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다이나 가문 매매부 근처 카페.
“주문하신 커피와 디저트가 나왔습니다, 손님.”
“호오… 이거 맛이 좋군. 농업은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한창 달켄 다이나가 마도서의 봉인을 풀고 있을 때, 같은 시각 베오날드는 매매부 건물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양복을 입은 스켈레톤이 가져온 커피와 디저트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매매부 근처에는 이렇게 식사를 하거나 잠시 쉴 수 있는 영역이 잘 갖춰져 있어 다행이었다.
“으음~ 아무튼 슬슬 내가 준 마도서가 높으신 분에게 전해졌을 것 같은데… 과연 어떻게 되려나?”
마치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작은 아이처럼 그는 마도서의 빈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빈 페이지에서 잉크가 퍼지는 것 같은 형상이 보이더니 저절로 잉크들이 움직여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살표 2개가 그려지고, 하나는 다이나 가문의 저택 방향을 가리켰고 다른 하나는 페이지 바닥 방향을 가리켰다.
“음, 이렇게 빨리 봉인을 풀 줄 몰랐군. 나름 전력을 다해서 새긴 봉인 술식인데 말이지. 그렇다는 건 역시… ‘달켄 다이나’가 아직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달켄 다이나 정도 되는 천재가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자신이 새긴 봉인 술식을 풀 수 있을 리가 없기에 그가 살아 있거나 혹은 다이나 가문 후예의 실력이 그 정도 된다고 예상해야만 했다.
‘…뭐, 그것도 곧 밝혀지겠지. 어디, 내가 준비한 깜짝 상자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에 따라 봉인 술식을 푼 인물이 누구인지 확실해질 것을 기대하며 베오날드는 입안에 넣은 쿠키의 단맛을 느끼며 경과를 기다렸다.
***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역경과 굴곡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서 누구나 싫은 기억이 새겨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생에 남을 만큼 트라우마가 되어 떠오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며 잊으려고 애쓰지만, 또 가끔씩 튀어나와 찔러 대는 아픔을 주곤 한다.
이런 점은 평생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탑의 기둥, 대마법사로 살아온 달켄 다이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죽음을 거부하고 리치가 되고서도 영혼에 새겨진 기억은 아픔을 불러오곤 했다.
[히끼기이이에게에게에게에겡에게게게겍게겍!]
“서, 선조님! 선조님! 왜 그러십니까? 뭘 보신 겁니까?”
[히기기기이기익! 저거… 저거… 저거! …기기기기긱! 저거!]
리치인 달켄 다이나는 인간이 낼 수 없는 기괴한 비명과 함께 영혼이 공포를 느낀다는 걸 표시하는 건지 온몸의 푸른 불꽃이 덜덜 떨리면서 사방으로 분사되었고, 책을 떨어뜨리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 책 안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 무서운 게 없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던 마법사 달켄 다이나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던 것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선조님, 대체 뭘 보고… 이건?”
<사용한 연구 재료 미납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실험으로 인한 피해 보상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마탑 자금 사용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각종 연구비 사용 증명 서류 제출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미납 세금 제출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마정석 무단 사용 사건 진술 출석 요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
…….
…….
다리온 다이나는 책 안에 떠오른 각종 문구들을 읽어 나갔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죄다 ‘청구서’ 아니면 ‘출석 요구서’, ‘진술서 요구’, ‘시말서 요구’ 같은 시답지 않은 것들이었다.
뭔가 금단의 지식이나 위험한 내용이거나 하는 걸 상상했던 다리온은 다른 내용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넘겨 보는데… 그런 건 전혀 없고 죄다 이 내용뿐이었다.
“선조님, 고작 이걸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이신 겁니까?”
[고작? 크그그그극… 내가… 내가 왜… ‘마법사 왕’이 되었는지… 그그그극! 그리고… 이 나라를… 키기기긱! 만들었는지 모르는 게냐? …다 저 지긋지긋한! …돈 때문에! 끄크그그극! 그 망할 베오날드 놈 때문에! 키기기기기기긱!]
달켄 다이나는 과거의 기억을 떨치려고 애쓰는 건지 부들부들 떨면서 발작을 했다.
사람의 기억이란 신기한 게 같은 사건을 겪고도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베오날드에게 ‘달켄 다이나’는 그저 성가시고, 돈 계산 잘 안 하고, 짜증 나지만 실력은 있는 노친네로 기억이 되고 있었지만, 달켄 다이나에게 ‘베오날드’는 또 다른 것이었다.
