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젠장! 지금 여기서 크멜 공작이 죽으면 안 돼!’
비록 적대 파벌이긴 하지만 크멜 공작은 제국의 거대한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유일한 특급 기사로 제국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가 지금 여기서 죽으면 가뜩이나 이 남부의 상황으로 혼란스러운 제국의 혼란이 더 극심해질 것이고, 심하면 내전 추가로 주변국의 침략까지 당하게 된다.
그렇게 한번 망가진 나라는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복구가 될 테니, 그사이에 암흑신의 수하나 마왕군이 내려오게 되면 인류는 끝장이었다.
‘…대체 누가! 히드라의 이빨을 쓴 거지? 그것은 분명 내가 샘플용으로 쓸 물건만 제외하고 모조리 폐기했을 터인데!’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베오날드는 ‘히드라의 이빨’의 독에 대해서 생각했다.
연금술을 배워서 다양한 편의 물품, 약과 마도구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독’ 또한 그의 탐구 영역 중 하나였다.
애초에 가문의 상징인 ‘히드라’부터가 신화에서 ‘맹독’으로 수많은 영웅에게 비극적인 죽음을 안겨 주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가문의 명성에 맞는 독을 만드는 것 또한 베오날드의 도전 과제 중 하나였고, 만드는 데 성공을 했었다.
‘너무나 위험한 물건이라서 나도 안 쓰고 봉인한 건데! 젠장! 대체 누구지? 비밀리에 연구한 것이라서 아는 이도 없을 텐데, 대체……?’
베오날드는 말을 탄 채로 기억을 더듬어서 그것의 존재를 알 법한 사람을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 있을 적’의 관리는 더없이 완벽했고, 그런 위험한 물건은 특히나 자신도 열어 보기 귀찮을 정도로 탄탄하게 보안을 해 두었는데, 결국 자신이 죽고 나서 누군가가 열어서 그 물건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500년이 지나고 할 정도면… 연령으로 생각하면 하프엘프인데, 누군지 정말 모르겠네.’
자신이 살아 있을 적엔 모두가 다 어린아이들이라서 귀엽고 예쁜 딸내미들이었던 기억뿐이었다.
그 이후론 자신이 죽었기에 그 아이들이 겪었을 변화와 성장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베오날드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물론 제삼의 누군가가 내 물건들 속에서 털어서 사용했을 수 있지만… 남은 견본은 정말 극소량이고, 제조법을 안다고 해도 그 공정이랑 재료 구하는 게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불가능해.’
결국 누군가가 손에 넣었다고 하면 자신이 남겨 둔 것을 얻었을 가능성뿐이었다.
아무튼 베오날드는 한시라도 빨리 크멜 공작을 살리기 위해 말을 채찍질하며 달리는 속도를 더욱더 높였다.
***
몇 시간 뒤, 크멜군 진영.
이미 총공세로 하던 전투는 끝난 지 오래였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는 크멜군과 제국 수도군의 진영은 슬픔과 암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대보다 약 2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신적 지주이자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둥인 크멜 공작이 노이멀 총리에게 당해서 쓰러진 뒤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크멜군과 제국 수도군은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크멜 가문이 전쟁에 이골이 나고, 이런 상황을 가정해서 훈련까지 했던 뛰어난 가문이었기에 완전한 군의 붕괴를 막고 진영을 유지한 채 간이 목책과 방어 진영을 짜는 등등… 병사들의 이탈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천만다행으로 크멜 공작이 중태이지만 아직 살아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어떻게든 그가 다시 일어난다면 다들 사기를 회복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대체 무슨 독인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작님.”
크멜 공작가 정도의 명문 무가이면 그 의료를 담당하는 마법사와 신관의 실력도 최고 수준일 텐데, 수많은 기사들의 부상을 고치고 기적으로 낫게 하던 그들이 지금은 크멜 공작이 중독된 ‘독’도 모르고 치료할 방법도 모르는 속수무책인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기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인 치유 마법과 포션을 쓰는 것뿐이었는데… 해독 방법을 모르는 이상 본인의 괴로움만 증가시킬 따름이었다.
“그 망할 잡종 엘프가 뭔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이오?”
