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제 이름은 베오날드,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 통일 제국의 섭정, 대연금술사, 마탑의 기둥, 대영지 베노피스의 주인, 그 외에 수많은 수식들이 붙은 자. 500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이곳에 다시 나타났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
“뭐라고?”
“서, 설마?”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대부분 일단 베오날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고 딱하게 보는 시선과 충격 먹은 시선 등등 다양한 시선들이 교차된다.
특히 가관인 것은 역시나 오래 알고 지낸 셀리나였는데, 그녀는 기적이라도 바라본 것처럼 눈이 크게 떠진 채로 경악하고 있었다.
더불어 후손인 아르젠도 안색이 파래진 채로 경악하며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 역시 쉽게 믿지는 않는군. 이래서 밝히는 게 껄끄러웠는데 말이지. 그러면 증명은 이제 죽음에 가까운 분들의 인증이 있어야겠지요. 어떻습니까? 사령학부와 어둠학부 여러분?”
[왜 젊은 놈에게… 노인네의 영혼이 있나 했더니만 그런 이유였군.]
“오오… 우리 엘리자베스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을 넘어서 5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강림이라니. 제길, 엄청 멋있군. 부러워 미칠 지경이야!”
“잠깐, 저 둘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령학부와 어둠학부, 이 둘이 납득하는 반응을 보이자 다른 이들도 슬슬 납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 먹은 것은 역시 베오날드를 직접 상대했던 리치인 단테 다이나로, 그는 씩씩대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베오날드에게 따진다.
[뭐야, 그분이었어? 제길! 내가 지는 게 당연하군. 어쩐지 이상하더라! 노친네의 영혼이 안에 들어 있는데… 아무튼……!]
“…아무튼?”
[사인 좀 해 주십시오. 500년 전 전설이라면 안 받을 이유가 없죠. 그 쓰신… 소재 연구학과 술식 세공 개론… 덕분에 잘 쓰고 있습니다.]
“…어… 예. 그거 500년 전에 쓴 건데, 아직도 쓰나? 누가 바꾸거나 변화된 이론 채워 넣거나 하지 않나?”
[아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사각사각…….
저 아래에서 싸울 땐 서로 죽일 듯 난리였던 리치 단테 다이나가 스스로 굽히고 가서 사인을 받는 모습까지 보여 주니 긴가민가함이 줄어드는 가운데, 아직도 완전히 의구심이 가시지 않을 때, 제미니 교수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메히히, 다들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하네. 하나 돌아가서 생각을 해 보게.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 아니고 누가 달켄 다이나가 연구하는 ‘신마법’의 정체를 알고 방해할 생각을 떠올리겠는가?”
“으으음…….”
“그리고 정 의심이 간다면 증명은 천천히 해 나가면 될 일. 우선 우리는 마탑의 위대한 선조가 복구한 것을 기뻐하며 ‘신마법’의 구현이 성공하는지 아닌지 지켜보면 되지 않겠나? 메힛.”
“나도 그리 생각하네. 하나 나는 이분이 베오날드 폰 노이멀 본인이라고 확신하네.”
제미니 교수의 중재, 거기에 다리온 왕까지 확실하다고 뒷받침을 하니 다른 마탑의 학부장들도 하나둘 인정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너무나 혼란스럽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아무튼 그들은 일단 여기 있는 이 청년을 베오날드 폰 노이멀로 잠정적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이번 사태는 너무나 여파가 크니 우선은 비밀로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네. ‘신마법’의 성패와 관련부터 시작해서… 베오날드 폰 노이멀 님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까지 일단 여기 있는 분들끼리만 알아 두는 게 어떤가?”
“이견 없습니다.”
“저도 이견 없습니다.”
“…지금 들은 저희도 머리가 아픈데, 밖으로 나가면 혼란이 더욱 커지겠지요. 후우~”
“아무튼 나도 일단 베오날드 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러 가 보겠네!”
“아! 나도! 나도!”
