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갑자기 뭐지?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인가?’
다리온은 마치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베오날드를 보며 묘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너무 두들겨 패서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걸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주제에 어디서 저렇게 여유가 나오는 걸까?
“…이건 필요 없겠군.”
‘검을 버렸다고?’
심지어 검사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검까지 버리고 베오날드는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지금 자신을 맨몸으로 상대하겠다는 것에 어처구니없음이 2배로 늘어나는 다리온이었다.
검을 들고, 기이한 마도구까지 써도 못 이기는 주제에 맨손이라니? 황당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는 그였다.
“머리라도 잘못 맞은 겁니까?”
“왜? 쫄리나? 들어와.”
“후우우… 끝장을 내 드리지요.”
스으읍…….
심호흡을 한 다리온은 정신을 집중하여 힘을 끌어 올리고 화살이 튀어 나가듯 발을 차고 베오날드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혹시라도 모를 함정에 대비해서 다리온은 베오날드가 무언가를 꾸미는 거나 다른 수단을 준비했을지 몰라서 약간 손속에 여유를 두었지만, 베오날드는 그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맞는 건 똑같았다.
‘뭐지? 별거 없잖아.’
“크헉!”
또다시 땅을 구르면서 먼지투성이가 되는 베오날드. 검을 들 때보다 더 쉬운 다리온은 대체 베오날드가 왜 저러는지 기묘할 따름이었다.
하나 결국 이게 끝이라면 끝장을 보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다리온이었기에 그는 쳐 죽일 기세로 베오날드에게 강권을 계속해서 후려갈기면서 쫓아간다.
“죽으십시오.”
“…으으으윽! 끄아아아악!”
뼈를 부수고, 근육을 짓이기며 다리온은 베오날드를 죽일 생각으로 죽어라 공격하지만 기이하게도 베오날드는 땅을 구르고,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데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오러의 힘으로 좀 더 질기게 버티는 것뿐, 아직도 자신의 손끝 하나에도 피해 하나 못 입히는 압도적인 전황이었다.
“…후우~ 때리는 제가 지칠 지경이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버티시는 겁니까?”
“하아?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과… 연… 그… 럴까?”
상처투성이 상태로 휘청거리면서도 베오날드는 당당하게 다리온을 노려보면서 오만하게 말한다.
다리온은 정말로 그가 정신이 나가 버렸구나 확신하고, 그만 고통을 끝내 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가다듬고, 마력을 움직였다.
“음?”
그 순간! 마치 돌부리에라도 걸린 듯 왼쪽 다리가 갑자기 굳은 다리온이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의 다리를 보는데, 거기엔 천이 어느새 찢어진 채로 맨다리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술식’이 새겨져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마치 문신을 새긴 것처럼 빛나지 않는 다른 술식들이 아주 빼곡하게 그의 몸을 덮고 있었다.
“설마… 눈치채신 겁니까?”
다리온은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베오날드를 바라보았고, 땅에 널브러졌던 베오날드는 포션을 입에 넣고 마시면서 힘겹게 일어섰다.
“하아… 하아… 으윽! 같은 ‘전공’인데… 왜 눈치 못 채겠어? 하아… 하아… 내가 500년 전 사람이라고… 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 이 인간 마도서 놈아.”
“…….”
“마법사들 중 미친놈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내 생전 자기 몸에 술식을 새겨서… 마도서… 아니, 마도구로 만드는 놈은 생전 처음이다! 이런 또라이 자식아!”
다리온의 육체의 원리를 파악한 베오날드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위화감을 가진 것은 자신의 품 쪽까지 들어와서 공격을 했을 때, 로브 안으로 살짝 빛이 나는 것과 베오날드가 다리온을 만졌을 때의 촉감이 기이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몇 차례의 공방 동안 베오날드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방어 일변도로 상대했고, 그 결과 다리온의 육체에 어떤 원리가 적용된 건지 파악하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 몸에 새기는 술식은… 노예 낙인이라든가, 죄인의 낙인을 새기는 건, 그건 결국 그 대상을 복종시키기 위함이고,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빼앗거나 고통을 주는 것일 뿐, 보통은 육체에 새기진 않는다. 과거엔 ‘룬’이라고 하는 특수한 술식도 있다고 전해지지만 몸에 새기는 것은 극히 일부였을 뿐 너처럼 자기 몸에 마도서처럼 새기진 않아.”
“역시 베오날드 폰 노이멀 님이군요. 아주 정확하게 분석하셨습니다.”
