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랜드 드레이크는 그대로 하이디의 영지로 옮겨져서 해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하이디가 베오날드의 가신인 만큼 그녀를 밀어주려는 것도 있고, 안에 있는 마정석을 비롯해서 주요 소재를 안심하고 보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영지민들에게 일도 줄 수 있는 데다, 발데리안 영지에 있는 부랑자들이나 잉여 모험가들을 끌어와서 치안 안정과 인구 이동도 노릴 수도 있고, 또 여기서 랜드 드레이크의 해체물을 훔쳐도 처분하려면 발데리안 영지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처분을 힘들게 하는 거름망도 생긴다.
‘여긴 작은 마을이라서 마차나 말도 몇 대 없고, 오고 가는 인원도 관리가 가능하지. 음, 더불어 세금은 하이디를 통해서 바로 발데리안 영지에 보낼 수 있으니까 딱히 인구를 빼앗는다는 느낌도 안 들게 할 수 있지.’
그야말로 발데리안 가문에는 기분 나쁘지 않게 치안 안정을, 하이디에게는 영지의 성장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방안으로 베오날드의 내정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발데리안 가문에서는 후계자인 케드론 발데리안의 입지를 강화시켜 줬을 뿐만 아니라 ‘마갑주’라고 하는 기사의 무력을 강화시켜 주는 장비의 제작법을 독점하고 있는 베오날드였기에 그의 의견을 거부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고기는 질기고 냄새나서 맛이 없더라도 버리지 말고 말리거나 염장해서 보존식으로 만들어라! 나중 되면 그것조차 없어서 못 먹을 수 있다. 대비해서 나쁠 게 없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변도 버리지 마라! 내장의 이물질은 씻어 버릴지라도! 드레이크의 대변도 쓸 곳이 있으니 따로 모아 놔라! 냄새가 나고 자시고! 버리지 말고 모아!”
그렇게 베오날드는 랜드 드레이크를 분해하는 작업을 하는 인원들에게 철저히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모든 일은 그저 순탄하게만 흘러갈 수가 없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일단 부랑자와 무뢰배를 모아서 인력을 늘린 탓에 급격히 치안이 악화된 점, 그리고 견물생심이라고 랜드 드레이크의 마석과 소재를 얻는 작업을 하다가 절도하려는 자들이 생길 우려였다.
‘전자는 뭐, 마을 공사와 경비 인력을 지원받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만 후자가… 벌어지면…….’
“베오날드 님! 감히 랜드 드레이크의 마정석 조각을 빼돌려 도망치려는 놈을 잡았습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아~ 드디어 나타났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됐군.”
그리고 마침 어떤 간덩이 부은 놈인지 모르지만 일벌백계(一罰百戒)를 보여 줄 대상이 나타난 것에 반가워하면서 베오날드는 보고한 병사를 따라가 범죄를 저지른 놈을 확인했다.
놈은 얼굴에 칼자국이 무성한 남자로,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거냐는 불만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놔! 제길! 재수 없게 걸려 가지고! 제대로 한몫 잡을 찬스였는데!”
“호오~ 죄책감이 없나?”
“죄책감? 그게 뭐요?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제대로 살려면 크게 한탕 하는 게 제일 아닙니까?”
“아니, 너무나 좋아서 말이지. 처음 걸린 놈이… 너 같은 놈이라서 아주아주 좋군.”
대체 이 험상궂은 사내가 뭘 믿고 저렇게 나오는지 모르지만, 베오날드에겐 그 이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뒷배가 있든 없든 지금 베오날드가 원하는 것은 바로 처음 범죄를 지른 자에 대한 본보기였는데, 이렇게 뻔뻔하면서 외양도 뒷골목 출신으로 보이는 험상궂은 놈이 잡히니 더더욱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이놈을 어떻게 처분할까요? 베오날드 님.”
“이놈의 입을 막고 마을 광장으로 데리고 가게. 나는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하니 15분 뒤에 가지. 그리고 자네는 마을 사람들과 병사, 기사, 일하는 작업자를 모두 모아 주게.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마을 광장에 있는 단상엔 도둑놈이 구속된 채로 있었고, 기사들과 영지민과 병사들이 모두 모여 북적거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딱 15분이 지났을 즈음 나타난 베오날드는 손에 천 주머니 같은 것을 들고 단상 위에 올라가서는 그것을 기록하는 서기의 책상 옆에 놔둔 다음 도둑놈을 가리키면서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의 영주인 하이디 경의 주군인 베오날드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발데리안 가문의 관리로서 일하는 중이지. 오늘 내가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이 죄인의 처분에 대해서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 첫째,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 둘째, 악행(惡行)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셋째다. 그럼 이자의 죄에 대해서 말하겠다.”
