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크으, 지독한 냄새군. 아무튼 좋아, 그럼 마법사님들, 준비되셨습니까?”
“며칠 전부터 메모라이즈해 두었기에 걱정 없습니다. ‘작은 물의 파도’!”
마법사의 시동어와 함께 바닥에 마법진이 생기고, 지팡이 끝에 마력이 모임과 동시에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바닥의 보랏빛 독액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보랏빛 독 연기는 진작 입구를 넓히는 공사를 실행해서 사전에 없앤 만큼 저 독액만 처리하면 곧바로 강철 벽을 부술 수 있게 된다.
“거의 된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내가 나서지.”
스릉…….
알서스 경은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 강철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호흡을 하여 오러를 검에 집중하자, ‘풍령검(風靈劍)’이라는 이름에 맞게 바람 소리가 들려오면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까지. 역시 마도구는 다르구나 생각하며 알서스 경은 모든 오러를 실어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흐읍!”
소리 없이 지나간 검의 궤적을 따라 유적 입구를 막는 강철 벽에 긴 상처가 생기면서 틈이 열렸다.
워낙 커서 검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완전히 베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틈이 생긴 것만으로도 안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에서 보랏빛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알서스 경은 주먹을 굳게 쥐고서 호흡을 가다듬고 오러를 모아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흡!”
“오오, 역시 알서스 경이군요. 크멜 가문의 이름 높은 기사다운 솜씨! 굉장합니다.”
또다시 생긴 균열. 먼저 벤 자국에 정확하게 직각으로 남겨서 확실하게 베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빡센지 알서스 경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잠시 날숨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우~ 별말씀을……. 다 이 검 덕분이지요. 한데 정말 두껍군요. 가문의 마도구에 오러까지 전력으로 일으켰는데, 이 정도밖에 열지 못하다니 말입니다. 분명 갑옷 같은 것도 통째로 벨 자신이 있는데…….”
“옛 시대의 신비한 기술과 힘이라 생각해야겠지요.”
“아무튼 이대로 몇 번 더 하면 열릴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야겠지만 말이죠.”
쿵!
그렇게 알서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계속해서 오러를 집중해서 문을 절단, 굳건하게 서 있던 강철 벽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뒤에 있던 마법사들이 나서서 독액을 씻어 내고, 독 연기를 마시지 않기 위해 숯을 감싼 천으로 입과 코를 막은 다음 조심스럽게 다시 유적으로 들어왔다.
“좋아, 나는 이 입구를 더 크게 만들겠다. 나머지 인원들은 다시 함정의 발동에 주의하며 내부를 조사해 나가라. 절대 방심하지 마라. 언제,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그리고… 혹시나 그 베오날드라는 놈을 만나면 그 즉시 죽이고 시체만 가져와라.”
“예! 알서스 경.”
“나는 잠시 쉬었다가 들어가겠다.”
극심한 오러의 소모 탓에 머리가 띵했던 알서스 경은 지시 사항만 전하고 그대로 유적에서 나와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밑으로 내려가는 기사와 모험가, 마법사들의 행렬을 보며 이제 다시 일을 진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안심했고, 자신을 성가시게 만든 베오날드라는 놈의 시체가 오길 기대했다.
“오오… 이 정도로 보존이 잘된 통일 제국 시대의 유적은 처음이네요.”
“양식도 그렇지만, 보존이 정말 잘됐어.”
“와아아아~ 되게 신기하다.”
선행시킨 모험가들이 횃불과 등불을 들고 조심스럽게 전진하면서 유적에 함정이 있나 없나를 체크했다.
그들과 살짝 멀리 떨어진 크멜 가문의 기사들과 파견 온 마법사들 또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어두운 곳이라 그런지 불길함을 해소하고자 대화를 나누었다.
“와, 교대하러 온 녀석들이 허황된 말을 한 게 아니군요. 엄청난 유적이네요.”
“까마득한 옛날에 만들어진 거려나?”
“그러게 말이야.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든 걸까? 엘프? 드워프? 아니면… 드래곤?”
“인간이다. 그리고 고작! 500년밖에 안 됐어!”
