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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78화 (178/259)

[178화]

그로부터 3일간, 우두머리가 바뀌면 조직이 바뀐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는 베오날드였다.

마도구의 힘으로 이곳의 덜떨어진 마법사들보다 우위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다음 먼저 일하는 어둠학부, 사령학부를 비롯한 마법사들의 인적 사항과 노예들의 인원을 파악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일시적으로 모든 작업을 중단시키고 개선부터 들어간다고 했다.

“하, 하지만 주문된 물량이 안 오면…….”

“우리는 운명의 날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일. 썩은 땅에선 빛나는 열매는 나지 않는 법. 운명을 변화하려면 씨앗과 대지를 일구어야 하는 법이니라. 실패의 낙인이 찍혀도 그것은 모두 나의 것! 장기말인 너희에게 책임은 가지 않을 것이니~!”

“…뭐라고 하시는 거야?”

“…날짜에 맞추면 되고, 어차피 책임은 이분이 지신다는데?”

“그러면 뭐…….”

‘이… 어둠학부 말투, 은근 편하군.’

위장에 최적화된 것도 있지만 말을 뭉뚱그리기에도 너무나 좋았기에 베오날드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곧장 개선에 들어갔다.

첫날은 일단 도축장의 모든 시설을 다 뜯어고치는 것으로 본래라면 일손이나 자재가 부족했겠지만 이놈들은 썩어도 마법사들이라고 자기들 학파의 간단한 마법들 정도는 쓸 수 있었고, 머리도 좋아서 이해시킬 정도로 설명만 하면 밥값을 하는 놈들이었다.

‘하긴 이래 보여도 다들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대륙 곳곳에서 오거나 아니면 발굴해 낸 놈들이니… 두뇌와 재능 모두 가지고 있겠지. 게다가 몇몇 마법은 도구보다 효율이 좋았으니 말이야.’

“흐음! ‘뼈의 칼날’!”

“저기로 옮겨라, 임프들아.”

기껏해야 초급 마법 정도밖에 못 쓰는 자들이었지만 그래도 그것도 엄연히 쓰기 마련.

그 덕분에 고작 3일, 베오날드의 손에 다시 만들어진 도살장의 시설에서 나오는 생산량은 그날 하루 만에 기존의 2일 생산량을 넘어 버릴 정도였다.

심지어 이것도 지금 도살장에 들어오는 ‘재료’가 부족해서 더 일을 하지 못했을 뿐, 할 수 있었다면 단 하루 만에 생산량을 3배로 늘리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었다.

“보았는가? 이것 또한 마법이다. 나는 시간을 거스르고 운명을 조작하여 이 현상을 구축하였노라. 마력을 엮듯이 사람을 엮고 개선하여 문명을 쌓아 올리는 마법이지.”

“괴, 굉장하십니다.”

“역시… 보통 분이 아니셨군.”

“그냥 마법 공부만 했던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

“그동안 들어오는 재료를 처리하지도 못했는데…….”

“이러면 얼마 안 있으면 학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효율성 없이 일하던 여러 학부의 마법사들은 베오날드가 펼친 마법에 감탄하며 그를 우러러보았다.

물론 오직 이 개선 작업과 수완만으로 마법사들이 추종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뼈의 칼날!”

여기 베오날드의 지시에 따라 한참 고기를 도축하는 사령학부에서 떨어져 나온 만년 9급 사령술사인 20대 중반의 수수한 인상을 가진 청년, 루켄이 있었다.

달켄 다이나와는 다른 ‘리치’인 스승 아래에서 사령술을 배웠지만 제대로 된 스켈레톤 하나 소환 못하고 오직 저 ‘뼈의 칼날’만 사용할 줄 아는 자였는데, 그 ‘뼈의 칼날’을 사용하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혀서 베오날드에 의해서 도축장에서 고기를 자르는 일을 맡고 있었다.

“오, 몇 번을 봐도 훌륭한 솜씨군. 어중간한 검사 나부랭이나 도축업자보다 깔끔해. 이 뼈와 살을 가른 면이… 정말 깨끗해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야.”

“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뼈의 칼날’. 말 그대로 뼈를 모아 칼날을 생성하여 던져 적을 베는 마법으로, 그는 작은 뼈 몇 조각만으로 사람만 한 칼날을 생성해서 고깃덩어리나 시체를 순식간에 베어 낼 정도로 숙련된 상태여서 베오날드가 특히 눈여겨본 인재였다.

“그러고 보니 사령 마법을… 뼈의 칼날 말고는 사용 못한다고 했었나?”