‘…뭐 하는 거야?’
“이자는 총 세 가지의 죄를 저질렀다.”
“으으읍?”
엎드린 도둑은 깜짝 놀라서 눈을 번뜩이며 베오날드를 노려보았다.
자신이 한 짓은 분명 단 한 가지, 랜드 드레이크의 소재와 마정석을 도둑질하려 한 것뿐이다.
그런데 세 가지 죄라니.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의 입은 막혀 있었기에 뭐라 발언할 권리가 없었다.
“첫째, 이자는 우리가 해체 중인 랜드 드레이크의 소재와 마정석을 훔치려 했다. 이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절도죄에 해당한다.”
“뭐야, 그냥 도둑놈이었네.”
“그런데 도둑질치고는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지 않나?”
“솔직히 일상이잖아. 도둑질 정도는…….”
“세 가지라고 했으니까 뭔가 다른 짓도 했으려나?”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은 웅성거리면서 베오날드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런 반응에 베오날드는 당연하다는 듯 더욱 엄중한 말투로 다음 죄목을 말했다.
“둘째, 이자는 랜드 드레이크의 소재를 도둑질하려는 것으로 피와 땀을 흘려 가며 용맹하게 몬스터를 토벌한 발데리안 백작가의 후계자인 케드론 발데리안 도련님과 기사들과 병사들의 명예에 도전했으며 상처를 입히려 했다. 귀족과 기사의 명예를 훼손한 죄다. 랜드 드레이크는 엄연히 위험종 몬스터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이겨 냈는데! 그 성과를 가로채려 한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것을 넘어 ‘기사’와 ‘귀족’의 명예를 더럽힌 거나 마찬가지!”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다음으로 셋째! 이자는 선량하게 노동하며 그 대가를 받는 백성들과 치안을 유지하는 병사 제군들을 비웃으려고 부정한 일확천금을 노린 것이다. 먹고, 살고,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 땀 흘리고 몸과 머리를 사용하며 여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모욕을 한 것이다.”
세 번째 죄목을 말했을 때, 모여 있던 백성들과 병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저 단순한 절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포장하니 정말로 저 범죄자가 자신을 모욕한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도둑놈이 아니라, 정말 죽어 마땅하고 자신들을 모욕한 놈이 되어 버리는 거였다.
“이자에게 어떤 형벌이 어울리겠는가? 본래 절도죄는 그 액수의 배에 달하는 변상 혹은 감옥에 가두고 그 변상액만큼의 강제 노역을 부과하는 것인데, 그걸로 끝나겠는가?”
“아닙니다! 엄벌로 다스려야 합니다!”
“매질을 하죠!”
“기사님과 귀족님의 명예를 떨어뜨리려 했는데! 그걸로 되겠어?”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베오날드는 겉으론 엄숙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론 웃으면서 도둑놈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베오날드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하니 단순 절도죄로 마치 죽일 짓을 한 놈처럼 포장된 것이 억울하다는 느낌이었다.
하나 이것이 바로 베오날드가 노린 것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일부러 그를 포장한 것이었다.
“고통스럽게 죽여라!”
“그냥 놔둘 수 없지! 아암! 망할 놈 같으니!”
“으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
“좋아, 아주 잘 흥분하는군. 아, 그놈의 입막음을 더 철저히 하게. 나는 굳이… 저놈이 무슨 목적으로 도둑질을 했는지, 배후가 누구인지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말이야. 그저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하네. 앞으로 계속 일을 할 건데 이런 놈이 또 나타나면 피곤하지 않겠나? 나도 잔인한 건 싫지만, 할 땐 해야지.”
도둑은 그제야 뭔가를 말하려고 발악했지만, 베오날드는 병사에게 그를 제지하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그들에게 납득이 가는 쉬운 설명을 해 주었다.
인간적인 이유까지 포함해서 말하자 병사들은 대강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베오날드의 지시에 따라 그가 절대 아무 소리도 못 내게 입의 구속을 더 강하게 했다.
‘아마 추측건대 저자는 내 일을 방해하기 위해 다른 귀족이 고용한 자겠지. 세상엔 남이 잘나가는 꼴을 그냥 보지 못하는 자가 있거든.’
처음의 그 뻔뻔한 태도를 보건대, 만약 절도를 시도하다가 잡혀 들어가면 필시 발데리안 영지의 감옥에 갈 테니 자신이 풀어 주겠다고 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마침 제물이 필요했던 베오날드의 손에 걸려 죄목 아닌 죄목들로 잔뜩 포장당해서 오늘 참혹하게 죽게 될 운명이었다.
