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분명 입구가 하나만 있진 않을 텐데…….’
입구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베오날드는 이 유적의 디자인에 대해 떠올리려고 애썼다.
대부분의 시설은 특별한 지형적 요인이 없는 이상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게 만들고자 한 그였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물자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입구가 저 작은 것 하나로 충분할 리 없었다.
‘일부가 무너졌다곤 해도 입구가 있을 건데… 보자, 저기가 문이면… 다른 쪽 문이…….’
최대한 기억을 살리기 위해서 눈을 감고 구조를 상상하면서 발걸음을 디뎌 대강 규모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시설. 분명 공사 시찰 나갔을 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면 규모가 그리 작지 않았고 어마어마하게 크게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베오날드였다.
이런 유적만 해도 공사 규모만 동원 인력 수천에서 만 명 단위가 넘었던 공사일 테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다른 입구를 찾는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겠군. 찾는다고 해도 토사로 막힌 곳을 직접 파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거고, 파낸다고 해도 남 좋은 일만 시키겠지.’
너무나 갑갑한 상황이라 베오날드는 상당히 무리수인 작전을 생각해 냈다가 자신의 오판을 수습했다.
그는 자신이 어쩌지 못하고 그저 때가 오길 기다리는 상황을 정말 싫어하는 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발굴에 실패해서 틈이 생기는 걸 기다리든가, 아니면… 발굴해서 나오는 마도구를 노려 보도록 하자. 그게 있으면 들어갈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결국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삽을 던져 놓고 알테리오나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
그리고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던전 속에 함정과 고난이 많아도 결국 크멜 가문에서 고용한 모험가들과 기사, 마법사들의 지혜와 수많은 희생을 통해 ‘던전’은 서서히 공략되어 갔다.
“나왔습니다! 마도구와 보물들입니다!”
“흐히히! 우린 부자다!”
“오오… 드디어! 첫 성과군!”
‘이거 참 속이 쓰리군. 내 창고를 털어 가는 도둑놈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다니… 하아~’
먼지가 쌓이고, 일부분만 나온 거라서 어떤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놈들을 바라보는 게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어서 기회가 오길 바라며 알테리오의 깃털을 다듬으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나오는 마도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으음… 통일 제국 시기의 물건이 맞는군요.”
“그나저나 이 히드라 문양. 역시… 그 ‘사라진 가문’의 것이 맞나 봅니다.”
‘사라진 가문이 아니라! 너희가 폐기한 거잖아!’
속이 끓는 베오날드. 대륙에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던 자신의 ‘노이멀 가문’이거늘, 이젠 ‘사라진 가문’ 취급이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나 그가 반박한다고 해서 누구도 인정할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참고 또 참던 중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다.
‘입구를 지키는 게 이제… 기사가 아닌 병사로 바뀌었군.’
안에서 결국 보물과 마도구를 가지고 나오긴 했지만 인력 소모가 극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저 던전 내부에는 과거의 베오날드가 고심하고 또 고심한 보안 시설들이 즐비한데 그것을 돌파하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모험가, 기사, 인부를 갈아 넣어 돌파해 나가서 겨우겨우 방 하나를 여는 성과를 낸 것이었다.
‘역시 기다리면 기회가 오는군.’
날고 기는 크멜 가문의 기사들도 죽거나 다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보니 고용된 모험가들도 잘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마법사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캐낸 마도구와 보물을 지키는 인원도 분배해야 했기에 그렇다 보니 결국 새로운 인력이 올 때까지 인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이제 어느 정도 내부를 파악한 만큼 멋대로 들어가 봐야 입구만 봉쇄하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좋아, 드디어 때가 되었어.’
어차피 베오날드가 들어간 것을 들킨다고 한들 크멜 가문 놈들은 신경도 안 쓰고 그저 보물에 눈이 멀어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나오면 혼내 주자는 생각으로 입구를 막고 있든가, 아니면 나중에 시체를 치우면 된다고 여길 터였다.
그러니 베오날드는 마음 편히 오늘 밤을 노려서 던전 내부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가 다들 자는 시간인 밤중에 눈을 떴다.
