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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69화 (169/259)

[169화]

주변에서 오는 위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베오날드는 발데리안 영지 옆에서 자신의 거처를 구축하는 데 힘쓸 뿐이었다.

유독 번영해 가는 영지에 주변 귀족들의 견제와 시샘이 있었지만, 후계자인 케드론 발데리안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줘서 사실상 발데리안 가문의 권속 같은 거라 생각했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 그리고 마갑주에 대한 소문이 살살 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저희가 서쪽 숲에서 위험종을 너무 많이 잡으니 어쩔 수 없지만요.”

“거기에 병사들의 입을 굳이 막진 않았으니 말이지. 의도한 바이니 걱정할 거 없다. 중앙에 들어가면 귀찮아지지만, 주변 귀족에게 들어가면 오히려 경고의 의미가 된다.”

“아, 과연…….”

하이디의 보고에 친절히 대답해 주면서 베오날드는 마갑주의 정비를 계속해 나갔다.

통일 제국 황제의 장난감에서 시작한 이 신병기의 존재는 아무리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것으로, 밥 먹듯이 위험종 몬스터를 잡아 대는 이야기와 함께 퍼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이곳을 가꾼 지 이제 약 1년하고도 반. 아주 순조로웠고, 오늘도 영지는 평화롭게 번영해 나가고 있었다.

‘결국 군사력이 바로 평화를 부르는 법이지.’

“그리고 유독 피난민들의 행렬이 너무 늘어났습니다. 현재 식량 사정이 안 좋기에 주변 귀족들이 전부 우리에게 보내 주고 있는데, 저희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너무 심해서… 통제가 안 될 지경이라고 합니다.”

“이제 곧 추수철이니 걱정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우선은 마물 사냥을 늘려야겠군. 그리고… 혹시 그건 찾았나?”

“그… 몬스터들의 배설물 같은 것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주변에 배설물이 쌓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초석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해안가까지 여는 건 시간이 더 걸릴 테니 우선 그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 휴경지를 쓰지 않고 모든 토지에 농사를 지을 테니 말이다.”

인구수를 유지하고 부양, 그리고 더 늘리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량을 늘려야 했고, 그것은 어느 시대를 가리지 않고 늘 연구되던 것이다.

500년 전의 베오날드 또한 국가 재정을 늘릴수록 자신이 빼돌릴 수 있는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를 연금술사들을 통해 지원을 했고, ‘초석’의 제작 방법과 그것을 이용한 ‘합성 비료’의 제작법을 완성한 것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 재료 수급의 인프라와 설비를 만들어서 공급하긴 어려우니… 천연 것을 찾아서 쓰는 수밖에 없지.’

그래서 우선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초석’을 찾으려 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초석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또 ‘하나’ 더 있었지만, 그건 베오날드가 지금 고려할 게 아니었기에 우선 비료부터 신경 쓰기로 한다.

“찾긴 찾았습니다. 근데 거기에 있는 게 베오날드 님이 원하시는 게 맞는지는 직접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건 어쩔 수 없지. 후우~”

하나 문제는 여전히 모든 사무를 베오날드가 직접 돌봐야 하는 게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다.

마갑주 제작, 각종 행정, 농업, 경제 협상, 귀족들 상대, 영지 내의 길드들 상대, 사법 처리 등등등… 경력직에다 마나 호흡법으로 단련된 신체가 있는 베오날드나 가능한 거지, 다른 사람이 앉았다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업무량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옛날의 마도구들이 그립군. 하아아~’

“아, 그리고 곧 성자(聖者)로 임명되셨던 하륀 대주교가 귀환하시면서 기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건 무조건 참석하시라고 발데리안 백작님께서 특별히 명하셨습니다.”

“가뜩이나 시간이 모자란데 너무하는군. 후우~ 시간 낭비를 해야 한다니……!”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신전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것은 가능한 한 빠지고 싶은 베오날드였다.

