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다이나 왕국인가? 그 마법 변태 놈들이 냄새를 맡은 거군.’
500년 전부터 내려온 마법의 명문. 지독하리만큼 마법을 신봉하고 탐구하던 놈들이라서 마탑에서도 베오날드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놈들이었다.
베오날드의 경우 어디까지나 마법과 연금술 모두 ‘도구’로 취급하는 실리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마탑엔 그 반대파로 형이상학적인 진리니 세계의 법칙이니 하는 걸 탐구하는 미친 파벌도 있었다. 바로 그곳의 수장이 다이나 가문이었다.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마법을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쓰려는 이 수전노 같은 놈! 뭐가 마스터 연금술사냐!”
500년 전 베오날드를 손가락질하면서 그의 실용적인 면을 비판하는 이 노인.
다 벗겨진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뾰족한 코에 살벌한 눈빛을 가진 그는 바로 다이나 가문의 수장이자, 마탑의 교수이며 9개의 급을 넘어선 마법사라는 의미에서 유일한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진 달켄 다이나라는 노인이었다.
“이 망할 노친네가 진짜!”
그리고 그에게 맞서는 것은 바로 30대 후반 시절의 베오날드 공작. 그는 안경을 쓸어 올리면서 두툼한 서류를 달켄 다이나에게 던져 주고는 따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권력을 잡고, 마탑에서 마스터 연금술사로서 이 고위급 회의에 참석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그였지만 막대한 양의 기부금과 소재를 이 마탑에 바치는 만큼 영향력이 매우 컸다.
“아니! 말 돌리지 마시고! 그러면 이 마정석 사용량에 대한 영수증은 어떻게 할 거냐고요! 실험할 거면 보고서 올리고, 예산 결재받고 하라고 했지? 아아앙? 제발! 대마법사라는 양반이 직접 모범을 보이셔야지요. 아, 제발 규칙 정도는 지킵시다. 예?”
“에이이잉! 시끄러! 큰 것이 눈앞에 있는데 사소한 것 따위 신경 쓸까 보냐?”
“그럼 그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알도록 기부금 깎아 드려 볼까요? 대마법사님도 긴축 운영이라는 진리에 대해서 배워 보시지요.”
그런 그였기에 다른 마법사들은 눈치만 보고 아무 말도 못하는 대마법사 달켄 다이나에게 큰소리치면서 룰을 지키라고 할 수 있던 것이었다.
베오날드가 내는 거액의 기부금은 자그마치 마탑의 운영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그가 기부금을 줄이면 마탑 운영에 치명적 타격이 간다. 하여, 결국 대마법사 달켄 다이나는 베오날드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응! 저저! 썩을 놈 같으니! 마법이란… 세계의 구조와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놈은 그저 도구로만 사용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찾지 않으니…….”
물론 굴복은 하더라도 대마법사라는 간판이 있는 만큼 실컷 베오날드의 뒷담화를 할 수 있는 위치이긴 했다.
마탑의 정점인 그의 마법 실력과 이론, 술식에 관한 지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오날드가 몇 시간을 봐도 모를 난해한 술식과 구조를 슥 훑어보기만 해도 알 정도로 지혜가 뛰어났지만, 뒤에서 ‘껄껄껄, 애송아, 이 어르신이 좀 가르쳐 줄까?’라고 깔보는 성격 고약한 노인네였다.
“뒷담화는 좀 사람 없는 데서 하면 안 됩니까?”
지금도 자신이 없는 곳에서 뒷담화를 하면 될 것을 옆에서 해 버리니 베오날드는 서류 뭉치를 들고 가다가 그와 부딪치게 되었다.
“너 들으라고 한 거다! 이놈아! 확 그냥 베노피스에 메테오라도 떨어뜨릴까 보다!”
“떨어뜨려 보시죠. 그러면 기부금을 못 내게 되는데… 연구비가 얼마나 작살날까요? 아~ 혹시 납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이라도 완성하신 겁니까? 아니지, 그걸 익히셨다고 해도 혹시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시끄러! 썩 물러가라! 이 황금의 망자 놈아! 그런 거 몰라!”
