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며칠 뒤, 발데리안 영지 위험종 몬스터 서식지.
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사람들이 사는 영역에서 먼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 위치한 한 공터에서 한쪽 날개가 없는 그리폰이 온 힘을 다해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숲의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거칠게 내지른 포효는 마치 자신이 이 영역의 왕이라고 선포하는 것 같은 위엄이 서려 있는 것이었다.
크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잠시 뒤, 그리폰의 포효에 거부하는 거대한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으로 본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자의 것이었다.
그것은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몸집을 지닌 존재로 긴 몸체에 비늘이 덮인 몸, 거대한 박쥐의 날개를 지닌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의 존재와 닮은 몬스터, 드레이크였다.
크르르르르!
삐에에에에에에에엑!
몸길이 약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이 블랙 드레이크는 뭇 평민들과 사냥꾼에겐 드래곤과 같은 전설을 지닌 존재였고, 이 영역의 모든 생명체들을 집어삼킬 수 있는 폭군이었다.
그는 감히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도전장을 내민 저 어린 그리폰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을 하고는 사냥하러 가지 않아도 알아서 식사 거리가 굴러들어 온 것에 즐거워하며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오!
드레이크로서는 자신의 몸집 반도 안 되는 저 작은 그리폰이 너무 가소로운 존재였다.
편하게 구한 사냥감의 즐거움. 깔아뭉개서 유린하고 뜯어 먹으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 생각한 놈은 자신의 브레스를 쓸 생각도 하지 않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주변의 숲에 숨어서 자신을 노리는 인간의 존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말이다.
“알테리오! 피해! 셀리나! 마법!”
“예예~ 이미 준비 끝났습니… 다! ‘바인드’.”
숲에 숨어 있는 베오날드의 신호에 맞춰 그리폰 알테리오는 잽싸게 뛰어서 그 자리를 회피하였고, 블랙 드레이크는 그대로 땅에 처박힌 채 몸부림쳤다.
그리고 베오날드의 지시에 셀리나는 마법을 시전했는데, 메모라이즈를 해 둔 덕분에 즉시 빛의 밧줄이 생성되어 날아가 드레이크의 날개에 묶였다.
그리고 동시에 베오날드는 투창을 들어 던질 준비를 한 채, 자신의 뒤에서 대기 중인 ‘강철의 기사’에게 명했다.
“하이디! 돌격! 내가 놈의 시선을 끌 테니 목을 노려라!”
“예! 베오날드 님!”
먼저 숲에서 나온 베오날드가 머리를 노리고 오러를 실어 투창을 던졌지만 평소 안 하던 짓이기에 콧등을 스치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분노한 드레이크는 감히 자신을 노린 존재를 바라보았고, 베오날드는 시선을 완벽하게 끌기 위해서 투창을 하나 더 던지고 오러를 끌어 올린 다음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오오!
분노한 드레이크는 저 하루살이 같은 인간을 잡기 위해 자신의 장기인 ‘맹독 브레스’를 촐싹거리며 뛰어다니는 베오날드를 향해 겨누었다.
그것을 본 베오날드는 완벽한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하이디를 불렀다.
“좋아! 하이디!”
“예!”
그리고 베오날드가 시선을 끄는 사이, 거대한 창을 든 강철의 기사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신이 검청색의 금속으로 둘러싸인 기사는 인간의 몸보다 육중한 체구를 자랑했으며 관절 부분 곳곳에서 황금의 오러가 흘러나오며 인간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땅을 울리는 묵직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맹독 브레스를 뿜기 직전이라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황실 기사단의 무(武), 삼식-호왕격(虎王擊)!”
그대로 돌진한 하이디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특대형 창에 황금의 오러를 집중, 전신을 이용해서 몸을 돌려 원심력과 가속도를 모두 실어 정확하게 드레이크의 목 아래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목 아래는 비늘이 얇을뿐더러 맹독 브레스를 뿜으려 움직임이 제약된 드레이크로서는 피할 도리가 없었고, 그대로 목이 뚫려 피와 맹독 액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콰카아카각타가마가가각!
“됐다!”
“바인드가 끊어졌어요!”
“성능이 참 구리군!”
“네네! 4급 마법사의 주문이라서 죄송합니다!”
죽음을 앞둔 생물의 발악. 블랙 드레이크는 고통에 발버둥을 쳤고, 원래부터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바인드의 주문은 결국 깨어지고 말았다.
블랙 드레이크는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놈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삐에에에에에에엑!
“좋았어! 알테리오!”
그리폰 알테리오. 날개가 한쪽뿐인 자신이 왜 날 수 없는지를 아는 듯 그는 드레이크의 한쪽 날갯죽지에 부리와 입을 꽂아 넣고 물었고, 발톱을 날개 피막에 박아 넣어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이번엔 검을 꺼낸 하이디가 오러를 집중해서 마찬가지로 드레이크가 날아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날개의 관절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하아아아앗!”
삐에에에에엑!
크오오오오!
거친 발악에 사방으로 맹독액이 뿌려졌지만 베오날드와 셀리나는 적절하게 거리를 벌리고 있었고, 하이디는 갑주, 알테리오는 깃털과 가죽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적은 양이 묻는 건 상관없었다.
완전히 희망을 잃었지만 블랙 드레이크는 몸집이 거대한 만큼 생명력도 뛰어났기에 쉽게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과다 출혈과 상처로 인해 결국엔 쓰러지게 되었다.
크르르르……!
“됐다! 잡았다!”
“쉽네, 쉬워.”
“하… 이거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고작 우리 셋이서 이만한 크기의 블랙 드레이크를 잡을 줄이야.”
