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결국 최후를 맞이한 달켄 다이나였고,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에 대해선 달켄 다이나가 이런 최후를 맞이하기 한 달 전, 베오날드가 다리온을 쓰러뜨리고 난 뒤의 시점으로 잠시 다시 돌아간다.
“하아아~ 이러면 어쩔 수 없군.”
“뭘… 하시려는 겁니까?”
“기도.”
베오날드는 하는 수 없이 성수를 꺼내어서 자신에게 뿌린 다음 무릎을 꿇고 나름 경건한 마음을 다해서 신을 찾는다.
지금 이 망할 상황, 도저히 신이 아니면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뭐 하시는 것인지요? 분명 듣기로는 생전엔 신 따위 전혀 믿지 않고, 여신상 가지고 성희롱이나 하셨다고 들었는…….”
“쉿! 집중 흐트러져.”
“아, 예.”
옆에서 다리온의 태클을 무시하고, 베오날드는 눈을 감고 기도에 집중한다.
달켄 다이나를 쫓을 방안까진 아니어도 지금 이게 망한 건지, 괜찮은 건지 정도는 확인해 둬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몇 분가량 신을 찾으며 기도에 집중했을까? 눈을 감고 있는데 드디어 머릿속에 여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불렀나요?]
‘예! 불렀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달켄 다이나를 놓쳤습니다! 어떻게 하죠?’
[이제 괜찮습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더 많은 말은 못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요.]
‘네?’
[당신의 일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야?”
그렇게 베오날드는 금방 정신을 차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여신님이다.
이렇게 몸이 부서져라 굴렀는데, 고작 저따위로 말하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필멸자인 인간이 신에게 따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우우… 아무튼 내 일은 여기까지라는 건가?”
“방금 그거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
“그 기도하실 때,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 같은 게 떠 있으셨는데 말입니다. 정말 신과 통하신 겁니까? 분명 베오날드 님은 마나를 못 다루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면 혹시 뭔가 마도구입니까? 통신을 한 겁니까?”
“…하아아~ 비밀이다. 아무튼 달켄 다이나에 대해선 더 뭘 할 수 없겠지만…….”
망할 여신이 말하는 투를 보니 대충 이 뒤의 일은 그냥 놔둬도 해결되는 흐름이라는 걸 예상한 베오날드였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여유로운 투로 말할 리 없을 것이다.
즉, 달켄 다이나는 어떻게 되든 간에 실패한다는 결론. 그러니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그냥 둬야겠고… 여기서 할 일이나 해야겠군.”
“뭘 하실 겁니까?”
“일단은 승자의 권리를 챙기는 거지. 자, 다리온 군, 내기 하나 하지 않겠나? 달켄 다이나 그 영감탱이가 과연 신마법을 성공시킬지 아니면 실패할지로 말이지.”
“조건이 어떻습니까?”
“달켄 영감이 실패해서 내가 이기면 이 다이나 왕국을 받지. 어차피 서로 나뉜 채로 계속 싸우면 연구도 못하고 머리 아플 거 아닌가? 속 시원하게 한 명이 굴복하고 끝나는 게 좋지. 반대로 달켄 영감이 성공하면 나는 물론이고 대륙에 잠든 내 유산들, 싹 다이나 가문에 넘기도록 하지.”
아까 전 여신의 태도를 믿고 크게 한번 질러 보는 베오날드였다.
물론 받아 줄지는 몰랐지만 일단 한번 내질러서 동요를 시키고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는 목적도 포함된 말이었다.
“흐음… 그거 나쁘지 않은 조건이군요. 베오날드 폰 노이멀의 유산이라면 들은 바가 있으니 말입니다. 어차피 선조님께서 실패하고 또 제가 진다면 얌전히 베오날드 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호오?”
“베오날드 님과 싸워 봐야 이 마도의 낙원을 손상시킬 뿐이고, 혹시나 분열되면 왕국의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지요. 그럴 바엔 차라리 베오날드 님 아래에서 그냥 지키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속물이지만 마도의 가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계산하시는 분이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그 망할 영감탱이가……!”
