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자, 그러면 먼저 가 볼 곳은… 사령학부와 어둠학부인가?”
달켄 다이나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다음 스텝은 그가 어떤 ‘존재’로 재확립되었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어차피 대마법사라서 수백 년을 살아도 뭐라고 하지 않던 양반이 갑자기 죽음을 위장하고 되살아날 이유가 없으니, 결국 어떤 한계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되살아난 것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죽음을 벗어날 방법을 가진 게… 딱 그 둘이지. 아, 하나 더 있긴 했지.’
리치가 되는 사령술, 마족과 계약을 하거나 혹은 지배를 해서 그 존재를 빼앗아서 죽음을 거부하는 흑마법. 그리고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그건 그 달켄 다이나가 활용할 방법이 아닌 것으로 바로 연금술이었다.
호문클루스 같은 인공 육체를 만들어서 몸을 옮겨 버리는 방식으로, 연구 기간만 확보되면 가능하겠지만 연금술사인 베오날드를 극히 싫어하는 달켄 다이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방법은 앞의 둘뿐이었다.
“으음, 가능하면 둘 다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으으음~”
500년 전 상대해 본 그 두 부류를 떠올리니 머리가 아파 오는 베오날드였다.
어떻게 500년 전 평화로운 시기에 그들을 상대했느냐면 마탑에서 엄연히 공인된 학문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본래 흑마법이나 사령술은 그 학문의 성질이 종교,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교단에서 발악해서 금지되었을 뿐이지, ‘진리와 연구’를 추구하는 마탑에서는 허용되는 학문이었다.
‘…끔찍한 놈들이었지.’
그리고 베오날드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금지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할 작자들이라 탄압해서 아예 음지로 숨어들고, 이상한 범죄 조직이랑 손잡게 두는 것보다는 눈에 닿는 곳에 놔두고 적당히 사고 안 치게 관리하는 정도가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최소한의 교류는 해 둔 것이었다.
연구비를 미끼로 어느 정도 연구 방향도 통제할 수 있고, 또 그 연구들을 통해서 민간에서 날뛰는 다른 사령술사나 흑마법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되곤 해서 정책은 성공적이었지만 관리에 드는 정신적 피로감이 너무 컸다.
‘진짜 다 정신병자였지. 하아아~’
‘후후후, 여명처럼 찬란히 빛나는 자여, 늘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조율하기 위해서 바쁜 걸 알지만 우리의 야망을 위해선 좀 더 큰 발걸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힘을 끌어내고 더 나아가… 쿠억!’
‘연구비 올려 달라는 말을 왜 그렇게 장황하고 어리석게 하냐!’
‘이것은 위대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사명! 어둠의 힘을 받아들인 대가이자, 우리의 카르마… 쿠억!’
흑마법을 하면 언어 중추가 맛이라도 가는 건지, 그놈들은 말을 아주 허황되고 장황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베오날드의 혈압을 올렸다.
‘용건만 간단하게.’라고 암만 말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죽했으면 서류로 전하라고 했지만 서류도 종이 한 장으로 끝날 것을 기괴한 미사여구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으로 가득 채워서 3배, 4배의 양으로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무튼 500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희망을 품으며 베오날드는 우선 흑마법학파의 구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베오날드의 기대는 일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걸 증명하듯 흑마법학파의 구역은 자신의 존재를 화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괜한 기대를 했구나.”
우선 흑마법 영역은 무슨 흑(黑)마법이라는 걸 표시하려고 하는 건지 칠흑 같은 검정색으로 가득 찬 거리였다.
도로의 타일, 각종 건물들은 물론이고 간판까지 죄다 검정 일색. 그러면서도 우중충함을 없애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냥 화려하게 보이고 싶어서일까? 거기에 거리를 다니는 흑마법사들로 보이는 놈들의 패션도 말이 아니었다.
“어서 와라. 아직 충족되지 않은 너의 욕망을 해방시키기 위해 왔구나!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 황금의 재보와 바꿀 너의 욕망을!”
부업인지 길거리에서 케밥을 만들어 파는 마법사의 패션도 가관이었는데, 새하얀 머리카락에 새까만 정장, 깃털 모양 장식이 달린 외눈 안경에 모자, 가슴엔 백장미를 꽂아 두고, 우아한 몸짓으로 던전의 마족도 하지 않을 멘트를 던지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손에 보랏빛 화염을 머금고 화려하게 움직이며 방금 썰어 낸 고기에 불 맛을 입히는 꼴까지. 베오날드는 500년이 지나도 흑마법사들은 여전하구나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패션을… 하려면 좀 다양성을 구축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렇게 잔뜩 있으니 완전 아비규환이군.’
