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 반대편에 있는 깔끔하고 정돈된 아름다운 거리에 존재하는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연금학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각종 실험, 연금술, 호문클루스 및 키메라 제작 등등… 학부 내에서 학파가 갈린 채로 각각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역의 중심엔 그 학파들을 아우르는 장소,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황금빛으로 칠해진 탑, ‘황금빛 진실(Aureus Truth)’이 있었다.
연금술의 시작인 ‘납을 황금으로’에서 지향된 목표점을 상징하는 이 탑에 오늘, 각 학파의 장들이 모인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늘 있는 연구로 한창 바쁜데… 모은 이유가 뭔가? 아르젠 학부장.”
“실은 무시할 수 없는 소문이 저기 반대편에서 들려와서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아르젠 학부장이라 불린 남성은 긴 은발에 푸른 눈을 하고 안경을 쓰고 있는 지적인 20대의 미남으로, 어린 나이에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연금술사들을 제치고 그들의 대표로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실력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고귀함과 우아함이 묻어 나오는 모습으로 그는 정중한 어조로 모여 있는 각 학파의 교수들과 연금술사들에게 설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저 반대쪽에서 불쾌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뭐가? 거기서 제조하는 것들의 생산량이 떨어졌나? 그래서 혹시 당분간 절약해서 써야 한다는 건가?”
“아뇨. 반대입니다. 생산량이 아주 안정화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이제 외부에서 들여오는 재료 양을 늘리는 걸 검토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뭐야, 그럼 좋은 거 아닌가? 그런 쓸데없는 일로 우리를 부르다니… 쯧쯔쯔!”
태연히 내뱉는 다른 연금학부 교수의 말에 아르젠은 이마를 찌푸리면서 이 상황을 이해 못하는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그곳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기존에 저희가 시키던 일들은 죄다 저녁이 되기 전에 처리해 버리고 쉬거나 아니면 저 쓰레기 같은 영역을 또 개선해 나가고 있더군요.”
“그러니까 그러면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곳은 원래 문제가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 ‘진리의 성’의 재원과 시설을 축내는 재능 없는 쓰레기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아귀처럼 먹어 치우면서 사라지게 만드는 소각장입니다. 후우~”
“아~ 그랬었지?”
“하도 생각도 안 하고 있어서 까먹었군.”
“우리 연금술 학부에서는… 거기에 쓸모없는 걸 잘 안 버리니 말이야.”
짝!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교수들. 다들 자기 연구와 생활에만 신경 쓰다 보니 저 대로 반대편의 영역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까먹은 것이었다.
도시의 마천루 꼭대기에 있는 자들이 뒷골목 구석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는 있어도 살다 보면 까먹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갈등하고 싸우는 생물.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이 진리의 성에 진리와 지식을 노리고 들어오는 자들은 많지만, 실제 그것을 이루어 내는 인간은 한 줌도 되지 않지요. 하나 결국 사람 사회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엮이면 ‘노예’로 떨어지거나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최소한 인간의 대우라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번 엮인 인연을 끊기가 어렵습니다.”
제자든 식솔이든 그냥 쓸모없다고 내치기엔 소문이라도 나면 다시 새로운 제자 후보들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재능이 없거나 쓸모없는 놈이라도 일단 챙겨야만 했다.
오직 진리와 연구, 마법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이 도시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방안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 달켄 다이나 님이 저희 선조님과 협상하여 저곳을 만들었지요. 일부러 더럽고 위험한 약품 제작을 다루고, 노동 강도도 강하게 해서 쉽게 죽거나 아니면 힘들게 해서 스스로를 포기하게 하는 적절한 쓰레기통이었습니다. 근데 누군가 그걸 망쳐 놓고 있죠. 쓰레기통이 쓰레기통으로 작용 안 하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입니다.”
“흠… 그러면 누가 그 쓰레기통을 치우고 있다는 건가?”
“대강 조사해 본 결과, 저곳의 변화는 어둠학부에서 온 흑마법사 하나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 흑마법사? 그러면 뭐, 내버려 둬도 되지 않겠나? 그놈들… 악취미의 일환이겠지. 마족과 엮이는 놈들은 무슨 이상한 짓을 하든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야.”
