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역시! 한번 난리가 난 덕분에 연구실로 가는 보안이 개판이군요.”
“그만한 마력 폭주가 일어났으니 말이지. 그나저나 우리 둘만 빠져나가도 되나?”
“제미니 교수에게 미리 말해 놨으니 걱정 없을 겁니다.”
본래라면 다이나 가문 정도 되는 마법 명가라면 지하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수많은 마법 술식으로 가득한 함정과 보안 설비, 정령, 악마를 비롯한 온갖 소환수 등등… 엄청난 장애에 부딪쳐야 했겠지만, 마도구로 인한 폭발로 인해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아주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탈한 것에 대해선 다른 학부장들에게 설명해 줄 제미니 교수와 셀리나를 두고 온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지하 연구실로 침투할 수 있었다.
“보자, 여기서 계속 내려간 다음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다크 버닝 애로우!]
“피하게!”
하나 안심한 채로 마도서를 통해서 알아낸 길로만 가는 데 집중해서 그런 것일까?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검은 불꽃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 베오날드를 아르젠이 간신히 밀쳐 줘서 피할 수 있었고, 아쉬운 듯한 목소리와 함께 지하실 구석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지팡이를 든 검은 로브의 청년 마법사로 화려한 로브엔 금실로 용의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고, 손에는 검은 사슬과 붕대가 매여 있는 지극히 흑마법사다운 스타일이었다.
“그걸 피하다니 역시 연금학부 학부장답군.”
“너는 어둠학부의…….”
“아아~! 잠깐! 내 소개는 직접하고 싶으니 거기까지 해 주게. 일생에서 멋들어지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야. 내 이름은 ‘흑염(黑炎)’. 보는 대로 검은 불꽃의 흑마법사, 마계의 심연에 잠든 마족, ‘다크 플레임 드래곤’과 계약을 한 자! 오늘 드디어… 이 봉인을 풀 상대를 만난 것 같군. 후후후… 흠하하하하핫! 보아라. 나조차 태워 버릴 어둠의 화염을!”
촤르르륵! 촤악!
흑염이라 칭한 마법사가 오른팔에 묶인 사슬을 풀고 붕대를 열자 그 안에선 검은 화염으로 된 손이 나타났고, 점점 불꽃은 커지더니 용의 형상이 튀어나와 그의 몸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아르젠 학부장은 긴장하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편 베오날드는 흑마법사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저건 진짜로 어처구니없는 놈이었다.
‘도대체… 자기를 태워 버릴 화염을 가진 악마와 계약을 왜 하는 건지……. 게다가 왜 굳이 오른팔에 봉인하는 거지?’
좀 더 다른 수단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베오날드. 하나 오로지 ‘멋’을 위해 모든 효율을 무시하는 흑마법사들의 감성을 도무지 이해 못하는 그였다.
그사이 흑염룡을 몸 주변에 두른 흑마법사 흑염은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아르젠 학부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흐하하하하! 두려운가? 나조차도 두렵다. 이 힘! 드디어 쓸 곳이 올 줄이야. 흐하하하! 가라! ‘다크 플레임 드래곤’. 계약에 따라 내 적을 불태워라!”
“‘차원문 개방’… 나와라.”
[크헝헝!]
그리고 아르젠 학부장도 이에 대항하기 위해 강철 사자 골렘을 소환하여 날아오는 마법으로 된 흑염룡을 상대하게 했다.
검은 화염의 용과 술식이 빛나는 강철 사자의 격돌. 눈이 부실 정도로 멋들어진 광경이었다.
검은 화염이 강철 사자를 휘감아서 녹여서 태워 버리려고 하지만 몸의 술식이 빛나면서 격렬하게 저항, 흑염은 짜증을 내면서 마력을 더 끌어 올렸다.
“저깟 쇳덩이 하나 못 태우다니! 뭐 하는 거냐? 다크 플레임 드래곤! 힘을 더 끌어 올려라!”
“방열 술식은 당연히 새겼고, 골렘 소재 또한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내열성을 끌어 올린 드워프제 합금 강철이다. 녹여 보려면 녹여 봐라. 그리고… 자네는 먼저 내려가게. 내가 이놈을 붙들고 있을 테니 말이지.”
“예, 그러지요.”
위풍당당한 후손의 모습에 감탄해서 잠시 멍때리던 베오날드는 아르젠의 지시대로 먼저 옆으로 빠져나가서 내려갔다.
어디까지나 주요 목표는 다이나 가문에 있는 ‘신마법 연구’를 파괴하는 것. 저 위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이나 여기서 다이나 가문이 대기시켜 둔 부하들 잡느라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아무튼 혼자서 달켄 다이나와 다리온 다이나를 상대해야 하는 건 좀 부담스럽군.’
