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아무튼 이걸로 저놈은 더 달라붙겠군. 후우~’
지금 한창 이익을 보는 중이라 바빠서 그렇지, 아마 흥행이 한번 지나가고 사업이 안정화되거나 아니면 다른 이에게 사업 자체를 팔아 치우는 방법으로 크게 한탕 더 한 다음에는 여기서 얻은 이익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에게 또 올 것이라고 보는 베오날드였다.
‘마침 나도 돈이 필요한 상황이니… 그때 씨를 뿌려 두길 잘했군. 으음… 나중에 찾아가야지. 정말 그때 뭐라도 주길 잘했어.’
황제에 대항해서 황녀를 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변수가 있으면 도움이 될 테니, 그가 돈을 버는 것을 본 베오날드는 이전에 레시피를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진저리 난다고 데런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면 이런 찬스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귀족 줄에도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난감했네. 자, 가지.”
“예, 선배님.”
나중에 반드시 데런을 만나기로 마음먹고, 베오날드는 종이 상자에 곱게 포장된 비누를 사들고 온 케드론과 함께 다시 아카데미로 향했다.
아카데미로 가서 곧바로 ‘검의 정원’ 동아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도 라이벌인 ‘검과 방패’급으로 만만치 않게 시설이 휘황찬란했고 무슨 군 사령부 같은 건축물이 올라가 있었다.
‘…이런 건 꼭 서로 경쟁하면서 산으로 가 버리니까 말이지.’
귀족들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베오날드는 만만치 않게 호화로운 시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동아리 회장이 케드론인 덕분에 누구도 반대하는 일 없이 동아리방으로 올라간 베오날드는 검과 정원 동아리에 가입, 곧바로 체육제 대표 엔트리에 올리기 위한 회의를 열어 한창 훈련 및 수련 중인 인원을 모두 소집, 곧바로 본래 나가기로 했던 기사 엔트리를 조정할 수 있었다.
“물론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번 ‘대회’는 반드시 이겨야 올해가 편하고, 각자의 가문 혹은 섬기는 영지로 가서 기사로 근무할 친구들의 명예와 평판도 올라갈 테니, 그를 토너먼트와 대규모 합전 엔트리에 넣고자 한다. 이견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 로이드 놈에게 한 방 먹였으니 실력이야 좋은 거 아닙니까?”
“게다가 대신 싸워 주겠다는데… 이견이 있을 리 없죠.”
여기선 케드론이 회장인 데다 베오날드의 실력도 다들 보았기에 이견을 제지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단합 대회에서 이겨야 자신들 파벌의 명예가 올라가기 때문에 출신이고 뭐고, 참가 자격이 있는 자가 강하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베오날드는 그렇게 가입 절차를 밟은 뒤 유니폼과 대회 출전 시 입을 갑옷, 그리고 검을 지급받게 되었다.
“저 잠시 어디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게. 오늘 안 들어오나?”
“으음~ 늦게 들어가면 민폐이니 내일 아침까지 머물지요.”
“알았다네. 그럼 그 갑주와 짐은 내가 맡지.”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케드론의 배려에 베오날드는 감사를 표하고, 짐을 넘겨준 다음 곧바로 말에서 내려 홀로 어딘가로 이동했다.
곧장 데런이 속한 상회가 있는 곳에 도착한 베오날드는 경비를 서는 인상 험악한 직원에게 자신이 왔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가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다급하게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베오날드 님! 이게 웬일입니까? 직접 와 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어서 들어오십시오. 자자, 어서요, 어서~”
‘내 발로 찾아온 거지만 참 이 녀석의 능글맞은 태도는 불쾌하군.’
베오날드를 보자마자 데런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열심히 손을 비비고 굽실거리면서 그를 상회 건물 안으로 직접 안내했다.
그리고 어느 방으로 데려갔는데, 그곳이 그의 집무실인 듯 안에는 수많은 서류와 금화 자루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비싼 촛불도 3개씩이나 켜 두고 일을 할 정도면 어지간히 이득을 본 것 같다.
“이거 죄송합니다. 하하하, 한참 오늘 수입을 정산하고 있어서요.”
“이러길 바랐으니 뭐, 상관없다. 그래서? 좀 벌었나?”
“다 알면서 그러십니까? 현재 대히트 중이고, 비누 사업의 정점이 되었습니다. 지금 원료와 재료가 부족해서 수요를 못 따라갈 지경인 데다 비누를 사서 쓰지 않고 되파는 되팔이들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하하핫! 또한 수도 밖으로 점점 퍼져 나가고 있죠.”
‘되팔이’라는 말에 베오날드는 어처구니없어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간신히 참고, 데런이 내온 차를 마시며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음~ 그거 잘됐군. 하지만 다른 상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비누 시장 자체는 아무도 손 안 대는 구역이었고, 비누 공장이라는 걸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요. 소수 길드 장인들이 귀족가에나 납품하는 정도였죠.”
“그럼 그들은 반발하지 않았나?”
“오히려 돈을 주고 저희 쪽에 고용했죠. 하하핫! 금화 앞에 장사 있겠습니까? 더불어 그들의 노하우까지 합쳐진 덕분에 생산력은 더 올랐습니다.”
‘확실히 재능 있는 상인은 다르군.’
현생의 자신과 비슷한 어린 나이인데, 생각이나 수완이 노련했기에 베오날드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정도 사업을 키우는 능력이라면 확실히 어지간한 상인보다 깔끔하고 대범했다.
“그리고 레시피의 보호를 위해 황실에 수익 일부를 바치고, 앞으로도 꾸준히 드리겠다고 하니 황실 기사단원을 세 분이나 지원해 주시더군요. 그것도 상급 기사 클래스의 초엘리트 분들로 말입니다.”
