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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73화 (173/259)

[173화]

‘…이건 뭐지?’

그렇게 다이나 가문의 저택으로 향하던 베오날드는 점점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풍경에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저택의 담장이 석회로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알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고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석회를 혼합해서 틀에 넣어서 굳힌 것 같은 벽인데, 기이하게도 튼튼한 것이 눈에 들어온 베오날드는 다이나 가문으로 가는 것도 잊고 그 벽을 만지작거리면서 강도도 체크하고 느낌을 보기 위해서 힘도 줘 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으로 보일 짓이었다.

“오오… 오오오오! 이거 기가 막히는군. 어떻게 만든 거지? 단순히 석회를 틀에만 넣어선 이 튼튼함이 절대 안 나올 텐데? 나중에 몰래 뜯어 가 볼까? 으으음… 아차! 내 정신 좀 봐. 이러면 안 되는데……! 크흠!”

새로운 것에 눈이 팔린 그는 자신이 눈에 띌 짓거리를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지만, 놀랍게도 주변의 누구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마법의 연구가 일상인 이 도시에선 별의별 일이 다 생기기 때문에 그냥 저택 벽을 보고 신기해하는 촌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눈치였다.

‘아무튼 여기에 오니 이제 좀… 500년 후로 온 게 실감이 되는군. 공기랑 환경은… 개판이지만 말이지.’

건축 양식이라든가 도로라든가, 방금 전 갔던 마탑의 원소학파 건물이라든가. 자연 환경은 개판이었지만 그래도 문명이 발전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낳았다는 실감이 드는 베오날드였다.

‘밖에서 보면 폐쇄적이지만 내부로 보면 또 입장이 다르군. 전란으로 혼란스러워서 후퇴한 것에 반해서 여기는 자유방임이긴 하지만 온갖 연구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야. 흐음… 아무튼 다 왔군.’

“잠시 멈추십시오, 손님. 안으로 들어가시려면 이곳에 오신 목적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택 입구에 다다르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이 막아서면서 들어온 것을 묻는데, 베오날드는 한눈에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닌 호문클루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와 눈가와 얼굴에 유달리 사람 같은 핏기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팔목이나 손등에 혈관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인간과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기에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 저는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상인입니다. 그… 다름이 아니라, 우연치 않게 거래로 받은 물건 중에 이곳 다이나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도서가 있어서 말입니다. 팔고자 왔습니다.”

“유물 및 고서의 물품 매매와 관련된 것은 이 저택이 아닌 다이나 가문 매매부 건물로 가셔야 합니다.”

“음, 그럼 그리로 안내를 부탁하지요.”

“저쪽 길로 가서 사거리에 다이나 가문의 문장이 찍혀 있는 건물이 있을 겁니다.”

호문클루스의 안내를 받은 베오날드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걸어 가문 매매부에 갈 수밖에 없었다.

도달한 다이나 가문 매매부 건물은 5층이 넘는 대형 건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마법 물품과 소재를 사고파는 ‘다이나 가문 매매부’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 베오날드는 인파를 제치고 조심스럽게 들어가 마도구를 구매하는 창구 쪽으로 가서 순번표를 받았다.

‘…340번이라. 엄청나군. 그나저나 정말 시끄럽군.’

“마정석은! 마도구 쪽에서 받지 않습니다! 줄 서신 분은 다른 쪽으로 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합니다! 마정석은 마도구 쪽에서 받지 않습니다!”

“감정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절도 및 소란이나 난동을 피울 시 즉시 호문클루스 경비대와 전투 마법사들에 의해 제압에 들어가니! 감정가나 액수가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왜 이 물건이 고작 금화 3개밖에 받지 못한다는 겁니까?”

웅성웅성…….

무슨 시장 바닥도 아니고, 엄청 소란스러운 매매부는 베오날드의 체질과 정말 맞지 않는 곳이었다.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것도 시간 낭비 같았는데, 더구나 소란스럽기까지 하니 느긋하게 있을 수가 없어서 짜증이 슬슬 나려고 했다.

그래도 뭘 할 수 없으니 얌전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그로부터 약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창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다이나 가문 직속 매매부 구매 창구입니다. 어떤 상품을 판매하러 오셨나요?”

“던전에서 얻은 고서를 판매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여기…….”

