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아르젠 학부장……! 하여간 그 ‘노이멀’ 놈들이 또!”
엄연히 노이멀의 이름을 버린 노이멀이지만 그래도 혈통은 맞으니 아르젠에 대해서 투덜거린 다리온은 서류를 구겨 버리면서 곧바로 지팡이를 들고 연금학부 건물로 텔레포트했다.
안전하게 지붕 위로 나타나서 착지한 그는 한걸음에 아르젠 학부장의 집무실에 쳐들어가 그를 찾았다.
“아르젠 학부장!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설명을 해 보게!”
“우리의 왕 다리온 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지금 들어온 이 말도 안 되는 소식 때문이지.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아, 그야 그 말대로입니다. 마도구와 마정석, 약품… 모두 부족해서 요구하신 양을 보내 드릴 수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마도구와 마정석, 약품을 요구하는 곳이 다이나 가문만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일전엔 어떻게든 맞춘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라면… 맞출 수 있었지요. 하지만 갑자기 어둠학부에서 일어난 혼란과 내부 정치 다툼으로 와야 할 재료가 빼돌려져서 그런지 맞춰서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건 늘 그렇듯 보통 왕가에서 막아 주셔야지요.”
아르젠의 당당한 거짓말에 다리온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 ‘진리의 성’은 국가로서의 역량과 행정력은 연구만 방해하지 않으면 거의 방치 레벨에 지나지 않았고, 각 학부의 자율에 맡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학부 간의 사고는 늘 있는 일이었고, 그때마다 다이나 왕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어둠학부 문제가 해결이 되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것이긴 하지만… 이미 흐트러져 있어서 여유 있게 시간을 두어야 하니… 예정보다 늦어질 거라고 통보한 겁니다.”
“후우~ 그렇군. 하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늦어지면 곤란해서 말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안 되는 일을 부탁하셔도… 물자가 없는 걸 어떻게 할 도리는 없잖습니까?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아십니까? 뭐라도 있어야 변화를 하지, 그저 무(無)에서 창조를 하는 건 신의 영역의 일입니다. 한데 다이나 왕실에서는 뭘 연구하는데 그 정도로 급해하십니까?”
“그건… 물어선 안 될 영역이 아닌가? 게다가 저기 일하는 친구도 있는데 말이지.”
집무실에는 한참 서류와 책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청년도 있었기에 더더욱 말해 줄 수 없다는 의사를 표하는 다리온이었다.
“안 될 영역이긴 합니다만, 이 정도로 급박해하시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고, 또… 세세한 건 몰라도 대략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알아야 저도 늘어난 요청을 다른 교수님들에게 설명해서 생산량을 늘리니 마니 이야기를 할 테니 말입니다.”
보통은 다른 학부나 연구소의 마법 연구 내용을 물어보는 건 그 말대로 금기였지만, 지금 다이나 가문에서 요청하는 것이 너무나 강압적이었기에 아르젠 학부장은 자신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으음… 알 거 없네. 후우우~ 그러면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하고, 우선적으로 우리 쪽 요건이나 해결해 주게. 다른 곳의 불만은 내가 책임지지. 그러니 우선적으로, 알았나?”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럼 오신 김에 일단 급한 마도구 위주로 리스트를 선별해 주십시오. 우선순위대로 제작해서 보내 드리면 일 처리가 편하실 거니 말입니다.”
“흐음… 그러도록 하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니…….”
그렇게 다리온 다이나는 주문 리스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과 마도구들의 순서를 선별해서 아르젠 학부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일이 지연되는 것을 달켄 다이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지팡이를 들고서 다시금 마법을 사용하여 이곳을 떠나 저택으로 돌아갔다.
“정말 자네 예상대로군.”
“그러게요.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죠. 하긴 그만큼 연구하는 게 바쁘다는 소리니까요.”
그가 완전히 떠난 것을 감지하자 옆에서 정리하고 있던 청년이 안경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베오날드로, 연금학부에서 일정이 늦어진다는 것을 전한 것과 지금 아르젠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부터 선별해 달라는 것까지 모두 그의 계획이었다.
“보자, 으음… 역시나 우선시하는 것들은 마정석과 마력을 끌어오는 것에 관한 물건들이 대부분이군요. 이 범상치 않은 마력의 양. 그냥 이 진리의 성을 날려 버리고도 남을 건데, 더 안 봐도 다이나 가문에서 신마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보이는군요.”