격벽을 부술 때부터 적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던 베오날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발끈하며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반박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쪽잠을 자면서 일반인용 ‘나이트 아머’를 기사용으로 개수를 하던 그는 침입자들의 침략에 어쩔 수 없이 미완성인 것을 주섬주섬 입고 싸울 준비를 했다.
“후우… 좋아, 그럼 가 볼까?”
쿠웅!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중앙 관제실에 금속음이 울리며 높이 약 2미터 50센티미터 정도의 금속으로 전신이 둘러진 기사의 모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트 아머’라는 이름답게 기사 갑주의 형태로,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조각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한 외양에 망토까지 늘어뜨린 디자인에다 재질은 실험품이라서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을 비롯한 비싼 금속을 아낌없이 잔뜩 넣었기에 그 광택까지 빛이 비추었다면 찬란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움직임은 좋네. 역시 내 오러로 돌리는 게 정답이었군.’
본래의 나이트 아머는 ‘마정석 엔진’이라는 기사의 마나 홀을 대신하기 위한 별도의 마력 기관을 등 쪽에 설치하였지만, 지금 여기 ‘탈피의 무덤’에 있는 나이트 아머의 마정석은 달리 쓸 곳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베오날드 본인의 ‘오러’로 움직일 수 있게 개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거… 꽤나 힘드네. 필요 없는 술식 세공을 상당히 제거했는데… 끄으응…….’
단점은 착용자가 계속해서 ‘오러’를 일으켜야 한다는 점. 갑주 안에 있는 술식 세공들 중 필요 없는 것을 제거했는데도 베오날드는 상당히 빡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신 성능 하나는 확실한 것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본래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고, 마치 자신의 몸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건 좋군. 아무튼 단기 결전할 수밖에 없나?’
그 거대함과 무게가 무색할 정도로 작은 발소리. 베오날드는 즉시 자리를 잡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가자! 알테리오.”
꾸아아아악!
기본적으로 무기는 술식이 세공된 미스릴 검이 있었지만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특별히 강력한 화력을 가진 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침입자들이 오고 있는 거대한 통로 쪽으로 실패작 여러 개를 등에 메거나 직접 들고 간 것이었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 ‘공성용 마력포’를 들 수 있을 줄이야. 하핫!”
그리고 베오날드의 손에 들려 있던 여러 무기들 중 거대한 검은 금속 덩어리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건물의 기둥이나 H형 철근을 연상시키는 외양. 그것은 베오날드가 연구하던 것 중 하나인 ‘공성용 마력포’의 자질구레한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포신과 마력 충전 장치와 발사 트리거만 조립해 둔 것이었다.
‘이걸 쓰기 위해서 마정석을 아껴야 했지.’
쿠우우우웅!
반발력에 밀리지 않도록 베오날드는 다리에 힘을 줘서 양다리를 석재 아래에 파고들게 하고 동시에 마정석의 마력을 개방하여 충전하기 시작,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며 ‘공성용 마력포’의 충전 상태를 알리는 게이지가 서서히 차올랐다.
‘사실 실전 테스트를 해 봤을 때 망해 가지고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괜히 이 ‘탈피의 무덤’에 있는 게 아닌 물건이라서 분명 하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입고 있는 나이트 아머의 방어력을 믿는 베오날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충전이 다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격발 스위치를 눌렀다.
“…어? 저게 뭐지?”
“뭔가 빛나고 있어? 혹시 누구 뭔가 건드렸…….”
“이건 마…….”
탐험 행렬의 맨 앞에 있던 모험가들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번쩍하고 빛나는 푸른빛을 본 순간 그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다.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하고 그들의 육체는 그대로 푸른빛에 휘말려서 빛이 닿지 않은 무릎 아래 종아리 일부분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건 마… 마력?”
“젠장! 저희가 막겠습니다! 어서 방어 마법 지원을……!”
“예. ‘마력 방패’!”
그리고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뒤에 있던 크멜 가문의 기사와 마법사 일행은 그나마 반사 신경이 빨라서 오러를 끌어 올린 기사들이 앞에 서서 벽이 되어 저항했고, 마법사들은 마법을 시전해서 방어를 한 덕분에 푸른빛 마력에 휘말려도 간신히 버텨 내어 무사할 수 있었다.
“휴우……! 다들 괜찮으십니까? 이건 도대체?”
“이, 일단 무사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말이죠.”