‘대마법사라는 분이 예산 신청안도 제대로 못 씁니까? 술식 구성이랑 마법을 하는 데 쓰는 두뇌 절반만 이 정도로 하셨으면 좋겠네요.’
‘이 허무맹랑한 계획은 대체 뭡니까? 이런 데 귀중한 재원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기각!’
‘연구 자금이 없으면 모험가를 하셔서 돈을 벌어서라도 만드시지, 대체 대마법사라는 분이 빚을 지면 어떻게 합니까?’
‘하지 말라는 연구는 좀 하지 말라고! 이 노친네야!’
본래 마탑에선 오직 마법 실력과 지식만이 전부였는데, 그 베오날드라는 놈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뭔가 이상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달켄 다이나였다.
심지어 그는 무슨 일만 하면 자신에게 큰소리치며 이리저리 쪼아 대고, 실험을 방해하고 온갖 욕설과 모욕을 줬는데, 마음 같아서는 정말 마법으로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제국의 섭정으로서 휘두르는 권력, 그것을 기반으로 쌓은 강대한 세력은 물론 깐깐하긴 했지만 놈이 지원함으로써 마탑의 예산은 그 총액수가 몇 배나 늘었고, 또 갖가지 마도구와 마탑 내 파벌을 생성해서 건드릴 수 없는 건 물론 자신을 온갖 방법으로 부려 먹고 괴롭혀서 두려운 존재가 된 것이었다.
[크그그그극! 크그그그극! 젠장! 젠장! 젠장! 그 망할 놈! 죽어서도 나한테 개지랄을 해 대는군! 젠장! 젠장! 이거 가지고 온 놈이 누구냐? 크그그그극!]
그 두려움의 레벨이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핵심 연구인 ‘신마법’ 연구를 폐기했을 때도 감히 대들지 못하고 죽어서야 대항할 수 있는… 껄끄럽고 짜증 나면서도 두려운 담당 일진 같은 존재로 각인된 거였다.
“지, 진정하십시오, 선조님. 어, 어차피 지난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노이멀 가문은 이 지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진정하십시오.”
[크그극… 크그그극… 후우… 후우…….]
언데드인 리치가 된 이후 숨을 쉴 필요가 없어졌는데, 오죽 과거의 기억이 고통스러웠으면 달켄 다이나는 연신 의미 없는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결국 다시금 베오날드가 죽었다는 것을 상기해 내고 간신히 진정한 그는 망할 그 마도서를 집어 들고 보기 시작했다.
[그… 크그그극… 그 썩을 놈이! 기어이 죽어서까지… 크그그극! 날 엿 먹이는군. 아무튼 이건 장부인가? 그그극… 그 지독한 놈이라면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할 만하지. 크그그그극…….]
간신히 진정한 덕에 이제 이 마도서가 어떤 것인지 다시 분석을 시작하는 달켄 다이나였다.
일단은 장부인 것 같아도 베오날드가 직접 작성한 듯 보였기에 혹시 다른 중요한 정보나 암호, 혹은 놈의 유산을 찾을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체크하면서 살펴보았지만 내용은 죄다 특별한 게 없고 그냥 장부였다.
[크그그그극… 시답지 않구먼.]
“그래도 어차피 금화 10개밖에 주지 않았으니 큰 손해는 아닙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이딴 것에 큰돈을 썼다면… 크가망나 ᅳᆷ오ㅜㅠㅣ ᅣᆫ몽마 ᅵᆫ;둼니;와ㅣ;ㅋㅌㅊ!]
“서, 선조님?”
이제는 쇠를 긁는 소리를 넘어서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또다시 발작한다.
다리온은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 쓰러진 달켄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는데… 언데드라서 입에 거품을 물 수가 없을 텐데도 그는 몸에 깃든 푸른 불꽃이 바르르 떨리면서 발작 같은 걸 일으키고 있었다.
“선조님! 괜찮으십니까?”
[그놈이… 크르그그르그르그극… 그놈이……!]
갑자기 또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기를 일으키며 떨기 시작하는 달켄 다이나였다.
다리온은 선조님이 또 왜 이러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바닥에 떨어진 고서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펼쳐진 페이지는 가장 마지막 장으로, 거기엔 딱 2줄의 글이 적혀 있었다.
<대여해 간 ‘신마법 구현과 방법론’ 반납 요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신마법 구현과 방법론’ 대여 연체금 청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선조님? 이것도 결국 같은 내용… 아닙니까?”
[머, 멍청한 녀석아! 크가가가아가악! 이건… 이건! 달라!]
달켄 다이나는 기겁하면서 내용을 계속 가리켰다.