그래도 이 정도면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실력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단계다.
하나 이런 사이는 결국 약 10년이 지나고 베오날드가 45세가 되던 해에 무너지게 된다.
“이 미친 노친네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제정신이 아니네!”
연구에 미친 달켄 다이나가 마탑에서 ‘어떤 실험으로 대형 사고’를 쳐 버린 것으로 인해서 그나마 서로 존중하던 사이가 완전히 갈라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다이나 가문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고 여겨 그 ‘가문이 사고 치는 데 썼던 유산’을 빼앗고 제압해서 굴복시켰었다.
‘그런데 결국 내전 이후 지금에 와선 부활을 했고… 왕국이라는 기괴한 형태가 되었는데, 참 사람 일은 모르는 거군. 아무튼 저 추적자는… 아마 블랙 드레이크 때문에 온 거겠지?’
필시 ‘블랙 드레이크’를 잡은 소문이 모험가 길드를 통해 다이나 왕국에 있는 지부에 전해지고, 다이나 왕국에서는 곧바로 ‘블랙 드레이크’의 소재라든가 마정석, 혹은 그것을 잡은 모험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었다.
‘마갑주에 대해서까지 알려나? 음, 가능성은 있지. 딱히 기사들에게 함구시키진 않았으니 말이야.’
사실 굳이 함구시킬 것도 없었다.
지금 단계에서 마갑주는 그저 갑옷에 술식을 새겨 넣은 마도구, 그냥 마법이 인챈트된 갑옷이라는 개념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보통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프레임과 갑주 부분으로 나누어서 술식을 새겨 넣어 발전시킨 그 구조와 마정석을 내장한 효율성과 술식 구조의 기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좀 사이즈를 키운 마법 갑옷, 혹은 마도구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터였다.
‘흐음… 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다이나 왕국에서 뭐가 오든 간에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이용하는 게 베오날드의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아직 뚜렷하게 가진 세력이 없다.
발데리안 가문의 아래에 빌붙어 있을 뿐. 그러면 다이나 왕국에서 갈등을 만들어서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면 자신의 입지가 올라가게 되니 베오날드로서는 그들을 손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어차피 마갑주는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개념을 이해한다고 해도 안에 새기는 술식은 정말로 정밀하게 세공해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자신의 야심작이었다.
시작은 비록 황제의 장난감으로 만든 것이지만 거기에 들어간 연구비와 시간은 보통이 아니었고, 이해하려면 아마 대마법사 달켄 다이나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놓은 베오날드는 추적자의 기척을 계속 느끼면서 랜드 드레이크를 잡을 준비를 하기 위해 발데리안 저택으로 돌아갔다.
***
다음 날.
랜드 드레이크는 몸길이 약 15미터가량 되는 거대한 도마뱀 형태의 마물로 등과 머리, 다리는 두꺼운 비늘로 뒤덮여 있고, 강력한 완력으로 오크, 오우거, 트롤 같은 다른 거대 생물을 잡아먹거나 아니면 숲에 죽은 시체들을 뜯어 먹고 산다.
나무를 자비 없이 쓰러뜨리면서 거니는 이 숲의 제왕은 여느 포식자들처럼 감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마물들과 싸우는 것을 꺼리지 않는 폭군이었다.
그르르르르…….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그리고 한참 동면을 끝내고 봄이 되어서 굶주린 배를 채우러 다니는 랜드 드레이크에게 마치 피리 소리 같은 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와서 저렇게 당당히 포효하는 다른 포식자의 행동에 본래 이 영역의 주인인 랜드 드레이크는 생존에 대한 본능과 함께 분노라는 감정이 생겨나서 눈을 크게 뜨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고,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있는 나무들이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힘없이 쓰러졌다.
크르르르르르르!
랜드 드레이크는 자신이야말로 이 영역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거대하게 포효를 하며 숲 너머 작은 공터에서 열심히 울어 대는 침입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폰.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잽싸게 내려와 먹을 것을 잡아채고 다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얌체 같은 놈. 랜드 드레이크는 저놈이 자신의 먹을 것을 빼앗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돌진 속도를 올렸다.
“지금.”