“고로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이나 왕국의 안전, 그리고 기껏 만든 마법사들의 낙원을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다리온 왕은 베오날드의 내기를 받아들인다.
이 왕국의 특수한 환경 덕분에 어처구니없었지만 내기는 성사되었고, 합의는 된 셈이었다.
합의가 되고, 베오날드는 다리온을 부축해서 위로 올라가서 아직도 싸우는 마법사들의 내전을 말리기로 한다.
“자, 얼른 가자. 누가 죽거나 하면 합의하는 데 골치가 아프다고……. 그나저나 너 참 더럽게 무겁네!”
“예.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서 말인데,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베오날드 님.”
“뭔데?”
“그, 저는… 달켄 다이나 선조님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베오날드 님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뭐?”
뜬금없는 소리에 경악할 듯 놀라는 베오날드. 다리온은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미묘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달켄 다이나 선조님께서 알테리오 폰 노이멀 선조님의 따님과 다이나 가문 사람을 결혼시켰는데, 그 직계가 바로 저입니다.”
“세상에나!”
“노이멀 가문은 정말 좋아하진 않지만 베오날드 님의 재능은… 갖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거대 명문가끼리의 결합과 혼약은 이 시대에 흔히 일어나는 일로 자신이 몰락시켰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베오날드의 뛰어남과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나름 총명하고 능력 있던 알테리오의 능력을 아는 달켄 다이나는 그 후손과 자신의 후손을 짝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이 다이나 왕국의 왕이 된 뛰어난 ‘부여 마법’의 천재인 다리온 다이나로 확실히 성과를 낸 것이었다.
“허어~ 그것참!”
“애초에 그런 관계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뛰어나도 노이멀 가문인 아르젠에게 우리 다이나 가문의 일을 맡기는 게 이상하다곤 생각 안 하셨습니까?”
“아니, 실력이 뛰어나니까 알아서 하는구나 했지. 그리고 아르젠은 그 이야기를 전혀 안 했거든. 게다가 500년 전으로 올라가면 까마득해지잖아. 라곤 해도… 으으음…….”
후손이라는 말에 기이한 느낌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베오날드였다.
부친 벨릭스 폰 노이멀의 막장 가족 정책 때문에 가족에 대한 열망이 컸던 그는 자식들은 물론 손주들까지도 엄청 소중히 여겼던 남자였다.
그러니 후손이라고 하는 순간 이 우락부락한 다리온에게도 유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군. 그런가? 아, 하긴… 좋은 혈통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건 또 명문가의 상식… 헉! 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지?”
“다이나 가문과 달켄 다이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원하신다면 가문의 가계도라든가 자료실을 개방해서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올라가서 볼일부터 보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리온 왕을 부축하는 게 좀 더 정성스러워진 베오날드였다.
하나 우선은 먼저 위로 올라가서 각 학부 마법사들의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게 먼저였다.
가면서 이제 먼저 싸우고 있던 아르젠과 점액질 성수에 마비되었던 리치, 그리고 흑마법사들까지 모두 데리고서 올라온 다리온 왕은 마법 대전이 펼쳐진 전장을 향해서 외쳤다.
“다들 싸움을 멈추게! 이미 나는 이 베오날드 님과 자웅을 겨루어 승부를 내었고,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어졌네.”
“다리온 왕?”
“베오날드 님이군요!”
“으으음…….”
“뭐가 되었든 결론이 난 건가?”
싸우던 각 학부장급 마법사들은 다리온과 베오날드를 보자 일단 싸움을 멈추고 내려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온이 직접 베오날드의 부축을 받은 채로 현재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달켄 다이나는 ‘베노피스’로 가서 ‘신마법’을 시전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뭐라고?”
“아니, 잠깐,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립니까?”
“기어이 저질렀구먼.”
“당장 베노피스에 지금 메테오를…….”
