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그 뒤로… 음악과 수많은 음식이 마련된 화려한 파티장을 연상케 하는 이 자리는 이제 500년 만에 복귀한 ‘대연금술사 베오날드 폰 노이멀’의 세미나 같은 현장이 되었다.
먹고 떠들고 술 마시는 건 최소로 하고 다들 500년 전 마탑의 전설이나 연금술 이론 같은 것은 물론 베오날드 개인에 대한 것까지 묻고 답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신마법’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지만… 된다면 우리가 연구하고 노력해 왔던 것이 모두 무산될 가능성이 크지. 진리에 접속해서 당장 내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를 반대로 바꿀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 곧 ‘달켄 다이나’가 신이 되는 게 아닙니까?”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달켄 다이나’는 필멸자의 한계를 넘지 못하지. 인식과 통찰력은 여전히 그대로이니 말이야. 그저 ‘신’의 권한에 살짝 손을 댄 정도가 아닐까?”
“호오오… 그렇겠군요.”
“하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난 힘인 건 틀림이 없지.”
신마법에 대한 토론부터 시작해서…….
“자, 이건 여기까지. 다음 질문은?”
“그… 납을 금으로 바꾸셨다는데, 그거 진짜입니까?”
“아, 그거 진짜야. 그런데 별로 추천은 안 해. 비용이 너무 들어가……. 물론 방법에 대해서 수업을 하자면 할 수 있지만… 못해도 3년 단위로 잡아야 할걸?”
그다음엔 연금술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후하하하하! 이 공식, 연구가 덜 돼서 일단 이렇게 마감해 둔 건데! 아직도 쓰냐? 분명 일단 예시 값으로 두고, 나중에 고치거나 감안하라고 밑에 주석 달았는데……! 왜 이걸 그대로 써? 미쳤니?”
“으아! 진짜입니까? 배울 땐 그냥 쓰라고 배웠었는데! 어쩐지! 자꾸 수식이 안 맞아서…….”
“밑으로 전해지다가 엉켰나 보네.”
마법에 대한 술식이나 수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등등…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좋게 흘러갔다.
보통 기존의 권력층들이 반발을 일으키거나 크게 경계해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학구적이고 자기 연구 범위만 건드리지 않으면 다들 우호적인지라 대화가 수월했다.
달켄 다이나와 맞먹는 석학이면서 500년 전 마탑의 전성기 시절을 책임졌던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니 얼마나 탐구심이 솟겠는가?
[대체… 죽음을… 어떻게 극복한 거지? 알고 싶다.]
“우리 엘리자베스의 말로는 신의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베오날드 님, 당신은 분명 신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았습니까?”
그 덕인지 사령학부와 어둠학부의 마법사들도 베오날드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와 관심을 가졌다.
죽음을 극복하고 5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나타난 자. 심지어 ‘리치’ 같은 형태가 아니라 멀쩡한 젊은 인간의 모습! 흥미가 샘솟고, 이야기할 거리, 연구할 거리가 넘쳐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지옥 불에 불타고 고문당하면 나도 어쩔 수 없지. 하하하.”
[사후에 지옥에 가신 건가?]
“그럼 지옥은 실재한다는 건가? 흐음…….”
[우리는 더더욱 죽음을 피해야겠군.]
“아, 나는 어차피 악마에게 저당 잡혀서… 하하하!”
‘사후 세계가 실존한다는 걸 들었으니 또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군. 아, 이 스테이크, 정말 맛있군.’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밤새도록 이야기와 식사,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학문과 마법, 철학 등등… 이 ‘진리의 성’에 모인 자들의 토론이 정말 끝이 없을 정도로 이어지는 가운데, 베오날드는 한차례 떠들썩함이 지나갔을 때 다리온 왕과 아르젠과 셋이 모여서 본격적인 ‘노이멀 가문’ 회담을 이루게 된다.
“하하하, 이거 참… 후손님들 앞에 이렇게 있으니 뭔가 미묘하구먼.”
“미묘하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지요. 하아~ 그래서 위대하신 선조님이시여,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시 노이멀 가문의 영광이라도 일으키실 겁니까?”
