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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44화 (144/259)

[144화]

다음 날, 바니로 백작가 성 앞.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맞는 크멜 공작군과 제국 수도군의 진영에선 비장한 공기가 흘렀다.

어제 총력전을 하겠다는 공작의 말은 각 진영 곳곳에 전해졌고, 귀족들과 기사들은 어젯밤부터 미리 준비를 시작했는데, 아침 식사를 든든히 먹고 난 뒤 전투로 꽤 줄었지만 약 5만의 병력이 전투 준비를 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어머나, 이거 아주 제대로 낚였네.”

“총리님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군요.”

“크멜 공작은 상식적이고 전형적인 무인 가문의 가주라서~ 그래서 예측이 아주 쉽지. 마치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말이야. 조금만 생각할 줄 알면 일도 아니지.”

“아무튼 상대는 전군으로 총공세를 할 것 같습니다. 진형이 짜이고 있군요. 선봉엔 누굴 임명하시겠습니까?”

“으음~ 드라켄 장군도 괜찮고, ‘주먹을 들이받다’ 장군도 좋겠네.”

드라켄은 리자드맨 장군, ‘주먹을 들이받다’는 오크 장군으로 둘 다 강맹하며 무예에도 능한 전투 무장이었다.

리자드맨은 자신들을 오래전 사라진 드래곤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도마뱀 형태의 수인들로, 대륙 동남의 끝에 있는 습지에서 사는 자들이다.

오크의 경우는 대륙 전체에 분포하고 있지만 서식지나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몬스터 취급을 받거나 아니면 여기 있는 자들처럼 가르칸 공화국에 합류해서 교육을 받고 무공을 세워 인격체로 취급받는 등등, 모습이 다양했다.

“음, 좋은 기회이니 둘 다 대기시켜. 진형은… 어린진(魚鱗陣)으로 준비해.”

“명대로 하겠습니다.”

“자, 그럼 어디… 현재 대륙 인간들 중 가장 강하다고 하는 군대의 힘을 확인해 볼까? 후후훗, 그래 봐야 500년 전 그 화려하던 군대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겠지만~”

노이멀 총리는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진 제국 수도군과 크멜 공작군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거대한 히드라 문양의 깃발 아래 도열해 있던 베노피스의 영광스러운 군대. 1만의 정예 기사들에겐 모두 미스릴 갑옷을 입히고, 그와 별개로 5만의 중갑 기마병과 20만의 병력들이 퍼레이드를 하던 모습. 하나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유산이었다.

‘…보렴. 이게 바로 힘이다. 군사력, 물리적인 힘. 폭력은 나쁘다고 하지만 결국 이것이 있어야 이상이든 꿈이든 지킬 수 있단다.’

“…아.”

“총리님, 적군이 오고 있습니다.”

한참 기분 좋은 추억에 취해 있는데, 적군의 등장 소식에 다시 정신을 차린 노이멀 총리였다.

그녀는 곧바로 일어나서 나아가 적 진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적군은 현재 4개의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개는 기병대, 남은 2개는 각각 진형을 이루고서 거리를 벌린 채로 천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으음, 역시 황실과 귀족의 군대가 서로 연계하는 법을 배울 리가 없고, 합의 같은 걸 할 리가 없으니 사실상 2개 군대가 나눠서 오는 거나 다름없네. 그나마 적극적인 곳은… 크멜군이군. 그러면 우선 솜씨를 보자.”

나뉜 채 다가오는 5만 5천의 대군. 3만의 약 2배에 달하는 숫자였지만 가르칸 공화국의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도 짓지 않고 굳건히 각자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반면 일단 진군의 명을 받아서 다가가는 크멜군이었지만, 병사들은 점점 눈에 드러나는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를 보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오크랑 수인이 저렇게 무장을 단단히…….”

“저놈들, 야생에서 싸웠을 때도 만만치 않았는데.”

“…설마 훈련까지 받은 건가? 맙소사.”

크멜군의 병사들은 모두 다 훈련을 받은 강병이고, 때때론 몬스터 토벌에도 나선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리자드맨처럼 서식지가 특수한 경우를 빼면 수인(獸人)이나 오크와는 싸운 경험이 있었는데, 문명 생활을 하지 않고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지만 강한 신체 능력 때문에 애를 먹은 기억을 다들 가지고 있었다.

“후우~ 저런 거랑 싸워야 한다니, 이게 무슨…….”

“아무튼 여신께서 돌보길 빌어야겠지. 젠장!”

“전군! 돌격하라!”