일단 이야기는 정리됨과 동시에 학부장들이 모두 베오날드에게 몰려들어서 각종 질문을 던져 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학부장 이전에 각자 분야의 마법에 미친 자들로 더 높은 경지와 지식에 목말라 하는 자들이었는데, 500년 전의 사람, 그것도 마탑의 전설이었던 인물에다 500년의 시간을 건너서 나타났기에 진위 여부를 밝히는 의미도 있지만 일단 마법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잠깐! 여기서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지 말고… 씻고 정리하고, 식사랑 맛있는 술 정도는 가지고 와서 이야기합시다. 이런 엉망인 장소에서 서서 할 게 아니라 한… 2시간… 아니, 3시간! 뒤에 여기서! 다리온 왕, 준비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베오날드 님. 그러니 다들 일단은 물러나시고 저녁때 다시 모입시다.”
자신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며 대우하는 다리온 왕의 태도를 보자 다들 동의하여 일단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베오날드, 다리온 왕, 단테 다이나, 아르젠 학부장, 셀리나, 제미니 교수뿐이었다.
높으신 분들이 다 물러가자 가장 먼저 베오날드에게 다가온 것은 역시 따질 일이 가장 많은 셀리나였다.
“저기, 지금 한 말 사실인가요? 아니, 설마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알리지 않은 거예요? 맙소사, 당신이 그 전설의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니!”
“저도 믿기지가 않을 지경입니다.”
뒤로 따라온 아르젠도 충격이 큰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베오날드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도 충격이 큰 것이 그저 먼 친척이라 이야기했고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자신의 가문 선조, 그것도 유명하디유명한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고 하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 일부러 이야기 안 하긴 했지. 하지만 들어 보라고. 이런 자리에서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람들의 증언이 있지 않은 이상 너희에게 미리 말한다고 해서 너희가 내 정체를 믿었을까?”
“아…….”
“으으음…….”
“물론 믿게 할 순 있었지. 하지만 과연 너희가 쉽게 믿었을까? 그리고, 믿는다고 해도 의심과 의혹을 상당히 품고 있었겠지. 그러면 그건 밝히지 않으니만 못한 일이지. 적어도 여기는 사령술사와 흑마법사, 달켄 다이나라고 하는 권위 있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어와 주니 설득력이 커져서 신뢰할 수 있는 거니 말이지. 반대로 물어보지. 아르젠, 너는 지금 내가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는 걸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나?”
“…윽!”
베오날드의 날카로운 대답에 두 사람은 본전도 못 찾고 찍 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500년 전 죽은 사람, 그것도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 같은 인물이 스스로 되살아났다고 말한들 믿을 수 없을뿐더러, 증거를 보여 줘서 믿는다고 해도 가슴 한편에 의심의 그림자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너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예, 그러죠. 근데 이거 발데리안 가문에서 알면 난리 나겠는데요?”
“발데리안 가문만 난리 날까요? 대륙 전체가 충격을 받을 겁니다. 특히나 교단에서는 마왕의 부활과 동급으로 취급할걸요?”
“그래서 내가 비밀로 해 두라고 한 거지 않냐? 하아~ 아무튼 우선은 씻고 정리부터 하지. 저녁때… 또 지식욕에 목마른 저자들을 상대해야 할 테니 말이야.”
베오날드는 그리 말하며 아주 능숙하게 이 다리온 가문의 저택이 제 것이라도 되는 것인 양 다리온 왕에게 안내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아무리 정체를 밝혔다곤 하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인데 저렇게 태연히 부리는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사람인 건 맞는다고 생각하며 아르젠은 아르젠대로, 셀리나는 셀리나대로 베오날드의 정체에 대해 납득하게 된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그 뒤로 우선 자신의 육체 치료와 더불어 다리온 왕의 다리를 망가뜨린 수식을 복구해 주고, 목욕 재개와 휴식을 마치고 난 뒤, 다이나 가문에서 마련해 준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새로이 마련된 저녁 만찬의 자리에 참석했다.
그가 만든 트랩으로 인해서 뚫린 천장이 여전했지만 나름 달빛이 아래로 비추어서 운치가 있는 모습이었다.
