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음, 좋은 기회군요. 저도 참전하고 싶습니다.”
“참전이라고요? 하지만 베오날드 님은 그 마갑주인가 하는 걸 만들어야 하는 몸 아니십니까?”
“병기 개발엔 전쟁터만 한 시험 장소가 없지 않습니까? 더불어 백작… 아니, 가주님에게도 성과를 보여 드려야 하고… 또 전력이 하나라도 늘어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그렇군요. 좋습니다. 다만 그… 군에 속하게 되면 명령을 받아야 할 텐데…….”
“병사 10명만 주시면 됩니다. 신병기 연구팀 같은 형태로 독립 부대로 지원하는 걸로……. ‘블랙 드레이크’를 잡은 성과가 있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으음… 그러도록 하지요.”
‘블랙 드레이크’라는 성과가 있으니 오스왈드도 베오날드에게 특별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쟁 상황에서 더 강력한 병기나 무구를 원하는 건 어느 집단의 수장이나 마찬가지였고, 마갑주는 이미 확실하게 그 강함을 증명한 만큼 오스왈드는 베오날드의 요구대로 해 주기로 했다.
일단 영주 대리인 만큼 적극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미 베오날드는 가문에 수많은 메리트를 제공해 주었기에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고로 우리도 전쟁터로 간다.”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남부에서 일어난 전쟁이 장기화될 전망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출발은 일주일 뒤니까 그때까지 또 바빠질 거다.”
“블랙 드레이크를 잡고 좀 쉬나 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요?”
“너무하… 긴 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언어도단. 자자, 일하자꾸나. 우선은 지금 얻은 블랙 드레이크의 소재로 강화 계획이다. 드레이크의 가죽과 비늘은 알다시피 웬만한 강철보다 더 튼튼하면서 유연성도 있고 가볍지. 기체의 경량화와 동시에 방어력 강화, 거기에 드레이크의 뼈에다 술식을 새겨서 새로운 무기도 제작이 가능하겠군. 할 일이 아주아주 많아. 후후후… 후하하하하!”
세계를 파괴할 무기를 만드는 악의 과학자처럼 눈이 빛나는 베오날드였다.
전생에도 황실의 재산과 국가 예산을 착복해서 창작 욕구를 채웠던 자인 만큼 신나는 건 당연하리라.
그렇게 베오날드가 주가 되어서 셀리나와 베시아, 하이디와 함께 곧바로 마갑주의 개선에 들어갔다.
“우선 개선안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기존 외장 갑주의 두께를 줄이고, 그 위에 드레이크의 가죽을 씌워서 강화하는 방안이다. 가죽 길드 장인에게 일주일 내로 마갑주 한 개분의 드레이크의 가죽 무두질을 우선시해 달라고 할 거다. 베시아에겐 우선 기존의 갑주보다 두께를 30퍼센트 정도 얇게 해서 준비를 부탁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음~ 일단 우선적으로 무게를 줄여야 하는 부분의 파츠부터 해 볼게요. 30퍼센트를 줄인다는 게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공정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하니까요.”
“좋아. 믿고 있겠다.”
“걱정 마세요!”
믿어 준다는 말에 베시아는 눈을 빛내면서 흥겨워했다.
사실 어렵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녀로서는 자신을 한 사람의 전문가로 인정해 주고 믿고 맡겨 주는 셈이라 의욕이 솟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그녀는 먼저 작업에 들어간다면서 빠져나갔고, 베오날드는 이번엔 하이디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이디, 무기에 관해서 요구 사항은 있나?”
“그… 마갑주를 입으면 생각 이상으로 육체 능력도 올라가기 때문에 무기가 더 크고 튼튼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크고 튼튼… 물리력의 증가라. 드레이크의 꼬리뼈를 써야겠군. 좋은 창이 될 거다. 무겁게 하는 건 술식으로 가능하니 걱정 없겠지.”
그렇게 ‘마갑주’의 새로운 강화와 개선안을 들고, 베오날드 일행은 일주일간 가면서 작업할 준비를 끝냈다.
남부로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마친 뒤, 그들은 발데리안 가문의 기사에게서 독립 부대로서 합류하는 형태로 병사 10인을 인계받고, 전쟁터로 향하는 군대에 합류하였다.
