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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50화 (150/259)

[150화]

‘…이걸 어찌한다.’

가슴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이 상황은 매우 난감했다.

이 흐름에서 보면 딸아이가 일단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건 방향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증오와 분노로 바꿔서 살아남았고, 그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에 와서 자신이 다시 살아났다고 알리고, 따스하게 품어 준다고 한들 그녀가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자신이 말을 하고 수많은 증거를 보여 준다고 해도 그녀가 자신을 믿을까?

설사 믿는다고 해도 그녀는 아마 분노와 증오를 자신에게도 전파하려고 할 것이고, 여신으로부터 해야 할 일을 받아 내려온 그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같이하자고 할 터였다.

‘저건 이미 광기(狂氣)에 물든 눈이다. 자기 영혼까지 모두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타오르는 불꽃이지. 이건 감동의 부녀 상봉을… 절대 할 수 없겠군.’

“자~ 그러면 이제 내가 질문할 시간이네. 너는 어떻게 이 사실들을 알고 있는 거지?”

“송구스럽사옵니다만… 저, 저는 그 할데온 유적을 탐사하던 자였습니다.”

“뭐라고? 감히……!”

“하지만 처음부터 할데온 유적이 그, 그분의 유산인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그저 고대 유적인 줄 알고 발굴에 참여했는데, 안에 있는 무수한 함정들을 헤치고 들어가서야 그곳의 정체를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저 혼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노이멀 총리는 두려워하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말하는 베오날드의 변명에 그럴싸함을 느끼면서도 우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견적을 낸 베오날드는 전생에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발휘했던 간신 체질을 사용하여 이 위기를 넘길 방안을 이미 짜 놓은 상태였다.

“저는 그곳에서 과거 통일 제국 시절의 유산들을 보고 감명했습니다. 찬란한 문명의 흔적과 아름다운 유산들… 고작 수백 년 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너무나 위대해 보였습니다. 필시… 그곳을 만들고 관리하시던 분은 아주 위대한 천재이셨겠지요.”

“호오? 뭘 좀 아는군.”

‘아… 설마 내가 내 똥꼬(?)를 빠는 날이 올 줄이야.’

스스로를 찬미하기 시작하자 표정이 살짝 풀어지는 딸의 얼굴을 보면서 베오날드는 확실히 유효한 수라고 생각했지만, 속으론 너무나 괴로웠다.

남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것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힘든 일인데, 자기 자신을 과장해서 찬미하는 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나마 베오날드여서 이렇게 얼굴에 금칠을 하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웬만한 범인(凡人)들은 흉내도 내지 못하고 어설픈 게 드러날 터였다.

“물론 제가 500년 전의 글자들을 전부 해독한 게 아니라서, 현장에 있는 기록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그 찬란한 시대의 유산과 평화롭고 번영하던 세상에 큰 감명을 받아서! ‘노이멀’이라는 이름을 쓰고 계신 총리님의 이름을 들었을 땐 감동에 전율이 일어났고, 기록 중에 남은 성함을 대조해서 겨우겨우 알아낸 것입니다.”

“음? 탈피의 무덤에… 내 이름이 들어갈 곳이…….”

“기록에 의하면 생일 선물의 실험 버전이라고…….”

“아! 아아! 확실히 그랬던 것 같아. 하긴 아버님은 매년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 주려고 노력하셨으니……. 그런 실험작들이 하나둘 있어도 무리는 아니겠지.”

‘…진짜 좋은 아빠로 살아서 다행이다. 그럴싸하게 둘러댄 건데! 다행히 맞아떨어졌어!’