뿌우우우우~

총공격을 결심한 것은 크멜 공작 측이었고, 전열에 배치한 보병들이 일자진을 구성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망치와 모루의 정석적인 전투 시작. 모루가 되는 보병이 적 진영과 붙어서 잡아 두는 동안 강력한 충격력과 위력을 가진 기사단이 우회하여 적의 후방과 측방을 노리고 돌진해서 적진을 붕괴시키는 전법이었다.

“…으아악!”

“커억!”

더 많은 병력을 가진 크멜군이 무기를 들고 파도처럼 몰려갔지만, 단단하게 버티고 선 가르칸 공화국의 전열 앞에 순식간에 분쇄가 되었다.

못해도 머리 하나가 더 큰 수인, 오크, 리자드맨들이 완전 무장에다 어떻게 훈련시킨 건지는 몰라도 완벽하게 진형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근접전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인간보다 뛰어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데, 동등한 수준의 장비에 훈련까지 되어 있으니 당연히 질 수 없는 것이었다.

“쿠룩! 쿠룩!”

“선조인 용이시여! 우리의 전투를 지켜봐 주소서!”

“크르르릉! 나약한 인간 같으니!”

적 보병의 돌진이 허무하게 막히자 사기가 번쩍 오른 가르칸 공화국의 병사들은 포효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인간들 또한 괜히 대륙을 제패한 것이 아니라는 듯 궁하면 궁한 대로 싸울 방법을 찾는 데 선수였고, 크멜군은 상시 자신들보다 피지컬이 강하고 전투 실력이 뛰어났던 볼레아 왕국의 병사와도 싸운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다.

“좋아! 장창병들에게 우선적으로 자리를 내어 줘라! 그다음 진형을 갖추고 천천히 전진하고, 2열은 물러설 자리를 만들고 후열은 잠시 전진을 정지하고, 앞의 아군이 쓰러지면 그 자리를 메워라. 굳이 직접 무용을 겨룰 필요가 없다!”

적 방진과의 전투가 성립했고, 일반적인 전투로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자마자 지휘관은 능숙하게 병사들을 지휘해서 저 강맹한 가르칸 공화국 병사들의 전진을 막고, 아군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을 방지했다.

“적군도 제법 하는군요, 총리님. 전술을 유연하게 바꿔서 상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병사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무모하게 싸우진 않지만, 문제는 저 잘 짜인 장창 전열엔 쉽게 다가가지 못해서 방진이 더 잘 버티게 되겠군요.”

“상대는 북방의 야만인들과 싸운 경험이 많은 부대야. 직접적인 돌진 전투보다는 저쪽이 더 적성에 맞는 거겠지. 하지만… 저러면 결국 우리 진형을 뚫지 못해.”

“그렇죠.”

완력, 체구도 압도적이지만 튼튼한 방패와 갑옷을 잘 갖춘 가르칸 공화국의 이종족 부대 또한 이성을 차리고 방패를 들고 진형 유지에 몰두하면 절대로 밀리지 않는 형세가 된다.

더 많은 숫자에다 일자진으로 밀고 왔기에 감싸는 형태가 되었지만 가르칸 공화국의 진형은 전혀 붕괴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보병전은 한 수 위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하나 결국… 전쟁은 창의 대결이다. 기사의 힘으로 때려 부수면 그만일 뿐!’

“이번엔 저번과 다르다! ‘기사’의 힘을 보여 주마! 야만족 놈들!”

두두두두두두!

크멜 가문과 제국 수도군의 기사들을 주력으로 하는 기병대가 가르칸 공화국의 진형 양 옆구리를 노리고 거의 동시에 공격에 들어갔다.

딱히 합의한 건 아니지만 둘 다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본능 레벨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기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전술적 행동이었다.

‘좋아, 그럼 이대로… 뭐야?’

정면을 지나서 측면에 돌입한 기사들. 이번엔 성가신 궁병대들도 전방 지원과 적 궁병대를 상대하느라 바쁜 상황인지라 자신들에게 화살을 날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기사단의 진면목을 보여 주리라 생각하고 달려드는데, 적 진영에서 갑자기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신들이 오길 기다린 듯한 땅울림 소리. 그리고 이어서 거대한 포효가 몰려왔다.

“저건… 뭐야? 웬 거대한 멧돼지가!”

기사단의 앞에는 붉은 마력으로 된 거대한 멧돼지의 형상을 한 작은 산만 한 존재가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 낸 허깨비 같은 것일까? 기사들은 그 거대한 짐승의 위용에 순간 놀라서 말 머리를 돌려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다들 경악하던 그때, 거대한 멧돼지의 위에 완전 무장을 한 거구의 오크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자랑스러운 가르칸 공화국의 장군, ‘주먹을 들이받다’다! ‘장군’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 알려 주마!”