“어디 보자. 와~ 상태가 엄청 좋네요. 보존 마법이라도 걸려 있던 걸까요? 그리고 이 문장은…….”

“그… 옛날 형식의 다이나 가문의 문장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들고 온 거지요.”

“그렇군요. 어디, 잠시 보겠습니다. 으음… 일단 마력이 깃들어 있는 걸로 봐선 마법이 걸린 책 같네요. 보통 이런 경우 가격을 더 많이 쳐 드리지만, 문제는 이거… 열어 볼 수 없는 봉인 마법도 걸린 것 같네요. 이런 경우 이 물건의 가치를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가지고 나가서… 봉인을 풀 방도를 찾아봐야 할까요?”

마치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듯 당황해하면서 반응하는 베오날드. 누가 봐도 풋내기 상인 같은 모습에 창구 직원은 봉 잡았구나 생각하며 능숙하게 거래를 유도했다.

“걸린 봉인의 마력 밀도를 볼 때, 어차피 이 ‘진리의 성’에서 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 풀려면 아마 이것의 매입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본 매매부에 파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 혹시 다른 마도서도 가지고 계신지요?”

“아, 아뇨. 그것뿐입니다. 그… 마력 밀도가 높다는 건 중요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닌… 지요? 게, 게다가 엄연히 다이나 가문의 문장이 찍혀 있는 건데… 가,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그렇기도 합니다만…….”

일단은 소극적으로 흥정을 하며 저항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베오날드. 하나 여기 매매부에서 갑은 어디까지나 다이나 가문이었다.

창구 직원은 하찮게 반항하는 이 초보 상인에게서 고서를 싸게 후려쳐서 사기 위해 계속 혀를 놀렸다.

“하나 과거 500년 역사에서 다이나 가문은 통일 제국 붕괴 이후 마탑의 전쟁과 각종 분란에도 굳건히 이 땅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구 자료들은 모두 다이나 가문의 서재에 보관되어 있죠. 아마 밖으로 유출된 것은 그리 큰 가치를 지니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파시는 게 가장 큰 이득이 되실 겁니다.”

“…그럴까요?”

“그래도 상태가 좋으니 고서 중에서도 가장 비싸게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자그마치… 금화 10개 정도겠군요.”

“으음… 그 정도라면 뭐…….”

‘역시 허술한 상인 놈 등치는 건 쉬운 일이지.’

창구 직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베오날드가 주는 고서를 받고 금화 10개를 건네주었다.

다시 봐도 상태가 엄청 좋은 옛 다이나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는 마도서. 거기에 봉인까지 걸려 있으니 이건 대박이 분명했다.

베오날드를 속인 건 당연히 귀중한 물건을 싸게 산 실적을 위에 올리면 자신에게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고, 차액만큼의 액수를 자신이 받을 수 있어서 직원은 열심히 입담으로 베오날드를 속인 것이었다.

“흐흐흐, 이거 아주 운 좋게 대박을 건졌군. 이걸 바치면 내 인생도 활짝 피겠어. 히히히.”

그렇게 그는 좋아하면서 즉시 창구를 떠나 건물 위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향했다.

베오날드는 모른 척하며 떠났지만 사실은 그런 그의 반응을 이미 캐치하고 있었고, 자신의 예상대로 행동해 주는 것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올라간 직원은 꼭대기 층에 있는 어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리온 님! 방금 대박을 건져 왔습니다!”

“흐음?”

문이 열리자 나타난 것은 로브를 걸친 키가 약 2미터 정도 되는 거구의 중년 남성이었다.

빳빳이 세운 머리칼에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로브 사이로 드러난 팔에 있는 근육이 불끈불끈거리는, 숨만 쉬어도 주변에 열기를 뿜어 댈 것 같은 이 중년 남성이 앉은 책상엔 ‘1급 마법사, 매매부 총책임자 다리온 다이나’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그는 워낙 거구인지라 두 손가락으로 책을 보고 있다가 직원이 가져온 마도서를 보기 위해서 잠시 내려놓고 다가갔다.

“아니, 이건?”

“역시 그렇지요? 다리온 님! 이 문장! 과거 통일 제국 시절 쓰던 디아나 가문의 문장! 맞지요?”

“으으음! 정확하군. 그런데 도서 상태가… 이거 엄청 깨끗하지 않느냐? 어디서 구한 거냐?”

