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메메메~?”
“예? 제가 어떻게 연금술사랑 사귀냐고요? 제가 뭐가 어때서요? 그리고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에요.”
“메에메에~”
“네네, 알겠습니다. 예, 여기요. 이분 덕에 구한 마도서예요.”
어떻게 통하는지 모를 기괴한 대화 끝에 셀리나는 품에서 마도서 하나를 꺼내어 제미니 교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발굽(?)으로 받은 제미니 교수는 눈을 빛내면서 책을 마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럴 만한 것이 500년 전 마탑의 전성기 시절 있던 진짜 책이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베오날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메에메에!”
“예? 어디서 구했냐고요? 이분이 구했죠. 연금술사에 마도학자, 거기에 던전 탐험가라구요. 괜히 데려온 줄 아세요?”
“메에! 메에에에?”
‘…뭐라고 하는 거야?’
염소 교수는 기쁜 나머지 베오날드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으면서 막 흥분해서 뭐라 뭐라 떠들어 댔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였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셀리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베오날드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염소 교수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저기, 나는 이분의 울음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만?”
“메잇! 메이이잇! 메… 메흠! 아, 맞다. 깜빡했군. 보통 사람은 우리 학파의 고유 대화법을 알 리가 없지.”
“말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네. 메히히힛! 아무튼 다시 소개를 하지. 이 ‘진리의 성’에서 원소학파의 장을 맡고 있는 1급 마법사, 제미니 코트렌이라고 하네. 메히히힛.”
염소 울음소리가 섞인 기괴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베오날드였다.
다시 소개를 하고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그는 베오날드에게 아까 준 마도서를 보여 주면서 제대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럼 다시 대화를 돌리도록 하지. 베오… 날드라고 했나? 자네는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이 책을 얻었지?”
“오래된 유적에서 얻었지요. 던전 탐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메히힛, 날 우습게 보는 건가? 내가 비록 나이는 고작 15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심심풀이로 고전 문학과 고서 해독을 전공한 몸일세. 메히힛. 이 책들의 보유자와 내용을 완벽히 볼 수가 있지.”
살기 위해서 공부한 편인 베오날드로서는 심심풀이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기가 막힌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마법사들 사이에서 교수가 되려면 이 정도로 공부에 미쳐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고 오히려 눈웃음을 지으며 반가워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야기가 통할 분이어서 좋겠군요.”
“메히히힛, 그거 나도 반가운 소리군. 셀리나야, 우리가 늘 가던 식당 알지? 거기에 귀한 손님이 왔다고 예약하고 오렴.”
“네? 아, 예!”
제미니 교수는 셀리나를 심부름 보내고 나서 발굽(?)을 허공에 저어서 문을 닫고, 결계를 친 뒤에 베오날드의 앞에 의자가 둥실 떠서 뒤에 자리를 잡고, 그다음 발굽을 두 번 치니 그 앞의 탁자에 다과까지 세팅되어서 자동으로 물을 끓이고 타는 것까지 마친 뒤 베오날드의 앞에 놓인다.
“메메~ 그럼 느긋하게 이야기해 볼까? 베오날드 군, 아니… 노이멀 공작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그냥 평범하게 베오날드 군이라고 해 주게. 아무튼 알아봐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물어봐야 하나?”
“메에, 이 책, 제작 연도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이라고 쓰여 있고, 거기에 노이멀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게다가 새겨진 ‘술식 세공’의 방식도 노이멀 가문의 방법 그대로인 진품이지요.”
“하나 그 물건이 진품이라고 해서 어떻게 내가 과거의 노이멀 공작과 동일 인물이라고 확정할 수 있지? 유적에서 가져오고, 이름은 그저 우연일 수 있지 않나?”
“메히히힛, 이름은 우연일지라도 유적에서 가져왔다는 건 어설픈 제 제자나 다른 평범한 인간들이나 속지요. 직접 ‘독니의 둥지’를 공략해 본 입장으로선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갓 20대가 된 애송이가 그 노이멀 가문의 유적을 혼자서 돌파한다는 건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과연, ‘독니의 둥지’를 갔었나?”
“예. 아주… 지독한 곳이더군요.”
“그야 지독한 게 있으니 말이지.”
‘독니의 둥지’. 베오날드의 유산 중 가장 지독한 것들이 있는 곳으로, 거기엔 유사시를 대비해서 만들어 둔 각종 독극물들과 대량 살상용 마도구들을 넣어 두었다.
사용하면 대부분 최소 수천에서 수만 단위를 학살할 수 있는 것인데 왜 만들어 두었냐면… 당연히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하필 가도 거기를 갈 줄이야.’
정원을 가꾸려면 때로는 잔혹하게 농약을 칠 때도 필요한 법.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거나 굴복하지 않고 고집을 굽히지 않거나, 자비를 보이면 얕잡아 보일 때 쓰기 위한 것들이었다.
실제로 몇 번인가 사용한 적도 있었고, 그때마다 상당한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이후 베오날드의 권력은 더 공고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무기가 있는 곳인 만큼 함정과 보안 레벨이 다른 둥지들보다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메히히힛, 지독한 게 있다는 걸 아시는군요. 부정할 생각이 없으신가 봅니다?”
“나도 사실 이해한 쪽으로 판단해 주면 편해서 말이야. 솔직히 그동안은 말을 해도 믿어 줄 사람이 없어서 말 안 한 것이기도 하지. 지금 내가 안 좋은 쪽으로 명성이 퍼진 것도 있지만 말이야.”