“젠장!”
다만 무사한 것은 기사와 마법사들뿐. 앞에서 함정을 탐색해 주던 모험가들과 후방에서 따라오던 인부들은 무릎 아래 일부분만 남기고 모조리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나 애도할 새도 없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지금 날아온 공격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메모라이즈해 온 마법을 동원해서 공격의 원인을 파악해 내기 위해 애썼다.
“탐지 마법을 해 보니 저 멀리 끝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엄청난데 이 정도 위력의 마법이라니, 마족이나 리치가 아닐는지요?”
“아니면 알서스 경이 말한 그 베오날드라는 놈이 이 유적의 마도구를 사용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과 같은 공격이 또 올 수 있으니 우선은 피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보물고의 문을 열어서 몸을 보호하지요. 그리고 한 분은 빨리 나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기사와 마법사들은 벽에 바짝 붙은 상태로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나온 것 중 보물고의 문으로 추정되는 것을 열기 위해서 손을 쓰기 시작했고, 기사 하나는 몸을 돌려서 유적 밖으로 향했다.
하나 술식 세공으로 철저하게 봉인된 문은 쉽게 열기 힘든 것인지라 베오날드에겐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그는 현재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 역시 괜히 실패작이 아니군. 젠장! 왜 상용화 못했는지 이제 알겠다. 이거… 출력을 버틸 소재와 이 폭발 때문에 문제였지.”
쿠우우우웅!
인상을 찌푸린 베오날드는 나이트 아머가 들고 있던 공성용 마력포를 신경질적으로 땅에 내던졌다.
단 한 발만 쐈는데 포신이 폭발해 버려서 베오날드도 만만치 않은 폭발에 휩쓸렸던 것이다.
대충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단 한 발 만에 과부하로 폭발해 버리니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지. 하핫!”
스스로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하며 자뻑하던 베오날드는 등에 멘 성인 남성만 한 사이즈의 거대한 철제 발리스타를 꺼내 세팅하기 시작했다.
‘익스플로전 발리스타’. 거대한 석궁으로 날리는 볼트의 촉 부분엔 발동하면 정확히 5초 뒤에 폭발하게 세팅된 술식이 세공되어 있어서 거대한 몬스터의 피부를 뚫고 박힌 뒤 폭발을 유도하는 무기였다.
‘문제는 맞혀야 한다는 점이지만… 그거야 뭐… 끄으으으으응! 와! 이거 나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데도 힘드네?’
베오날드는 힘겹게 석궁의 크랭크를 당기면서 벽면으로 붙었다.
첫 공성용 마력포를 느꼈다면 적들이 행할 일은 단 2개. 바닥에 딱 붙어서 상황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양쪽 벽에 붙어서 다음 공격에 대비할 것이다.
그 심리를 꿰뚫은 베오날드는 석궁을 벽면에 붙인 다음 트리거를 작동시키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나.”
쐐애애애애액!
“둘.”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셋… 넷… 다섯…….”
콰구구우우우우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통로 내부로 비명 소리와 폭발 소리가 아우러져 들려오는 것에 베오날드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면서 또다시 다음 발을 장전하기 시작, 나이트 아머의 보조를 받는데도 힘든 장전으로 인해 왜 이 익스플로전 발리스타도 여기에 들어오게 된 건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떠올랐네. 이거 이렇게 쓰기 더러워서 실패했지. 그래서 사람이 쓸 수 있는 사이즈로 줄여서 만들었더니 이번엔 술식을 세공한 볼트의 생산성과 위력 밸런스가 안 맞아서 실패했고! 결국 신형 석궁만 성공했었… 끄으으으으으으응! 지!’
쐐애애애애애액!
무기 개발이 얼마나 고난스러운 건지 몸소 보여 주며 베오날드는 다음 발을 발사했다.
아마 저들의 입장에선 갑자기 압도적인 마력의 공격이 오더니 이번엔 거대한 화살, 그것도 폭발까지 하는 게 날아오니 공포스럽기 짝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베오날드가 고려할 사항이 아닌 게 크멜 가문의 놈들은 결국 자신의 유산을 도둑질하러 온 도둑놈들이었고, 놈들도 부귀영화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것일 테니 서로 쌤쌤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