전생에 벨릭스 폰 노이멀에 대한 반발심으로 최대한 좋은 아빠로 살려고 노력한 덕분에 지금 이야기의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500년 전의 자신에게 감사하며 베오날드는 점점 표정이 풀어지는 노이멀 총리의 얼굴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아빠를 좋아하고, 베노피스를 좋아했던 만큼 증오와 분노가 생겼기에 그것을 칭찬하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이 유산들을 감히 그 찬란한 시대를 무너뜨리고 부인한 인간에게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고! 정당한 주인인 노이멀 가문의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오~ 꽤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분들을 도와서 이 대륙에 그 찬란한 노이멀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돕고, 다시금 히드라의 깃발이 대륙 전체에 펄럭이며! 부활한 베노피스의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그다음 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노이멀 총리의 마음에 드는 말만 골라서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X꼬를 빨아 젖히는데 넘어오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골렘이라고 할 정도! 가히 수십 년간 황제의 X꼬를 주름 하나 없이 반들반들하게 만든 혀 놀림 솜씨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호호홋, 정말 기특한 소리구나.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왜, 왜입니까?”

“그 바람은… 오직 그 시대에 가주로 지내어 백작에서 공작으로… 그리고 대륙 전체를 손아귀에 쥔 나의 아버님, 베오날드 폰 노이멀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헉!”

베오날드는 500년이 지나도 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한 기분이 가득 차올라 격해지는 감정을 자제하느라 용을 써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500년간 힘들었을 그녀를 위로해 주고, 그녀의 꿈을 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인간 종족의 멸망이었기에 해선 절대 아니 될 일이었고, 설득의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난 설득엔 자질이 없다고… 우리 가문이랑 체질도 안 맞고…….’

‘설득이란 시간 낭비의 또 다른 말이다.’라는 말이 노이멀 가문에 내려올 정도로 공작과 협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게 그들의 방식인 이상 대화로만 뭘 어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베오날드 또한 결국 노이멀 가문의 방식을 써 왔기에 ‘설득’이라는 것으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딸의 마음을 돌릴 자신이 없었다.

“그, 그럴수록 더욱 증명해야 하지 않습니까? 노이멀 가문의 부흥과 재건! 최소한 그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던 베노피스 주인분의! 이름을 다시 대륙에 떨쳐야…….”

“아니, 결국 인간 놈들에겐 어울리지 않았던 거다. 아버님의 가호와 영광을 스스로 지워 버렸으니… 자격이 없는 거지.”

‘아이고…….’

“아무튼 네가 얼마나 베노피스와 아버님의 영광에 감명을 받았는지는 전해졌다. 좋은 정보까지 가져왔으니 고맙다만… 하나만 묻자. ‘히드라의 이빨’에 대해 누설한 것도 너인가?”

“아, 그… 예!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크멜 공작에게 건 ‘독’이 아닌 ‘독’의 존재로 옮겨 갔고, 베오날드는 대답하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변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지?”

“그… 노이멀 총리님께 제 존재를 알리고 싶기도 했고, 그가 죽었다면 이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크멜 공작이 살아 있어야 할데온 유적을 성지로 만들려는 교단이 견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망할 교단의 손에! 위대한 유산들이 들어가서 폐기되거나 한다면!”

“으음… 하지만 크멜 공작이 손에 넣어도 문제 아닌가?”

“경쟁자가 생기고 견제하게 되면 결국 쉽게 손을 못 댑니다. 여기에 칼레움 제국의 황제까지 끼어 있는 삼파전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할데온 유적이 안전합니다. 아니면 설마… 크멜 공작의 목숨이… 그 아버님의 유산보다 더 가치 있다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지, 아니지! 당연히 아버님의 유산이지! 좋아! 아주 잘했어! 그래! 그것들이 아버님의 유산을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지! 아주 잘했다!”

파악하고 나니 움직이는 건 꽤 쉬운 딸내미를 보며 베오날드는 일단 그녀의 신임을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신임을 얻는 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가르칸 공화국이라는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이기도 하니 이용 가치는 충분히 있고, 또 신임을 얻어서 그녀가 꾸미는 계획이나 일을 도우면서 방해할 수도 있다.

‘다시 태어나서도 나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딸아이를 조커 카드로 취급해야 하다니… 씁쓸하군.’