“메히히힛, 보통 사람들은 현상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 말이죠. 일어났다면 왜 일어났는지를 연구해야 하는 법이거늘. 저는 아주 즐겁습니다. 메히힛!”
마법사들은 원래부터 기이한 현상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고, 또 신비한 현상이 있어도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탐구하며 직접 그 현상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자들이었기에 이렇게 베오날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제미니 교수는 신난다는 듯 발굽으로 박수를 치면서 베오날드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눈이 되어 있었다.
“메헤헤~ 그래서, 이곳에 되살아나셔서 나타나신 이유가 뭡니까?”
“되살아난 방법을 먼저 물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메히히힛, 그건 이제 직접 연구해 볼 거라서 말이죠. 게다가 어차피 말씀해 주실 게 아니지 않습니까? 노이멀 공작님. 메히히힛, 이거 사령학파나 흑마법 학파에서 알면 아주 난리가 나겠지요. 메히히힛.”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이렇게 기억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들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밝힐 생각은 없는 베오날드였기에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달켄 다이나의 흔적을 찾으러 왔다. 금지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지, 하고 있으면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지.”
“마법사 왕 달켄 다이나라면 이미 죽은 지 오래이지만… 메흠흠… 하긴 다이나 가문에서 연구를 이을 수 있으니. 그런데 그 연구가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사실 시행착오에서 나오는 피해도 크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실질적인 실현 가능성이 없어서 부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막은 것이지만, 이 나라를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 게다가 듣자 하니 그 노인네, 나 죽고 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래 살았고 말이야.”
그렇다면 금지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여신이 우려를 표한 것이라 생각하면 모든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베오날드였다.
세계의 위기를 불러올 그 금지된 연구가 만약 완성되었다면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라라의 살육극은 그저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연구가 만약 완성되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메흠흠… 하지만 이 ‘진리의 성’은 모든 마법에 관한 연구의 자유가 보장된 곳입니다. 개입하려면 적어도 다른 연구를 침해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노이멀 공작님.”
“증거라. 그게 가장 힘들지. 최소한 같은 레벨에서의 실험을 해서 증명해야 하는데… 그건 무리지.”
“메헤헤, 그렇지요.”
“하지만 그 연구가 완성되면 ‘다이나 가문’만 마법을 비롯한 마나의 유산을 독점하게 될 텐데, 그건 용납할 수 있나?”
쨍그랑.
베오날드의 말에 순간 충격을 받은 제미니 교수는 잘 마시던 찻잔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곤 겉으론 뒤덮인 검은 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베오날드에게 이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메힛?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신마법(神魔法).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마법이며, 규칙에 손을 대는 마법이지. 알다시피 ‘마법’이란 세계에 존재하는 마나를 활용하여 각종 효과와 변화를 구현하는 법이지. 그러면 그것의 한 경지 위를 노리는 신마법은 단순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규칙… 에 손을 대려는 거다.”
“메힛, 그러면 그것은 가령… 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차가 반대로 흐르게 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래. 보통 마법사들은 마나의 힘을 빌려서 일시적으로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있지만 영원히 그 규칙을 고정하진 못하지. 하나 달켄 다이나는 그것을 하려고 했다. ‘오늘부터 강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라고 하면 이제 이 세계의 모든 강물은 반대로 흐르게 되는 것, 즉… 규칙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마법은 모두 존재 가치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메싯… 이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군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달켄 다이나의 목표라서 신마법을 완성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나도 지금 알아내려고 하는 참이지.”
“메으으음…….”
제미니 교수는 아까와는 완전 다른 표정으로 고뇌하기 시작했다.
베오날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이나 가문의 연구는 당장이라도 모든 학부의 교수들과 마도사들이 나서서 막아야 할 중대한 사안이었다.
물론 신빙성의 문제나 증거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 말을 한 게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는 점이 제미니 교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조사하려고 들면 그거야말로 연구 침해라면서 이쪽이 역공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조사를 하러 온 거지. 증거나 동향을 찾아내고 난 뒤에 움직여 줘도 좋으니 그렇게 되면 언제든 다른 학부의 교수들과 마법사들에게 연락할 준비나 해 주게.”
“메히이잇… 알겠습니다.”
“더불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셀리나를 좀 붙잡아 놓길 바라지. 협력자이지만 이번엔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그러니 다이나 가문의 연구실과 거처, 알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알려 주면 되네.”
“메히히히, 알겠습니다.”
위험 부담도 안 질뿐더러 제자에 대한 배려까지 해 주니 제미니 교수는 더할 나위가 없었기에 즉시 승낙하고는 베오날드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다이나 가문의 정보를 순순히 알려 주었다.
또한 이 ‘진리의 성’ 어디를 가도 방해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원소학파 교수의 심부름꾼이라는 표식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이 진리의 성 어딜 가셔도 무시당하거나 실험동물 취급받지는 않을 겁니다. 메헤엣.”
“좋아, 고맙군. 그럼 바로 일에 착수할 테니 셀리나를 잘 부탁하지.”
“메헤헤, 무사히 돌아오시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마도서는 감사히 받지요.”
“돌아오면 보답도 톡톡히 할 거니 기대하게.”
베오날드는 셀리나를 데려가지 않고서 홀로 제미니 교수의 연구실을 떠나 곧장 다이나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빨리 움직일수록 자신의 정체나 다른 것을 들키지 않을 가능성이 컸기에 그는 적절한 미끼를 던지면서 다이나 가문을 동요시켜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