“심지어 다이나 가문 저택 지하엔 ‘지맥’도 있는데… 이 정도 양을 요구하는 게 이상하긴 했지.”
“뭐,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모자랄 겁니다. 그나저나 아까 온 분이 그…….”
“다리온 다이나. 현 다이나 왕국의 왕이며 다이나 가문의 가주일세. 당연히 1급 마법사 자격은 물론 대마법사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역시 이 다이나 왕국의 왕이니 마법사 왕으로도 많이 칭하지.”
“기골이랑 근육은 무슨 기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던데. 뭐, 문제는 없겠죠. 아무튼 그러면 이 우선시되는 마도구에 수작을 부려 놓으면 되겠군요. 준비하는 곳에 데려다주시죠. 거기에 술식을 몰래 새겨서 의식을 하는 위치를 알아내야 하니 말입니다.”
베오날드는 일어나서 다음 방안을 제시했지만, 아르젠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베오날드의 의견에 반박했다.
“어설프게 그런 짓을 했다간 들킬 텐데,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저 다리온은 물론이고 달켄 다이나 님도 마법과 술식에 대한 지혜가 상당한데… 그걸 속이겠다고?”
“예. 속일 수 있습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해 줄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여기가 바로 어디인가? 대륙 마법의 중심인 다이나 왕국의 ‘진리의 성’이다.
마탑의 내전으로 한 번 황폐화되었던 ‘마법 학문’의 기둥을 다시 세운 유일한 장소이며, 달켄 다이나는 그 전성기 마탑에서도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졌던 마법의 전설이다.
그런 자를 감히 마법으로 속이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던 아르젠은 베오날드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베오날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노친네도 결국은 사람입니다. 대마법사니 뭐니 해도 자기 분야 빼고는 모르는 게 많은 노친네죠. 그리고 사령 마법이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집중해서 배웠고, 원래 전공은 ‘천문 마법’입니다. 다른 마법에 대해선… 필요한 만큼만 익히고 있지요. 가령 아르젠 학부장님께서는 사령 마법의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으음, 세세히는 모르지만…….”
“네, 바로 그겁니다. 알 것 같지만 모릅니다. 아니, 물론 술식 자체는 그분이 쓰는 천문 마법을 응용한 것이라 알겠지만… 그 사이사이 작동하게 만드는 술식들과 그 구조 전체를 이해하는 건 무리지요.”
“으으음…….”
베오날드 또한 자신도 연금술과 술식 세공에 대해선 심도까지 꿰뚫고 있지만 반대로 ‘신마법’은 연구 이론을 훔쳐 놓고도 세부 사항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난해해할 정도였다.
선대 사람들은 그 명예와 오로지 윗사람이자 오래된 사람, 마탑의 전설이라는 이상한 수식어가 붙으면서 고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베오날드의 경우 그 달켄 다이나와 비슷한 시대의 인물이었고, 나름 쌍벽을 가르는 천재이며, 그에 대해 잘 알기에 이렇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다 방안이 있으니 믿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저를 범인으로 지목하시고 잡아가라고 하십시오. 어차피 어둠학부의 리리켈을 죽인 것도 저이니 그대로 고발하면 되지요.”
“좋아, 그러도록 하지. 하나 실패하면 내 손으로 자넬 죽일 거니 각오하도록 하게.”
“예.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허풍 떤 보람이 있겠지요. 하하핫. 그러면 마도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이렇게까지 엄포를 줬는데도 당찬 걸 보면… 확실한 수단이 있는 것 같군.’
그래도 먼 친족이라서 목숨을 걱정하는 겸 엄포를 놓았지만, 전혀 겁먹지 않는 베오날드의 모습이 묘한 그였다.
아무튼 그가 하자는 대로 해야 선조의 명예도 지킬 수 있으니 협력하기 위해서 그는 지금도 연금학부의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들이 일하는 공방으로 데려갔고, 그에게 곧바로 제작 중인 마도구 하나를 맡겼다.
“마도구라곤 하지만 사실… 마정석을 가공하고 케이스에 넣어서 내부의 마력이 외부에 방출되지 않게 하는 간단한 물건이지만, 이다음 건 이제 술식의 연결을 위한 판으로… 연결되는 술식들이 앞의 것과 충돌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이군.’
아르젠 학부장의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눈앞의 마도구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눈에 술술 들어오는 베오날드였다.
이 모든 마도구 제작과 술식 세공의 이론. 결국 타고 올라가면 그 모든 근원은 베오날드에게 있던 것이다.