“그것참 대단하군.”
거기다 비용은 더 들어도 레시피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수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황실과 호감을 쌓는 것도 겸해서 황실 기사단을 끌어들일 줄이야.
3명이라곤 해도 황실 기사단이 지킨다는 그 명성만 있어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수(手)였지만, 그래도 숫자가 너무 적은 것 같아 물어보았다.
“한데 3명은 적지 않나? 교대를 한다고 하면 한 명씩일 텐데?”
“물론 3명만 오는 건 아니죠. 그 세 분이 이끄는 일반 병사들과 시종들까지 오는 거니 사실상 100여 명의 호위 군단입니다. 하하핫.”
“…그러면 그들의 유지 비용은?”
“당연히 황실 부담이죠. 수익의 일정 비율을 드린다고 했고, 황성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을 우선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어차피 황실로서는 기사단 유지는 고정 비용이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재무부 관료들을 설득해야 했을 텐데…….”
“그건 그분들 집의 부인과 따님들도 저희 비누를 원하고 있고~ 거기에 살짝 금화도 얹어 드렸더니 스무스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법칙을 제대로 아는 데런의 수완은 빈틈이 없었다.
황실은 황실대로 고정 수입이 생기고, 데런은 데런대로 레시피를 지키면서 이 비누 사업을 계속해서 키워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서로 윈윈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자기 자랑을 한 데런은 곧바로 베오날드에게 그가 온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베오날드 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제 성과를 보러 올 만큼 한가하시진 않은 것 같은데요. 아, 혹시 황녀 전하께 드릴 상품을 얻으러 오신 겁니까? 하하핫.”
“여기도 소문이 났나?”
“베오날드 님에 대한 소문은 수도에 지금 안 퍼진 곳이 없습니다. 모르는 놈이 바보죠. 하하핫. 그래서, 황녀님과의 관계는 실제론 어떻습니까?”
“그쪽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다.”
“안타까움이요?”
“그래, 개 같은 황제 밑에서 고생하는 게 뻔히 보여서 말이지.”
“우와, 그거… 좀 위험한 발언 아닙니까? 게다가 이 나라 황제 폐하 정도면 일 잘하시는 게 아닐지?”
칼레움 제국은 그 말마따나 현재 대륙에서 유일하게 제국으로 자부할 정도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난세에 정치 감각도 뛰어나고, 아카데미를 세워서 귀족은 귀족대로, 평민들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인재들을 모아서 이용하면서 수십 년간 지배하며 제국의 입지를 탄탄히 굳혀 온 자였다.
그런 그를 ‘개 같은 황제’라고 칭하니 난감할 수밖에.
“아… 일은 잘하지. 맞아. 제국의 시민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다만 내가 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좋은 부모는 아니라는 거지.”
“뭔지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데…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안 사정 아닙니까? 왜 굳이 거기에 손대려는 겁니까? 이해가 안 가네요.”
“아무튼 거기까지 너에게 말해 줄 의리는 없다. 그래서 어쩔 거냐? 적어도 내가 황실에 좋은 일은 안 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 뭔가 제스처를 취해야 하지 않나?”
“으으으으으음~ 이거 진짜 곤란하네요.”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상회 전부가 날아갈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데런은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진짜 반역도 반역이고, 심지어 황녀를 노린다는 게 어처구니없었으나 베오날드의 눈빛엔 진심이 가득했기에 그는 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제가 뭘 해야 하나요?”
“그건 말이다…….”
베오날드는 입을 열어서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지속되면서 그것을 듣는 데런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베오날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계속해서 설득을 했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요. 까짓것 한번 해 보죠. 다만 성공하면 제 몫은 제대로 챙겨 주셔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뭐죠?”
“이미…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와 접촉했으니 분명 황실에서 첩보부 사람이나 황실 기사단이 붙을 거다. 난 이미 요주의 인물이고, 여기 온 시점에서 관계를 부정하기는 힘들겠지.”
“…캑! 이미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염두에 두지요.”
그 말을 끝으로 베오날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상회를 떠났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수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몸을 날려서 조금이라도 그들의 판단을 흩트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
칼레움 제국, 황궁.
그리고 베오날드가 간파했듯이 황제는 계속해서 첩보부의 요원과 황실 기사를 그에게 붙여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었다.
발데리안 가문 내에서 얌전히 있을 때는 별거 없었지만, 그가 저택을 나와서 움직이기 시작하니 특별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러니까 그가 아카데미의 귀족 학부의 기사 동아리 대전에 나오려고 한단 말이지? 이미 검의 정원 동아리에 들어갔고.”
칼레움 제국의 황제는 집무를 보면서 첩보부 요원에게서 그에 대한 보고를 듣는 중이었다.
검은 옷에 복면을 쓴 요원은 엎드린 채로 계속해서 그의 질문에 답했다.
“예, 폐하. 자세한 대화는 못 들었지만 딱 봐도 놈의 목적은 거기서 공을 세워서 폐하를 알현할 때 황녀 전하를 노리려는 것 같습니다.”
“허허허, 반역에 준하는 다른 수단을 제외하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 심지어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 노리는 거겠지.”
아카데미의 체육제 행사들 중 가장 크고 명예로운 경기 중 하나인 기사 전공 동아리 간의 대전. 제국의 기사 유망주들의 등용문 같은 곳이며 승자에겐 크나큰 명성이 주어지는 대회였기에 황제를 직접 알현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으음… 거기까지 올라오면 아주 곤란하게 되지.’
이미 열애담으로 수도를 후끈거리게 한 그놈이 거기서 자신에게 황녀를 달라거나 혹은 다른 수작을 부리면 승낙하든 거절하든 머리가 아파질 문제라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황제였다.