“아니, 이미 한번 다 해 본 걸 또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저 나는 이 시대의… 불청객. 할 일이 다 끝나면… 얌전히, 조용히 놀다가 갈 거야.”
“그렇습니까?”
“뭐,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아서 그저 바람으로 끝날 것 같지만 말이야.”
어차피 마왕 토벌의 협력과 이 대륙을 지키는 일만 해도 한평생을 다 해도 모자랄 것임을 예상하는 베오날드였다.
어쩌면 일만 하다 죽고 돌아가는 걸로 끝날 수도 있겠지 싶었다.
하나 어차피 거래로 내려와서 일하는 입장인 이상 투덜거릴 수도 없었다.
“아무튼 관건은 이제 ‘신마법’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시도될 동안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겠군. 다리온 왕, 날 어떻게 하고 싶나?”
“뭐가 되었든… 결판이 날 때까진 곁에 계셔야 하고, 또… 500년 전 통일 제국을 운영하던 솜씨를 좀 보고 싶으니 재상의 자리를 드리도록 하지요.”
“그거라면 아마 문제없을 겁니다, 다리온 님. 이분의 진짜 무기는… 책상과 펜, 그리고 서류라는 걸 곧 눈치채실 겁니다.”
연금학부의 쓰레기 영역에서 이룬 성과를 떠올린 아르젠은 베오날드에게 맡겨 두면 된다는 것을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베오날드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리온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일단 ‘신마법’의 성패가 판별 나는 순간까지 이 다이나 왕국의 재상 자리를 맡는 것을 승낙하기로 한다.
“그러면 같이 발데리안 영지에 연락을 넣어야겠군. 그건 셀리나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아.”
“거기에 정체를 어떻게 알리실 겁니까?”
“아니, 알려서 좋을 게 없으니 비밀로 할 거다. 다만 외교적으로 우호 관계로 바꿔 두긴 해야겠지.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지? 다리온 왕.”
“마탑, 그리고 이 진리의 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한에선… 뭐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아, 내가 조율하지.”
이제 자리를 받았으니 곧바로 베오날드가 진행하고자 한 것은 바로 원한 청산. 발데리안 가문과 다이나 왕국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먼저 너희가 사과 요청을 해야 할 거다.”
“하는 건 문제없습니다만,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하면 그만이지.”
“어떻게……?”
“진심이란 결국 물건과 황금으로 나타내기 마련이지. 가령 발데리안 가문과 노이멀 가문의 오랜 유산과 유물이라든가, 아니면 기록물이라든가 말이지.”
가문 내에 봉인되어 있던 유물을 소중히 하던 게 발데리안 가문이다.
그러니 베오날드가 그만한 물건을 제공해서 성의인 척 보이면 얼마든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남부에서 가르칸의 노이멀 총리가 계속 날뛰고 있는 만큼 전선을 줄이고 화해하면 나쁠 게 없으니 적절한 절차만 거치면 발데리안 가문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러면 일단 외교 정책은 이걸로 가고… 내부 정책은 되도록 손 안 대는 걸 좋아하지? 안 건드린다. 패스하지.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 교류를 좀 해 볼까?”
“연구 교류 말입니까?”
“내가 죽여주는 거 하나 만들고 있는데… 마침 딱 너희가 필요한 걸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아~ 정말로 500년 뒤인데 뭐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 혈통인 너희가 발전시킨 게 있어서 정말 다행인 거 있지. 하하핫.”
베오날드가 눈을 반짝이면서 아르젠 학부장과 다리온 왕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다.
둘 다 각자 분야의 전문가로서 베오날드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르젠 학부장의 골렘 제작 기술, 다리온 왕의 술식 최적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을 얻는 것도 중요했지만 얻어서 무엇을 할지를 알려 주는 게 더 중요했기에 베오날드는 그들에게 지금 자신이 만들고 있던 ‘마갑주’의 자료를 보여 주었다.
“내가 지금 만든 게 이건데… 어떻게 생각하나? 후손들아.”
“호오… 흥미롭군요. 기사를 안전하게 지켜 주면서 전투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갑옷이라. 하지만 술식들이 다 구식이군요. 아… 베오날드 님이 만드신 거면 뭐…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요?”