쓰러져 있는 블랙 드레이크의 거체를 셀리나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본래 이런 ‘블랙 드레이크’ 같은 대형 위험종은 모험가나 군사, 용병을 수백 명 단위로 고용하거나 기사들 십수 명, 혹은 발리스타 같은 대형 무기를 동원해야지 상대가 가능했는데 이렇게 쉽게 잡아 버리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게… 마갑주의 힘인가요?”
“뭐, 사실 작전도 좋았지. 기여도를 10으로 나눠서 보면 알테리오가 3, 하이디가 5, 나머지가 2? 알테리오의 미끼 역할과 마갑주를 입은 하이디의 결정력이 돋보인 셈이지.”
베오날드의 분석은 정확했다.
싸움을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블랙 드레이크를 자극하고 방심을 끌어내는 데 기여한 알테리오의 존재 덕이었고, 그것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 거대한 창을 정확하게 급소에 위력적으로 꽂아 넣은 하이디의 무력이 받쳐 준 덕분에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 물론 네 마법도 도움이 되긴 했어. 나머지 기여도 2는 네 거다.”
“그럼 당신은요?”
“당연히 나는 그 10 전부지. 하하하핫! 너희를 모으고, 이 모든 준비를 하고, 작전을 짰으니 말이야. 자! 찬미해라! 어서 칭찬하라고!”
“에휴~ 그럼 그렇지.”
셀리나는 겉으로는 이 남자의 자뻑에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급 기사급 2명이 있다곤 해도 이런 대형 위험종 몬스터를 이렇게 쉽게 잡는 건 초월적인 성과였다.
“정말… 정말 대단합니다, 베오날드 님! 이 갑옷… 무게와 달리 움직이기 쉽고, 힘도 더 강해지는 느낌인 데다! 숨 쉬는 것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다만… 독액에 외장이 좀 녹아내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어디 있느냐? 무기나 갑옷이나 결국 전투를 위해서 ‘사용’되는 물건이다. 부서지면 고치면 되고, 더 나아가 개선하면 되는 거다. 너만 무사하면 된다. 하이디, 훌륭한 성과였다.”
“베오날드 니임… 헤헤…….”
“이걸로 발데리안 가문의 기사들이 아무도 널 얕보지 못하겠지. 드레이크 슬레이어라고 별칭이라도 붙여 볼까?”
“그, 그걸 붙인다면 베오날드 님에게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필요 없으니까 너에게 붙이려는 거다. 네가 곧 나의 창이니 말이다. 아, 알테리오 녀석이 배고파하는 것 같으니 살점을 떼서 고기를 좀 먹여 주도록 해라.”
“예!”
그렇게 한껏 칭찬을 들은 하이디는 알테리오를 돌보기 위해서 물러났고, 베오날드는 다시 셀리나와 함께 죽은 블랙 드레이크를 바라보며 이번엔 그들끼리 통하는 견적을 잡으며 또 다른 시야로 행복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거… 대박이긴 대박이겠네요. 안에 마정석도 큰 게 들었을 거고, 블랙 드레이크의 가죽, 뼈, 힘줄, 심장, 내장, 피, 독액… 무엇 하나 버릴 거 없는 최고의 소재이기도 하고…….”
“더 좋은 건 이런 사냥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지. 후후후. 더구나 사냥감도 넘쳐 나고 말이야.”
“솔직히 신이 날 수밖에 없겠네요. 이 비늘이랑 이빨… 마법 촉매나 매개물로 사용이 가능하니까요.”
“특히나 드레이크의 피는 연금술 소재로도 각별하고, 뼈와 간에서 기름을 내면 그건 특히 더 좋지. 게다가 이 비늘이랑 내피의 가죽은 다듬어서 마갑주 위에 씌우면 방어력이 더 보강될 거고, 그러면 방어력은 살린 채로 갑주 철판의 두께를 줄일 수 있으니 당연히 성능이 올라가게 되지.”
이 거대한 ‘블랙 드레이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베오날드였다.
문제는 운반이었지만, 그것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셀리나를 통해 마법으로 신호를 쏘아 올려 토벌에 성공했다는 표시와 위치를 나타내자, 발데리안 영지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파견되어서 무사히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오오오! 정말 대단하십니다! 세상에, ‘블랙 드레이크’를 정말 잡다니!”
“별말씀을요. 이게 다 발데리안 가문의 유산 덕분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마갑주를 개발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드레이크의 고기, 맛있게 드십시오. 이게 정력에 아주…….”
“오오, 오오오오!”
발데리안 영지에 사는 사람들에겐 이 ‘블랙 드레이크’는 꽤나 유명한 네임드 몬스터로 숲 위로 날아다니는 공포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 것을 잡아다 줬으니 영주 대리인 오스왈드를 비롯해서 기사들이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당연지사였으며, 흔쾌히 드레이크의 고기를 나누어 주고 배분하는 인심까지 보여 주니 다들 눈빛이 녹아내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발데리안 가문 아래에 있는 귀족이나 영지를 유지하는 각 길드장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이것으로 마갑주의 효율성에 대해선 설명이 다 된 셈이겠지. 그럴수록 발데리안 가문에는 이제 중요한… 음?’
“아, 형님의 전갈이군. 음음… 흠… 음? 허어! 이런 일이!”
“…무슨 일입니까?”
“남부에서 일어난 전쟁이… 장기화될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가르칸 공화국에서 결국 개입했다고 하는군요. 허허, 이런…….”
오스왈드가 알려 주는 남부에서 들려온 소식에 베오날드는 그쪽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주판을 굴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전쟁… 단숨에 신분 상승을 하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