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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53화 (153/259)

[153화]

얼마 뒤, 하이디의 영지.

언제나 그렇듯 대륙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다들 가죽으로 된 옷을 덧입고, 땔감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시기. 사람들은 어떻게든 식량을 더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에 식량 구하기란 매우 힘든 것으로 몬스터들이나 야생 동물도 활동을 잘 안 하기 때문에 구하겠다고 설치는 게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차라리 내년 봄을 기다리는 게 더 나은 일이었다.

베오날드 일행은 현재 하이디가 받은 영지의 작은 저택에 제대로 된 공방을 만들고서 의뢰받은 케드론 도련님의 ‘마갑주’를 제작하느라 정신없었다.

보통 겨울엔 땔감을 구하러 가는 일 빼고는 잘 돌아다니려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바빴다.

“좋아, 그대로… 그대로.”

“프레임 이것도 꽤 손이 가는군요.”

“뭐, 이게 핵심이니 말이야. 그리고 이 마도구가 있어서 망정이지, 없었으면 무리였을 거다.”

발데리안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창고에 자신이 쓰던 술식 세공용 마도구들이 모두 있었던 점과 이전 전쟁에서의 활약 덕분에 사실상 모두 베오날드의 소유가 되어서 쓰이고 있었다.

‘세공의 반지’, ‘마력 저장 팔찌’, ‘판별의 반지’……. 이것들이 없었더라면 이 미스릴에 세공 하나를 새기는 데도 엄청난 시간을 써야 했을 것이고, 셀리나의 도움과 수고를 더 많이 받아야 해서 작업 시간이 2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역시 이 노트지.’

생전에 자신이 쓰던 노트. 중요한 술식과 개선된 술식, 새로운 마도구의 아이디어나 중요한 약재 조합식 등을 적어 놓은 것을 되찾으니 그것을 보면서 케드론 도련님에게 줄 마갑주를 만들며 개선할 곳은 개선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하이디 양은 엄청 바쁘게 돌아다니던데… 안 도와줘도 되나요?”

“작은 마을이라지만 엄연히 영주이니 바쁜 게 당연하지. 그리고 세인을 붙여 줬으니 문제없을 게다.”

“둘 다 초보라서 걱정되긴 할 텐데요.”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은 없다. 검술도, 마법도, 연금술도 결국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되는 거야.”

“끝났다아아아아아!”

한참 작업하던 중 뒤에서 베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거처의 공사는 역시 또 그녀의 몫으로, 하이디가 영주인 덕분에 영지 인력을 사용할 수 있어서 이젠 좀 더 큰 규모의 공사도 진행할 수 있게 되자 신난 그녀였다.

보통 사람이면 고된 노동을 싫어할 텐데, 그녀는 계속해서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는 것이 즐거운지 노동을 즐기고 있었다.

‘하긴… 기술 개발적인 측면도 있으니 그런 거겠지.’

단순히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여러 건축 기법으로 더 좋은 것을 개발하거나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베오날드도 그런 일을 함으로써 발전하게 되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 확실히 건축 방법을 바꾸니 좋은 것 같아요. 가죽과 갑옷을 같이 덧대니 효과가 좋다고 조언해 주신 것처럼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소재의 융합은 너무 흥미로워요. 하지만 건축엔 역시 가죽은 못 쓰고 결국 돌과 강철, 목재 이 셋의 다양한 종류를 찾아서 해야겠지만 말이죠.”

“뭐든 계속 시도해 봐라. 발견은 그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아, 과거 기록엔 석회암의 가루에 화산재를 섞어서 벽돌을 접착하는 용도로 썼다던데… 그걸 응용하는 것도 좋겠군. 마침 이 영지엔 석재 광산이 있으니 말이야.”

거대한 발데리안 성의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충족하기 위해서 개발된 석재 광산. 500년 전에 입지를 정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오… 그거 좋네요.”

“다만 몸조심을 철저히 하고서 말이다. 숨 쉬기 힘드니 뭐니 하면서 안전 장비를 착용하는 걸 잊지 말도록. 특히… 새로운 기술 개발이라는 건 늘 모험 같은 거니 말이야.”

“예이~ 그럼 좋은 성과가 나오면 알려 드릴게요.”

한차례 일을 마친 베시아와의 대화를 끝내고 베오날드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 케드론이 착용할 마갑주의 개발을 완수하는 것으로 프레임은 똑같은 것을 쓰더라도 거기에 넣는 술식에 따라서 성향이 달라질 수 있고, 추가로 장착하는 갑주와 무장에 따라서 또 성능이 달라지기에 고심할 게 많았다.