“일단 주로 엘프들이 사용하는 독 위주로… 서책이라든가,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공작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빨리 알아내시오! 이대로 공작님이 잘못되시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기에 라웰스 남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들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비겁하게 독을 당했다곤 하지만 제국 유일의 특급 기사가 고작 저 작은 가르칸 공화국과 싸우다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면 명문 무가인 크멜 가문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제국 전체에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야 하나? 아니야. 공작님께서 죽으실 리가 없다. 제발… 제발… 제발! 여신이시여…….”
“후우… 후우… 지금 공작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한참 간절한 마음으로 여신께 기도하는 라웰스 남작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급하게 달려온 건지 숨을 헐떡이며 땀을 뻘뻘 흘리는 그는 약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나? 생각하던 라웰스 남작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경계심을 가득 품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넌 누구냐?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시간 없으니까 공작님이 어디 계신지나 말씀하십시오. 일분일초가 급합니다. 그분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무슨……? 아, 아니! 알았다.”
평소였으면 절대로 이런 수상한 놈에게 공작님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겠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눈빛에서 진심이라는 게 한없이 느껴진 데다, 지금 뭐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었기에 그를 데리고 공작의 텐트로 향했다.
“그,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경비들이나 다른 병사들이 있을 텐데?”
“아, 발데리안군의 전령이라고 하니 들여보내 주더군요.”
“바, 발데리안 쪽에서 온 겐가?”
“엄밀히 말하면 그렇습니다만, 지금 공작님의 목숨을 구하려는 건 진심입니다. 안 그러면 목을 치십시오.”
“…끄으으응!”
이 자신감의 원천이 뭔지 모르지만 라웰스 남작은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 생각하며 결국 베오날드를 공작의 텐트에 데려갔다.
입구에 있던 크멜 가문의 기사들은 베오날드의 존재에 의아해했지만, 라웰스 남작이 대동한 사람이었기에 별다른 제지 없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끄으으… 으으으으윽! 으으으으…….”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침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크멜 공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녀들과 하인들이 계속해서 땀을 닦고, 차갑게 식힌 물수건을 올려 주었지만 그의 고통을 감소시켜 줄 순 없었다.
아무튼 베오날드는 오자마자 공작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하는데, 예상대로 피부 곳곳에 ‘비늘 모양의 반점’들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고, 그 양을 확인하자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특급 기사 정도의 역량이 있으니 진행이 빠르군. 벌써 중기… 앞으로 2시간 이내에 말기로 넘어가겠군.”
“자, 자네, 지금 공작님이 당하신 독이 뭔지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으니 잴 수 있는 겁니다. 당장 진영에 있는 신관과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 포션과 마력초를 가져오고, 근처 마을과 도시에 있는 모험가 길드로 가서 예비로 두고 있는 마정석과 마력 포션과 마력초까지 깡그리 다 긁어모아 오십시오.”
“뭐, 뭐?”
“빨리!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2시간이 지나서 말기로 넘어가면 나도 손 못 씁니다! 자세한 설명은 치료하면서 할 테니, 어서!”
“아, 알았네!”
단호한 베오날드의 태도에 라웰스 남작은 급히 움직였고, 마법사들과 신관들에게서 거의 빼앗다시피 해서 베오날드의 요구대로 마력 포션과 마력초들을 몇 개 우선적으로 챙겨 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든 베오날드는 아주 무례하게도 포션 병의 뚜껑을 떼어 버리고 병째로 공작의 입에 쑤셔 넣어 버렸다.
“자, 자네, 뭐 하는 건가? 이 무슨 무례한 짓을…….”
“바쁘니까 가만히 계십시오. 아직 의식까지 잃은 건 아니시니까 쭈욱! 들이켜실 겁니다. 그리고 이걸로도 모자라니까 계속! 계속 갖고 오십시오. 엄청 많이 필요합니다. 계속 마시게 해야 합니다. 더 좋은 건 많은 마력을 품은 마도구인데… 크멜 공작이 혹시 특수한 무구 같은 걸 챙겨 오셨습니까?”
“아, 아니! 그건 잘 모르겠네. 아무튼 대체 무슨 독이기에 그런 조치가… 공작님?”
“하아… 하아아… 하아…….”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위해 베오날드에게 따지려던 라웰스 남작은 계속 괴로운 신음만 내뱉던 크멜 공작이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하자 놀랐다.
