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그리고 그건 내 인형들도 마찬가지이지! 하!]
마찬가지로 ‘영혼 기사’들도 자욱해진 하얀 안개 속에서도 베오날드의 위치를 알아보고 각종 무기를 휘두르면서 그를 공격하려고 난리였다.
하나 베오날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숨도 쉬지 않고 무기도 휘두르지 않고서 회피에 집중, 하얀 연기가 갑옷 사이사이로 들어가는 것에 주목하며 마도구 하나를 더 꺼낸 다음 검을 준비했다.
‘설마 내가 시야나 막자고 이랬을까?’
챙강!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영혼 기사’에게 검을 휘둘렀고, 그대로 쇠와 쇠가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그 순간, 그 작은 불꽃이 하얀 안개 속에 가득한 작은 가루들을 집어삼키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일제히 점화했다.
[뭐야?]
콰아아아아앙!
분진 폭발. 연금술사인 점도 있지만 각종 광산의 안전한 관리는 국가를 경영하는 권력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했기에 사고가 벌어져서 운영이 안 되면 곤란했고, 그는 일어난 사고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찾아내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뭘… 어떻게 한 거지? 이만한 폭발력을 만들어 냈는데,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지. 나도 이 ‘영혼 기사’들이 고작 이런 폭발에 쓰러질 것 같으냐?]
철그럭…….
하나 분진 폭발의 폭발력 가지고는 단테 다이나는 물론 강철로 뒤덮인 ‘영혼 기사’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무리라는 듯, 쓰러진 ‘영혼 기사’들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분진 폭발에 휩쓸린 베오날드는 ‘보호의 주문’ 마법을 새긴 스크롤의 잔해물을 버리면서 일어나서 몸을 털고는 검을 다시 잡고 단테 다이나에게 달려갔다.
[하! 어리석기는! 잔재주나 부리더니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폭발에 휩쓸린 네놈이 더 괴로워 보이는구나! 내 인형들아, 어서 놈을 처치…….]
삐걱……! 철거럭……!
단테 다이나는 ‘영혼 기사’들을 다시 움직여서 베오날드를 막으려고 했는데, 일어난 ‘영혼 기사’들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실이 몇 군데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삐걱거리는 느낌.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하지만 모두 다 풀썩 쓰러진 다음 망가진 기계인 양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타앙!
베오날드는 경악하는 단테 다이나에게 대답 대신 ‘볼트 슈터’로 은제 화살촉을 먹여 주면서 다가갈 뿐이었다.
그는 당황해하면서 일단 도망치려고 했지만 ‘영혼 기사’들을 일으키려던 시도 탓에 거리는 이미 상당히 좁혀진 상태였다.
[제, 젠장! 이렇게 되면 ‘공간 도약’을…….]
“잡았다.”
챙강! 치이이익!
결국 상황이 좋지 않자 마법으로 도망치려는 단테 다이나에게 베오날드는 ‘볼트 슈터’를 쏘는 손의 반대편 손으로 챙겨 둔 유리병 하나를 집어 던져서 그의 몸에 정확하게 맞혔다.
그러자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무언가 타 버리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그리고 온몸에 퍼지는 고통에 단테 다이나는 자신의 몸에 끼얹어진 것이 성수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크아아아악! 네노옴! 감히 나에게 이런 걸! 하지만 고작 한 병 가지고 나를 어쩌지는… 잠깐? 이거 뭐야? 성수가 왜 이래? 끄아아아악!]
치이이이이이이!
몸에 끼얹어진 성수(聖水)는 액체이기에 결국 증발하거나 아래로 흘러내려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단테 다이나의 몸에 묻은 성수는 마치 슬라임인 양 점성 높은 액체가 되어 달라붙은 채로 계속 정화시키고 있었다.
승기를 잡은 베오날드는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검을 겨눈 채 그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그야 슬라임 분비물과 여러 약품을 섞어서 점성을 띠게 한 성수니 말이지. 왜 이런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더군.”
[미친… 자식… 신실한 사제의 숭고한 기도와 믿음으로 축성한 성수를 불경하게… 끄아아아아아아악!]
“엄연히 나는 허락받은 몸이라서… 아마 괜찮을 거다.”
치이이이이익!
그렇게 말하곤 한 병 더 ‘성수(改)’를 꺼내서 단테 다이나에게 끼얹어 버리는 베오날드였다.