‘게다가 케드론의 주문도 들어줘야 하고, 베시아의 것도 만들어 줘야지. 그다음엔 셀리나 것까지… 내 건 가장 마지막에 최종 타입으로 해야 하고 말이지.’

일단 지금은 양산보다는 의뢰받은 것을 포함해서 자신의 사람들에게 줄 것들부터 우선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는 자신이 세우는 모든 계획이 무조건적으로 통할 거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차 마족이나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잘한 여러 병력보다는 강력한 기사와 무장이 더 필요하기도 했다.

‘내 검술의 실력이 더 올랐으면 모를까… 후우우~’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그의 검술은 여전히 ‘오의-히드라’ 이상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하나의 오의를 익힌 만큼 남은 오의인 ‘오의-우로보로스’와 ‘최종 오의-에키드나’까지 익히는 건 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검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한계에 부딪친 건지 역시 벽을 넘기가 힘들었다.

‘언젠간 넘을 수 있을지도…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찾아야지.’

자신의 무기는 검 한 자루가 아니다.

지혜와 간계 등등… 여러 방법이 많았기에 베오날드는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술식의 세공을 해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어서 ‘식량 대란’이 본격적으로 일어나 자신의 유적을 되찾기 위해 교단과 협상할 날을 기다렸다.

***

결국 시간은 지나서 겨울을 넘기고 다시 봄이 왔다.

미리 식량 사정에 대한 대비를 했기에 흔히 보릿고개라 불리는 봄철 기간을 무난히 넘기고 다시 생명이 싹 트는 봄을 맞이한 영지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오늘도 다이나 왕국의 침략에 대비한 훈련을 비롯해서 일상을 이어 갔다.

베오날드는 출근을 한 상태로 우선은 케드론이 주문한 갑주를 실험하고 있었다.

“흐음!”

파아앙!

거대한 창이 공기를 가르고 허수아비를 일격에 분쇄해 버린다.

케드론의 기체는 역시 ‘케르베로스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발데리안에게 맞게 프레임부터 적색이 돌도록 칠해서 제작되었으며, 이번엔 완벽하게 무두질하고 다듬고, 술식까지 세공한 블랙 드레이크의 가죽과 베오날드 강(鋼) 철판으로 이루어진 갑주가 장식된 상태에 가문의 유물인 거대한 방패까지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어떠십니까? 도련님.”

봄이 되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돌아온 케드론에게 감상을 묻자, 그는 마갑주를 입은 그 상태로 손으로 따봉을 만들면서 감탄했다.

“아주우! 마음에 드네! 과연 이런 느낌이었군! 이게 하이디 경이 체험하던 것이었나?”

철컥!

케드론은 평범한 갑주보다 더 크고 육중하면서도 오히려 더 움직이기 쉽고, 위력적인 ‘마갑주’의 성능에 감탄하면서 칭찬을 계속했다.

겉보기엔 매우 무겁고 전신을 완전히 감싸서 더울 것 같았지만, 오히려 쾌적하고 자신의 본래 역량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데, 오러를 사용하는 건 더 편하고 휘두르는 무기의 위력도 더욱 커지니 감탄이 나오는 그였다.

“아쉬운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개선 사항에 넣어 보겠습니다.”

“역시 말에 타고 싶은데 말이지.”

“그건 무리입니다. 착용자를 보조하는 술식만 해도 빠듯한데, 말에 태우려면 술식을 교체해야 해서 전투 성능이 떨어집니다. 아니면…….”

베오날드는 반대편에서 알테리오를 타고 훈련 중인 하이디를 슬쩍 가리켰다.

말이라면 무리이지만 그리폰인 알테리오는 충분히 마갑주를 착용한 하이디를 태울 수 있었고, 그가 장비한 마갑에도 술식을 새긴 덕분에 이젠 전보다 더 빠르고 힘차게 달릴 수 있었다.

“음, 말이 타는 마갑에도 술식을 새기면 안 되나?”

“으음… 나쁘진 않지만 생물적 한계로 인해서… 타도 효율이 안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일단 마갑주를 착용한 상태에선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고 육중해지는 만큼 말에는 무게 이전에 크기가 맞지 않아서 오히려 힘들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더 개선을 해서 그 상태로 가동 시간이나 기동성을 늘리는 게 낫죠.”

“가동 시간이… 짧나?”