심지어 그 성향은 한 번 지옥까지 다녀오고 여신에게 특명을 받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직도 고쳐지지 않아서 어릴 때 아주 조금 빼고는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꼭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려 성자의 칭호를 받았으니…….”

“그래. 가는 수밖에 없겠지.”

자신이 떠밀어서 성자로 만들어 버린 만큼 베오날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할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이번엔 예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는 예배 때까지 베오날드의 세력은 아주 평온히 땅을 가꾸면서 무난히 세 번째 마갑주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 번째 신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베시아를 위한 것으로 건설을 위한 중장비 같은 느낌의 사양으로 만들었다.

물론 베오날드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려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일반 기사 갑주처럼 만들어 주려는 것을 베시아가 거부하고 특이한 요구 사항을 전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몸에 씌운다기보단 탈 수 있는 거면 좋겠어요. 좀 느려도 기둥 같은 거 너끈히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고, 커다란 삽과 곡괭이를 다룰 수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이제 황녀의 편린조차도 사라져 버렸군. 즉, 대형화를 해야 하는 건데… 이러면 소재가 많이 들어가지만…….”

그녀가 힘써 준 공사의 솜씨라든가 저택 설계도를 보면 안 해 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보다 월등히 잘하는 분야였고, 또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눈으로 말하면… 오기가 생기지.’

‘아, 아니면 역시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한 걸까요? 기탄없이 말해 보라고 하셔서 그런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해.’

이게 귀족의 근성인지 남자의 본능인지 몰랐지만, 베오날드는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게 귀족인 만큼 그는 받아들이고 제작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입는 갑옷 사이즈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여유 공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무게 지탱하는 관절의 부담이 커지기에 술식도 더 넣어 움직임 폭을 넓게 해야 했는데, 가장 문제는 가동을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인간의 몸에 씌우는 게 아닌 이상… 아예 인간의 인체 기관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면 자연히 뼈대는 있어야 하는데… 인간의 근육 같은 게 있어야 하는군. 근육을 대체하려면…….’

이런 식으로 우선은 마갑주의 프레임을 만들면서 계속해서 기체를 움직일 근육 부분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당연하지만 신호에 따라서 당기고 풀 수 있고, 튼튼하고 신축성까지 있어야 하는 조건이 너무나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신의 기적이 있어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걸 직접 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비슷한 크기의 생명체인 드레이크나 오우거의 힘줄과 근육을 생각해 보자. 그 거대한 몸체를 유지하는 뼈대야 얼마가 들든 금속으로 만들면 그만인데… 근육이라……. 가죽이나 힘줄로 대체할 순 없을 것 같고, 아니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하나? 확실히 내 서재에 호문클루스 제작에 대한 책도 있을 텐데…….’

베오날드의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연금술사들 중에선 인조 생명체 및 키메라 제작을 하는 놈도 분명 있었고, 놈들이 연구비를 타 먹기 위해서 알랑방귀를 뀌면서 자료를 보여 주며 투자를 요구하던 것이 기억이 난 그였다.

솔직히 그럴듯하기만 했지 돈을 투자한 것에 비해 회수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고를 빼돌려서 쓰는 거라 그리 아깝지 않았던 베오날드는 나중에 알의 둥지로 가서 책을 챙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 3주 뒤, 싸늘한 겨울바람이 슬슬 몰아올 무렵에 성자 하륀 대주교는 발데리안 영지로 귀환,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거창하게 돌아오게 된다.

베오날드는 정말 싫었지만 발데리안 백작까지 수도에서 귀환했기에 어쩔 수 없이 여기 발데리안 영지에 있는 대신전에서 그를 맞이해야만 했다.

화려한 백색 기조에 황금빛 장식과 교국의 깃발을 휘날리는 마차가 멈추자 안에선 하륀 대주교가 나왔고, 그런 그를 발데리안 백작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 맞이했다.

“축하드립니다, 대주교님. 아니, 이제 성자님이라고 불러야 할는지요?”

“허허허, 지위는 여전히 그대로이니 본래대로 불러 주시길 바랍니다. 허허허.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어서 들어가시지요.”