베오날드도 귀족이라서 화려한 패션과 치장을 좋아하긴 했지만, 저것들의 편향된 패션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범위였다.
일단 검은색으로 통일하기로 정한 것도 아니면서 죄다 검정색 일색인 것도 이해 불가고, 사슬이니 날개니 검이니 하는 것도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맨날 저 과장스러운 말투도 그렇고, 틈만 나면 아무 일도 없는데… ‘크크크큭.’거리면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으니 말이다.
‘와아아… 여긴 더하군.’
하나 지금까지 봐 왔던 것은 이제 이런 놈들의 소굴인 ‘어둠학부’의 건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원소학부’는 깔끔한 연구소를 떠오르게 했다면 ‘어둠학부’는 지옥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아니, 어떻게 지옥을 다녀온 건지 지옥의 풍경을 거의 재현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지옥의 풍경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 쳐도… 이 흑마법사 놈들은 죽으면 마족에게 끌려가거나 먹히는 주제에 어떻게 아는 거지? 아, 마족을 빙의시키는 놈들이 있어서 그런가?’
베오날드는 과거 지옥에 있을 때의 체험을 생각하며 이 만마전 같은 어둠학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종 마족의 형상들이 그려지고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흑마법사들은 대놓고 사역하거나 계약한 마족을 끌고 다니거나 먹이를 주는 광경도 보이고 있어서 기괴했는데… 이런 놈들 소굴에서 멀쩡한 인간이 보이니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는 베오날드였다.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 눈 가진 놈이 비정상이니…….’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고 베오날드는 마족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출입구로 들어가서 건물 내부로 향했다.
건물 내부엔 안내 게시판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엔 붉은 피로 글자가 써져 있었으며 심지어 마계어로 되어 있어서 대체 손님을 맞이할 생각이 있는지 고민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입구 옆에서 경비로 일하는 것 같은 부츠에 멋들어진 군복 같은 옷을 입은 흑마법사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운명을 좇아, 이 판데모니움에 온 자여! 환영합니다. 아쉽지만 그 이정표는 마족과 인연을 가진 자만이 읽을 수 있는 것. 혼돈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방객인 당신에겐 저의 안내가 필요해 보이는군요.”
“아뇨. 나도 마족어 정도는 읽을 수 있으니 말이죠. 필요 없습니다.”
베오날드는 단호히 거부하며 신경 쓰지 않고 안내 게시판에 나온 대로 학부장을 만나기 위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꼭대기는 6층이었는데, 학부장실 입구 옆에는 마족에게 바치는 제단이 있었고, 거기엔 기분 나쁜 인형들이 잔뜩 피가 묻은 채로 걸려 있는 악취미적인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가 있을 법한 곳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다음 안에서 반응이 나오길 기다렸다.
‘제발 좀 덜 미친 자이길…….’
“들어오시지요.”
“어머, 귀한 손님이네.”
‘…목소리가 둘? 누구랑 있나?’
안에서 들려온 것은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로 베오날드는 기이하게 여기면서 일단 들어오라고 했으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놀라게 되는데, 목소리는 둘이었지만 안에 있는 것은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걸 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베오날드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음, 너무 그리 놀라지 마십시오.”
“안녕? 자기~”
중년 남성의 몸 오른쪽에 보랏빛 피부를 가진 여성의 상반신이 붙어 있는 꼴이었다.
남성은 연구에 찌든 퀭한 모습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에게 붙은 여성의 신체는 미녀이긴 했지만 머리에 달린 뿔이나 붉은 마족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베오날드의 경계심을 바짝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 기이한 걸 많이 본 베오날드라곤 해도 이건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좀 조용히 해 줄 수 없나?”
“그건 계약에 없지 않나?”
“…그 몸에 붙은 건… 마족입니까?”
“뭐, 그런 셈이지요. 어둠학부장 1급 마법사 리리켈이라고 합니다. 후후후.”
“자기, 좀 더 멋있게~”
“좀 가만히 있어, 너는! 내가 너 때문에 흑마법사의 전통을 못 살리지 않는가?”
“오, 학부장님은 신기하게도… 그… 학생들과 말투가 다르시군요.”
감동이 살짝 올라올 것 같은 말투로 베오날드는 학부장인 그가 제대로 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러자 리리켈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그는 한숨을 쉬면서 그에 답했다.