“그럼 세 가지 죄목에 대해서 세 가지 처벌을 하지. 우선 도둑질! 제국법에 따르면 본래는 도둑질한 물건 값의 배에 달하는 배상 혹은 그 액수만큼의 노역을 해야 하는 게 기본. 하나 과거 법에 의하면 악질적인 도적의 경우 양손을 자르는 형벌이 존재했었다. 그러니 첫 번째 형벌로 양손을 자르겠다.”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
“내가 자르지. 자네들은 잡고 있게. 이게 귀족의 의무라네.”
“으으으으으으으으으읍!”
스릉…….
베오날드는 검을 뽑았고, 병사들은 도둑의 팔을 잡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발악하는 그의 양 손목을 단숨에 잘라 버리고는 손을 발로 차서 단상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다음 가지고 온 천 주머니에서 즉시 포션과 붕대를 꺼내 그의 양손을 지혈했다.
양손이 잘려 괴로운 그는 발악하고 싶어 했지만, 병사들이 강하게 구속하고 있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로써 도둑질에 대한 대가를 치렀노라. 두 번째, 기사와 귀족의 명예를 훼손한 죄! 두 눈과 혀를 뽑아! 빛나는 명예를 보지도, 찬미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제국의 법. 집행하겠다.”
“으으읍! 아, 자, 잠깐! 잠시만! 제가… 제가 잘못했스미… 으에에에게에겍!”
귀족과 기사에 대한 하극상은 베오날드가 딱히 과거의 사례를 들이밀지 않아도 극형이었기에 편했다.
그리고 고문 담당자도 감탄할 정도의 능숙한 솜씨로 양손이 잘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혀를 먼저 뽑고 눈을 뽑아낸 다음 치료 행위를 함으로써 잔혹함은 덜하게 만들고, 이게 냉정한 처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과 병사들을 기만한 행위는 이 자리에 죽을 때까지 매달아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짓을 벌이는 자는 똑같이 벌을 내릴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라.”
“꼴좋다!”
“와아아아!”
베오날드의 선포에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양손과 두 눈, 혀를 잃은 도둑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선포하고 이런 잔혹한 처벌을 했다면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사전에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양념을 친 덕분에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잔혹한 처벌을 당하고 매달리는 것에 환호했다.
‘인간은… 아주 감정적인 생물이지. 그래서 자비로워질 수도 있지만, 한없이 잔혹해질 수도 있다.’
오직 선의(善意)로만 세상을 다스릴 순 없다.
때론 악의(惡意)를 품고 다룰 수 있어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이것은 통치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었고, 베오날드가 벨릭스에게 교육받은 것이었기에 마음은 찜찜해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 그리고 저자를 잡은 건 경계를 서던 병사인가? 혹시 달리 공을 세운 자는?”
“예. 경계를 서던 안스 병사였습니다. 다만 그 마정석을 가지고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제보해 준 건 일하던 노예였습니다.”
“그러면 그 노예는 지금 이 시간부로 자유민이다. 누군가에게 벌을 줬으면 누군가에게는 상을 줘야 하는 법이지. 주인을 나에게 데려와라. 대금을 지불하겠다. 그리고 안스 병사도 불러와라. 포상을 해야 하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결국 베오날드가 선보인 본보기와 포상 덕분에 영지는 외부 인력을 받아들여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빠르게 잡을 수 있었고, 발데리안 영지의 뒷골목에 살던 놈들도 더 이상 뻗대지 않고 순순히 그만두거나 아니면 마음잡고 일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영지와 작업장이 안정되고 랜드 드레이크의 해체가 어느 정도 끝나자 베오날드는 또다시 모험가 길드를 방문했고, 다음 사냥감을 물색하여 다시 케드론과 함께 마물을 잡아 와서 또다시 해체 작업, 다시 사냥감을 선정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으음, 블랙 드레이크, 랜드 드레이크, 오우거 로드, 록우드 킹 웜, 그레이트 울프… 서쪽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다 제압되어 가는군. 식량도 아주 잘 쌓이고 있고 말이지. 후후후… 후후하하하하! 무엇보다 이 코딱지만 했던 영지가 번영한 게… 크으으! 역시 나는 대. 단. 해.”
단기간에 잡아들인 위험종 몬스터의 리스트와 동시에 지하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물자와 식량들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진 베오날드였다.
고작 3개월 만에 작은 도시급으로 성장한 영지의 모습과 상인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한 풍경. 치안과 분란의 걱정이 있었지만 감히 설치는 놈이 있으면 또다시 처리하면 그만으로, 그는 그럴 자신이 있었다.
“베오날드 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즐거운 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에 의해 끝나 버렸다.
베오날드는 한껏 즐거웠던 시간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업무를 위해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