스륵… 펄럭!
다리온은 로브를 집어 던지고 안의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처럼 위장한 로브 아래엔 강철처럼 단련된 근육과 육중한 체구의 자태가 나오면서 동시에 빼곡하게 새겨진 마법 술식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수작을 부린 왼쪽 다리 부분을 제외하고 그 수많은 술식들이 계속 빛났다가 꺼졌다가 하면서 다리온의 마력을 사용 중이었다.
“역시나……. 하나 그렇게 한다면 술식을 발동할 때마다 육체는 계속 망가질 텐데? 어떻게 극복한 거지? 애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을 새기고 멀쩡한 거냐?”
“모든 건 계산입니다. 술식의 최적화와 효율화, 그리고 마력 반동과 새길 때의 상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단련까지 모두 철저히 계산해서 이루어 낸 결실이지요. 덕분에 지금 이렇게 육탄전뿐만 아니라 마법도…….”
화르르륵!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거대한 화염구를 생성하는 다리온 다이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육체에서 이 ‘화염구’ 마법에 해당하는 술식들이 빛나면서 마법을 활성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의 육체는 마도서인 동시에 마도구. 새겨진 모든 마법을 언제, 어디서든 의지만 가지고 즉시 발동하거나 해제하는 것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대단한 성과다. 나라도 네게 대마법사의 호칭을 부여했을 거야. 마법사들의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함과 동시에 무수한 가능성을 너는 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하나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 네 몸에 새긴 것 때문에 결국 네 육체가 버틸 수 있는 마력의 한계까지만 그 술식들을 구현할 수 있지 않나? 괜히 강철이나 미스릴, 아다만티움 같은 마도구에 새기는 게 아니지.”
몸에 새긴 술식의 마력의 운용은 결국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활용이 가능하다.
마력은 어떻게든 외부에서 보충할 수단이 있지만 술식을 새긴 인간의 육체는 결국 피, 살과 가죽, 뼈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육체는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기 마련. 저 다리온 다이나는 그 마법의 한계를 늘리기 위해서 저 강건한 육체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그리고 겸사겸사 이상한 권법도 익혔고 말이다.
“하나 육체에 새기기 위해서 필시 술식들을 최적화의 극한까지 해낸 것은 사실. 또 그 육체를 가꾸고 유지하는 데 뼈를 깎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음은 확실해. 박수가 절로 나올 지경이군.”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하나 제 다리 하나만 막았다곤 해도 제 전력은 아직…….”
뚜둑! …툭! 뚝… 쩌적!
다리온이 다시 마력을 움직여 다른 신체 부위에 있는 술식들을 발동해서 움직이려고 하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가 갈라지며 찢어지고, 술식들이 비틀어지며, 마력이 마구 새어 나온다.
육체의 붕괴가 시작된 것에 놀란 다리온은 고통보다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며 베오날드를 바라보게 된다.
“대, 대체 무슨 수작을?”
“딱히 별거 안 했어. 그냥 그 다리 쪽에 슬쩍 새겨 넣은 술식에 있잖아. ‘증폭 부여’, 마력을 더 써서 효과를 증가시켜라. 이거 한 줄 넣었지.”
“으으윽! 고, 고작 그거?”
“어, 너는 최적화한 술식을 새겨 넣고, 마력의 부담, 육체가 견딜 수 있는 한도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최적의 값을 찾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건 최적의 값이 아니야. 그건 ‘한계치’지. 너는 그동안 컵에 물을 담을 수 있는 한 최대로 담고서 움직인 거야. 그리고 그 상태로 움직이는 건 이제 육체 단련과 술식 제어로 해결했지만, 문제는 아주 조그마한 균열과 실수에도 금방 무너지는 거지.”
담담하게 다리온의 실책에 대해서 설명해 준 베오날드는 여유 있게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면서 포션을 마시고, 한숨을 돌린다.
어차피 이미 다리온은 육체 붕괴가 시작된 마당이라서 온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마력은 거두어서 안정화되었지만 지금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것도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하나 육체의 고통보다는 여태껏 깨닫지 못한 자신의 결점을 깨달은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윽! 그, 그럴 수가!”
“아무튼 마력을 거두고,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마라. 한번 망가진 건 완전히 고치기 전엔 억지로 움직일 순 없어. 파괴만 가속화될 뿐이야. 바퀴가 망가진 수레를 억지로 밀어 봐야 더 부서지는 거나 마찬가지.”