“아뇨.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오러’로 작동하게 되어 있지만 그래서는 오래 싸울 수 없고 마차로 운반해야 하니 효율이 떨어지죠. 그래서 등에 마정석 저장용 부분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효율적이진 못하죠.”

원래 이 ‘마갑주’라는 것 자체가 500년 전 황제의 쇼맨십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만든 장난감이었던 만큼 병기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이제부터 개발을 해 나가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그에 따른 기술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말을 줄이는 베오날드였다.

“뭐, 그래도 마법에 대한 방호력이 뛰어난 것만 해도 쓸 만은 할 겁니다. 계속 개선해 나가야겠지만요. 그럼 계속 테스트해 보시고 회수는 하이디 경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는 슬슬 영주 대리님과 면담이 있어서…….”

“삼촌의 부름이라면 어쩔 수 없지. 얼른 가 보게나.”

케드론에게 마갑주에 대한 검수를 한 번 맡은 베오날드는 본격적인 식량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오스왈드 영주 대리에게 향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가 요청한 것이었다.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나?”

“식량 문제에 대해 이야기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베오날드는 곧바로 자신이 예측한 노이멀 총리의 계략에 대해 천천히 풀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부의 바니로 백작가를 손에 넣은 그녀가 작년에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식량 공급을 핑계로 들어서 제국을 흔들려고 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들은 오스왈드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하,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애초에 바니로 백작가의 영지들은 대부분 식량 생산 외엔 다른 물건이…….”

“일단 빚이라는 명목으로 엄청 뜯어낼 거고, 그 이후엔 여러 핑계나 사업, 혹은 가르칸 공화국의 사치품들을 사게 만들 겁니다. 분명… 오크나 리자드맨, 수인 같은 문명이 떨어지는 야만 종족도 있지만, 거기엔 엘프, 드워프 같은 나름 고도화된 종족도 있으니까요. 엘프들이 만든 술이나 비단옷이라든가, 드워프제 장비나 장신구 같은 건 엄청 비싸지 않습니까?”

“으으으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바니로 백작가는 제국의 귀족이지 않은가?”

“이미 황녀와의 결혼이 어그러진 시점에서 마음이 떠난 지 오래겠지요.”

“그렇군. 형님도 이걸 아셔야 할 텐데…….”

“전갈을 따로 보내면 될 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 쇼크에 어떻게 대비하느냐지요.”

나름 발데리안 영지에서도 농사가 가능한 땅에선 농업을 하고 있어서 식량을 자급하고 있지만, 남부에서 공급되는 양 덕분에 시세가 안정되는 걸 무시하긴 힘들다.

이미 대비했음에도 현재 식량 시세는 상당히 오른 상황. 웃고 있는 것은 오직 상인들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거라고 하니 난감한 오스왈드 영주 대리였다.

“그렇지. 그러면 차라리 올해부터라도 개간 사업을 시작해야 하나… 으으음… 전쟁 배상금도 있으니 그걸로 어떻게 하면…….”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농사일이라는 게 그냥 막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 수원지가 있는지, 그리고 휴경지와 지질의 관리 등, 제대로 조사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돈만 가득 쓰고 실질적인 효과는 못 얻을 수 있습니다.”

“으으으음…….”

오스왈드는 의표를 찔린 듯 내심 당황했다.

그의 말대로 개간해서 농경지를 늘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대한 만큼의 생산량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그냥 식량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큰 실패를 할 수 있었기에 대리인인 자신이 행하기엔 너무나 리스크가 큰 대안이었다.

“물론 농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식량을 얻는 차선책을 강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빵만 먹곤 살지 못하니 말이죠. 사냥, 양식, 채집, 다른 방법의 농업 등등… 생각할 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리스크가 있지 않은가? 또 방법은 누가 알고? 우리 영지의 백성들 중에 그걸 아는 자는… 아마 없을 걸세. 사냥, 채집 정도만 가능하겠지.”

“그러면 말입니다. 저를 믿고 ‘투자’ 한번 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으음……?”

전형적인 사기꾼이 사람을 꼬드길 때 하는 대사였지만, 오스왈드로서는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베오날드. 수많은 마법사와 학자들이 달라붙어도 해제하지 못한 가문의 유산을 하루 만에 해제해 버렸으며, 마도구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기사들의 무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줄 ‘마갑주’라고 하는 새로운 마도구의 제작자. 그 성과는 이미 혁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으음… 어쩌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스왈드가 그에게 무언가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 믿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고, 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기에 그는 베오날드가 하는 말을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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