일단 이곳 ‘진리의 성’은 모든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니만큼 흑마법과 사령술 모두 허락된 곳이었지만, 평범한 사람의 머릿속엔 여전히 위험한 종자들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 그들과 어울리면 결과가 좋은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그냥 ‘그놈이 거기서 미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참견 없이 납득해 버리고 신경을 끄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곳 연금학부의 학부장이고, 그 쓰레기통도 우리 학부의 영역이라서 관리를 해야 하는 몸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사고가 나거든 혼자 하면 되는 거지, 우리까지 호출할 필요가 있나? 분명히 그 흑마법사 놈이 계약한 악마에게 먹고 먹히거나 하면서 쓰레기들끼리 한바탕 난리가 나고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건데 말이야. 쓰레기 영역 내에선 뭐가 일어나도 무시하지 않았나?”
“하지만 근래 어둠학부의 장이셨던 리리켈 님도 죽어서 어둠학부 놈들이 차기 학부장 자리를 걸고 내전에 빠진지라, 그거와 연관되어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어둠학부장 리리켈이 베오날드의 손에 죽고 난 뒤, 범인의 행적을 놓친 어둠학부의 흑마법사들은 곧장 리리켈의 자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굳이 그의 행적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기는 했다.
그저 명분을 얻기 위해서 조사하는 척했을 뿐. 죄다 다음 어둠학부장이 누가 될지 싸우기 위한 준비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놈이 혹시나 그쪽 다툼 속에서 빠져나온 흑마법사 나부랭이라면 위험한 사고를 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인간들을 끌어모아 제물로 바쳐서 고위 마족을 소환한다거나 해서 사고 칠까 봐 두려운 거죠.”
“음… 그건 위험하군.”
“그래서 여러분을 모은 겁니다. 이런 사안 레벨로 생각하게 되면 아무리 학부장이라도 저 혼자서 결정하기 힘드니 말이죠. 각 분야 교수님들의 허락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크흠! 매우 잘한 일이군.”
“우리가 오해해서 미안하네.”
“이러니 아르젠 학부장이 저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 허허.”
연금학부의 교수들은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사안이 생각보다 심각하며 아르젠 학부장이 자신들의 권위를 존중해 준 것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기에 머쓱해하며 그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
괜히 20대의 나이에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닌 듯한 수완. 하지만 아르젠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과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것까지 간파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놈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미리 불렀습니다. 만약 응하지 않으면 여기 계신 분들의 승인을 받아서 그놈을 토벌하려고 말이죠. 또 연금학부라곤 하지만 저희 모두 상당한 마도의 경지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약은 놈 같으니…….’
“시간을 아끼면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러면 어디… 약속 시간이 이제 10여 분 정도 남았군요.”
아르젠 학부장은 이미 그들이 이럴 반응까지 다 예상해서 일을 진행시켜 둔 것이었고, 결국 완전히 한 방 먹은 교수진은 아르젠 학부장을 슬쩍 노려보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연령이 어려서 그렇지, 그는 수완뿐만 아니라 마법 실력과 연금술 실력 모두가 뛰어난 인재로 만약 실력을 겨룬다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승리할 자신이 없는 천재이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안에서 한창 자신에 대해 떠들고 있을 무렵, 베오날드는 연금학부의 호출을 받아 근처에 와 있었다.
그는 현재 흑마법사로 위장하기 위해서 검은 깃털이 달려 있는 목도리가 달린 로브에 금테가 둘러진 외눈 안경을 쓴 상태로, 스스로 생각할 땐 많이 기괴한 패션이었지만 그래도 외모는 준수한 덕에 나름 어울렸다.
‘아무튼 여기가 연금학부의 건물인가? 호오… 황금빛 진실이라. 황금… 으음~ 좋은 거지.’
어떻게 보면 연금술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였다.
황금에 대한 욕망. 그 아름다움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니만큼 학부 건물은 당연히 황금빛이 들어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비록 높이는 낮지만 탑의 형상은 유지하고 있는 것에 감탄하면서 그는 본관으로 들어갔다.
‘호오… 저건? 나잖아? 오오!’
그리고 안에는 으레 그렇듯 과거 유명한 연금술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엔 전생의 자신도 있어서 반가워서 눈을 빛내는 베오날드였다.
발데리안 가문 지하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
히드라의 장식이 달린 지팡이와 각종 술식이 새겨진 마도구 액세서리를 잔뜩 차고 있는 위엄 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이거 참 그립구먼~ 그리고 역시 대륙 곳곳에선 잊혔어도 여기는 나를 대접하는군. 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암!’
