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사람들이 오면 귀찮으니 말이지.’
지금 떡상한 그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크멜 가문과 결투까지 한다고 하면 이다음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수많은 귀족들이 그에게 몰려와서 소란스러워질 터였다.
누군가는 그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발데리안 가문에 잘 보이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역으로 크멜 가문을 위해 첩자가 되기도 하는 등 혼돈스러운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결투가 3일 남았는데 그런 인간들과 어울리면 곤란해. 차라리 지금 사라지는 게 낫지.’
그런 인간들과 어울리면서 분류하고, 조치까지 취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니 피하는 건 당연했다. 거기다 결투 소식이 알려지고 행방이 끊기면 신비스러운 이미지도 추가될 테니 베오날드로선 계산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이 선택지가 옳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의 행적을 최대한 감추면서 도착한 곳은 바로 데런의 상회였다.
현재는 오후 시간. 일을 하던 데런은 베오날드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안 신고 달려와서 그에게 뛰어들려고 했다.
“베오날~ 드니이이이이임! 오셨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핫!”
“…뭐여? 미쳤어?”
“커억!”
하지만 베오날드는 사내놈의 포옹 따위를 절대로 받아 줄 생각이 없기에 곧바로 피했고, 데런은 그대로 땅으로 엎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베오날드의 손을 꼬옥 붙잡으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덕분에 아주 대박이 터졌습니다. 후하! 설마 정말로 혼자서 상대 기사 5명을 돌파해 버리실 줄이야! 하늘에서 돈이 떨어져 내린 기분입니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배율이 얼마였지?”
배율, 곱셈의 비율을 말하는 것.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내기와 도박이 존재하는 법.
칼레움 제국이 세워지고, 아카데미가 생기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평민들도 입장할 수 있는 체육제의 행사를 가지고도 도박을 하는 무리가 존재해 왔다.
물론 귀하신 귀족님들을 감히 도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기에 양지로 나올 수 없는 도박이었지만, 오래된 행사인 만큼 그 음지의 도박 시장 크기는 매우 컸던 것이다.
“하하하! 들으면 놀라실 겁니다. 정말이지! 저는… 저는 베오날드 님이 처음에 ‘검의 정원’ 동아리가 5 대 0으로 승리한다는 것에 걸라는 말을 듣고는 제정신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전 베오날드 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 채 남은 재산을 모두 올인! 기어이 대박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야호오오오오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그래서 배율은?”
“2만 배입니다. 후후후! 후하하하! 후하하하하하하핫! 전 이걸로 수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후하하하하하하하!”
상인으로선 돈을 버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인 만큼 무려 2만 배의 대박을 안겨 준 베오날드에게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곤 해도 대부분 베오날드 님이 시키신 ‘다른 일’ 때문에 생긴 빚을 갚아야 하지만 말이죠. 하아아~”
“어찌 되었든 손해만 아니면 그만이지.”
“더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른 일을 나중에 하고, 가진 돈으로 이번 한탕 크게 번 다음에 했다면…….”
빚을 내서 돈을 쓰는 걸 뒤로하고, 처음에 있는 자본금을 모조리 때려 부었다면 더 큰 이익이 있을 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데런이었지만 베오날드는 가차 없었다.
“상인이면 장사로 돈을 벌어라. 도박은 그저 일의 비용을 위한 임시변통일 뿐이다. 나도… 위험성이 높았고, 두 번은 쓰지 못할 방법이다. 알았나?”
“윽……!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베오날드 님.”
“그래서, 물건들은 어디에 있지?”
“따라오십시오.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횃불도 필요하겠군요.”
그렇게 데런을 따라서 베오날드는 곧바로 상회 내부로 들어갔고, 데런이 안내하는 대로 몇 개나 되는 비밀 통로를 지난 뒤 어떤 창고 문 앞에 도착하였다.
요즘 시대 상회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비밀 창고로 불법적인 물건이나 비상용 물건을 숨겨 두는 곳이었다.
“예전에 이야기하신 대로 우선적으로 ‘히드라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상품과 통일 제국 시절 물건을 깡그리 사 뒀지요.”
“어디 얼마나 모았는지 볼까?”
데런이 창고의 잠금을 풀면서 베오날드에게 설명하는 사이 문이 열렸다.
곧이어 횃불들을 켜자 어두운 창고 안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수많은 잡동사니와 골동품, 책, 무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많이 모은 건 좋지만… 이 상태는 심히 불쾌한데?”
“아, 아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량으로 싸게 구입하려면 좀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느낌으로 연기해야만 했고, 운반하는 인부들에게서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단 말입니다.”
그의 변명도 나름 합리적이었기에 인상을 찌푸렸던 베오날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베오날드는 안으로 들어가서 먼지가 쌓이고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데런에게 의뢰한 것은 바로 500년 전, 통일 제국 시대의 유물과 골동품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깡그리 긁어모아 달라는 거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물건 분류는 했어야지. 후우우~ 이거 3일간 개고생하겠군.”
어떤 귀중한 유물이 있을지 모르는데 쓰레기장처럼 되어 있는 꼴을 본 베오날드는 한숨을 깊게 쉬며 데런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표현하기 위해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검술이랑 마나 호흡법을 수련 안 했으면 힘들었겠군.’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감정하시는 겁니까? 아니, 도대체 어떤 고고학적 기술과 감정안을 가지고 있으시기에 통일 제국 시기의 물건을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건지…….”
‘그야 내가 500년 전 사람이니까 그렇지! 이것도 아니고~’
한탄하고 있어 봐야 소용없었기에 베오날드는 곧바로 쓰레기 더미로 가서 물건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수(手)는 거의 도박이나 뽑기에 가까웠지만, 현재 베오날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자신이 가진 500년 전의 지식과 기억,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인가 유물을 찾기도 했기에 더더욱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이디와 셀리나에게 예의 상자를 건네주고, 황녀의 위치를 제대로 알려 줬나?”
