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라곤 해도 솔직히 엄청 쫄리는군. 쳇! 이런 건 영 안 맞는데…….’
이 세상에서 베오날드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를 찾자면 바로 용맹과 투지, 두 글자일 것이다.
분명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베오날드에겐 영 체질에 맞지 않는 것으로, 그는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면 기꺼이 도망치는 걸 택할 수 있는 비겁함을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이런 불확실하고, 강력한 적을 상대하는 일은 더더욱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지옥행 면제를 담보로 신의 노예가 돼서 일하는 처지였고, 지금 이 앞을 뚫지 않으면 달켄 다이나를 막을 수도 없다.
“자, 그럼… 간다!”
“언제든 오시지요, 대연금술사님.”
속으론 불안에 떨어도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검을 들고 오러를 끌어 올린 베오날드는 다른 수가 없었기에 단기 결전으로 가기로 한다.
하나 상대의 패를 아무것도 보지 않고, 모든 수단을 다 쓰는 것이 어리석다는 건 이미 배웠기에 이번엔 검기와 ‘볼트 슈터’를 동시에 활용하고자 했다.
격발 소리와 함께 보랏빛 검기가 다시금 다리온을 향해 날아갔고, 이번엔 아까처럼 순간 이동 기습이 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시시한 짓이군요. 흠! 핫!”
‘…어?’
다리온은 낮은 신음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러서 검기를 막아 내고, 자신의 코앞으로 날아온 ‘볼트 슈터’의 탄환을 두 손가락으로 잡는 신기를 보여 주었다.
베오날드는 그것을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까 전 보호막으로 막힌 건 마법이니 그렇다 치지만 이 속도와 위력을 맨손으로 잡아 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저놈은? 부여술사가 맞아? 아니, 그 이전에 저게 마법사? 그렇다면!’
이번엔 피하지 못하게 베오날드는 직접 만든 마정석 폭탄을 던지면서 뒤로 물러나서 마도구를 착용하기로 했다.
본래 마법진이나 연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거지만 지금은 수단을 아낄 수가 없었기에 기꺼이 불하, 그리고 그사이에 뒤로 물러난 베오날드는 ‘근력 강화’가 새겨진 장갑과 ‘민첩성 증가’가 새겨진 벨트, ‘보호 마법’이 걸린 반지 등등… 마력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아껴 둔 마도구들을 모두 착용했다.
“괴물 같은 놈…….”
분명 폭발은 제대로 일어났다.
그 증거로 지금 눈앞에 상당히 파인 땅이라든가, 아까 일어났던 진동, 거기에 피어오른 먼지까지, 위력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폭발의 잔해 속에서 나오는 다리온을 바라보는데, 놈은 로브가 좀 그을리고 탄 것 외에는 전혀 타격이 없는 모습이었다.
“꽤 놀라셨나 보군요.”
“너 같은 마법사는… 처음 봐서 말이지.”
“예. 보통 마법사라고 한다면 나약한 육체를 가진, 후방에서 안전하게 마법을 던지는 존재라 여겨지니 말입니다.”
“애초에 네가 부여 마법 전공이라는 것도 의심스러운데 말이지.”
“그건 직접 탐구하시길 바랍니다. 흠!”
파앙!
공기를 찢는 소리가 일어나면서 또다시 다리온의 모습이 사라졌다.
베오날드는 이번엔 그의 기척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긴장한 채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대응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리온의 신영이 흐릿하게 보이는 순간, 그는 기묘한 자세와 함께 팔꿈치를 자신의 명치로 찔러 들어오는 것을 빠르게 캐치! 베오날드는 검면으로 그것을 막아 냈다.
“윽!”
팔목과 전신에 전해져 오는 묵직한 느낌. 저 깔끔한 자세 하며 단련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온 이 무예가 어디가 부여 마법의 힘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베오날드였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는 로브나 지팡이는 특별한 물건 같지도 않아 보였는데, 기이하게도 놈은 막강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좀 더 하고 싶었지만, 다리온의 맹공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합! 흐음!”
‘게다가 이 주먹질은… 대체 뭐야?’