간신이든 뭐든 간에 이 대륙 연금술의 역사에서 베오날드의 이름은 결코 뺄 수 없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자부심도 있는 베오날드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자신의 초상화를 좀 더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이 뭘 하러 왔는지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오래간만에 내 모습을 봤더니 추억에 젖어서 그만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릴 뻔했군.’
해야 할 일. 연금학부의 호출에 응해서 일단 저 영역이 그들에게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설득을 하면서 자신이 지배하는 것을 공인받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여차할 경우 그들과 거래할 물건이나 마도구나 연금술에 관한 고서도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놈들도 보통이 아니기에 기합을 넣고 가지 않으면 괜히 손해 보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아, 오셨군요. 그… 베오 님이라고 하셨지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여전히 위장에 쓰는 이름은 ‘베오’로 자신에게 이곳의 출석 명령을 전달해 준 연금학부의 마법사에게 안내를 받으며 탑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탑은 그렇게 높지 않았고, 사실상 상징용으로 일반 건물 위에 올려놓은 거라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입니다.”
“드디어 연회의 시간이군.”
“흑마법사분들의 말투는 정말 적응이 안 되는군요. 하긴 마족들과 어울리니 멀쩡하진 않겠습니다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인식한 베오날드는 흑마법사로 위장한 말투로 안내해 준 마법사가 가리킨 문에 노크를 한 다음 대답을 듣고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안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는데, 죄다 나이가 많은 노친네들 아니면 자신의 몸으로 키메라 실험을 한 건지 팔이 3개 달리거나 몸 일부를 마도구로 대체한 기괴한 자들이 눈에 띄었다.
베오날드는 단숨에 그 구성원들이 이 연금학부의 주요 간부들이나 교수라는 것을 눈치채고 예를 갖추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황금의 빛을 손에 넣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시며 연구하시는 연금학부의 주인분들이시여, 어둠의 길을 걸어가지만 이 하잘것없는 흑연 같은 마법사인 저를 어찌하여 찾으셨는지요?”
“일단 앞에 마련해 둔 의자에 앉아라.”
‘…젊은 목소리? 이상하군. 싹 둘러봤을 땐 죄다 노인네뿐이었는데… 저건?’
슬쩍 보고 예를 갖추느라 고개를 숙여서 그땐 보이지 않았는데, 앳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베오날드는 가장 상석에 누군가가 등을 보인 채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순간 당황하는데, 저 상석에 자리한 이의 등에서 본 것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히드라의 문양. 하! 하긴! 그렇지! 내가 누군데! 내가 전설이자! 신화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망토에 그려진 히드라의 문양. 베오날드는 단숨에 저 상석에 있는 이가 어떤 존재인지 눈치챘다.
애초에 이곳 ‘진리의 성’에선 무슨 학문이든 허용이 된다.
이 다이나 왕국의 건국자, 달켄 다이나가 아무리 자신을 미워하고 천시한다곤 해도 결국 연금술이 활용될 부분은 마법에 많았기 때문에 아예 버릴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후손을 엄청 낳았으니까… 그중 하나가 살아남아서 이 연금학부에 자리 잡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 달켄 다이나 영감이라면 오히려 내 후손을 밑에 두고 지배하고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만족스러운 일이겠지. 아무튼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는데… 음…….’
“왜 그러는 거지? 내 말이 들리지 않았나? 앞의 자리에 앉으라고 말이다. 아, 혹시 날 몰랐나?”
‘…알… 테리오?’
잠시 자신의 가문을 본 것에 놀라 멍때리는 사이, 몸을 돌려 얼굴을 드러낸 아르젠 학부장. 그의 모습을 본 베오날드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남성은 500년 전 자신을 배신했던 장남인 알테리오 폰 노이멀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아비인 내가 착각할 정도로 닮다니…….’
‘음? 아… 이 분위기가 너무 압박적이어서 그런 건가? 어쩔 수 없지.’
차이가 있는 것은 그저 머리카락 색깔 정도? 그 외에는 이목구비를 마치 그대로 떼어다 붙인 정도로 겹쳐 보이자 베오날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아르젠 학부장은 베오날드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이 너무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나 생각하면서 말투와 어조를 다소 부드럽게 바꾸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