베오날드는 화려하게 마련된 만찬 자리의 최고 상석에 아주 자연스럽게 앉으면서 옆에 나란히 앉은 다리온 왕을 보며 태연히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조금 우려되는군. 500년이 지났지만 나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가문들이 있을 텐데 말이지. 또 그 학부장급들이 전부 입이 무거울지도 의문이고 말이야.”
“아마 직속 제자 정도에겐 알려 두었겠지요.”
“뭐,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이겠지. 내가 우려하는 건 이제… 그 남쪽에서 한바탕 난동 부리는 우리 딸내미가 이걸 아는 게 문제라서 말이지.”
“아, 라라 폰 노이멀 이야기군요. 알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아니, 서로 칼을 겨누게 될 입장인데, 좋을 리가 있나?”
마왕과 계약을 해서 영혼을 판 딸의 상황. 자신은 여신의 노예가 되어 지금 생을 얻어 여기 강림해서 그 반대편에 있다.
그러니 딸이 알아 봐야 그 마음과 영혼의 고통만 증가시킬 뿐, 서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건 정원 내의 사람과 가족을 사랑하는 베오날드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용사의 손에 처리하게 해야겠지. 하아아아~”
“용사… 입니까?”
“그래, 마왕 잡으라고 신이 보내는 암살자 같은 거… 라라 녀석이 마왕과 계약했으니 말이야. 참고로 난 여신과 계약해서 여기 있다. 믿고 말고는 네 마음이지만…….”
“‘마왕을 잡는다.’라……. ‘분노의 마왕’에 대한 기록이 몇 개 있습니다만, 보시겠습니까?”
“있어? 하긴 어둠학부뿐만 아니라 모든 학부에서 손을 댈 마법의 ‘신비’ 중 하나이니 말이지. 사람들이 오는 동안… 잠깐 볼까?”
베오날드는 흔쾌히 수락하며 다리온 왕에게서 자료를 전달받아서 ‘분노의 마왕’에 대한 기록들을 보기 시작했다.
<날짜:(지워짐)>
<…분노의 마왕이 오늘 또다시 전장에 나왔다. 그는 4개의 용의 머리와 거대한 육체를 움직이며 우리 군세를 향해 당당히 다가왔으며, 용맹스러운 우리 군사들과 마법사들은 그에게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분노의 마왕은 그야말로 재해 그 자체였다.
그의 주먹질 한 번에 하늘이 갈라져 날씨가 변하고, 발 구르기 한 번에 땅이 갈라져 천 명의 병사들이 그대로 땅에 빠져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수많은 오러를 두른 기사들의 무용은 마왕의 주먹 앞에 허무했고, 마법사들의 마법은 그가 펼치는 천지 격동의 마법에…….>
“…뭐야, 이거? 이게 기록? 신화 이야기같이 두루뭉술한 것뿐이잖아.”
“일단은 전해져 오는 기록입니다. 달켄 다이나 선조님이 말씀하신 거니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가? 하아~ 참 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는 허황된 내용이었지만 하나 감을 잡을 수 있는 건, 역시나 이 마왕은 X나게 세다는 거 하나만큼은 받아들여진 베오날드였다.
그렇지만 결국 마왕의 상대는 용사님인지가 하게 될 거니 자신은 별 신경 안 쓰는 베오날드.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그 망할 여신이 자신에게 마왕 처리를 떠넘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에이, 설마? 하지만… 혹시…….’
여신의 인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베오날드는 살짝 싸늘함을 느끼며 불안감에 싸이지만 이내 떨쳐 냈다.
아무리 여신이 양심이 없어도 그렇지, 다이나 왕과 빌빌거리며 싸웠던 자신을 보고 설마 마왕 공략을 맡기진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연금학부 학부장 아르젠 님이 입장하십니다!]
“슬슬 오기 시작했군요. 베오날드 님.”
“알았어. 이건 나중에 보도록 하지.”
그러고는 그는 잠시 뒤, 파티에 맞는 복장과 새로운 차림새로 몰려오는 이곳 다이나 왕국의 각 학부장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그들을 어떻게 구워삶아야 자신에게 협력할지 생각하며 가장 먼저 온 아르젠을 맞이하러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