달켄 다이나의 실력은 말해 봐야 입만 아프고, 다리온 다이나 또한 현 가문의 가주였기에 상당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더 문제점은 달켄 다이나는 ‘천문 마법’이 전공이긴 한데, 다리온 다이나는 어떤 마법을 전공으로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다이나 가문은 ‘그냥 적성에 맞아 보이면 다 하렴!’ 방식이니까……!’
이 다이나 왕국이 어떤 곳인지 나오듯, 다이나 가문은 마법이면 그 어떤 것이든지 연구하고 배우는 것을 허락하는 기괴한 곳이었다.
사령 마법, 흑마법, 원소 마법, 정령 마법… 등등등. 뭐든지 적성에 맞는 걸 배우고 그것을 개화하여 어떻게든 ‘진리’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는 방식이라서 현 가주 다리온 다이나가 어떤 마법을 전공으로 하는지 전혀 모르는 베오날드였다.
‘물론 나도 아무 준비 안 한 건 아니지만 말이지.’
베오날드는 이곳 진리의 성에 오기 전부터 최소 달켄 다이나와 일대일로 싸우는 가정을 하고서 준비를 해 왔었다.
***
수개월 전, 하이디의 영지.
발데리안 백작가에서 지원을 받아 마갑주 연구와 제작을 할 때 한계에 다다른 ‘검술’ 말고 다른 방법으로 싸우는 것을 생각해야 했고, 자신의 마갑주를 만들기엔 시간과 예산이 너무 부족한 것을 안 베오날드는 다른 ‘무기’나 ‘싸울 수단’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으음, 마정석으로 폭탄을 만드는 건 좋은데 말이지. 뭔가 확~ 하고 좋은 게 없군. 나는 마법을 못 쓰고 마도구로 써야 하니 말이지.”
노이멀 가문의 다음 비기인 ‘우로보로스’는 아직 갈피도 못 잡은 상태. 형태는 알아도 지지부진의 연속이었다.
결국 베오날드는 마도구를 무기로 만들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여러 방안들을 생각해 보다가 일전 ‘탈피의 무덤’에서 발견했던 공성용 마력포를 떠올렸다.
‘음, 원거리 투사 병기인가? 매우 좋지.’
거기에 탈피의 무덤에서 발견했던 실패작인 공성용 마력포를 떠올린 베오날드는 그것을 응용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검술에 한계를 맞이했고, 그것을 언제 넘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결국 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좋은 수단은 원거리 투사 무기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력포를 작게 만든다는 느낌으로 쏠 수 있게 만들면……?’
그렇게 새로운 무기 제작을 시작한 베오날드였다.
술식을 새기고 마정석을 장착해서 마력을 쏜다는 느낌으로 제작했었지만 실패했다.
실패 요인은 다양했다.
일단 작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사용에 필요한 마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결국 마정석을 들고 다녀야 해서 실패였다.
‘그러면 마력탄을 그냥 뭉쳐서 쏘는 게 아니라 술식을 바꿔서 마법을 쏘는 걸로 바꿔 볼까? 그러면 마력을 더 적게 먹으니까…….’
개선 방안과 휴대성을 중시한 제작 방법으로 2차 시도에 들어갔다.
하나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시도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래 봐야 스크롤을 잔뜩 들고 다녀서 찢는 것보다 효과가 나은 게 없었다.
그냥 스크롤이나 찢어서 쓰는 게 나은 하위 마법을 새겨 봐야 효과 없고, 고위 마법을 새기면 다시 마력을 집속해서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마법을 스크롤에 담아서 암만 가져간들, 숨 쉬듯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의 천재인 달켄 다이나에게 맞설 수 있을 리 없지. 무슨 바보짓이냐고 비웃음만 당하겠지. 하아~ 젠장! 뭔가 방법이 없나? 마정석을 적게 넣고,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바꾸고 위력적인 것을 쏘아 내는 방법… 물리적인 거… 그래, 가령 화살 같은… 화살을… 마법으로 날린다?’
실패 속에서 더 나은 개선을 생각하다가 나온 방법. 화살을 마력으로 날린다는 발상이었다.
거기서 정신이 번쩍 드는 베오날드였다.
이렇게 되면 화살을 날릴 마력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에 마정석을 그냥 내장해서 교체하는 식으로만 바꾸면 되며 화살만 들고 다니면 된다, 로 이어진다.
‘아니지, 화살의 크기를 더 줄이면? 더 많이 들 수 있지. 아니지! 아예 화살촉만 만들어서 집어넣자! 석궁만 해도 충분한 위력이 있으면 화살 깃이나 날개도 필요 없어!’