“베시아와 세인은 여기 남아라. 결국 가는 곳이 전쟁터인 만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리고 세인 너는 내가 말한 대로…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해야 할 일을 부탁한다.”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이다. 그럼~”
그렇게 다른 둘은 남고 베오날드, 하이디, 셀리나만 발데리안 가문의 군대와 합류해서 전쟁터로 향했다.
블랙 드레이크를 잡은 실적 덕분에 가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전용 마차를 받은 그들은 점심, 저녁 식사를 위한 정차 시간과 밤에 자는 시간을 쪼개서 마갑주에 술식을 새기고, 드레이크의 가죽을 덧씌워서 방어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해 나갔다.
***
전쟁 20일 차, 발데리안군 진영.
이미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고, 농작지의 곡식들도 충분히 익어서 황금의 들판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아직 추수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추수를 못하는 것만이 아닌 절반이 불타 버린 밀의 들판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가르칸 공화국의 개입으로 인하여 북부 대귀족&황실군과 바니로 백작&가르칸 공화국 연합군의 병력은 현재 동등하게 8만 대 8만인 상황에서 서로 지속적인 소모전과 윗선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 갔다.
전장의 상황은 현재 바니로 백작의 성 앞에 주둔하고 있는 크멜 공작군과 제국 수도군이 3만의 가르칸 공화국군과 대치하고 있고, 바니로 백작가로 돌아가려는 기존 약 5만의 바니로 백작군을 발데리안군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상황이었는데, 서로 병력의 질이 다른 탓인지 몰라도 이쪽은 이쪽대로 병력이 비대칭인데 또 기묘하게 대치가 되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전투가 없나? 흐으음… 윽! 남부의 차 맛은 별로군.”
“남부는 차보다는 술이 발달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전쟁 시기라 술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전쟁이 결국 길어져 버렸군. 물론 우리 탓을 할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지만 말이야.”
발데리안 가문은 예정대로 빡센 영지들을 공략하다가 신호를 받고 병력을 분리해서 남하했는데, 가다가 낌새를 눈치챈 바니로 백작의 부하들에 의해서 진로가 차단이 된 채 대치하는 중이었다.
근데 그것이 또 기가 막힌 게 바니로 백작의 영지는 지키는 병력이 생기니 밖으로 지원 온 병력들이 돌아가려고 아등바등했는데 그 뒤를 마침 내려가던 발데리안 가문의 병력들이 맞닥뜨려서 뒤통수를 그대로 갈겨 버리고 대치하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가르칸 공화국의 군사들이 꽤 강한가 보군. 3만 정도라고 들었는데… 왜 못 이기는 거지? 우리야 병력 숫자가 밀린다곤 하지만 말이지.”
“전령의 말로는 수인과 이종족 연합군인데… 상당한 강군이라고 합니다. 오크, 리자드맨 같은 인간보다 강맹한 수인들이 보병 전열을 구성하고 엘프, 드워프가 같이 원거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병으로 흔들려고 해도 드워프들이 즉시 단단한 방진을 구성하고, 마법사들도 끼어 있기에 상당히 힘들다고 하더군요.”
“크하핫! 크멜 공작이 꾀를 쓰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군.”
먼저 공을 세우기 위해 자신들을 견제하겠다고 안 좋은 루트를 주려다가 오히려 코가 깨져 버린 크멜 공작을 생각하며 발데리안 백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자신들도 나름 숫자가 더 많은 바니로 백작가의 군대를 상대해야 했지만, 이쪽은 급하게 모은 병력들이 대부분이라서 거친 훈련을 반복하고 살아온 발데리안 백작가의 군대가 오히려 편한 상황이었다.
“저쪽에서는 왜 빨리 안 오냐고 난리입니다.”
“2만 5천으로 5만을 막고 있는데… 왜 안 오냐는 건 심한 소리이지. 우세이긴 해도 물리적인 숫자가 다른데 말이야, 라고 대충 써서 보내라.”
“예.”
그렇게 발데리안 가문에서도 할 말은 있기에 곧바로 서찰이 보내졌다.
크멜 공작은 그것을 받자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할 말이 없었는데, 말 그대로 2만 5천으로 5만의 발을 묶고 있는 건 전략적으로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는 거였기에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발데리안 가문은 불가항력으로 제국을 섬기는 처지라서 굳이 이 전쟁에서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식량 시세 문제가 걱정되긴 합니다만…….”