“아니… 무슨……!”

끼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리고 반대편에선 또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는데, 거기 있는 것은 완전 무장한 리자드맨이었다.

거룡인(巨龍人)이라고 불러야 할까? 높이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리자드맨은 똑같이 거대하게 변한 무기와 방패를 들고서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제국 수도군 기사들을 향해 포효하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드라켄! 습지의 왕이며, 위대한 용의 후예이자! 가르칸 공화국의 장군이다! 내가 상대해 주마!”

“무, 무슨 이런 게……? 단장님!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우회한다! 우리 목표는 저 커다란 놈이 아니다. 적 군이다. 그리고 저렇게 커다라면 우리 쪽 전투 마법사들이 해결해 줄 거다! 아군을 믿어라!”

“예! 하, 하지만…….”

쿠우우웅!

기사들은 기사들대로 대응하려고 하지만 적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대비한 것처럼 우회하려는 기사들의 진형에 발맞춰서 유연하게 움직였고, 드라켄 장군과 ‘주먹을 들이받다’ 장군은 각각 군사적 재능도 가지고 있는지 기사들의 돌진 방향으로 가서 언제든 맞설 준비를 했다.

“저 놀라는 표정 좀 봐. 후후훗.”

“우리 가르칸의 장군을 처음 보았으니 그럴 만하죠.”

노이멀 총리는 웃으면서 적군의 상황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가르칸 공화국에서 ‘장군’이라는 것은 혼자서 능히 한 개의 군(軍)의 가치에 필적하는 자만이 임명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가르칸 공화국에서도 장군의 칭호를 가진 이는 노이멀 총리 자신을 포함해서 총 12명밖에 되지 않았고, 오늘 이 전쟁엔 그들 중 4명을 데려온 거였다.

“으아아… 뭐야? 저게?”

“여신이시여! 대체 이건……?”

기사들의 돌진을 막아 내는 것 이상으로 이 거대한 두 장군의 모습은 전장에 선 다른 병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가뜩이나 눈앞의 적 병사들도 몬스터 같은 피지컬을 가진 아인종들이라서 만만치 않은데, 저런 거대한 것들까지 나타나서 기사들을 무색하게 만드니 기세가 꺾일 만도 했다.

“크하하하하하하! 약하구나! 인간 놈들아!”

“‘기사’라는 자는 명예와 용맹함을 갖추었다고 들었거늘, 쿠룩! 정녕 용기 있는 자가 없단 말이더냐?”

‘이런 젠장! 뭔가 방법이… 어?’

경험 많고 예리한 병사들도 이런 상식을 넘어서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것은 크멜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싸웠던 기사들도 마찬가지.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지만 전쟁은 지속되었기에 누군가가 강하게 나서서 저 거대한 적을 제지해야만 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그 순간, 녹색 섬광 하나가 크멜 가문의 진영에서 번쩍하고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거대한 드라켄을 향해서 날아갔다.

드라켄 장군은 무기를 휘두르면서 적들을 위협하는 데 정신이 팔린 건지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 녹색 섬광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눈치 못 채다가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른 순간 그제야 눈치를 챘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뭐야?”

“크멜 가문 검법, ‘종형(終形)-나뭇잎은 다시 피어날지어다’.”

녹색 오러의 파동이 부채꼴로 펼쳐지면서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휩쓸어 버리는 크멜 가문의 오러 검술. 그 궤적은 드라켄 장군의 목 틈새를 베어 들어가서 완벽하게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 버렸다.

양 군대는 이것을 보며 경악함과 동시에 이런 기예를 펼친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이 집중되는데, 당연하게도 그곳에 있는 것은 이 크멜군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내가 직접 나서게 하다니. 중급 기사들은 그렇다 쳐도 상급 기사 놈들은 돌아가는 대로 지옥 훈련에 들어가야겠군. 진짜 용이나 드레이크면 몰라도 겁을 먹다니! 그저 몸집만 큰 도마뱀인데 말이야!”

“크멜 공작님이다!”

“와아아아!”

“크멜 공작님이 저 커다란 도마뱀을 쓰러뜨리셨다!”

“역시 제국 유일의 특급 기사!”

“와아아아아!”

부하들의 무능함에 투덜거리면서 검에 묻은 체액을 떨어뜨리는 크멜 공작이었지만 전세는 한 번에 엎어지고, 병사들의 사기는 이걸로 오르기 시작했다.

