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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23화 (123/259)

[123화]

쿠우우우웅!

주문이 세공된 볼트가 떨어지자 베오날드는 익스플로전 발리스타를 땅에 버렸다.

그러곤 열이 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잠시 투구를 벗고 허리의 주머니에 있는 포션병을 꺼내어 뚜껑을 부순 뒤 곧바로 마셨다.

“후우… 진짜 이렇게 땀 흘리며 지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후우우…….”

해당 포션들은 베오날드가 이 탈피의 무덤에 있던 연금술 장비들로 만든 것으로, 극심한 ‘오러’와 체력의 소모를 커버하기 위해 챙긴 것이었다.

실패작만 있는 곳에 왜 연금술 장비가 있느냐 하겠지만, 연금술 장비들의 생산성과 효율도 개선하려고 수없이 애쓴 베오날드였기에 그 개선의 실험대가 된 장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포션들도 예비용이 많았지. 다만 언제 보관 기능이 정지했는지 몰라서 난감하지만, 지금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포션 또한 만들다가 실패하거나 부작용이 있어서 폐기한 것들도 이곳에 보관해 둔 것이었다.

문제는 냉방과 보존 마법 세공을 해 둔 보관함의 마정석을 갈아 주지 않아서 멀쩡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지만, 지금은 그의 말대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휴우~ 그럼 가 볼까?’

그리고 투구를 다시 쓴 그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알테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테리오, 너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렴. 가능하면 같이 싸우고 싶지만… 나도 이 녀석을 입고 싸우는 첫 실전이라서 말이야.”

꾸우~!

말을 마친 베오날드는 그대로 던전을 질주하기 시작, 이제부터 본격적인 근접전으로 들어가는 그는 검을 뽑아서 휘둘렀다.

그러자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와서 검을 휘두르려던 크멜 가문의 기사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렇게 큰데! 빨…….”

빠르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한 기사의 목이 날아갔다.

일반적인 롱 소드를 인간이 쓰는 것이 아닌 사이즈로 확대시킨 것 같은 미스릴 검에 맺힌 오러가 진하게 빛나는 것을 넘어서 밀도 높은 푸른 불꽃이 되어 불타오르는 광경에 남은 기사들은 상대의 강함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저 오러의 위력이 말도 안 돼! 크악!”

“뭐지, 이자는? 유적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기사인가? 마법사님들! 어서 도움을……! 크윽!”

“무리입니다! 저 갑옷! 미스릴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뚫고 오던 문에 새겨진 것과 같은 주문이 새겨져 있어요!”

‘어두운데 다들 눈이 좋네? 뭐, 마법에 대한 저항 수단을 갖추는 건 500년 전에는 상식이었으니까…….’

가뜩이나 마탑이라는 강대한 세력으로 뭉쳐서 통일 제국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마법사들이다.

베오날드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들에서도 마법이라는 강대한 힘을 가진 마법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대(對) 마법 수단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고, 당시 시대의 대세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걸로 끝인가… 훗.”

그렇게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모조리 시체가 되어 버린 크멜 가문의 기사와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베오날드는 손쉽게 적을 처리한 것에 대해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름 상대도 귀족과 마법사이고 존중해 줄 인간이었지만, 그는 엄연히 자신의 ‘정원’ 내의 존재에게만 친절하고 상냥한 남자였다.

심지어 이것들은 남의 유적을 훔치러 온 파렴치한 도둑놈들. 일말의 자비도 아까운, 개 먹이로 적합한 놈들이었다.

“후~ 내 신세가 참 처량하네. 이따위 놈들 주머니나 뒤져야 한다니 말이야. 없으면 써야겠지만…….”

하나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만큼 혹시나 뭔가 좋을 게 있을지 몰라 시체를 탈탈 털어서 소지품을 싹쓸이하는 베오날드였다.

기사 놈들은 쓸모 있는 건 전혀 없었고, 그나마 마법사들에게서 촉매로 쓰는 마정석 몇 개와 지팡이에 있는 보석들을 빼낸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의 옷과 투구를 챙기고는 빠르게 시설 밖으로 나갔다.

‘오… 다 준비하고 계셨군.’

올라오자 밖에는 알서스 경을 비롯해서 남은 기사와 병사들이 잔뜩 경계를 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성용 마력포를 쏘았을 때라든가, 아니면 자신이 익스플로전 발리스타로 무기를 바꾸기 전에 이미 누군가 밖에 소식을 전하러 갔다든가. 그래서 이렇게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육중한 갑주를 입은 베오날드의 모습을 보자 알서스 경은 검을 겨누며 외쳤다.

“멈춰라!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어디 연기 한번 시작해 볼까?’

[나는 여신으로부터 명을 받아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 감히… 신성한 영역에 발을 디딘 너희야말로 누구냐…….]

쇠를 긁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음성 증폭 마도구를 만들면서 생긴 실패작으로, 투구 안에 달아 두고 혀로 스위치를 누르면 발동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베오날드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집어넣고, 등에 메고 있던 썬더포스 캐논을 꺼내 하늘로 겨누곤 격발 스위치를 눌렀다.

[정녕… 신의 징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위이이잉! 콰르르르릉!

그 반동으로 베오날드의 몸이 땅으로 짓눌릴 것 같은 압력과 함께 썬더포스 캐논에선 황금빛 번개가 하늘로 퍼져 나갔고, 맑은 하늘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뇌전의 격류를 생성해 냈다.

‘사실 이거… 화려하기만 하지, 허세라.’

다만 겉보기의 화려함과 달리 해양 위험종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살상력은 없는 무기였지만 대(對) 마법 술식만 제대로 갖추면 이 화려함만큼은 다른 두 무기보다도 압도적이어서 이렇게 블러핑하기 딱 좋았다.