“그래서 우리가 남은 거 추수하고 있지 않나? 흠하하하핫! 이걸로 저놈들이 또 병력을 갈라서 도망가는 걸 막을 수 있고 말이지.”
상대 병력이 더 많기에 일부가 전투하고 일부가 합류하는 방안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발데리안 가주는 머리를 쓴 것이었다.
바로 현지 약탈. 추수가 안 된 농작물을 병사들을 동원해서 빼돌리고 그것을 먹이는 방안이었다.
“보통 가문이면 못하지만… 우리 가문만 가능한 짓이긴 하죠. 하하하.”
발데리안 가문은 귀족이라곤 하지만 가풍 자체가 체면이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멋대로라서 추수를 하지 않은 바니로 가문의 곡식들을 약탈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제국 수도군이나 크멜 공작의 경우 제국의 안위가 더 중요해서 차후 감정 상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손을 대지 않는 편이었지만, 발데리안 가문은 그런 게 없어서 전투가 없는 날에는 마음껏 추수하여 병사들에게 보들보들하고 새하얀 빵을 대접하는 걸로 전투력과 사기 유지를 할 수 있었다.
“진짜로 생전에 이 비싼 속이 하얀 빵을 먹게 될 줄이야.”
“아~ 겁나 맛있어. 전쟁하면서 좋은 일도 있군. 다만 제대로 된 도구가 없어서 조금 이상한 게 섞인 게 문제이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인가? 참 내~ 이 향긋한 냄새와 뽀얀 속을 보라고! 이거면 된 거지!”
제대로 된 제분 도구가 없고, 전문 제빵사가 만든 게 아니라 급양병이 만든 거라 빵의 퀄리티는 낮았지만, 병사들에겐 따뜻하게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반면 이 상황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원래 곡식을 추수하고 먹어야 하는 바니로 백작가 휘하의 병사들이었다.
“저, 저저저저! 개자식들이! 우리 곡식을!”
“아니, 저걸 그냥 놔둘 겁니까?”
“아이고! 저걸 다 먹어 버리면 우린 겨울에 뭘 먹고 살라고!”
웅성웅성…….
병력이 월등히 많지만 질이 너무 떨어져서 정면 승부가 되지 않는 바니로 백작가 휘하의 병사들은 이대로 뒤에서 쫓아오는 발데리안 백작가의 병력을 무시하고 바니로 백작의 성에 있는 적 병력들을 힘을 합쳐 덮치는 게 그들의 구상이었고 노이멀 총리의 명령이었지만, 저 뒤에서 약탈자처럼 구는 놈들을 놔두면 정말로 올 겨울 먹을 식량이 사라질 판국이었다.
“무조건 저기부터 잡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성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왜 저걸 놔둔다는 겁니까?”
“2만 5천부터 잘라 내고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발데리안 가문의 병력들은 강군이오. 이미 몇 번 공격해서 깜냥이 안 되는 걸 알잖습니까?”
더구나 바니로 백작가의 군대는 여러 귀족들이 모인 연합군으로 바니로 백작이 총지휘관을 임명하지 않아서 지휘권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대표급 귀족들이 회의해서 결정해야 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니로 백작의 군대는 아주 기가 막힌 해결법을 내놓게 되었다.
“그럼 빼앗기기 전에 우리가 추수한 다음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 명안이구려.”
“추수를 다 해 놓고 성에 넣어 둔 다음 가면 불안할 요소가 없겠지.”
“공성해서 성을 빼앗으려고 하면?”
“그땐 병력을 쪼개서 성의 방비를 위해 넣어 두면 되는 일이오. 아무튼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가 잘 버텨 주고 있으니 빨리 실행합시다.”
그렇게 가르칸 공화국의 군대와 크멜 공작군, 제국 수도군이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발데리안 가문의 군대와 바니로 백작군은 서로 눈치를 보며 밀밭에서 추수 경쟁을 하는 기괴한 꼴이 펼쳐졌다.
“오, 저기도 추수하는군. 하하핫! 안 싸우고 시간을 번다면 우리야 좋지. 껄껄껄.”
“아버님! 수도에서 황제 폐하의 전령이 왔습니다.”
“뭐? 들라고 해라.”
그사이 협상을 위한 황제의 전령이 드디어 발데리안군의 진영에 도착했고, 황제의 전령은 발데리안 군대가 적극적으로 적을 쳐부수고 아군을 지원하러 움직이도록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