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발데리안 영지, 다이나 왕국 간 도로.
현재 발데리안 가문과 다이나 왕국은 서로 적대하고 있다곤 하지만 과거 통일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도로는 본래 모두 하나의 나라였다는 듯 존재하고 있었으며, 상인들이 왕래하는 덕분에 어떻게든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를 마친 베오날드는 지금 셀리나와 함께 마차를 타고서 다이나 왕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가는 것은 단둘로, 괜히 여러 사람이 갔다가 경계심만 더 끌어 올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베오날드는 마차를 다루는 마부이자 그녀의 시종으로 위장한 상태였고, 셀리나는 뒤의 마정석 사이에서 ‘알의 둥지’에서 가져온 여러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길이 참 고요하군.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말이야. 한적한 건 좋지만 분명 국가인데, 왜 인기척이 없지? 국경을 넘었는데… 보이는 건 죄다 초원뿐이군. 저렇게 좋은 땅이 많아 보이는데 말이지.”
대충 봐도 비옥해 보이는 토지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것에 베오날드는 기묘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게다가 발데리안 영지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떠나왔는데 작은 마을이나 다른 영지가 보이지 않는 것도 기묘한 상황. 오히려 몬스터들의 인기척이 더 많을 지경인 이곳은 정말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번개같이 셀리나가 태클을 걸어왔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랬나? 마도구랑 만드느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몇 날 며칠이나 밤샘도 하고… 그랬으니 말이지.”
“그냥 가는 길에 심심할 거니 안 들은 셈 해 둔 게 아니고요?”
“그걸 눈치채다니 대단하군.”
“…에휴, 알았으니 다시 잘 들으세요.”
베오날드의 계획에 한숨을 쉬며 셀리나는 다시금 다이나 왕국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다이나 왕국. 말이 왕국이지, 사실은 그냥 한 개의 거대한 도시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예요. 영지도, 영주도 없어요. 그래서 실제 영토는 지도에 표기된 것보다 작아요. 농업을 비롯한 모든 활동이 그 도시 한 개를 유지할 정도로만 되고 있거든요.”
“그러면 왜 이렇게 넓은 영토가 낭비되는 거지? 이렇게 비옥한 땅이 그냥 놀고 있는 건 보기 힘든데 말이지.”
“그건…….”
콰아아아아아앙!
한참 이야기하는 순간, 멀리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솟구쳤다.
깜짝 놀라서 그곳을 바라보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긴 흔적이었는데, 그다음엔 같은 곳에 이어서 커다란 낙뢰가 떨어지고 초원에 불길이 붙어서 화재가 일어났다.
그것을 본 베오날드는 단번에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그 중앙의 도시 말고는 죄다 마법 실험장인 건가?”
“예. 다이나 왕국에선 마법에 관해선 다른 마법사들끼리 방해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자유. 저렇게 광역 섬멸 마법을 마구 써 대도, 실패작 키메라를 제대로 처분 안 하고 풀어도, 사령술 연습한다고 죽음의 땅을 만드는 것도, 연금술 연구한다고 화학 약품을 잔뜩 쓰고 그냥 버리는 등등… 연구 윤리라는 게 없이 다른 마법사의 연구만 침해하지 않으면 무한정 자유예요. 아! 저기 보세요.”
“저건 토끼… 라기엔 뭔가 묘하군.”
“예. 또 누가 버린 키메라겠지요.”
셀리나가 가리킨 숲엔 머리 부분은 토끼인데 몸통이 오크처럼 튼튼한 근육질로 된 기묘한 생물체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제야 베오날드는 이 황금 같은 땅들을 제국이나 다른 놈들이 얌전히 두는 이유도, 또 다이나 왕국에서 이 영토들을 갖고 있는 이유까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미친 나라였군.”
“애초에 국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법 연구를 위해서 세워진 나라이니까요. 왕이니 뭐니 하는 것도 그냥 외교적으로 대응할 때 권위를 위해서 다이나 가문에서 왕위에 오른 거죠. 실제 통치는 장로 회의에서 대강 하거나 제자들에게 짬 때리고, 다들 본인 연구하러 다녀요.”
“그것참…….”
이래저래 다이나 왕국에 대한 정보를 듣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베오날드였다.