“하아아아아아~ 사실은 저도 그러고 싶지만, 여기 이 마족이 계속 멋대로 떠드는 바람에… 언제부턴가 개판이 되더군요. 그래서 그냥 저는 전통을 버렸습니다.”
“그 마족과는 어떻게? 그런 몸이 된 겁니까?”
“…그게 흑마법을 통해 소환에 성공하긴 했는데, 계약을 잘못 맺는 바람에 이런 꼴이 되었죠. 아무튼 지옥에 있다가 나오신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님이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까르르르륵! 후후후훗~”
“오? 날 알아보나?”
“이거랑 합쳐진 덕분에… 영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작님. 아, 좀 가만히 있어 달라고… 응?”
“싫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마족을 가리키며 베오날드에 대해 아는 듯 말하는 리리켈이었다.
확실히 납득 가는 이유였기에 베오날드는 딱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며 옆에서 떠드는 마족을 무시하고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아무튼 그런 위대한 베오날드 폰 노이멀 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여신의 개가 되니 살림살이 많이 나아졌어? 응~? 지옥에서 볼 땐 많이 고통스러워 보였는데~”
이렇게 되니 더 이상 존중할 필요 없이 태연히 말하기 시작하는 베오날드였다.
“달켄 다이나 문제 때문에 왔다. 놈이 내가 죽고 난 뒤에도 하지 말라던 ‘신마법’ 연구를 계속하더군.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 죽음을 극복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고 싶은데 말이지. 혹시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아나?”
“으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랑은 워낙 교류가 없던지라. 하지만… 그 양반 성격상 ‘마족’이랑 계약하고 싶진 않을 겁니다. 잘못하면 저처럼 되거나 혹은 영혼을 빼앗길 리스크를 쥐거나 마족과 잘못 융합해서 정신과 지식을 빼앗길 수 있으니 말이죠.”
“게다가 누가 나오느냐도 문제지. 후훗~ 나처럼 예쁘고 귀엽고 자비로운 자가 아니라 광포하고 무서운~ 놈이 나올 수 있잖아?”
“그렇군. 그러면 흑마법은 아니라는 거군. 잘 알았다. 그럼 정답은 결국 ‘리치’겠군.”
소거법에 의해서, 그리고 달켄 다이나가 가진 지식과 야망을 생각하면 나온 결과였다.
아무튼 달켄 다이나의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 돌아가도 되지만, 그냥 돌아가기엔 역시 지금 다이나 가문을 혼자 혹은 원소학파의 지원만 가지고서 치기는 매우 어려웠다.
고로 베오날드는 이 리리켈이라는 자를 설득하기로 했다.
“혹시 그가 연구하는 ‘신마법’이 뭔지 아나?”
“아뇨. 관심도 없지요.”
“아주 허황된 이야기지. 후후훗~”
“나도 허황된 소리로 끝났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니 망할 여신이 날 여기로 보냈겠지? 그것도 저기 남부에서 우리 딸내미가 난리 피우는 걸 막아야 하는데 말이야.”
“으음, 하긴 베오날드 님이라면 마왕에게 영혼을 판 따님을 그냥 놔둘 리 없을 테니…….”
그럴싸한 설득을 하기 위해서 딸인 라라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인데, 리리켈은 납득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베오날드가 그냥 넘어가기 힘든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잠깐, 지금 그거 무슨 소리지? 우리 라라가… 마왕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 어차피 그 마왕은 내가 모시는 분이랑 적대하는 새끼라 상관없어.”
“똑바로 말해. 우리 라라가… 어떻게 되었다고?”
“이거 그냥 알려 주면 안 되는 건데… 음, 그 분노와 증오의 마왕을 이 땅에 강림시킨 게 따님입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축복과 힘을 받았고, 이종족은 예외로 두는 거래까지 했지요. 당연히… 그만한 거래를 했으면 대가도 따르기 마련이지요.”
“마족과 하는 거래엔 늘 대가가 존재하지~ 후훗~ 큰 걸 원할수록 더 큰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당신 딸이 뭘 빌었을 것 같아?”
친절히 설명해 주는 켈의 말과 놀리는 마족 리리의 말이 동시에 베오날드를 압박해 왔고, 그는 한숨을 쉬며 영혼을 팔 정도로 세상을 증오하게 된 딸의 처지에 기분이 착잡해짐을 느꼈다.
하나 지금은 우선 달켄 다이나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베오날드는 일단 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리리켈에게 ‘신마법’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