‘황실 기사단의 무(武), 이식(二式)-마랑질주(魔狼疾走)!’
‘발데리안 가문 검법 삼식(三式)-견아상착(犬牙相錯)!’
그리고 그리폰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랜드 드레이크가 숲을 나갈 때쯤 좌우에 있는 수풀 속에서 황금빛 오러와 붉은빛 오러를 두른 기사 둘이 튀어나와서 각자 무기를 들고 랜드 드레이크의 목과 머리를 향해서 찔러 들어갔고, 둘 다 정확하게 목의 관절 부분에 있어 약한 부분을 공격할 수 있었다.
크오오오오!
삐이이이이이잇!
“좋아! 알테리오! 물러나고! 다른 기사와 병사들은 퇴로를 막고! 하이디와 케드론 도련님은 다른 무기를 들고 계속 머리 부분을 노리십시오.”
블랙 드레이크보단 생명력이 강한 건지 랜드 드레이크는 목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알테리오 옆에 나타난 베오날드는 본격적으로 지휘를 하며 랜드 드레이크가 도망치거나 마지막 발악마저도 못하게 막았다.
“오, 과연 이런 식이었군. 이거라면 확실히 3명이 잡아도 이상할 게 없지.”
“그래도 케드론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이거 참 가슴이 뛰는… 흡! 오… 이거 참 기가 막히는군.”
콰아아앙!
랜드 드레이크가 발악을 하면서 휘두른 앞발을 방패로 굳건히 막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케드론이었다.
기사의 로망, 어릴 적 부모님이나 가정교사에게 들은 신화나 용사의 영웅담에서나 나올 법한 시추에이션을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현하고 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차암…….”
크오오오오오!
“그래, 와라! 와라아! 우오오오오오!”
전신을 누르는 이 압박감과 무게. 보통 인간이라면 짓이겨져도 모자랄 중량이었지만 자신은 버티고 있었다.
오러와 근력, 모든 힘을 다해서 싸울 수 있는 적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 즐거운 사냥을 베오날드가 혼자만 하고 있던 것이 정말 아쉬울 정도로 케드론은 지금 이 랜드 드레이크와 맞서는 것이 즐거웠다.
“잘하셨습니다!”
크르르르… 륵!
쿠우우웅!
하나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케드론이 버티는 사이 하이디가 랜드 드레이크의 정수리에 검을 깊게 꽂아 넣었고, 그대로 뇌가 뚫려 절명한 랜드 드레이크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목나무가 넘어지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진짜 이렇게 잡았구나!”
“세상에! 이렇게 쉽게?”
“블랙 드레이크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이젠 믿을 수밖에 없군. 히익!”
“다가가지 마!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눈먼 꼬리 치기라도 맞으면 우린 즉사야!”
후방에서 퇴로를 차단하던 병사와 기사들은 흥분해서 소리치다가 아직 몸을 꿈틀거리는 랜드 드레이크를 보고는 경악했다.
블랙 드레이크만 해도 요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랜드 드레이크까지 잡은 걸 보니 이젠 절대로 그렇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죽은 랜드 드레이크가 가져다줄 가치를 생각하면 이제 베오날드의 입지는 더 오를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자,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으니 슬슬 작업 시작합시다. 일단 알테리오가 수고했으니 좀 먹게 해 주고, 하이디와 케드론 님은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오는지 경계, 전령은 곧장 돌아가서 이 랜드 드레이크 운반 준비를 해 달라고 하고… 남은 시간 동안 미리 길이나 닦아 두지요.”
랜드 드레이크가 완전히 죽자, 곧바로 지시를 내리던 베오날드는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상대에겐 충격적인 광경이었을 것으로, 장차 다이나 왕국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를 하며 베오날드는 도끼를 들고 천연덕스럽게 나무를 베는 것을 도우러 갔다.
‘아무튼 심심하진 않겠군.’
남쪽에서 ‘식량 대란’이 오는 동안 자신의 입지를 굳힐 사건이 올 것에 즐거운 베오날드였다.
저번 생도 재미있었지만, 이번 생은 한층 더 다이내믹하고 지루할 틈이 없이 계속해서 일이 생겨서 그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