그 마법 변태인 다이나 가문에서 왕국을 세웠다는 말에 처음엔 ‘그 마법밖에 관심이 없는 집안에서 용케 국가를 세우고 운영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사정을 들으니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일단 일반적인 국가 형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면 안 되겠군.’
“…가면 아마 충격 좀 받으실 거예요.”
“어느 정도일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
그리고 며칠간 계속해서 올라가서 드디어 도달한 다이나 왕국의 수도이자 유일한 도시. 그 이름은 달켄 다이나가 늘 추구하던 진리를 담아서 ‘진리의 성’이라 지어진 곳이었다.
베오날드는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성의 풍경에 충격을 크게 받기 시작했는데, 일단 지금 푸른 하늘이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인데 성 위로 회색빛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저거?”
“아, 오늘은 평소보다 낫네요. 평소엔 완전히 시꺼메서 햇빛도 안 들어오는데 말이죠.”
“저래서야 사람이 살 수 있나? 아니, 잠깐. 저기 강물이……! 윽!”
강물에 보랏빛이랑 녹색이 섞인 기괴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베오날드는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연금술 실험을 하다 보면 독극물, 오폐수, 폐기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가 마탑의 기둥으로 있던 시절엔 강물 오염이라든가 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화 혹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을 곳에 철저히 안전하게 버리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맙소사…….”
“아, 그래서 안에선 물도 돈 주고 사 먹어야 돼요. 밖에서 물이 공짜라는 걸 들었을 땐 충격이었다니까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군.”
“아무튼 ‘진리의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베오날드 님.”
쓴웃음으로 다이나 왕국을 소개하는 셀리나의 말에 베오날드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충격이 심했다.
자신도 연금술사이고 연구자였지만 어디까지나 ‘도’라는 것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세계가 유지되어야 권력자이지, 인류가 멸망하고 다 죽으면 권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말 어이가 없군.”
“아무튼 이제 들어갈 테니 얌전히 계세요. 아, 그리고 천으로 입을 막는 거 잊지 마세요. 공기가 좀 많이 독하거든요.”
“알았다.”
다이나 왕국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베오날드는 일단 그녀의 지시에 따라 천으로 입을 가리고 마부인 척 연기하기 시작했다.
성문 입구에 다다르자, 두꺼운 갑주를 입은 기사가 보였다.
베오날드는 그래도 기사는 있구나 싶어서 슬쩍 보는데, 뭔가 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눈이 없어? 아니, 그보다 이 음산한 기운은?’
눈빛이나 살이 보이지 않고 검은 기운으로 가득한 기사는 음산한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했다.
[진리의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을 지키는 ‘데스 나이트’ 쟈쿠르입니다. 어디 학파의 소속이십니까?]
“원소학파 1급 마법사 제미니 교수님의 제자 셀리나입니다. 이번에 복귀했습니다. 여기 인증용 마도구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제 시종입니다.”
셀리나는 반지를 보여 주며 마력을 불어넣었고, 그 앞으로 부른 빛으로 마법진과 여러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아마 저게 그녀가 속한 학파와 마탑의 제자라는 것을 인증하는 방법이리라.
쟈쿠르라는 데스 나이트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진리의 성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셀리나 님.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베오날드는 마차를 움직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에 관해선 무한한 자유가 있다곤 했지만, 설마 입구부터 데스 나이트를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와… 데스 나이트 처음 봤어. 보통 사령술은 금지 아닌가?”
“교단의 영향력이 있는 곳에선 금지죠. 하지만 여긴 ‘진리의 성’. 다이나의 이름 아래 모~ 든~ 마법적 연구가 허락된 곳이니까요.”
“그렇군. 참 기괴하군.”
성안으로 들어오자 입구에서 데스 나이트를 본 것 이상으로 기이한 광경이 나타났다.
사람의 모습은 잘 안 보이고, 스켈레톤이 짐을 들고 나르고, 골렘이 마차를 끌거나 인간과 몬스터의 팔다리가 섞인 자가 돌아다니는 등등… 아무리 유능해도 정상적인 인간의 감성을 가진 베오날드에겐 충격이 너무 컸다.
“여긴 사람이 없나?”