강력하고 두려웠던 적을 단칼에 쓰러뜨린 광경을 펼친 크멜 공작은 검을 들어서 적진을 겨누고는 가장 앞서서 뛰어들었다.

“공작님이 돌격하신다! 뭣들 하는 거냐?”

“크멜 가문의 무(武) 앞에 적은 없으니!”

“말에서 내려서 잡으면 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한번 물꼬를 튼 댐이 순식간에 무너지듯, 두려움이 무너지고 용기가 생긴 병사들과 기사들은 일제히 적을 향해서 맹수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흥분과 환희, 그리고 우러러보던 제국 최고의 귀족인 크멜 공작이 직접 나섰다는 것에 다들 두려움을 잊어버린 것이다.

“쿠룩? 이놈들, 갑자기 미친 것 같다!”

“크르르릉! 무슨 기세가!”

이 기겁할 정도의 기세에 가르칸 공화국의 병사들은 당황하면서도 진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보병의 방진에 들어온 크멜 공작이 무쌍을 펼치며 손수 진형을 무너뜨리자 병사들도 적을 처리하기가 쉬워지며 기세는 다시 크멜군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전열은 튼튼했기에 크멜 공작은 좀 더 힘을 쓰기로 하고 오러를 집중해서 한 번에 쓸어버리려고 결심하는 순간, 적 진영에서 또 다른 큰 오러의 힘을 느꼈다.

“으음… 오는 건가?”

“이, 이건?”

“아마… 이대로 날 가만히 놔둘 수 없어서 오는 거겠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보랏빛 오러의 기류. 저것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은 크멜 공작이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싸움에 집중해야만 했다.

적 병사들이 길을 알아서 열어 주자 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굳이 궁금해할 거 없이 예상대로 상대는 노이멀 총리였다.

“무장이 형편없군.”

“무장이 꼭 중요한 건 아니지. 후훗, 결국 강한가 아닌가가 중요할 뿐.”

“하긴 우리쯤 되면 큰 차이는 아니지.”

노이멀 총리는 여전히 군복만을 걸친 차림으로 무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크멜 공작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대꾸하면서 검을 겨누자, 노이멀 총리도 검을 맞겨누면서 서로를 상대할 의지를 다졌다.

둘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았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곧바로 서로에게 달려가 검을 휘두르면서 싸움을 시작했다.

“다, 다들 물러서라! 특급 기사 간의 싸움이다! 여파가 클 거야!”

“자칫 휘말렸다간 죽는다!”

“내 생전 이런 전투를 볼 줄이야!”

몰아치는 녹색과 보랏빛 오러의 폭풍에 병사들은 다급히 물러났고, 전투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크멜 공작과 노이멀 총리는 마치 자신들만 대련장에서 싸우는 것처럼 상대에게 집중한 채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 정도 레벨의 검사끼리의 싸움이라면 한순간의 망설임만 가져도 곧바로 죽음과 직결된다.

‘…그나저나 이 검술, 뭔가 익숙하군.’

‘뭐지? 왜 우리 노이멀 가(家)의 검술을 아는 것 같지?’

싸우는 둘 모두 검을 휘두르면서 상대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했다.

크멜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왠지 익숙함이 느껴지는 상대의 검술에서 기이함을, 노이멀 총리는 분명 웬만해선 아무도 모를 노이멀 가의 비전 검술인데 상대가 익숙해하고 있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뭐지? 우리 가문의 검술은 분명… 일반적인 가문의 검술과 궤를 달리할 텐데?’

노이멀 가문의 비전 검술, ‘통일 제국 황실 기사단 검법 노이멀식’. 기본적으로 베껴서 만든 데다 거기에 노이멀 가문의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검술에 기교나 페인트가 많은… 비겁한 스타일의 검술이었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일식(一式)-살무사!’

가령 횡 베기인 척하다가 찌르는 ‘살무사’의 경우 일단 처음 보는 자는 당하거나 아무리 뛰어나도 당혹스러워해야 하는데, 크멜 공작은 조금 반응이 늦었지만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대응해 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크멜 공작이 약간 우세인 상황. 노이멀 총리는 어떻게 그가 자신의 가문 검술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조금씩 집중이 흐트러진 것이었다.

기교와 페인트가 많은 노이멀 가문의 검술은 상대와 처음 맞서는 초전(初戰)에 가장 위력적인 검술이고, 적어도 처음 크멜 공작과 맞서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더 강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계획이 흔들리니 당혹스러웠던 그녀는 결국 다른 방안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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