“누구 말씀인데 거부하겠습니까? 그리고 황녀 전하는 바니로 백작가에서 혼약을 위해 비밀리에 미리 데려간 것도 확인해서 알려 드렸습니다. 근데 그… 물건을 드리긴 했는데, 그건 어떤 유물이었습니까?”
“비밀이다. 아무튼 여기서 2일 정도 머물 생각이니 너는 식사와 식수, 모포를 가지고 와라. 나는 여기 물건들을 감정할 수 있는 대로 감정해야 하니 말이다.”
베오날드는 근성론이라든가 무인의 마음가짐이 없기에 단련을 믿지 않는다.
그런 불확실한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준비할 바엔 차라리 여기 있는 이 쓰레기 산 같은 곳에서 가능성을 찾는 게 베오날드의 성미에 맞았다.
그리고 실제로 ‘히드라의 문양’이 새겨진 물건을 찾을 때마다 기분도 기분이지만, 결국 자신이 연구해서 만든 것들인 만큼 오히려 쓸 만한 구석이 많았다.
‘오… 이건?’
베오날드는 버려진 건틀릿을 하나 들고 미소를 지었다.
녹이 슬고 먼지가 가득 묻은 금속으로 된 오래된 건틀릿. 곳곳에 여러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본래 보석이나 마정석이 끼워져 있는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구석엔 히드라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 또한 베노피스 시절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히드라 스케일 글로브. 슬롯에 마정석을 끼우고, 마력을 흘려 넣어서 활성화시키면 건틀릿이 감싸는 부분에 한해서 용암, 강산, 맹독에도 견딜 수 있는 보호 마법이 활성화되는 건데! 이게 이런 곳에 굴러들어 오다니!’
베오날드가 가장 먼저, 그리고 주력으로 개발한 것은 바로 각종 연금술 및 마법 실험용 보호 장비들이었다.
연금술사의 경우 위험한 약품과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기에 안전 장비가 필수였는데, 이때까지 그런 것을 개발하려고 하는 놈들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건 대박이군. 이것저것 찾는 보람이 있겠어.’
설사 오래돼서 작동하지 않아도 이 소재와 부품에 깃든 마법 술식, 거기에 물건의 메커니즘을 꿰고 있는 베오날드이기에 역설계로 복제 생산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즐거워하면서 베오날드는 계속해서 쓰레기장을 뒤지며 골동품들을 판별해 나갔다.
‘좋아, 이건 이거대로 스크랩을 해서 소재로 쓰면 되고… 이건 녹을 제거하면 베오날드 강(鋼)이야. 녹여서 쓸 수 있겠어. 그리고 이건…….’
“…그~ 엄청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명하신 대로 물건을 구하긴 했지만 무구 같은 건 거의 못 구했는데 말이죠.”
데런도 나름 베오날드를 위해 쓸 만해 보이는 것을 매입하고 싶었지만 딱 봐도 검이나 갑주 같은 무구는 진작 모두 쓸려 나간 지 오래였다.
그래서 데런이 여기 모은 대부분은 가구나 골동품 같은 것들로, 척 보면 대부분 나간 돈에 비해서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었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아~ 딱히 불만족스럽진 않다. 사람에 따라서 쓰레기장도 보물창고로 만들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내가 확실히 쓰레기라고 판단한 것들이나 치워 주게. 그리고 여기서 혹시 불 피울 수 있나?”
“아, 가능할 겁니다. 공기 순환은 잘되게 해 놨으니까요. 엄연히 상회의 비밀 창고입니다. 허투루 만든 건 아니죠.”
각종 비밀 장물을 숨기기 위해서 공을 들인 창고라서 그런지 자신감을 표현하는 데런이었다.
베오날드는 그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쓸모없는 가구들을 부수고, 몇 가지 골동품을 뜯어내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뭐, 뭘 하시려는 겁니까?”
“아~ 여길 아예 연구실로 만들 생각이었지.”
“아니, 여긴 저희 상회의 비밀 창고인데요? 또 저 혼자 쓰는 게 아닌데…….”
“투자라고 생각해라. 음… 마나 호흡법이 이럴 땐 좋군.”
콰득! 쾅! 쾅! 서걱!
마나 호흡법으로 단련해서 오러를 두른 육체가 공구가 되어 준 덕분에 매우 손쉽게 연구에 필요한 설비를 뚝딱 만들어 내었다.
모자란 것은 안에 있는 통일 제국 시절 골동품들을 뜯거나 확인해서 만들면 되기에 아주 순조로운 작업이었고, 간만에 창작 욕구까지 해소되니 베오날드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주 신이 나셨군요.”
“뭐,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일이거든.”
전생에 벨릭스 폰 노이멀의 지옥 같은 후계자 교육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 준 것이 바로 연금술 연구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자신은 아마 노이멀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어린 시절 자신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인 만큼 베오날드를 구성하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음, 좋았어.”
곧 목숨을 건 결투를 앞둔 사람답지 않은 표정으로 그는 계속해서 연구실을 만들어 나갔다.
***
2일 뒤, 제국 남부 숲길.
베오날드의 명을 받은 셀리나와 하이디는 알테리오를 타고 전력으로 질주,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보다는 단둘이서 이동하는 게 빠르기도 하며, 잠을 자는 것도 잊은 채 계속해서 달린 덕분인지 드디어 행렬을 따라잡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그 행렬을 보자마자 곧바로 베오날드가 지시한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