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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104화 (104/259)

[104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베오날드의 행동을 기묘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적뿐만 아니라, 그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발데리안 가문의 케드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베오날드가 전갈을 보냈을 때는 누군가가 내용물을 바꿔치기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는데, 본인이 나타나서 한 번 더 확인을 하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더구나 로이드의 무장을 보면 그는 아주 진심으로 들고나온 게 느껴졌기에 불리한 것이 눈에 보이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내 예상대로 저 로이드 놈은 가문의 비장의 무장을 모두 가지고 나왔어. 무기에 흐르는 마력의 빛. 크멜 공작… 아무리 가문의 명예가 달렸다곤 하지만 저 무장들이 제정신인가?’

심상치 않은 마력이 흐르는 마도구에 전율한 케드론은 베오날드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발데리안 가문에서도 나름 크멜 가문을 엿 먹이는 일이라서 베오날드에게 흔쾌히 가문의 보물을 빌려 줄 생각이었는데, 역으로 베오날드가 거절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가져와도… 거절하고. 대체 무슨 생각이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베오날드!’

그가 우려스러운 눈으로 베오날드를 바라보는 가운데, 베오날드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로이드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훌륭한 무구들인 것도 틀림없었지만, 몇 개는 그에게도 아주 익숙한 물건들이라 더욱 감탄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아는 무구들이 보이는군. 망토는 베놈실크, 우리 영지의 기사단 애들에게 지급해 주는 거고. 갑옷은 남부 원정용으로 개발된 경량화 술식 갑주. 어떤 대단한 물건을 가져오나 해서… 혹시 통일 제국 시절보다 더 고대의 물건이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만 시시하군.’

‘…뭐지? 저 여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전력의 차이가 커 보이겠지. 보자… 사람들이 아주 많군.’

본래 해야 했던 ‘대합전’을 대신해서 벌어지는 기사 전공 동아리의 마지막 결전이자, 크멜 가문이 명예를 걸고서 베오날드에게 신청한 결투.

거기에 배경 스토리로 베오날드와 황녀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 공을 세우기 위해 5명의 기사를 홀로 격파한 이야기가 끼얹어지니 당연히 귀족 가문은 물론이고 평민들까지 모두 보기 위해서 잔뜩 몰려와 있었다.

"이거 증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걸요? 하하."

"증인은 저 위에 계신 황제 폐하께서 하시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결투의 진행을 맡게 된 사회자가 가리킨 곳엔 황제를 비롯한 황실 일가가 모두 모여 있었는데, 여전히 젤시 황녀는 없는 상태였다.

베오날드는 완벽하게 짜 맞춰진 상황에 미소 지으면서 이제 결투의 시간이 된 것을 확인한 진행자가 결투를 진행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오늘 이 결투는 여신과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다. 증인으로는 황제 폐하와 수도 여신교의 대신관, 로셴 공작이 나서는 만큼 그 누구도 이 결과에 대해 부정과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 결투의 승패에 대해선 모두가 납득해야 할 것이며, 이후 그 어떠한 원한이나 증오도 갖지 않을 것을 신께 맹세하여라……! 결투자들은 검을 들고 이 맹세를 각각 선언하라."

"맹세합니다."

"맹세하겠습니다."

"좋다. 다음은 여신교의 사제들이 그대들을 축복할 것이고, 그 뒤에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이 결투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생사의 결투를 하는 것이기에 결투장을 벗어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특별히 마탑의 마법사분들과 사제분들을 여럿 모셔서 결계까지 칠 예정이다. 그리고……."

사제의 축복과 결계 설치 등등… 귀찮게까지 느껴지는 여러 절차가 지나가고, 드디어 둘은 결투장 가운데서 서로 마주 본 상태로 사회자의 선언과 함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럼! 여신께! 부끄러움 없는 명예로운 싸움이 되길! 지금! 결투를 시작하십시오!"

"……."

"……."

결투가 시작되었지만 두 사람은 무기만을 뽑은 채 서로 조용히 탐색전을 펼쳤다.