“으으음~ 아무튼 너는 노이멀 가문을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구나. 그러면 나와 같이 가르칸 공화국으로 가겠느냐?”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 또한 결국 라라 님이 혐오하시는 인간. 같이한다고 한들 불쾌하실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 속에 남아 계속해서 라라 님의 눈과 귀가 되어 그들의 움직임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이번 전쟁에서 크멜 공작을 살린 것으로 인해 전 큰 공을 세웠으니, 정보의 중추로 갈 수 있겠지요.”

“흐으음…….”

고민하기 시작하는 노이멀 총리였고, 베오날드는 미소를 감춘 채 그녀의 눈빛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언뜻 보면 너무나 달콤한 유혹으로, 인간 제국 속에 숨어서 동향을 살펴 줄 정보원의 존재는 매우 반가운 것이었지만 ‘달콤할수록 경계하라.’라는 노이멀 가문의 말이 있기에 그녀는 더욱 철저히 경계한다.

“하긴 지금 그대의 장점을 생각하면 그대로 인간 세상에 남아 있는 게 도움이 되겠군.”

“예. 또 혹시나 구할 것이라든가 필요한 정보, 명하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적절한 비용만 주시면 말이죠.”

“내가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용케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어차피 제가 죽고 난 뒤의 일 아니겠습니까? 100년 안에 끝내실 수 있으신지요?”

인간이라는 생물이 대륙의 지배자가 될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끈질김과 특유의 번식력 때문이다.

집단과 사회를 이루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간을 멸종시키려면 못해도 수백 년이 걸릴 거라 예상하는 베오날드였다.

더구나 저기 하늘 위에서 돌보시는 여신님도 계시지 않은가?

물론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계시를 받거나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인류가 그렇게 만만한 종족은 아니라고 자부하는 그였다.

“충분히 가능하다만?”

‘…뭐라고?’

“악마와 손을 잡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뭐, 걱정 말거라. 너는 다른 일로 죽지 않는 한 특별히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죽는 인간으로 삼아 줄 테니~”

‘악마… 라.’

악마라는 단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마족, 마왕(魔王), 더 나아가선 끝없는 어둠을 지배하는 암흑신.

베오날드에게는 동화나 신화 속에서나 듣던 존재이자, 지옥에서 고통받다가 이 세상에 다시 오게 된 이유였는데… 설마 여기서 자신의 딸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후후후, 놀랄 만도 하겠지. 왜? 이제 와서 두려워진 것이냐? 아니면 나를… 교단에 고발할 생각이냐?”

“아, 아닙니다. 그, 그게… 정말로 어쩔 줄 몰라서…….”

“그래. 그게 자연스러운 거겠지.”

‘아아…….’

베오날드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간신히 노이멀 총리를 속이는 데 성공했다.

암흑신에 관련된 것은 세상의 금기나 다름없었고, 그 자체로 충격적인 이야기여서 당황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니 말이다.

하나 베오날드의 마음은 더 큰 혼란으로 가득해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암흑신의 권속이 된 자신의 딸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문의 적이나, 자신의 정원 밖에 있는 사람은 자비 없이 없앨 수 있는 베오날드였지만 혈육, 가족에 대해선 예외였다.

부친인 벨릭스 폰 노이멀의 잔혹한 가정교육에서 나온 반발심. 자신에게 그렇게나 반항적인 알테리오만 해도 능력을 인정해서 후계자로 삼았던 만큼 철저히 격리하고 멀리 귀양을 보낼지언정 직접 죽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신이시여!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평생 거의 불러 보지 않은 여신의 이름까지 입에 담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베오날드는 일단은 먼저 계획했던 대로 그녀의 신임을 얻어서 정보의 중개자가 되는 방안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녀를 설득하거나 앞으로 일으킬 야망을 막는 것에 대해선 또다시 계획하기로 하며, 그는 일단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말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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