‘…좋아. 사람 숫자가 적어져서 그런지 불침번 숫자도 적군. 지금 딱 들어가기 좋겠어.’
입구를 지키는 인원은 이제 고작 병사 2명. 베오날드는 즉시 모든 짐을 싸고 알테리오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한 뒤 대기시켜 둔 다음 조심스럽게 빵과 먹을 것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밤중에 수고 많으십니다.”
“어? 그러니까… 그… 어디 도련님이시더라?”
“하하, 아무튼 이거 먹고 하세요. 저기,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죠.”
에스칼 크멜의 추천을 받아서 왔다는 세세한 사실 따위 병사들에게 전해 줄 리 없고, 근 며칠 동안 계속 같이 현장에 있었기에 낯선 이는 아니라서 경계심이 낮아진 병사들은 베오날드가 준 먹거리들을 의심 없이 먹었다.
“음? 궁금한 게 뭔… 어?”
“하아아암~ 왜 이렇게 졸리…….”
‘좋아. 편하게 가는군. 수면제를 준비해 오길 잘했지.’
땅에 쓰러지려는 것을 막기 위해 베오날드는 그들을 받아 들고 안전하게 입구 근처에 눕혔다.
수도에서 만들어 온 수면제로, 이런 일에 쓰일 것 같아서 그가 미리 준비해 온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결과 아직 조용했기에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알테리오를 불러서 던전… 아니, 자신의 지하 유적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왔네. 아아… 내가 만든 작품… 내… 흔적이… 드디어…….”
들어오자마자 횃불을 켜고 깊숙이 이동해 가는 베오날드.
500년이 지나 낡은 벽과 돌바닥이었지만 그곳에 새겨진 문양이나 양식, 모든 걸 보며 그의 가슴속엔 벅찬 기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
여신의 명으로 다시 생을 얻어 지상에 내려왔지만 그는 엄연히 500년 전 사람. 다시 태어나서 젊은 육체로 인해 정신이 젊어진 느낌이었지만 과거의 그리움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
특히 그는 전생에 죽을 때는 배신으로 죽고, 다시 태어나서는 자신이 이룩한 유산들이 모두 유실되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이름도 사라졌다고 들었으니 더더욱 자신의 흔적을 찾고 싶어 했다.
“이래서… 아무도 안 데려온 건데 말이지. 이런 모습… 절대로 못 보여 주니까…….”
귀족이자 한 가문의 장, 그리고 정원의 주인은 언제나 고고하고 위엄을 풍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문의 일원들과 부하들이 안심하고 따르며 외부의 적은 감히 도전할 생각도 품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생에도 베오날드는 가능한 한 약한 모습은 모두 후계자인 시절에 버려두고, 가주가 된 이후에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위엄과 고고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꾸우?
“아, 그래, 알테리오. 네가 있구나. 그래그래, 고맙다. 후우~”
자신을 위로해 주는 알테리오를 껴안고 베오날드는 그 체온과 호흡을 느끼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베오날드는 다시 눈을 부릅뜨고 벽면을 만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500년 전 자신이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 때, 후손이 될 가주가 언제든 들를 때를 대비해서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 둔 것이 있었다.
“어디 보자. 호출 패널이 있을 텐데…….”
500년 전, 베오날드 폰 노이멀 공작은 통일 제국 전역에서 모인 재산, 마탑의 마법, 연금술로 노이멀 가문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수많은 연구를 진행했었다.
그 결과, 그의 세계와 정원은 같은 시대에도 다른 차원이나 시대 같은 모습이 되었고, 베오날드는 그것을 통해서 노이멀 가문의 영광은 영원할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찾았다.”
달칵!
석재로 된 벽면 중 한 곳에 새겨진 거의 다 해진 ‘히드라의 문양’. 베오날드가 그것을 누른 다음 옆으로 밀자 금속으로 된 작은 판에 문자가 적혀 있는 자판이 나왔다.
중앙 통제실에 호출하는 마도 장치로 자판의 암호를 보내면 전송이 되는 심플한 구조였다.