당연히 각 학부장들과 마법사들 중에서 베오날드의 의견에 따라 ‘신마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금세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제미니 교수와 셀리나는 충격적인 눈으로 베오날드를 보고 있었는데, 신마법을 막는다고 하던 그가 막지 못했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베오날드는 슬슬 자신의 차례라 생각하고 부축을 다이나 가문의 마법사에게 맡기고 나섰다.
“자,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신마법’을 시도하러 갔다곤 하지만 아직 성공한 게 아닙니다. 그 정도 대규모 마법을 혼자서 시전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할 거고 또 실수할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 구현되기 전까지는 실현된 것도 아니고 말이죠.”
“으음… 하긴 여기서 설비와 마법진을 사전에 설치하고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영창을 해서 시전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 주문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마력은 어떻게 수급했지?”
“베노피스엔 성맥(星脈)이 있으니까 그걸로 해결했겠지. 노이멀 가문의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 찾은 별의 심장, 무한의 마력이 나오는 샘이니…….”
베오날드의 말을 들은 학부장들은 다들 똑똑한 자들답게 금방 이해하면서 달켄 다이나가 ‘신마법’을 펼치긴 해도 혼자서 영창으로 해야 하는 만큼 부담도 크고, 실패율이 높다는 것을 감지해서 일단 진정하게 되지만 그래도 결국 성공할 가능성도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그럼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아니면 마왕이 잠들어 있는 베노피스를 저기 ‘신마법’ 찬성파 분들을 뚫고 가시겠습니까? 차라리 여기서 저 ‘신마법’ 찬성파 분들을 감시하시겠습니까?”
“으으음…….”
“아니면 여기서 내전으로 상하를 가리고 난 다음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러면 마법사들의 낙원인 이 다이나 왕국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그건 다들 원하지 않으시겠죠? 과거의 마탑이 어떻게 망한 건지를 생각하면 말이죠.”
베오날드가 과거 자신의 유산을 두고 서로 분열해서 싸우다가 망한 과거의 마탑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되기 시작한다.
과거의 역사, 그리고 현실적인 상황을 모두 제시하니 다들 전의는 사라지게 되고, 결국 달켄 다이나에 대한 판단은 이제 그가 홀로 ‘신마법’을 성공하느냐, 마느냐로 갈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신마법 찬성파 분들은… 혹시나 도우러 가거나 하실 생각은 마시길 바랍니다. 아까 말한 대로 감시할 거니 말이죠.”
“하나만 더 묻지.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갈리나?”
“베노피스를 뚫고 가진 못해도 멀리서 보는 건 할 수 있잖습니까? 그만큼의 대규모 마법을 시전하게 되면 경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역마든, 악마든, 언데드든… 아니면 마족과 인연이 있는 어둠학부의 힘을 빌려도 되고 말이죠. 자, 다들 이걸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마탑이 붕괴되는 것보단 나으니…….”
“이미 도망간 상태였을 줄이야.”
“…쩝…….”
다들 아니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마탑의 미래와 현 상황 모두를 지키려면 지금의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신마법’의 찬성파인 어둠학부, 사령학부 같은 경우 지금의 다이나 왕국이 사라지게 되면 또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가서 몰래 연구해야 하기도 하니 다이나 왕국의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반대파는 더 말하면 입만 아픈 수준이고 말이다.
“그런데 자네는 누구지? 제미니 교수나 아르젠 학부장이 투입한 친구 같은데, 왜 그를 두고 자네가 말하는 거지?”
“아, 그러니까 그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아르젠 학부장님.”
어떻게 보면 아르젠보다 더 젊어 보이는 베오날드가 건방지게 나서서 말한 꼴이 된 것 같은 모습에 학부장 하나가 지적을 하자, 베오날드는 아르젠이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고 하는 걸 막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생각했다.
‘그럼 이제 패를 까 볼까?’
지금 이 집단이라면… 그리고 다리온 왕과 사령학부, 어둠학부라는 특수한 존재들까지 있고, 이 다이나 왕국의 전권을 손에 쥐려면 여기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 그는 입을 열어 진짜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