“예. 거의 없어요. 왜냐면 여기선 마법사들과 그와 거래하는 상인들만 ‘사람’ 취급을 받거든요. 그 외엔… 연구 소재나 실험용 생물 취급밖에 안 해요.”
“…미쳐 버린 곳이군.”
“뭐, 밖에서 보면 미쳐 버린 곳이긴 하지만, 대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죠.”
“너는 용케 이런 곳에 있다가 나와서 안 망가졌군.”
“그나마 우리 학파는 상식적인 ‘원소학파’라서 이 정도죠. 사령학파, 연금술사, 어둠학파 여기 셋은… 답이 없어요.”
연금술이 답이 없다는 소리에 순간 베오날드는 움찔했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다 정신 나간 짓을 많이 하던 놈들인 게 맞았다.
베오날드는 그나마 권력자이고, 실용적인 연구를 많이 따진 데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면 백성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주의였기에 피해를 없게 하려고 마탑에 제약을 많이 걸었었다.
‘하긴 미친놈 소굴이었지. 미치지 않으면 그런 연구를 할 수 없는 거겠지만…….’
“여기예요. 마탑… 이라는 이름을 계승했지만 탑은 아닌…….”
“보아하니 이건 연구소라 부르는 게 어울리겠군.”
정갈한 3층 건물들이 가득한 대저택 시설로 베오날드의 말대로 연구소라는 말이 어울리는 깔끔한 장소였다.
물론 회색빛 구름 아래에 있으니 완전히 악당들이 기거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건 마음속에 묻어 두기로 한다.
“예. 다시 지을 때, 스승님이 쓸데없이 높기만 한 탑은 쓸모없다고…….”
“그렇지. 그건 나도 공감한다.”
과거의 마탑에 대해 잘 아는 베오날드는 그 마탑의 구조가 얼마나 더럽고 짜증 나는지 알고 있었다.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쌓은 탑도 한없이 높이 쌓기만 하고 관리는 더럽게 안 했을뿐더러, 쓸데없이 오래돼서 구조적 결함은 물론 안에서 온갖 실험을 해 대고 각종 마법 술식도 꼬여 있어서 몇몇 층은 이계화되고, 마물 소굴이 생기는 던전도 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가서 어느 정도 고쳤지만… 어휴~ 끔찍했지.’
“아무튼 들어가죠. 스승님이 계실지는 모르겠네요. 마차는…….”
셀리나의 말에 따라 베오날드는 마차를 주차시키고 난 뒤 내렸다.
그러자 이번엔 옷을 입은 불덩어리로 된 남자가 나타나서 셀리나에게 신원 체크를 한 뒤에 마차 주변에 불로 결계를 만든 다음 베오날드를 바라보고 떠났다.
참 적응이 안 되는 다이나 왕국에 아직도 정신적 혼란을 겪는 베오날드의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미니 교수님, 저 돌아왔습니다.”
“메에에에~? 메~ 메메메~!”
‘…흑염소?’
셀리나를 따라서 올라간 연구실 건물 최상층에 있는 ‘제미니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자 보인 것은 검은 정장을 입고 하얀 가운을 걸친 흑염소 수인이었다.
커다란 뿔에 긴 수염을 가진 염소 수인은 셀리나를 보더니 발굽… 아니, 손을 흔들면서 반겼고, 그녀는 태연히 반갑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 발굽에 손뼉을 쳐 주고 있었다.
“메에메에! 메메메메!”
“아, 예? 왜 벌써 돌아왔냐고요? 제자가 돌아왔는데 그런 소리부터 하기예요? 제대로 성과가 나왔으니 돌아왔죠.”
“메에~ 메메?”
“아, 옆의 이 인간요? 제 협력자인 베오날드 님이에요. 발데리안 백작가의 가신이자, 뛰어난 연금술사이자 마도학자예요.”
염소 수인인 제미니 교수와 대화하면서 베오날드를 가리키며 소개하는 셀리나였는데, 베오날드의 혼돈은 점점 더 커졌다.
아무리 들어도 자신의 귀에는 ‘메메메메’로밖에 안 들리는데, 대체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것인가?
마법이라도 익혀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기에 베오날드는 그저 셀리나가 이야기해 줄 때까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