“아, 예. 그… 제가 미숙한 탓에… 그나마 이건 배우고 난 뒤 10년 동안 계속해 와서 익숙합니다.”

‘한 가지 기술을 10년이나 단련해 왔다면 그건 이미 달인이지.’

어쩐지 저 깔끔한 절삭력과 컨트롤 능력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적어도 10년을 사령술을 배우고 단련했다면 왜 스켈레톤 하나 소환을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없는 9급 마법사라 할지라도 기초 중의 기초라서 조건만 맞추면 그냥 되는 거고, 심지어 이 청년은 10년이나 한 가지 마법을 단련해서 섬세한 컨트롤이 될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가? 이상하군. 나도 어느 정도 사령술에 조예가 있는데, 그 정도 마력 컨트롤 실력이라면 금방 ‘영혼 제어’, ‘사령 구속’만 하면 스켈레톤 소환쯤은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말이지.”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루켄은 깜짝 놀란 눈으로 베오날드를 바라보며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마치 전혀 몰랐던 사실을 들은 것처럼 보였는데, 역으로 베오날드가 당황스러울 판이었다.

대체 스승이 누구기에, 아무리 덜떨어진 제자랍시고 여기에 버려두었어도 10년을 데리고 다녔으면 제대로 된 이론을 알려 줬어야 할 텐데, 그가 리치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베오날드의 정신이 번뜩였다.

“아, 과연… 그렇게 된 건가?”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아마 자네 스승이 ‘리치’였지?”

“예. 올해로 327세이신 2급 사령술사이자, ‘리치’인 아치랜드 님이십니다.”

“보통 마법사들은 말이지. 인간이라서 그 수명이 유한하기에 그 학파의 전통과 지혜를 발전시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제자를 두고 지혜를 기록하지.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지혜를 전하여 후세에 더 발전되고 진리에 나아가는 것을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리치’는 그렇지 않지.”

리치.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이룩한 자들, 영혼을 마도구나 특정한 장치에 봉인하여 죽음을 피한 자. 하나 그 육신은 결국 생명 활동이 끝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붕괴하기에 스스로의 사령술로 자신을 엮어서 육체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죽음에서 봉인한 그들은 무한한 시간을 얻게 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딱히 제자를 필요치 않는다.

“설사 둔다 해도 뭐… 자신이 교단이나 위협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하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을 시키려고 ‘지식’을 미끼로 일손으로 굴리는 셈이지.”

“그, 그럴 수가!”

“생각보다 빈번한 일이고, 또 대부분 ‘리치’가 되는 사령술사들은 실력은 확실히 있으니까. 더구나 사령 마법 중엔 사람의 인식이나 저항 능력을 흩트리는 것도 있고… 애초에 ‘죽음’과 ‘영혼’을 제어하고 구속하는 데 특화된 학파이니 말이야.”

“그럼 저는… 그동안 헛수고만 했던 겁니까? 그… 그저 강한 힘과 사령술을 익힌 네크로맨서가 되고 싶어서 제자가 된 건데, 그런 건 전혀 없고 고작 ‘뼈의 칼날’… 이 마법 하나뿐이라고요?”

베오날드의 설명에 이 루켄이라는 청년은 자신이 믿던 세상이 부서지는 듯한 강렬한 배신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내 그의 스승이 보여 준 태도라든가, 자신에게 그저 ‘뼈의 칼날’ 마법 하나만 단련하라고 해 왔었기에 우직하게 따르면서 그가 시키는 온갖 일을 해 왔는데… 결국 절대 먹을 수 없는 당근만 보고 끝없이 달린 당나귀 꼴이 된 셈이었다.

“하, 세상에 맙소사……! 하아아아! 하하하하! 그럼 전 평생 여기서 고기나 썰어야 할 팔자겠군요. 하하하!”

“아니, 그건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나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말이야.”

“예?”

“너의 그 단 하나에 10년을 집중해서 노력할 수 있는 의지의 강함이 날 감명시켰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령술에 대한 지식을 주고자 한다. 자… 우선은 사령술의 기초 중의 기초인 ‘영혼 시야’에 대한 기초 개론이다. 이걸 확실히 이해하고 익히면 그다음엔 ‘영혼 제어’와 언데드 소환의 기본인 ‘사령 구속’으로 넘어갈 거다.”

베오날드는 몇 장의 양피지로 된 뭉치를 루켄에게 넘겼다.

거기에는 제국어로 옮겨 적어 둔 사령 마법의 기초 이론 중 하나인 ‘영혼 시야’에 대해 적혀 있었다.

일단 ‘영혼’이라는 것을 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만 ‘사령술’을 발휘할 수 있기에 필수 과정이었다.