그의 조치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 라웰스 남작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가 말한 대로 텐트를 나가서 마법사들과 신관들에게 마력 포션을 계속해서 수급해 달라고 했고, 그러자 자신들도 고치지 못한 ‘독’의 대처법을 아는 베오날드에 대해 궁금했던 그들은 모두 처소에 몰려들었다.
“자넨 누군가? 어떻게 이 독에 대해서 아는 거지?”
“마력 포션이 치료약이라고?”
“그건 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 닥치고 구해 오기나 해! 완전히 나으려면 아직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니까! 아, 맞아. 마법사분들은 여기로 와서 공작님의 손이든 팔이든 잡고 마력을 흘려 보내! 교대로!”
“무, 무슨?”
“빨리!”
다급한 베오날드의 외침에 종군 중인 전투 마법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크멜 공작에게 다가가서 마력을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확실히 공작의 안색이 좋아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줄어들었는데, 그것을 보자 일단 한시름 놓은 베오날드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더니 자신의 주변에 모여 있는 마법사들과 신관, 라웰스 남작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의 이름은 ‘히드라의 이빨’이라고 하는 독이지만 사실… ‘독’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정확히 따지고 들어가면 그러니까… 호문클루스에 가까운 작은 사이즈의 벌레입니다.”
“벌레라고?”
“흑마술사의 분파 중 하나에… 벌레를 촉매로 쓰거나 아니면 직접 사역을 하는 마법이 있습니다. 거기서 마력을 먹는 벌레를 개량해서 몬스터의 마정석을 빼내고 남은 시신에서 생명력을 모조리 빨아들여 알차게 마력을 흡수하는 용도로 쓰는 게 있었죠. 그걸 기준으로 개량해서 아주 작은 사이즈로 만들게 된 게 그 벌레입니다.”
“맙소사!”
“이것에 당하면 결국 그 몸 안에 들어가서 마력, 오러를 먹어 치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화 뒤에 지독한 변을 남기는데… 그것의 부작용으로 이 비늘 모양의 반점이 남는 겁니다. 그러면서 수명이 다 될 때까지 계속 먹고 싸기만 하죠. 마력과 오러를 먹는 게 한계에 다다르면 이제 피와 살, 뼈를 파먹게 됩니다. 그러면 이 비늘 모양 반점의 색이 붉게 바뀌는데… 그때가 바로 말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죠.”
“그, 그러면 지금은?”
“중기에서 간신히 치료했습니다. 앞으로 증상이 나을 때까지 마력 포션과 마력초로 계속 치료하면 됩니다. 아마 기간이… 4일에서 7일 사이가 될 겁니다. 마정석을 입에 물고 있는 것도 좋겠지요.”
“저, 정말 그걸로 치료가 되는 겐가?”
의심이 간다는 듯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신관들에게 베오날드는 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예, 됩니다. 왜냐면 이게… ‘독’의 단점이, 벌레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인공 생명체라 번식도 못하는 결함품. 먹고 싸기만 하다 보면 그냥 죽습니다. 그리고 체내에 남은 그 반점은 얼핏 보면 심각해 보이지만… 잘 먹고 몸조리만 잘하면 인체의 자체 해독 능력으로 금방 회복됩니다. 대처법을 모르면 답이 없는 것이지, 대처만 할 줄 알면… 만드는 비용만 비싼 독입니다.”
그래서 베오날드는 완성하긴 했지만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 때문에 폐기하고 봉인한 기억을 떠올렸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얼려 두었다가 해동해서 써야 해서 관리가 매우 어렵고, 게다가 대처법을 알면 쉽게 나을 수 있는데 만드는 제작비는 더럽게 비싼, 나름 ‘탈피의 무덤’에 들어갈 레벨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고, 언젠가 효과를 모르는 상대를 암살할 때 한 번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견본품 겸 봉인해 둔 것이었다.
“아무튼 계속 마력 공급과 마력 포션, 마력초… 투입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물론 방심할 수 없기에 저도 여기 남아서 상태를 지켜보겠습니다. 마력초는 그냥 먹이는 것보단 약으로 조제해서 포션을 만드는 게 나으니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베오날드는 계속해서 마력초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라웰스 남작을 비롯해서 마법사들과 신관들은 베오날드를 보며 감탄하는 동시에 크멜 공작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나 그러면서도 베오날드가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지만, 아직 크멜 공작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