칼날을 막아 내는 건 마력을 두르거나 했다고 쳐도 이 비정상적인 파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문을 떠올린 순간, 가드가 느슨해지며 베오날드는 다리온의 공격을 허가하게 되었다.
“흐음!”
“크헉!”
쿠우웅!
발을 땅에 구르자 파이면서 동시에 팔꿈치가 명치를 향해 뚫듯이 가격하자, 베오날드는 혼절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땅을 굴렀다.
마도구를 착용했음에도 힘과 스피드, 위력 모든 것이 자신보다 압도적인 상대였다.
“크윽… 젠장! 무지막지한 놈 같으니……!”
하지만 쓰러질 순 없었기에 검을 지지대 삼아 일어나면서 다가오는 다리온 다이나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서서히 일어났다.
무력을 겸비한 마법사라니. 웃기지도 않을 지경으로 뭔가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 하는데, 다리온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아쉽게도 선조님의 명이라 죽일 수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크아아악!”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고, 게다가 몸의 뼈가 울리는 걸 넘어서 이미 몇 군데 부러진 것 같은 격통에 베오날드는 땅을 구르면서도 어떻게든 포션을 마셔 가며 버텨 보려고 하지만 솔직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뭐 저딴 게 다 있어? 게다가 저 이상한 주먹질은 대체…….’
“보아하니 검술은 익히신 것 같지만 권법에 대해선 모르시는 것 같군요. 하긴 한 제국은 통일 제국 붕괴 이후… 동쪽 바다에서 건너온 이들에 의해 건국되었고, 이건 그 한 제국의 무인들이 쓰는 격투술이니 말이죠.”
“아니, 그건 마법이 아니잖아. 평범한… 무술인데?”
“이 무술은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예. 검에 마법을 부여해서 휘두르는 것처럼 제 마법을 부여한 것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주는 것뿐이죠.”
‘그러면… 잠깐?’
다리온의 그 말에 베오날드의 머리가 번뜩였다.
그러고 보면 다리온은 처음에만 마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공격을 막았을 뿐, 그 이후엔 계속 주먹질과 몸으로 하는 기예만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결국 지금 이 신체 능력과 힘이 바로 그 ‘마법’의 힘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네놈… 설마 몸에다가 ‘술식’을? 크으윽…….”
열심히 두드려 맞고, 땅을 구르다가 힘겹게 일어난 베오날드가 자신의 추리를 말해 주자, 다리온은 눈을 빛내면서 흥미를 띤 시선으로 베오날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명석하신 분답게 빨리 알아차리셨군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근접한 것이지 정확한 건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걸… 알려 드릴 순 없죠. 직접 몸으로 알아내십시오. 흠!”
터어엉!
낮은 기합과 함께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베오날드에게 달려오는 다리온이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상황. 검으로 대응해 보려고 하지만 이 다리온이라는 자, 마법으로 상승시킨 신체 능력에 맞는 권법을 가지고 와서인지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했고, 또 생전 처음 보는 공격들이라서 하나의 공격 다음 수를 모른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좋아, 막았… 어?’
“철산고(鉄山靠)!”
“컥!”
투우웅!
주먹을 막았나 싶더니 갑자기 몸을 낮추고는 어깨와 등으로 후려치는 공격이 나왔고, 베오날드의 몸은 하늘로 부웅 떴는데, 다리온은 어느새 하늘까지 쫓아와서 베오날드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러고는 팔꿈치를 아래로 대고서 자유 낙하, 운동 에너지와 다리온 다이나의 체중과 파워가 그대로 베오날드의 복부에 전해진다.
“쿠하아아악!”
각혈과 폐부의 공기가 빠지면서 격통을 느끼는 베오날드. 오러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 아니, 오히려 오러로 몸을 보호하지 않은 인간의 몸이었다면 그대로 몸이 둘로 갈라졌을 일격이었다.
“쿨럭! 커억! 젠장! 젠장! 젠자아아앙! 으아악!”
“뭔가 더 대단한 게 나오실 줄 알았는데… 시시하군요.”