본래의 ‘노이멀 가문’은 뱀과 같은 계략과 속이 까맣다는 것으로만 유명할 뿐, 그 외의 다른 장점은 거의 없는 집안. 그것을 마도학의 명문, 연금술사의 집안으로 만든 것은 오로지 순수하게 베오날드의 재능과 실력 덕분이었다.
‘자, 그러면 어디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 봐야겠군.’
해야 할 일은 세 가지. 첫째는 이 마도구들이 설치되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할 것. 둘째, 여차할 경우 이 술식들을 조작해서 언제, 어느 순간에도 폭발할 수 있게 하는 것. 마지막으로 셋째, 위의 두 가지 공작을 해 놓은 것을 달켄 다이나를 비롯한 그 어떤 마법사들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만에 승부욕이 불타오르는걸?’
그동안 제대로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흔치 않았고, 딱히 그만큼의 보람을 느낄 만한 대적자가 없었기에 베오날드는 흥겨워하면서 손을 풀고 본격적으로 마도구 세공을 할 준비에 들어갔다.
또 50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망할 달켄 다이나 영감을 엿 먹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간만에 전력으로 술식 세공을 하면서 그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작업 속도도 빠른 베오날드에 의해서 완성된 마도구들은 먼저 다이나 가문에 납품이 되었고, 그것에 부린 수작이 다이나 가문에 들킬지 안 들킬지 기다리면서 아르젠 학부장과 베오날드는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으으음…….”
“보세요. 들키지 않았죠?”
“대체 어떤 수를 쓴 겐가? 아니, 술식을 새긴 게 맞긴 하나? 뭔가 다른 걸 한 건 아니겠지?”
“하하하, 그건 비밀입니다. 아무튼 결과만이 모든 걸 말해 주겠지요.”
베오날드는 너스레를 떨면서 아르젠을 상대했다.
일단 ‘검법’의 보존만을 위한 노이멀 가문의 후예라고 속인 만큼 ‘술식 세공’에 대해 감추기 위해 방법에 대해선 얼버무린 것이었다.
자신이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는 걸 알려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증명하는 것도 일이고, 또 이 후손님의 지금 태도도 재미있는지라 그냥 이대로 넘어간 것이다.
“아무튼 사람도 붙여 두셨고, 계속 지켜보고 계시니… 뭔가 조짐이 생기면 나오겠지요.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건 다이나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고 돌입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겁니다.”
“지도는 없지만 나는 자주 가 본지라 대략적인 것은 그려 줄 순 있네. 하나 그곳엔 분명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한 결계도 있을뿐더러, 연구실 쪽엔 또… 수호자들이나 수비 인력이 배치되어 있을 걸세.”
다이나 저택은 엄연히 다이나 왕국의 궁전 역할을 하는 곳으로 다리온 왕과 다이나 가문의 비기를 지키기 위한 인력들과 설비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베오날드 또한 물론 그런 것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그렇겠지요.”
“그걸 돌파하려면 상당한 무력은 물론 마법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할 건데… 준비되어 있나? 심지어 사령학부와 어둠학부와도 손을 잡았다면 방비가…….”
“으으음… 계획을 말씀드리려면 너무 장황하긴 합니다.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콰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창밖에서 거대한 푸른빛이 일어나 저택 안에까지 비췄다.
깜짝 놀란 아르젠 학부장이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는데, 거기엔 거대한 푸른 빛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라서 이 ‘진리의 성’ 전체가 파랗게 변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방출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베오날드는 미소를 지었다.
“함정에 걸렸군요.”
“저게 의도한 건가?”
“예. 보통은 어느 정도 레벨의 사고가 일어나면 대충 묻어 줄 정도로 연구가 자유롭지만, 그 규모가 막대하게 커지면 모든 학부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마탑의 간부이기도 했던 베오날드는 이 ‘진리의 성’도 결국 마법사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연구의 자유가 있다곤 해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남의 연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지, 이 정도로 대형 사고를 치면 다른 모든 학부에서도 주목하고 다이나 저택으로 몰려들 터였다.
“자, 그러면 저희도 가 볼까요? 지금만큼 좋은 침입 기회도 없을 테니 말이죠. 연금학부장님의 경우 항의든, 혹은 마도구에 관한 일이든 보러 가야 하니 저택 내에 들여보내 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베오날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가방과 무장을 챙기고서 본격적으로 침입할 준비를 하고 아르젠 학부장의 조수로 위장해서 다이나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