베오날드의 경우는 누가 봐도 열세였기에 먼저 나서기 안 좋은 형태였고, 로이드의 경우는 베오날드가 너무나 허술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아 쉽사리 달려들 수 없었다.

"왜 그러시죠? 혹시 이 모습에 겁먹으신 건가요? 관객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시간 끌면 공작 나리가 안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남의 집안일까지 신경 써 주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오늘 죽을 몸일 텐데 말이지."

"하하하, 저는 절대 안 죽습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 불쾌하군."

결국 도발에 넘어간 로이드 쪽에서 먼저 공세를 취했다.

베오날드는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오러를 끌어 올리고 검을 꽉 쥐고서 전력으로 그의 검을 받아 냈다.

‘아… 역시!’

"스으읍……."

콰아아앙!

너무나 허망하게도 베오날드가 뒤로 4미터가량 밀려났고, 단번에 검날이 조각이 나 버린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로이드는 절대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베오날드가 자세를 도로 잡기 전에 계속 파고들어서 가문의 검법을 사용하며 공세를 강화한다.

‘크멜 가문 검법, 제4형(第四形)-거목 가르기’!

베오날드를 단숨에 베어 버릴 기세로 날아오는 수직으로 휘둘러지는 검. 거기엔 압도적인 오러가 실려 있어 풍압과 압력이 베오날드를 짓눌렀고, 몸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베오날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오러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이식(二式)-블랙 맘바’!

베오날드의 보랏빛 오러가 모여 더 어두운 색을 띠며 검에 실려 휘둘러진다.

무가(武家)가 보유한 비기와 비기가 격돌하면서 갈색과 어두운 보랏빛, 두 가지 색의 오러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날뛰지만, 결국 베오날드는 또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뭐 하는 거지? 고작 그 정도인가?"

‘후우~ 역시 이 정도 핸디를 줘야 좀… 나도 전력을 다해 볼 수 있을 것 같군. 이래야 좀 더 자연스럽게 연기가 가능하고! 내 실력도 가늠할 수 있으니 말이지!’

콰아아앙!

베오날드는 계속해서 오러를 끌어 올린 다음 검을 휘둘러 로이드에게 맞섰다.

기왕 결투가 되었으니 실전에 가까운 환경과 조건 아래에서 한 번쯤은 자신의 검술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한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렇든 저렇든 자신의 시나리오는 절대 깨지지 않을 테니 이런 기회도 다르게 쓰고자 하는 베오날드였다.

‘정말 어리석어. 결투라는 건 귀족과 기사들이 만든… 놀이터인데 말이지.’

"하아아앗! ‘크멜 가문 검법, 제8형(第八形)-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난무하는 검기와 오러의 향연. 베오날드는 오러를 끌어 올려서 열심히 방어에 힘쓰는 반면, 로이드는 베오날드에게 아직도 숨은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 신중히 제압해 나갔다.

목숨이 걸린 결투인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해도 모자람이 없다.

신중하게 상대의 카드를 보고 대응하면서 제압해 나가도 충분하다!

"흠!"

‘…후우~ 아주 좋아. 그런데 이 녀석, 목숨이 걸린 결투라서 그런가, 아니면 저번에 나한테 당한 게 있어서 그런가. 신중하군.’

그렇게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 화려한 ‘기사’들의 전력 결투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혼을 빼 놓기엔 충분했다.

거기다 밖에서 보기엔 누가 봐도 로이드가 압도적으로 화려하고 좋은 무구와 힘으로 베오날드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였고, 베오날드는 수수한 무장을 한 것이 엄청난 대비를 이루었다.

"어, 어떻게 해? 베오날드 님이 밀리고 있지 않아?"

"크멜 가문도 너무하지. 아니, 이런 결투에 가문의 보물을 모조리 가져올 줄이야."

"발데리안 가문에선 지원을 안 해 줬나?"

"해 줬는데, 본인이 거부하고 저렇게 나왔다더군."

웅성웅성…….