“그것도 그거지만, 갑주의 소재는 좋은 걸 골랐지만 설계 구조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저라면 여기 이 다리 부분에 추가 프레임을 붙이고 관절을 강화해서 안정적으로 서서 버틸 수 있게 강화하는 게 좋을 거… 아……! 그… 죄송합니다. 갑자기 건방지게 말해서…….”
“아니아니, 계속 말해. 그걸 원해서 너희에게 보여 준 건데, 건방은 무슨……. 나라고 모든 분야에 완벽한 건 아니니 말이야.”
이것이 베오날드의 또 다른 강점. 보통 자존심 때문에 타인의 지적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반면 그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협할 줄 안다.
정치란 무조건 100을 얻을 수 없는 만큼 타협하고, 협상하고, 같이 고민하고 실험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그에게 익숙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후손 아닌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베오날드였다.
“좋아, 그러면 지금 떠든 것들 깔끔하게 정리해서 가져다줄 수 있을까?”
“예?”
“네?”
“마침 ‘신마법’이 판별될 동안 시간도 있는지라, 내가 쓸 것을 만들고자 했거든. 아, 재료나 마정석 수급은 전혀 걱정하지 말게. 아시다시피… 대륙엔 내가 좀 감춰 둔 유산이 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베오날드는 마치 대학원생들에게 과제와 일거리를 내주는 교수처럼 웃으며 그들에게 마갑주 설계도를 한 부씩 건네준다.
둘은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실컷 떠들어서 흘린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고, 이제 와서 거부하자니 뭔가 딱히 수도 없으며 달켄 다이나와 동급인 분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어설프게 일할 실력들 아닌 거 다 아니까… 열심히 해 줘. 물론 나도 보수를 넉넉히 줄 테니 말이야. 꼭 금전적인 게 아니더라도 마법적인 것도 있으니까. 알았지?”
‘이분에게 넘긴 재상 일만큼… 더 하게 생겼군. 이 술식들, 언제 다 검토하고 최적화를 하지?’
‘이걸 하려면 내 연구는… 아니, 뭐 연구랑 딱히 다른 건 아니니 나쁘지 않나?’
설계도를 보며 벌써부터 머리가 휭휭 돌아가기 시작했고, 대충 얼마나 고생해야 할지 감이 오는 아르젠과 다리온 왕이었다.
천재급으로 유능한 두 사람을 보며 베오날드는 역시 조직엔 인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베노피스에 있을 시절을 살짝 떠올렸다.
‘아… 그립네. 그때도 인재들이 많아서 정말 좋았었지. 진짜 신분 안 가리고 자질 있어 보이면 악착같이 모았는데…….’
신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중용하다 보니 다른 귀족들은 정말 싫어했지만 베오날드는 개의치 않았다.
정원을 가꾸는 것이 귀족의 소양.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거름도 쓰고 하는 것이 귀족의 임무였다.
덕분에 베노피스는 단 한 사람의 생애 만에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될 수 있던 것이었다.
‘아무튼 일은 대충 이걸로 끝났군. 게다가 이제 정체도 알렸으니…….’
“또… 뭔가 부탁하실 게 있으십니까?”
“아, 이번엔 다른 건 아니고… 못난 자식이나 보러 가려고 말이지. 무덤은 있지?”
“아… 그게… 그…….”
베오날드가 말하는 못난 자식이라면 역시 알테리오 폰 노이멀의 이야기. 한데 그것을 들은 아르젠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마치 물으면 안 될 것을 물은 듯한 분위기에 베오날드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눈빛을 바꾸면서 좀 더 자세히 묻는다.
“뭐야? 뭔가 문제라도 있나?”
“저, 그게… 무덤이 있긴 합니다만 그… 시신이 없는 가묘입니다.”
“뭐? 그래도 여기서 천수를 누리지 않았나?”
“원래는 그게… 무덤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죽고 난 이후, 라라 폰 노이멀 님이 오셔서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가지고 가셔서 그만…….”
“…아, 또 그 아이인가?”
참 들으면 들을수록 지독해진 딸아이의 소식에 베오날드는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알테리오가 번영하던 노이멀 가문을 파괴한 원흉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죽어서 묻혀 있는 것까지 꺼낸 건 심하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그녀와 연락용으로 쓰는 마도구를 꺼내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