“그야… 내가 추구하는 건 범용성, 신뢰성이니 말이야. 연금술사니 마탑이니 하는 일은… 하아… 하아… 쿨럭! 오직… 정원을 가꾸기 위한 기술일 뿐……!”
진리와 궁극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에 비해서 베오날드가 이 연금술과 각종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실리주의, 범용성, 유용함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
그렇기에 평범한 다수를 다스리고 기르는 베오날드가 궁극의 하나를 추구하는 다리온과 싸우기 힘든 것이었다.
‘이거 완전 도망쳐야 할 상황인데…….’
두뇌는 아주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여 지시를 내리지만, 베오날드의 의지는 아직 도망치지 않는다.
쉽게 도망칠 수 없는 점은 둘째 치고,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로 ‘달켄 다이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베오날드는 이대로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 싶다는 생각과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일어났다.
‘아, 빡세네. 이거 엄청… 옛날 생각 나는군.’
“흠, 아직도 일어서는 겁니까? 그렇게나 우리 선조님의 과업을 막고 싶으신 겁니까?”
“당연히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컥! 아… 진짜! 이렇게 아픈 건 정말 수십 년 만이군. 젠장! 아아아악……!”
“엄살이 심하시군요. 위대하신 분이라면 태연하셔야죠.”
“참 나… 500년 전 대단한 사람도 결국 사람이라고… 으윽! 참고로 달켄 다이나가 뭘 좋아했는지 아냐? 그 노친네 말이지, 마법에 대해선 천 마디를 할 수 있지만 여자 앞에서는 단 세 마디도 하기 힘들어해서… 또 그 중년의 나이에 결혼도 못해 가지고 나에게 혼처 좀 알아봐 달라고 사정사정을…….”
“…크, 크푸… 푸훕!”
지금은 죽고 없어진 위대한 선조였다면 그냥 헛소리로 치부했겠지만, 다리온은 후계자가 되었을 때부터 달켄 다이나를 보고 자란 자였다.
그렇기에 위대한 선조님의 치부를 들으니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그 틈을 노려서 다시금 잽싸게 달려들었다.
“소용없습니다.”
“젠장!”
채애앵! 콰득! 펑!
틈을 잡고 달려들었음에도 다리온 다이나의 수비는 철벽같았다.
베오날드가 휘두른 검을 피하고, 그가 남은 손을 잡긴 했지만 그대로 빠르게 뿌리치고, 옆구리를 진각을 밟은 주먹으로 후려갈겨서 종잇장처럼 날려 버리자 베오날드는 추하게 땅을 굴러 버렸다.
“이제 포기하는 건 어떠신지요? 지금 그게 수단의 전부라면 절대 절 이기실 수 없을 텐데 말이죠.”
“허억… 허억… 꽤 배려심 넘치는걸?”
“비록 싸움은 약할지라도 베오날드 폰 노이멀 님이 세운 업적과 재능, 지혜는 아깝기 짝이 없죠. 그렇게 되살아나신 방법도 궁금하고. 그러니 항복하십시오. 제가 마법사 왕의 이름을 걸고 섭섭지 않은 대우를 약속하지요.”
나름 그가 가진 역사와 업적에 대해서 존중하는 태도로 제안한 다리온 왕이었지만, 베오날드는 피를 흘리고 엉망진창이 된 모습으로도 가당치 않다는 듯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엿이나 먹으렴. 너희 다이나 가문이 멋대로 주무른 세계에 사는 것보단 죽는 게 낫지.”
“…그러시다면 뜻대로 해 드리지요.”
척……!
모욕까지 담긴 거부를 들은 다리온은 이제 본격적으로 베오날드를 죽일 생각이 든 건지 자세를 잡았는데, 뚜렷한 살기가 베오날드를 찔러 들어왔다.
이걸 이때 보여 주었다는 건 즉, 이때까진 죽일 생각이 없이 손대중을 해 주었다는 의미.
이제부터 오는 공격은 정말로 베오날드의 숨통을 끊을 생각인 전력 전개라는 것으로, 베오날드에겐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지만 그는 오히려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