아직 로이드가 전력으로 무구의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고 오러가 격돌할 때마다 그 충격으로 베오날드의 갑주와 검에 조금씩 금이 가는 광경이 보이자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로이드의 일방적인 공세를 베오날드가 힘겹게 버텨 내고 있는 듯하자 사람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모두들 베오날드를 안타깝게 보면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대체 저놈이 무슨 생각이지? 이봐, 발데리안 백작, 이야기 좀 해 보지 그러나? 저 무장 상태… 놈이 의도한 건가?"

"푸하~! 그럼 내가 멍청하게 욕먹을 짓을 사서 할 것 같나? 너희 얼굴에 똥칠해 주는 놈인데, 나도 나름 좋은 걸로 빌려 주려고 했다고~ 그리고 내가 그 백작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현재 작위가 그러한데 어쩌라는 건가? 허허허, 발데리안 백작."

VIP 귀족석에 나란히 앉은 발데리안 가문의 가주 백작과 크멜 공작은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자랑하듯 서로 틱틱대면서 대화 중이었다.

일단 로이드가 우세한 것을 보여 주듯 베오날드의 갑주와 검이 부서지면서 피를 흘리는 광경이 벌어졌지만 그럴수록 관객들은 베오날드에게 더욱더 크게 몰입하여 안타까워하는 공기가 흐르는 것이었다.

"으으음… 저놈이 대체 뭘 꾸미는 거지? 레기온 경, 분명 결투라고 하지 않았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글쎄요. 과한 자신감일지? 아니면 저걸로 동정표라도 얻을 생각일까요?"

VIP석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황족 전용 좌석에서 결투를 지켜보던 황제와 레기온 경도 베오날드의 무장 상태와 일방적으로 밀리는 그의 모습을 기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호응이 좋다곤 해도 결국은 결투다.

무장 상태의 차이를 이유로 정당하지 않은 싸움을 주장할 거면 진작 했어야 했는데,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모르겠군. 저놈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저도…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결투인 만큼… 이대로 가면 놈이 맞이할 운명은 패배 후 죽음뿐입니다. 다소 반향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걸로 후환을 끊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그래, 그러면 좋겠군."

황제는 주먹을 꼬옥 쥐면서 제발 더 이상 아무 문제없이 베오날드가 여기서 죽길 바랐다.

튼튼해 보이던 발데리안 가문의 갑주는 상당히 깨져서 너덜너덜해졌고, 투구도 갈라져서 반쪽만 덜렁 걸쳐진 채였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 출혈이 생겨 바닥에 핏방울을 떨어뜨리면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우… 후우… 후우… 역시 무구발은 무시 못하겠네요. 하하하."

"비겁하다고 생각하진 마라. 너 또한 준비할 수 있었으면서 하지 않은 게 아닌가?"

"글쎄요? 후우~"

툭!

베오날드는 머리를 흔들어서 너덜너덜해진 투구를 벗고, 땀을 털어 내며 로이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갑주는 현재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 그리고 자세히 보면 반지와 팔찌가 은은하게 그의 고유 오러와 다른 빛으로 빛나면서 무언가 작용 중이었다.

과거 통일 제국의 마나 호흡법으로 쌓은 오러와 계속 부딪치면서 만만치 않게 오러를 소모했을 텐데, 상대는 멀쩡한 걸 보면 마력이나 체력 회복, 혹은 오러 회복에 도움을 주는 무구일 터였다.

‘거기에 갑옷은 가볍고, 베놈실크는 웬만한 검으론 잘 찢기지 않는 튼튼하게 짜인 망토인 데다 인챈트까지. 마지막으로 검은… 오러 증폭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이었군. 후우~ 저 정도로 무장을 해야 나보다 세다는 걸 알았군.’

"네 한계가 거기까지라면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얌전히 사라져라."

‘…명실상부한 위기,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 자, 그럼 이제… 피날레를 장식해 볼까?’

척.

베오날드는 죽음의 여신이 자신에게 안겨 오는 느낌에 차가워지는 피를 느끼며 검을 잡고 오러를 집중시키면서 여태껏 성공하지 못했던 노이멀 가문의 오의를 준비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이는 것을 본 로이드 또한 검을 잡고 잔뜩 경계심을 올려 그에 맞설 준비를 했다.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그리고 수련 중이던! 오의가 정해진 전개! 간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식 검법 제1오의-히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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