연금술사로서 학구열이 강한 그는 전생부터 ‘신의 힘’에 대해서도 해석해 보고자 시도했었고, 사제들이 파는 ‘성수(聖水)’라는 물건의 진의를 알아내고자 별별 노력을 다 했었다.
하나 ‘신의 기적’은 결국 정복되지 않아서 베오날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연구의 과정에서 성수란 신이 기적을 부여한 액체이고 그 액체가 증발되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동안엔 다른 어떤 물건에 바르거나 점성을 높여도 그 힘이 유지된다는 결과를 얻었었다.
[끄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추가로 네 인형들이 멈춘 이유는… 방금 일어난 분진 폭발로 내부의 술식들이 망가져서 그런 거다. 물론 노이멀 가문의 비법으로 만든 특주품의 술식이 고작 그냥 화염 폭발로 망가지는 건 어불성설이니 당연히 그 연기를 만든 가루엔 마정석, 화약을 비롯해서… 여러 수작을 부려 놨지.”
숨을 멈추고 기사들의 공격을 회피한 것도 분진들이 갑옷 속으로 속속 파고들어야 했고, 일제히 격발이 되자 폭발하면서 ‘영혼 기사’들에게 새겨진 술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 단테 다이나의 마법이 뛰어나다 한들 ‘영혼 기사’들은 그대로 실이 끊어져 버린 인형처럼 무력하게 쓰러지게 되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술식엔… 끄아아아악! 술식에 그 정도 보호가 되어 있다는 걸 네가… 어떻게? 끄아아아아아악!]
“그건 여신께 가서 물어봐라. 그럼…….”
베오날드는 그리 말하곤 단테 다이나에게 더 점성을 띠는 성수를 몇 병 더 부어 버리고는 그대로 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어차피 리치인 이상, 강력한 신성력으로 죽이지 않는 이상에야 따로 영혼을 봉인한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죽일 수 없기에 지금 상황에선 이렇게 묶어 두고 지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후우… 피로하군. 꿀꺽… 꿀꺽… 푸하!”
어떻게든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체력 소모를 심하게 한지라 직접 만든 강장제를 한 병 꺼내어 마시고는 심호흡한 그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러면서 역시 자신은 직접 전투하는 체질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느낀 베오날드는 약기운을 느끼며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후우~ 아무튼 집중해야 한다. 아직 또 뭐가 있을지 모르니 말이야.’
아직 다리온 다이나, 그리고 달켄 다이나와 싸워야 하는데 벌써 지치면 곤란했다.
단테 다이나의 비명을 들으며 베오날드는 파괴된 지하 연구소를 더 내려갔다.
또 뭐가 나올지 모르기에 그는 경계심을 최대한 끌어 올려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캬아아~ 이 노친네, 왕가를 세우더니… 아주 신나게 투자를 해 댔군.”
주변을 살피면서 들어온 연구실의 광경을 보며 베오날드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 폭발로 인해서 상당히 부서졌지만 그래도 화려하면서 광대하게 꾸며진 연구실의 풍경은 엄청난 돈이 들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서 가장 아래 지하에 도착했을 때, 부서져서 폐허가 된 곳 가운데에 누가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로브를 입고 있음에도 장대한 기골이 인상적인 수염을 기른 남자. 손에 든 것이 지팡이보다는 검과 방패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용맹한 인상을 한 다리온 다이나였다.
그는 베오날드를 보자마자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며 깍듯이 예를 갖추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대연금술사 베오날드 폰 노이멀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리온 다이나, 현 다이나 왕국의 마법사 왕을 맡고 있으며 동시에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진 자입니다. 설마 단테 할아버님을 쓰러뜨리실 줄이야. 역시 대단하시군요.”
“조금 어렵긴 했지만… 우리 노이멀 가문의 물건을 쓴 덕분에 할 수 있었지. 그런데 그 단테라는 리치는 날 못 알아봤는데, 너는 어떻게 날 알아보는 거지?”
“위대한 달켄 다이나 선조님께서 말씀해 주셨지요. 여기에 네가 모르는 사람이 온다면 무조건 그놈이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고 말입니다. 그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여기까지 올 생각을 못하고, 단테 할아버님 선에서 끝난다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참 묘하군. 그래서? 그 망할 선조 달켄 다이나는 지금 어디로 갔지?”
“듣고 싶으시다면…….”
척…….
지팡이를 내밀며 자세를 잡는 다리온 다이나. 듣고 싶다면 힘으로 자신을 제압하라는 의미였다.
알기 쉬운 소리에 베오날드도 검을 뽑은 다음 ‘볼트 슈터’에 화살촉을 집어넣고서 심호흡을 하고 싸울 준비를 한다.