“저, 저게 뭐야?”

‘…역시 예상대로의 반응이군. 뒤떨어진 시대의 사람에겐 이 위용은 마치 신의 기적처럼 보이겠지.’

[여신님의 자비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마라.]

물론 자신이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한 것 자체가 신의 기적이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저들이 이것을 보고 겁을 먹어서 떠나 주는 게 그저 지금 베오날드의 바람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 영역이 성지화되거나 신성시되어서 다른 자들이 아예 출입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지금 내겐 이곳을 지키고 가질 권력이 없어. 하나 없으면… 빌리면 그만이지.’

호가호위(狐假虎威). 그야말로 간신의 특기 아니던가?

여신의 권위를 빌려서 이곳을 성지(聖地)로 만든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으리라.

그리고 그 효과를 증명하듯, 크멜 가문의 군사들 사이엔 치유 목적으로 온 여신교의 신관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연신 여신의 이름을 읊조렸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서로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젠장!”

알서스 경 또한 안에 들어갔던 마법사와 기사들을 혼자서 이기고 온 저 수수께끼의 존재에 대해서 겁을 먹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하늘을 메운 번개의 위력. 그의 입장에선 정말로 신화나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전원… 철수한다!”

이미 가문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마탑에서 파견해 준 마법사들까지 다수 죽은 상황이라 손해가 막심했다.

이다음엔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더 이상 손해를 입을 순 없고, 저 수상한 존재와 싸움을 하는 것보단 우선은 이 자리에서 후퇴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군과 발굴단을 철수시켰다.

[다시는 이 신성한 땅에… 발을 딛지 마라.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있는 위대한 사도의 잠을 방해하지 마라. 명심해라! 신의 징벌이 너희를 덮칠 것이니라!]

‘음, 사도의 잠이라고 하는 것까진 좀 과했나? 뭐, 여신께서 용서하시겠지.’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괜히 몇 마디 더 붙인 베오날드는 그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내려가서 우선 부서진 벽의 고철을 치우고, 블록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일단 신전에 의해서 성지화가 될지라도 혹시 또다시 발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니 아예 이 입구를 폐쇄하는 건 물론 통로 일부까지 싹 잘라 버리고 그냥 독극물로 오염시켜 버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출구도 있으니 말이지. 후우우~ 블러핑이 잘 먹혀서 다행이군.”

혹시라도 안 먹혔다면 기꺼이 싸웠겠지만, 그러면 불확실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신의 전력이 우세한 것 같았지만 지금 여기서 다치거나 부상을 입으면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보자… 부분 블록 폐쇄 암호가… ‘뱀도 꼬리를 자를 수 있다.’… 였지?”

쿠구구구궁!

해당 암호를 넣자 입구가 드러난 영역의 길을 없애서 아예 떼어 버리는 건 물론 격벽 자체가 폭발하고, 밑에 깔린 함정용 독액들이 흘러나와 벽 너머의 영역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발굴할 생각이 들더라도 저쪽에서 오는 건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입구들의 상태도 다시 점검한 베오날드는 시작품이었던 나이트 아머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휴식을 취한 뒤, 필요한 물건들을 미완성 아공간 보관 배낭에 넣고 나갈 준비를 했다.

“룰루라라~ 좋아, 제대로 한몫 챙겼네. 지금 돌아가야 제때 수도에 도착할 테니 얼른 가야겠다. 읏챠! 가자, 알테리오.”

꾸우우~

아공간에 담았기에 부피는 줄어들었지만 무게는 그대로라 묵직해진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베오날드는 차분히 다른 입구로 향했다.

개수한 나이트 아머는 왜 챙겨 가지 않느냐면 저건 급하게 땜빵 한 것일 뿐, 베오날드는 일단 나갔다가 다시 와서 처음부터 새로 만들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원리와 설계도만 얻었으면 충분해. 남은 건 개수해서 새로 만들면 그만이지.’

대신 전송 마법실을 활성화해 두었기에 다른 시설로 들어가기면 하면 언제든 그리로 갈 수 있었고, 그 다른 시설의 위치는 이미 파악해 두었다.

‘내 유산… 아니, 다시 살아 돌아왔으니까 유산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군. 아무튼 사람 운명이라는 게 참 모를 일이군. 특히나 알테리오… 문제가 참 이렇게 돌아오게 될 줄이야. 기묘한 일이야.’

그렇게 그리폰인 알테리오와 그리웠던 시설을 나가면서 베오날드는 과거의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여기 있는 물건들은 실패작들이었지만 그리운 500년 전의 물건들이고, 이 건물 양식과 풍경을 보며 향수에 젖어 든 것이다.

‘나도 결국 인간이라서 그런가? 후우우~ 아무튼 나가야지.’

다른 쪽 통로에 도착한 베오날드는 벽면의 버튼을 조작해서 다른 시설들을 격벽으로 틀어막게 하고, 자신들이 나가는 출구 쪽 문을 열었다.

그러자 동굴이 나왔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자 밖에서 안으로 바람이 훅 밀려들어 왔고, 순간 알테리오가 깃털과 날개를 바짝 세우며 날뛰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이!

“음? 왜 그러냐? 알테리오… 이건?”

채앵… 칭… 휘이이…….

아주 작지만 바람 속에서 쇳소리와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들어도 전투의 소리. 눈을 크게 뜬 베오날드는 알테리오와 함께 달려가서 상황을 보려 했다.

다만 그 전에 이 입구가 들키지 않도록 뒤의 동굴을 검술로 일부 무너뜨린 다음 조심스럽게 밖으로 향한 베오날드는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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