하륀 대주교는 발데리안 백작과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슬쩍 뒤쪽에 있는 베오날드의 눈치를 살폈지만 베오날드는 아무 반응을 안 해 주었다.

그렇게 하륀 대주교는 발데리안 백작과 담소를 나누면서 나란히 신전 내부로 들어와 곧바로 예배를 위한 준비를 했다.

교단에서 정식으로 성자로 임명된 만큼 그 대예배엔 백작가의 식솔 전부와 영지민은 물론, 주변 영지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와서 신전 내부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바깥까지 넘쳐 날 정도로 인파가 북적였다.

‘그냥 예배도 짜증 나는데… 사람도 더럽게 많아.’

그냥 예배도 싫어하는 베오날드로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미어터질 정도의 이 상황이 더 갑갑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는 발데리안 백작가의 식솔과 같은 귀족석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별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예배 자체를 싫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여러분께서 이렇게 환대를 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여신님의 가호 덕분에 이루어진 일인데 이렇게나…….”

‘…의식이 끊어질 것 같군.’

가뜩이나 요새 격무로 잠잘 시간도 줄이는 판국에 알아먹지도 못할 신의 말씀은 잠들기 딱 좋은 자장가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그래도 엄연히 ‘성자’의 예배인 만큼 차마 졸 수는 없기에 베오날드는 최대한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척을 하며 굳은 자세로 자기로 했다.

‘…솔직히 이러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차라리 기도라도 해야지. 여신님이시여, 한시라도 빨리 저 예배가 끝나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 할 일이 많은데…….’

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기에 기도에 전념을 담은 베오날드였다.

[…날 …드… 요.]

‘…음?’

[베… 오날… 들… 리… 요.]

“헉!”

그러자 갑자기 기이한 일이 벌어졌는데,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깜짝 놀란 베오날드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들 대주교의 예배에 심취해서 숨죽인 채 그의 이야기를 듣는 발데리안 가문의 식솔들밖에 없었다.

놀란 베오날드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서 방금 들린 목소리가 어떻게 난 건지 해석했다.

‘지금… 기도해서 들린 거였지? 후우… 후우… 아아… 그 망할 여신의 목소리 맞는 걸까?’

그러면서 심호흡을 하고 다시 경건한 마음을 담아서 기도를 청해 보았다.

일단 학자였던 만큼 궁금한 건 도저히 못 참는 그였기에 신기한 현상을 해석하고자 한 것이었다.

[…누가 망할 여신이라는 건가요? 베오날드. 아무튼 들리니 다행이군요.]

‘…아, 그… 보고 계셨습니까?’

[언제나 보고 있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러시겠군요. 아무튼… 그… 어째서 지금 이렇게 연락을…….’

[지금 연락을 갑자기 한 게 아니라, 애초에 당신… 기도를 안 하니까 연락할 방법이 없던 것뿐입니다. 나로서는 연락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당신, 신의 기적을 체험했으면서 어떻게 신에 대한 경외심이나 기도를 한 번도 안 드릴 수 있는 거죠?]

‘그야… 지옥까지 갔던 인간이 신앙심이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요?’

애초에 무신교에 가까웠고, 여신상을 야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이나 하던 게 베오날드이니 그 근본은 바뀌지 않았고, 딱히 신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다기보단 사법 거래로 살아난 느낌이라 신앙심이 생길 이유를 묻는 게 이상했다.

‘또 저라면 전능하신 여신님이라면 저에 대해서 잘 아실 거라 생각하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재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시 지옥 구덩이에서 벌을 받고 싶은 건가요?]

‘아뇨. 그건 좀…….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지옥에서의 경험이 생생한 만큼 베오날드는 즉시 굽히면서 여신의 명을 듣고자 했다.

너무나 속물적이고, 개과천선은 1도 하지 않은 듯한 그의 꿋꿋한 모습에 여신은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걸 참고서 본격적으로 연락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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