“이, 이걸 제게 말입니까? 하, 하지만…….”

“어차피 기초 중의 기초이고, 우리 학파 것도 아니라서 아깝지도 않아. 가능하면 그 사령술 마도서를 직접 주고 싶지만 그건 또 재산이라서 넘길 수 없지. 하지만 이렇게 필요한 부분만 옮겨 적어 오는 건 가능하지. 그리고 뭉치면… 또 다른 마도서 한 권이 되고 말이야.”

“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나도 나름 사령술의 기초 정도는 이론으로 배웠으니 나중에 봐주도록 하지.”

“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그저 재능이 썩고 있는 게 아까워서 베풀었을 뿐. 그리고 이다음은 너 하기 나름이다. 그럼 나는 할 일이 더 있으니, 그 부분을 다 익히면 찾아오도록. 다음 배울 것을 넘겨주지.”

겉으론 쿨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는 베오날드였고, 그를 바라보는 루켄의 표정은 거의 신을 대면한 신앙심으로 가득한 신도의 모습과도 같았다.

스승이랍시고 자신을 부려 먹고 속이고 있던 것에 대한 진실을 알려 주고, 거기에 이 마법사들의 도시인 ‘진리의 성’에서 가장 귀중한 것인 ‘지식’을 베풀어 주다니. 그 자비는 신의 가호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좋아. 그리고 저걸 익히고 난 뒤, 다음 지식을 구하기 위해 오면 이제 또 다른 대화의 기회와 교류의 찬스가 생기는 법이지. 후후훗.’

베오날드로서는 이제 저 루켄이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면서 자신의 아래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테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머리가 똑똑하든 멍청하든 인간의 행동 원리는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였다.

지금 지식 하나에도 저런 반응이면 더 많은 지식을 주면서 지속적으로 교류하면 어느 정도 쓸 만한 수준의 마법사가 손에 들어오게 되리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제… 이곳 진리의 성이나 본래 스승보다는 당연히 날 따르게 될 거고, 그게 곧… 여기서 나의 힘이 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베오날드는 이곳의 홀대받거나 혹은 재능이 있는데 속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지식을 베풀거나 마법 이론을 봐주는 식으로 그들의 신임까지 얻어 가면서 계속해서 이 연금학부 영역에 자신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확대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뭐야? 도축장 놈들, 오늘도 쉬어?”

“재료가 와야 일을 한다나?”

“얼마나 빨리 일하기에… 세상에…….”

“그… 어둠학부에서 오신 새로운 마법사님이 아주 수완이 장난 아니라던데? 아, 맞아. 오늘 오전에도 오셨어.”

그 뒤로 베오날드는 다른 시설과 영역에도 손을 뻗기 시작, 이미 도축장 하나를 완전히 바꿔 놓은 만큼 그의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고, 생산력과 노동 현장을 개선해 준다는 것을 마다할 자가 없었기에 다들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약 한 달이 지나자 순식간에 이 슬럼이자 지옥 같은 연금학부의 절반을 장악하게 된 베오날드였다.

“후후후, 드디어 이 연금학부의 절반이 내 손에 들어왔군.”

“감축드립니다, 베오날드 님!”

“덕분에 물자 공급량도 맞출 수 있으면서, 저희는 여기에서 다시 마법 연구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돌아가는 게 이상한 일이지요. 그 망할 해골바가지 자식! 시키는 건 더럽게 많으면서!”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의 성! 마탑이 돌아가야 할 모습!”

루켄을 비롯해서 자연스럽게 추종자 마법사들도 생겨난 상황. 다들 지식과 마법의 힘에 매료된 자들인데 베오날드가 그것을 알려 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학부에서 밀려나거나 아니면 마법에 실패해서 이곳에 떠밀려 왔기에 힘과 지식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컸고, 베오날드가 강요하거나 떡밥을 던지지 않아도 알아서 충성을 맹세하며 따르고자 한 것이었다.

‘음, 역시 500년이 지나도 얘네들도 변하진 않는다니까……. 게다가 뭘 방해하려고 하는 놈이 없으니 더 쉽지.’

어차피 밖에서는 어둠학부장 리리켈의 사망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더불어 애초부터 연금학부의 반대편에 있는 이 시궁창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기도 했고, 다들 자기 연구나 관심사에만 집중하는 마법사들의 지식욕 덕분에 아무런 견제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 빛이 밝아지면 사람의 눈을 끌게 되는 법. 이 연금학부의 슬럼가에서 일어난 변화의 소문은 이제 대로 반대편에 있는 기존에 번영하고 있던 ‘연금학부’까지 날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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