님 오셨으니까 쏴 봐!”
파치지지직지지이잉!
젊은 연금술사의 신호에 맞춰서 대포에 붙어 있던 각 마법사들은 곧바로 술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푸른 뇌전이 사방으로 튀면서 파지직거렸고, 잠시 후 붉은 섬광과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무언가 직선으로 날아가면서 사방으로 후폭풍을 뿌리며 발사되었다.
쐐애애애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탄환은 그대로 실험장에 마련된 벽을 뚫고, 성벽까지 일직선으로 뚫어 버린 다음 지평선 저 너머까지 쭈우우우우욱 모든 것을 파괴하고 후폭풍을 거대하게 남긴 채로 사라져 버렸다.
“히이익! 이, 이거 어떻게 하지? 너무 과했나?”
“오오… 이거 마음에 드는 위력이군. 하지만 문제점이 많군. 우선은… 한 발 쏘면 파괴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는걸?”
사고가 터진 것에 놀라는 젊은 연금술사에 비해서 베오날드는 이 썬더볼트 롱 슈터의 위력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빠르게 이 무기의 문제와 개선점을 캐치한 다음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하는 김에 말이지. 한 발을 쏘고 다음 발이 자동으로 장전되도록 구조 연구, 그리고 이 전격 마법을 근거리에 뿌려서 접근해 온 적을 상대할 수 있는 것도 구상해 보도록. 아, 피해 보상은 내게 맡기도록. 그리고… 다음부터는 성 밖에서 실험하고 말이지.”
“예? 저기…….”
“뭘 우물쭈물하는 거냐? 자자, 시간이 없으니 빨리 하도록 해라. 가능하면 다음 달 내로 개선된 걸 보고 싶군. 아하하하하핫!”
“그건 무리…….”
“그럼 간다. 음, 아주 좋아. 하하하하하핫!”
무리라는 말을 상쾌하게 무시하며 사악하게 웃은 베오날드는 과제를 맡겨 놓고 사라진다.
자신도 한 번 과제 투척을 당했던지라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낀 다리온 왕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 젊은 연금술사에게 애도를 표하며 베오날드의 뒤를 계속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