유적을 워낙 방대하고 넓게 지은 탓에 빠른 보고와 관리를 위해서 설치한 것인데, 여기엔 한 가지 더 비밀이 있었다.
‘보자. 먼저 시설 봉쇄 암호가…….’
[뱀의 굴엔 뱀만이 들어올 수 있다.]
“꾸아아아악?”
타닥타닥타닥… 구구구구구!
금속 버튼의 거친 소리와 함께 암호를 입력하자 대지가 진동했고, 베오날드의 등 뒤 입구 방향 쪽으로 여러 개의 금속 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최고의 시설에서 정련된 베오날드 강(鋼), 거기에 대마법 술식을 새겨 넣은 특주품 벽이었다.
이것은 내부에 도적이나 적이 침략했을 때 쓰는 비상 암호로 안에 들어온 적들을 봉쇄하고, 분열시키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적의 외부 지원을 막는 삼중 효과가 있었다.
“좋아. 다행히 아직 작동하는군. 초대형 지맥(地脈)에다 만들었고… 내가 죽고 난 이후엔 봉인되었을 테니 말이지.”
세계의 마력 원천인 성맥(星脈)보다는 못하지만, 세계를 순환하여 흐르는 마력이 고이는 지맥 중 그 규모가 크고 거대한 곳에 유적을 설치했기에 지금도 작동하고 있었다.
‘암호는 이제… 나 이외엔 알테리오 녀석밖에 모르지만 녀석은… 내가 벨릭스를 부정하듯 그놈도 날 부정했지. 이런 면에선… 부전자전인가? 하아~’
‘저는 절대로… 아버님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그 녀석이 이 정도로 날 싫어했나? 휴우~ 분명 이것들… 팔아 치우거나 거래해서 없앨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멀쩡한 걸 보면 500년 전 자신의 사후(死後), 아들인 알테리오 녀석은 자신의 유산에 전혀 손대지 않은 것 같았다.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도 아무튼 500년간 손을 대지 않았기에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베오날드는 다음 암호를 집어넣었다.
[뱀 굴 속의 뱀은 독에 물리지 않는다.]
‘이게 함정 및 보안 시설 작동 금지 암호.’
[뱀이 지나간 길은 위험하지 않은 길이다.]
‘이게 아마 중앙에 있는 관리실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암호. 좋아!’
길 찾기 암호를 넣자, 베오날드의 눈앞에 타일이 하나둘 빛나면서 길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함정도 해제했으니 안심하고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중앙 관리실로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알테리오와 함께 약 한 시간 정도 빛이 나는 길을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간 결과, 베오날드는 어느 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 여기 정말 오래간만이군.”
중앙 관리실에 도착한 베오날드. 그리고 이 유적의 이름이 서서히 그의 눈에 보였다.
이곳의 이름은 ‘탈피(脫皮)의 무덤’.
뱀은 성장하기 위해 탈피를 하고 그 껍질을 남긴다. 그래서 보통 ‘탈피’란 시련을 딛고 일어섬, 생명의 재생이나 부활 같은 의미로 쓰였고, 베오날드에게도 그런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좋아… 다 됐어.”
타닥타닥… 탁!
베오날드가 중앙 관리실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자판과 패널들을 누르자 곳곳에서 빛이 들어오며 작동하기 시작했고, 눈앞엔 환영과 시야 탐지 마법이 새겨진 마도구들이 보내온 영상들이 각 방 곳곳에 있는 물건들의 상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오오……! 오랜만이구나! 내 실패작들아!”
그리고 이 유적에 있는 물건은 모두 베오날드가 각종 연구와 개발을 하다가 ‘실패’한 것들이었다.
그 어떤 연구나 개발도 실패 없이 성공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발버둥 치고, 실패하고, 부서지고 해야 간신히 한두 가지의 성과를 얻어 낼 수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실패에 의미가 없진 않았고, 언젠가 또 다른 생각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에 베오날드는 이런 거대한 시설 하나를 만들어 그 모든 ‘실패’의 성과를 모아 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