발상은 이어지고, 베오날드는 즉시 화살촉을 또 개수해서 집어넣어서 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술식은 간단한 ‘마력 폭발’ 같은 것을 새기고, 그 폭발력을 온전히 화살촉을 날리는 것에 집중시킬 수 있게 작은 원통형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원통형에 맞게 석궁 화살촉을 좀 더 작게 만들어서 집어넣고 술식의 발동은 석궁의 트리거와 방아쇠를 응용했다.
“보자, 뭔가 형태가 기묘하지만 아무튼… 사격 마도구 시험 사격 102번째 시도. 시작한다.”
철컥! 타아앙!
격발과 함께 폭발 소리가 작렬, 그리고 안에 있던 석궁촉은 그대로 날아가서 나무판을 뚫어 버리고 그 뒤의 철판까지 우그러뜨리고서 멈추었고, 땅에 끝이 우그러진 석궁촉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아직 모자란 점이 많았지만 드디어 실험 성공이었다.
“좋았어! 바로 이거야.”
철판을 뚫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던 이상적인 무기가 완성된 것에 만족한 베오날드는 즉시 이 시제품의 편의성과 위력을 높이기 위한 개수에 들어간다.
위력의 상향, 생산성 강화, 탄환이 될 이 석궁촉을 한번 쏘고 다시 채워 넣기 편하게 하는 등등,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으음… 술식이 너무 간단한 마법이라서 마정석도 아주 작은 걸 써도 오래 쓸 것 같군. 그러면 이제 다른 방법으로 이 석궁촉을 편하게 다시 쏠 수 있으려면… 이걸 담는 별도의 통이 필요하고, 빠르게 끼우면 곧바로 내려가서 쏠 수 있게 되는 상태로…….’
이렇게 수개월간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고생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베오날드는 이때까지 없던 ‘화기(火機)’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부르느냐만 고민하면 되는데, 하나 그럴 고민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미 작은 화기의 본래 명칭은 개선 연구하기 위해서 발데리안 영지에 있는 자신의 ‘알의 둥지’에서 기록을 찾던 중 발견하게 된다.
“…드워프들이 이미 비슷한 걸 만들었었군.”
원리는 화약을 넣어서 쇠구슬을 쓰는 것이었지만 결국 물건 자체는 유사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호칭은 형태와 모양, 또는 만든 사람의 이름에 따라서 ‘붐스틱’, ‘드래곤의 포효’, ‘썬더 라이플’, ‘샷건’ 등등 많았고, 베오날드는 그런 호칭들을 보면서 자신이 만든 것에 맞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으음, 이름을… 보자. 화살 발사기? 마력총? 으음… 역시 너무 멋없는 것도 그러니 ‘볼트 슈터 1호’라고 하면 딱 좋겠군.”
석궁 화살인 ‘볼트’와 쏘는 것이라는 의미의 ‘슈터’를 결합한 단어 선택. 더없이 정확하고 깔끔한 호칭을 정한 베오날드는 흐뭇해하면서 그것을 휘리릭 돌려서 자신의 미완성 아공간 가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리고 과거 기록과 함께 새로이 설계도를 그려서 2호, 3호…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만들자 생각하며 새롭게 설계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다이나 가문, 지하 연구실.
‘…아무튼 만들긴 힘들었지만 비장의 카드를 드디어 쓸 때가 왔군.’
그동안 이 새로운 무기를 쓰거나 공개하지 않은 것은 베오날드는 이것을 그야말로 ‘비장’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기 때문에 철저히 감추고 혼자서 고민하고 만들어 왔던 것이다.
거기에 그동안은 적절히 이것을 쓸 기회나 찬스가 없기도 했다.
그나마 어둠학부장 리리켈과 싸울 때 정도가 위기였지만, 그때는 실내에서 근접전을 벌여야 했기에 검술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혼자인 덕분에 드디어 쓸 찬스가 생길 것 같군. 그나저나… 저건?’
조심스럽게 지하로 더 깊이 들어간 베오날드는 멀리 지하 연구소 중심 쪽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노란 불꽃이었는데, 상대도 알아챈 건지 베오날드 쪽으로 그 불꽃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베오날드는 볼트 슈터를 꺼내 드디어 쏠 준비를 하고서 숨을 죽인 채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그르르륵… 쥐… 새끼… 같은 놈이 드디어 왔군.]
‘리치? 달켄 다이나인가? …모르겠군. 리치 외모를 구분하는 방법은 모르니 말이야. 아무튼 먼저 선수를 잡는다.’
철컥!
볼트 슈터에 미리 준비해 둔 은제 석궁촉을 장전하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폭발’ 술식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은제 석궁촉은 어둠을 가르고 노란 불꽃을 퍼뜨리는 리치를 향하여 그대로 날아가 적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