친절하게 말해 주는 베오날드였지만 다리온은 이렇게 허무하게 입장이 역전된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건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베오날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짧은 시간, 심지어 죽을 지경으로 얻어맞으면서 자신의 육체를 해석하고, 술식까지 새겨 넣은 베오날드에 대해 절대 우습게 봐선 안 될 사람을 우습게 본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설마… 이렇게 패배할 줄이야.”
“흥, 베오날드 폰 노이멀에게 진 거니까 너무 자괴감 갖지 않아도 된다. 아~ 그나저나 젠장… 이제야 여기저기 아파 오는군.”
털썩!
전투의 흥분이 사라지자, 전신에 격통이 밀려와 쓰러지는 베오날드. 포션과 강장제로 버티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지금 완전히 탈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아직 한 명 더 쓰러뜨려야 할 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으으윽… 젠장! 이건 진짜진짜 아껴 놓은 건데… 젠장!”
그러곤 가방에서 보석으로 치장된 병에 있는 포션을 꺼내어 입에 넣는 베오날드. 이건 자신의 유적 어느 곳이든 한 병씩 있는 비상약으로 전설로만 듣던 엘릭서였다.
한 병 만드는 데 베오날드조차 식겁할 액수가 들어가는 이것은 진짜 정말로 중요하고 누군가 죽을 위기 때만 반출해서 써야 한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런 때에 사용하는 게 너무나 아까운 것이었다.
“후우우… 그래도 효과는 좋군. 스으읍… 후아아아~ 읏챠!”
그래도 약효는 제대로인지 아프던 통증이 사라지면서 몸 상태가 좋아지는 걸 느낀 베오날드였다.
하긴 이 약병 하나에 때려 부운 액수가 얼마인데, 효과가 나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억울한 베오날드는 힘겹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곤 아직도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고통을 견디는 다리온에게 가서 남는 포션을 부어 주며 치료를 도와주었다.
“이건 무슨 짓입니까?”
“어차피 승패 갈렸고, 너는 그 상태로 아무것도 못하지. 그리고 죽긴 아까운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살리는 거니까 순순히 달켄 다이나 그 노친네 있는 데나 불어. 어디 있어?”
“후우우… 어차피 진 몸이고, 큰 지장은 없을 거니 말해 드리지요. 선조님은 지금 여기에 안 계십니다.”
“…뭐?”
“선조님은 그… 베오날드 님이 보낸 물건에 의해서 이 연구소가 파괴된 그날, 여길 떠나셨습니다.”
“…여길 떠나다니, 마법사가 자기 공방을 버릴 리가 없는데?”
설사 부서졌어도 연구하던 시설과 자료가 다 여기 있으니 어디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내려오는 길에 만난 리치부터 시작해서 이놈까지 이렇게 방비가 잘되어 있는 것이고. 그런데 여기에 달켄 다이나가 없다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미 선조님의 연구와 연산은 끝난 상태입니다. 남은 건 그저 필요한 재료와 마력… 그리고 테스트의 문제일 뿐. 한데 그걸 준비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사용했는데, 베오날드 님이 그걸 막아 버리셨고 게다가… 단숨에 수백 년의 공을 날려 버리셨죠.”
“원래 부수는 건 쉬운 법이니까……. 그러면 대체 어디로… 아니, 잠깐만, 설마 그 노친네, ‘베노피스’로 간 건가?”
연구와 연산이 완료가 되었다면 결국 남은 건 실행할 장소가 필요했고,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이 ‘마력’이라고 한다면 베오날드가 아는 이상 단 한 곳밖에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베노피스’. 베오날드의 영지, 그리고 별의 심장인 ‘성맥(星脈)’이 존재하는 땅.
별의 심장에 있기에 마력은 무한대로 솟아나는 거나 마찬가지. 그곳이라면 달켄 다이나가 원하는 대규모 주문도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예, 맞습니다. 선조님은 어디 동화책이나 전설에 나오는 악당이 아니시니 말이죠.”
“젠장… 당장 쫓아야!”
“어차피 가셔도 소용없습니다. 현 베노피스는 현재 마족 군단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젠장! 뭐야, 그럼?”
털썩!
베오날드는 허망하다는 듯 땅에 주저앉는다.
이러면 자신이 대체 뭐가 되는 건가? 달켄 다이나를 막기 위해서 온갖 수작 다 부리며 싸웠는데, 이곳에 없다니!
충격을 받은 그는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 일을 시킨 여신을 속으로 찾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