그래, ‘신마법 구현과 방법론’은 본래 자신의 것이었지만 연구의 실패와 사고 때문에 베오날드에게 폐기를 당했다.
하나 놈은 그 연구 자료를 실제론 폐기하지 않고 빼돌렸고, 그것을 알아챈 것은 바로 베오날드의 아들인 알테리오 폰 노이멀이 알려 준 덕분이었다.
그것을 알자 당연히 자신의 것을 되찾기 위해서 달켄 다이나는 알테리오와 손을 잡고 베오날드에게 반역, 그가 사형대에 올라 죽자마자 되찾았던 것이다.
[즉… 크그그극… 이건… 나올 수 없는 청구서라는 거다. 크기기게게게겍! 아니… 아니지!… 아닐 거야. 아닐 거라고… 키기이기익… 악마의 장난 같은 거…….]
“왜 그러십니까?”
[키기극그그극… 이걸 이렇게… 하면…….]
스윽…….
달켄 다이나가 떨리는 뼈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마도서 페이지 위에 있는 ‘대여해 간 ‘신마법 구현과 방법론’ 반납 요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부분을 만지자 페이지가 자동으로 재구성되면서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
요구서를 목차로 만들고 그 내용을 보기 위함으로, 달켄 다이나는 불안해하며 그 내용을 보고자 한 것이었다.
<대여해 간 ‘신마법 구현과 방법론’ 반납 요구서-청구 대상:달켄 다이나>
<달켄 다이나 님께서 대여하신 지 약 500년이나 지났습니다. 신속히 ‘알의 둥지’ 혹은 발데리안 가문에 해당 서적을 반납해 주시길 바랍니다.>
<청구자-제국 섭정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
[크커거어어거억! 설마 설마 했는데… 놈이… 놈이 살아 있다고? 크게에게엑……!]
믿을 수 없다는 듯 눈 부분에 있는 불꽃이 흔들리는 달켄 다이나. 하지만 이 사인, 그리고 새겨 놓은 술식 세공은 어딜 봐도, 누가 봐도 그놈의 작품이었다.
달켄 다이나는 흐를 리 없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 다시금 그 마도서를 보고, 또 안에 있는 서명을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놈이 살아 있을 리가… 아니야. 봤다고! 키그그극! 크기기기긱! 단두대에 목이 떨어지는 걸 내가 직접 봤는데… 크그그그극! 아니지, 그놈 실력이면 대역을 만들 호문클루스쯤은 준비해 두었을 가능성도 있어. 카가카가카가마각가각! 생각해 보면 체포되던 날부터 묘하게 말수가 적었던 것도…….]
“선조님! 제발 진정을…….”
[아니,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놈이… 크가카가가각! 그놈이 지금 살아 있다면 크가가각! 내 계획을 다시……! 또다시 방해할 거라고! 그가가각! 여기까지 어떻게 연구를 했는데! 내가 어떻게 연구를 했는데! 그놈이! 그놈이 또 방해하게 둘 순 없어! 둘 순 없다고!]
퍼어어어엉!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달켄 다이나는 동요하는 감정을 통제 못하고 그 청구서와 요구서가 가득한 마도서를 마법으로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저걸 보고 있다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한번 뇌리에 박힌 사실을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지. 일을… 서두르는 수밖에…….]
그렇기에 달켄 다이나는 어쩔 수 없이 지금 하는 연구, ‘신마법’을 서둘러서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다리온에게 지시를 내렸다.
살아 있는 베오날드를 지금 찾아서 어쩌니 하려고 해 봐야 답이 없으니, 그놈이 뭔가를 하기 전에 자신이 선수를 치고자 한 것이었다.
“하하핫, 노친네, 여전히 성질머리하고는…….”
그리고 같은 시각, 카페에 앉은 베오날드는 잉크가 번진 것 같은 자국이 있는 마도서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이 저쪽 매매부에 판 마도서가 파괴될 때 그것을 여기에 표시하도록 하는 술식 장치를 해 두었는데, 그것이 정말로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 노친네가 천재고 똑똑하긴 한데… 여전히 감정적이군.”
그리고 이를 통해서 베오날드는 달켄 다이나의 생존을 확신했다.
보통 아무리 내용물이 개판이어도 달켄 다이나가 아닌 다른 후손이나 마법사라면 귀중한 봉인 술식이 담겨 있는 책이기에 이렇게 파괴하는 건 상상도 못할 테니 결국 저곳에 있는 건 달켄 다이나 본인이라는 뜻이었고, 베오날드는 이제 확인할 것을 하나 알아냈으니 그다음은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