“방금 들고 온 상인에게서 구매했습니다. 어느 유적에서 구했다고 하던데… 거기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보존이 엄청 잘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

“으음, 성과군. 게다가 이 책에 붙은 양식… 확실히 통일 제국 시절 물건, 거기에 이 느껴지는 마력과 봉인 양식도 심상치 않군. 하하하핫! 자세히 확인해 봐야겠지만 정말 대박을 건져 냈군! 아주 큰 성과를 거뒀어.”

다리온 다이나는 흥겨워하며 직원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마도서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마력을 흘려 넣어 무언가 확인하기 시작하는데, 가문의 문장뿐만 아니라 안에 있는 마법의 술식을 읽어 내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러곤 머릿속으로 그것을 그려 보던 그는 놀란 듯 눈썹을 씰룩거렸고, 곧바로 눈을 뜨고 반응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여기 걸린 봉인을 풀고 제대로 된 감정을 받아야 하니 난 잠시 본가에 다녀오겠네. 아, 자네, 이름이?”

“캘륀이라고 합니다!”

“캘륀 군! 그 이름 기억해 두지! 그럼!”

그의 이름을 적어 두고 즉시 마도서를 가슴에 넣은 다리온은 뒤에 있는 옷장에서 지팡이를 꺼내서는 곧바로 마법을 시전하여 그 장소에서 사라졌다가 어느 지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실은 매우 넓은 공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벽면엔 거대한 마정석들이 수십 개씩 박혀 있어 뭔가 거대한 의식을 치르는 장소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곳 중앙에선 마도서 한 장을 손에 든 검은 로브를 입은 남성이 주문을 외며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었다.

“선조님! 선조님! 계십니까?”

[…뭐… 냐… 그그극… 다리온… 이냐?]

다리온의 말에 대답한 검은 로브의 남성의 정체는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푸른 불꽃이 깃든 해골로,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그는 바로 이 다이나 가문의 선조이자, 마법사 왕이었으며 죽음을 거부하고 스스로 리치가 되어 자신의 연구를 완성시키고자 한 자. 바로 달켄 다이나였다.

“제가 뭘 가져왔는지 보십시오.”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 그그그극…….]

“통일 제국 시절 서적입니다. 일단 봉인되어 있는데, 그 봉인 술식을 새긴 방식이 ‘노이멀 가문’의 세공 방식이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해서 바로 가져왔습니다.”

[노이멀… 그그그극! 가문… 의 것이라고?]

“예!”

툭!

달켄 다이나는 단숨에 다리온이 내민 책을 빼앗아서 마력을 불어넣고는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안에 봉인 술식을 새겨 넣는 세공 방식이 완벽하게 노이멀 가문이라는 것을 판별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엄연히 500년 전의 통일 제국 시기에 살았던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맞다. 그그그극… 이건… 노이멀 가문의 방식… 그르르륵! 심지어……! 그 베오날드 폰 노이멀 놈이 직접 새긴 것이다! …이걸 어디서 구한 게냐?]

“오늘 매매부에서 상인에게서 구매했다고 합니다. 늘 그렇듯 여기저기에 있던 게 흘러들어 온 거겠지요. 게다가 여기에 걸린 봉인이 꽤나 강력해서 어설픈 곳에는 처분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으음… 하긴 그놈이 새긴 술식이라면… 어중간한 마법사 놈들이… 건드릴… 레벨이 아니지. 내가 아는 한… 놈의 술식 세공은… 대륙… 최고였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래 봐야… 마나의 미움을 받는 놈이라… 마법은 못 쓰지만 말이야. 크그그그그극! 아무튼 우리 가문의 문장이 있고… 그놈이 직접 술식 세공을… 한 책이라면… 엄청난… 의미 있는 게 있겠지. 끅그그그그극!]

쇠를 긁는 소리를 내는 달켄 다이나는 마력을 움직여 마도서의 봉인을 해제했다.

결국 노이멀 가문이 이 봉인에 사용한 술식은 거의 다 자신이 봐준 것이었기에 해제하는 건 코 파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봉인이 풀리고, 책장이 저절로 열리면서 내용이 공개되는데……. 달켄 다이나의 해골 눈 부분에 있는 푸른 불꽃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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