긴 지팡이를 든 다리온 다이나는 마치 베오날드를 기다려 주는 듯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달켄 그 양반이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신마법의 구현, 진리에 접속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는 것도 알고 있고?”
끄덕.
달켄 다이나의 진의까지 아는 것에 긍정을 표하는 다리온이었다.
베오날드는 한숨을 쉬면서 장전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먼저 ‘볼트 슈터’를 쏘았다.
그러곤 검을 들고서 달려 나가는 그였는데, 다리온은 손을 저어 우선 자신의 주변에 보호막을 둘러서 베오날드의 사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무영창 주문. 역시 대마법사의 칭호는 거저 얻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지금… 저 상태로 무언가 영창을 이미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러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다리온이었는데, 딱 봐도 그가 무언가 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베오날드는 미리 마도구를 하나 꺼냈다.
대마법사 클래스인 만큼 마법의 위력이 보통이 아닐 것이기에 ‘대마법 주문’이 새겨진 팔찌와 반지를 동시에 끼고 오러까지 끌어 올렸다.
‘좋아, 이 정도면……!’
보랏빛 오러 외에도 마도구에서 나오는 ‘대마법 주문’의 여파인지 푸른빛의 아우라가 같이 겹쳐서 넘실거린다.
만족한 베오날드는 이제 검으로 싸우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달려가서 끌어 올린 오러를 집중하여 검술을 펼쳤다.
‘선수는……! 이걸로 할까?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식(五式)-사이드와인더!’
흐느적거리듯 펼쳐지는 오러의 검기. S자로 뱀처럼 휘면서 날아가는 검을 펼치면서 거리를 좁힐 생각인 베오날드였다.
하나 그 순간까지도 다리온 다이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서 베오날드의 의문을 자아내었다.
그냥 이대로 죽을 건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베오날드의 검기가 그에게 닿는 순간,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흡!”
그리고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눈앞에 나타난 다리온은 그대로 지팡이를 무기처럼 베오날드에게 휘둘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베오날드는 그 공격을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쳐 내어진 공처럼 땅을 튕기면서 날아간 뒤에 이 지하 연구실 벽에 처박혔다.
“커억! 젠장…….”
그나마 오러를 끌어 올린 게 다행이었다. 베오날드가 입에 모인 피를 뱉어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 다리온은 지팡이를 마치 창이나 봉처럼 붕붕 돌리다가 자세를 잡으며 굳건히 서 있었다.
“망할 녀석……! 대마법사라면서 무슨 마법이 아니라 지팡이로 사람을 쳐……? 컥! 게다가 이 위력은 대체……?”
맞은 베오날드도 놀랄 정도로 막강한 위력. 아무리 저놈이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이 위력은 비정상적이었다.
마치 오크나 오우거에게 후려 맞은 것 같은 충격량. 하마터면 정말 죽을 뻔했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어쩔 수 없이 포션을 입에 털어 넣듯이 마시고 일어서서 다시 검을 겨누었다.
“…나도 함정 파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 제길! 그런 무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이건 마법입니다.”
“예. 제 전공은 ‘부여 마법(인챈트)’이니까요.”
“지팡이로 후려치는 게? 마력?”
인챈트, 부여 마법사. 언뜻 보면 베오날드와 유사해 보였는데, 엄연히 베오날드는 만들어진 ‘술식’을 도구나 물건에 효율적으로 새기고 짜는 ‘술식 세공’이 전문이었고, 반대로 다리온은 마도구와 스크롤에 새기는 ‘술식’을 효율적으로 짜내고 만들며 검증하는 자였다.
다만 그렇다곤 해도 ‘마법 술식을 어딘가에 부여한다.’라는 ‘부여 마법’의 종착지는 같은 만큼 서로 같은 일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며, 전문이 아닐 뿐이지 서로 상대 영역에 대한 지식은 익혀야 하는 게 사실이었다.
“하하! 이거 설마 달켄 다이나 님의 후손이 비슷한 전공을 담당할 줄은 몰랐군.”
겉으로는 유쾌한 척 웃으면서 제대로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한 베오날드였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과 뿌리는 다르지만 서로 다루는 전문 영역의 지식이 겹치는 만큼 지략이나 수단, 방법적 우위를 가져가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은 대부분 500년 전의 것. 하나 상대는 500년을 그대로 살아온 달켄 다이나의 아래에서 계속 발전시켜 온 것이기에 더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